"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복음 22:42)
인간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고난은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기에 '십자가의 도'가 완성되었지요.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뜻에 오직 순종만 하시는 사랑의 마음
주님의 사랑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어떤 조건이나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 깊이까지 헤아려서 오직 순종만 하는 사랑입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오직 순종함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요. 그리고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시고자 묵묵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참혹한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다.'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이 되시고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요.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십자가의 도'를 완성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마음 깊이 사랑하며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마음에 가득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인생들을 죄의 종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길을 활짝 여셨지요.
2. 어찌하든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하시는 긍휼의 마음
영적인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자도 싫다 하지 않고 어찌하든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마음이지요. 그렇다면 주님의 긍휼의 마음은 얼마나 크셨을까요?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했습니다. 상한 갈대처럼 심령이 죄로 물든 사람이나 혹은 꺼져가는 심지처럼 구원의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이라도 주님께서는 끝까지 참아 주셨습니다.
세리나 창기와 같이 멸시받는 이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복음을 전하셨지요. 그러자 악한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을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하셨지요(막 2:17).
이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담긴 예수님의 말씀이 세리나 창기와 같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힘과 소망이 됐겠습니까. 마태복음 26장 2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조차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가 자신을 팔아넘길 줄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으로 대하시며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요. 그런데도 가룟 유다는 결국 스승을 팔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채찍을 사정없이 휘두르는 로마 병정들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침 뱉으며 갈대로 머리를 치면서 희롱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셨지요. 그들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도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악한 도구로 쓰이는 인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심히 크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공의가 되어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셨지요. 이것이 바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 많은 사람에게 어찌하든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지요.
저도 교회 개척 이후 지금까지 어찌하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으로,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할까만 생각하며, 영혼들을 참으로 소중히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랑을 주었음에도 배신하고 교회를 떠나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악한 이들도 밉거나 싫지 않았지요. 오히려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러한 긍휼의 마음이 될 때 영혼을 살리거나 구원의 길로 이끄는 지혜를 얻으며 결국 선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3. 자신의 삶 모든 것을 인생들을 위해 내어주시는 마음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내어주고 또 내어주고서도 혹 상대에게 부족한 게 없는지, 더 줄 것은 없는지 다시 살핍니다. 예수님께서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삶을 인생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누추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짐승과 다름없는 인생들에게 영의 양식이 되고자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또한 구세주가 되시려면 죄가 없어야 하기에 온전히 율법을 준행하심으로 어떤 자범죄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원죄도 없으셨지요.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을 부요케 하시려고 대신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고후 8:9). 무엇보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권능의 역사를 영혼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영혼들은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받아 강건케 되었으며 어둠에 사로잡힌 영혼들도 온전케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거나 쉴 시간조차도 영혼들에게 내어주셨으며, 주린 영혼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시고, 멸시천대를 당하는 영혼들에게는 위로와 존중하는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도 다 내어주셨습니다. 가시관을 쓰심으로 인생들이 생각으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인생들의 질병이 나음을 입기 원하셨습니다. 또한 앞일의 예표로서 겉옷과 속옷까지 내어주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심으로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셨지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깨끗한 보혈까지도 죄인들을 위해 다 흘려 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것은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바로 '영생'을 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도 남김없이 영혼들에게 다 내어주시면서도 참으로 행복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으로 인해 누구든지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기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죄악을 버리며 마음을 할례하고, 하나님의 선과 사랑, 진리를 가득 채워야 합니다. 성결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세상 물결이 아무리 거칠게 몰아친다 해도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마음
당회장 이재록 목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복음 22:42)
인간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고난은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기에 '십자가의 도'가 완성되었지요.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뜻에 오직 순종만 하시는 사랑의 마음
주님의 사랑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어떤 조건이나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 깊이까지 헤아려서 오직 순종만 하는 사랑입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오직 순종함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요. 그리고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시고자 묵묵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참혹한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다.'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이 되시고자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요.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십자가의 도'를 완성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마음 깊이 사랑하며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마음에 가득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인생들을 죄의 종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길을 활짝 여셨지요.
2. 어찌하든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하시는 긍휼의 마음
영적인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자도 싫다 하지 않고 어찌하든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마음이지요. 그렇다면 주님의 긍휼의 마음은 얼마나 크셨을까요?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했습니다. 상한 갈대처럼 심령이 죄로 물든 사람이나 혹은 꺼져가는 심지처럼 구원의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이라도 주님께서는 끝까지 참아 주셨습니다.
세리나 창기와 같이 멸시받는 이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복음을 전하셨지요. 그러자 악한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을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하셨지요(막 2:17).
이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담긴 예수님의 말씀이 세리나 창기와 같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힘과 소망이 됐겠습니까. 마태복음 26장 2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조차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가 자신을 팔아넘길 줄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으로 대하시며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요. 그런데도 가룟 유다는 결국 스승을 팔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채찍을 사정없이 휘두르는 로마 병정들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침 뱉으며 갈대로 머리를 치면서 희롱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셨지요. 그들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도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악한 도구로 쓰이는 인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심히 크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공의가 되어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셨지요. 이것이 바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 많은 사람에게 어찌하든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지요.
저도 교회 개척 이후 지금까지 어찌하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으로,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할까만 생각하며, 영혼들을 참으로 소중히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랑을 주었음에도 배신하고 교회를 떠나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악한 이들도 밉거나 싫지 않았지요. 오히려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러한 긍휼의 마음이 될 때 영혼을 살리거나 구원의 길로 이끄는 지혜를 얻으며 결국 선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3. 자신의 삶 모든 것을 인생들을 위해 내어주시는 마음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내어주고 또 내어주고서도 혹 상대에게 부족한 게 없는지, 더 줄 것은 없는지 다시 살핍니다. 예수님께서는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삶을 인생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누추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짐승과 다름없는 인생들에게 영의 양식이 되고자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또한 구세주가 되시려면 죄가 없어야 하기에 온전히 율법을 준행하심으로 어떤 자범죄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 원죄도 없으셨지요.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을 부요케 하시려고 대신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고후 8:9). 무엇보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권능의 역사를 영혼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영혼들은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받아 강건케 되었으며 어둠에 사로잡힌 영혼들도 온전케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거나 쉴 시간조차도 영혼들에게 내어주셨으며, 주린 영혼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시고, 멸시천대를 당하는 영혼들에게는 위로와 존중하는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도 다 내어주셨습니다. 가시관을 쓰심으로 인생들이 생각으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인생들의 질병이 나음을 입기 원하셨습니다. 또한 앞일의 예표로서 겉옷과 속옷까지 내어주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심으로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셨지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깨끗한 보혈까지도 죄인들을 위해 다 흘려 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것은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바로 '영생'을 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도 남김없이 영혼들에게 다 내어주시면서도 참으로 행복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으로 인해 누구든지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기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죄악을 버리며 마음을 할례하고, 하나님의 선과 사랑, 진리를 가득 채워야 합니다. 성결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세상 물결이 아무리 거칠게 몰아친다 해도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