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갓집 장손의 맏딸이다.
연년생의 동생은 최근에 종가 장손이라고 여친 부모님께 까여 의기소침해 보인다.
각설하고
우리 아버지는 밑으로 여동생 셋과 남동생 한명이 있다.
즉 어머니에겐 동서가 한명 있었다(과거형).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 명절에 안 가신지 5년 정도 됐다.
명절에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전 부치는 것이다(대략 6~7시간).
내가 어렸을 때는 아직 시집 안 간 막내 고모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하셨고, 막내고모가 시집갈 때 쯔음 작은 엄마가 생겨서 나중엔 엄마와 작은 엄마가 했다.
하지만 작은 엄마는 어느날부턴가 오지 않았고, 그 자리는 미혼의 오촌 고모가 차지했다. 그리고 오촌 고모가 결혼할 즈음 우리 엄마도 오지 않게 되면서 몇년째 그 자리는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난 그렇다고 우리 엄마나 작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야 피 섞인 내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두 분께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다 알기 때문에 난 이해한다.
배경을 얘기하자면..
난 집안에서 거의 10년만에 태어난 아기였다.
연년생의 장손이 태어났지만, 내게 집중된 사랑은 분산되지 않았다.
일찍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서 그런지, 난 영악했다.
집안에서의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빨리 파악했달까.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 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가끔 울었다.
그러면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 작은 엄마는 할머니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맞이한 우리 작은 엄마에게 할머니는 정말 모질었다.
우리 집이나 작은 엄마는 전라도 출신이었는데, 작은 엄마 손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갓 시집 왔을 때.. 의욕 넘치게 매운탕이니 갈비니 혼자 다 해내는데에도 우리 할머니는 가시 돋친 말만 했다. 옆에 있던 작은 할머니(종조모)가 "잘만 하는데요, 형님도 참~"했어도 범띠의 할머니는 꾹 입을 다무시고는 인상만 쓰셨다.
그래서 나는 작은 엄마를 위해 울었다.
내가 우는 걸 할아버지가 보기 전에 수습하시고팠던 할머니는 이유를 물으셨고 나는 "할머니가 작은 엄마한테 하는 걸 보니까 울 엄마한테도 그랬을까봐 마음아파서 운다"였다.
그 뒤로 할머니는 내 앞에서 작은 엄마에게 모진 소리하지 않았다.
뭐.. 내가 없는 곳에선 그랬을 수도 있어도..
그래서인지 작은 엄마는 내게 제일 먼저 이혼 소식을 알리며 사촌동생을 종종 보낼터이니 친가에서 사랑받을 수 있게 잘 부탁한다고 했다.
우리 할머니.... 내가 참 손녀로서는 사랑하는 분이지만,
며느리들에게 정말 실수 많이 하신 분이셨다.
반찬 트집은 기본이었고 모질고 못된 말 많이 하셨고 고모들에게 전화해서 흉을 보고 그 일로 고모들이 전화와서 뭐라고 하고...
솔직히 다들 되짚어봤으면 좋겠다.
정말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는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걸까?
일보다는 감정의 문제가 아닐까?
며느리들은 일하기 싫어서 명절이 싫은 걸까?
어느 커뮤니티의 글을 보다가 스쳐지나가는 기억의 편린이 있어서 적는다.
나는 종갓집 장손의 맏딸이다.
연년생의 동생은 최근에 종가 장손이라고 여친 부모님께 까여 의기소침해 보인다.
각설하고
우리 아버지는 밑으로 여동생 셋과 남동생 한명이 있다.
즉 어머니에겐 동서가 한명 있었다(과거형).
그리고 우리 어머니도 명절에 안 가신지 5년 정도 됐다.
명절에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전 부치는 것이다(대략 6~7시간).
내가 어렸을 때는 아직 시집 안 간 막내 고모와 엄마가 번갈아가며 하셨고, 막내고모가 시집갈 때 쯔음 작은 엄마가 생겨서 나중엔 엄마와 작은 엄마가 했다.
하지만 작은 엄마는 어느날부턴가 오지 않았고, 그 자리는 미혼의 오촌 고모가 차지했다. 그리고 오촌 고모가 결혼할 즈음 우리 엄마도 오지 않게 되면서 몇년째 그 자리는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난 그렇다고 우리 엄마나 작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야 피 섞인 내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두 분께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다 알기 때문에 난 이해한다.
배경을 얘기하자면..
난 집안에서 거의 10년만에 태어난 아기였다.
연년생의 장손이 태어났지만, 내게 집중된 사랑은 분산되지 않았다.
일찍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서 그런지, 난 영악했다.
집안에서의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빨리 파악했달까.
자주는 아니지만 우리 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가끔 울었다.
그러면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 작은 엄마는 할머니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맞이한 우리 작은 엄마에게 할머니는 정말 모질었다.
우리 집이나 작은 엄마는 전라도 출신이었는데, 작은 엄마 손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갓 시집 왔을 때.. 의욕 넘치게 매운탕이니 갈비니 혼자 다 해내는데에도 우리 할머니는 가시 돋친 말만 했다. 옆에 있던 작은 할머니(종조모)가 "잘만 하는데요, 형님도 참~"했어도 범띠의 할머니는 꾹 입을 다무시고는 인상만 쓰셨다.
그래서 나는 작은 엄마를 위해 울었다.
내가 우는 걸 할아버지가 보기 전에 수습하시고팠던 할머니는 이유를 물으셨고 나는 "할머니가 작은 엄마한테 하는 걸 보니까 울 엄마한테도 그랬을까봐 마음아파서 운다"였다.
그 뒤로 할머니는 내 앞에서 작은 엄마에게 모진 소리하지 않았다.
뭐.. 내가 없는 곳에선 그랬을 수도 있어도..
그래서인지 작은 엄마는 내게 제일 먼저 이혼 소식을 알리며 사촌동생을 종종 보낼터이니 친가에서 사랑받을 수 있게 잘 부탁한다고 했다.
우리 할머니.... 내가 참 손녀로서는 사랑하는 분이지만,
며느리들에게 정말 실수 많이 하신 분이셨다.
반찬 트집은 기본이었고 모질고 못된 말 많이 하셨고 고모들에게 전화해서 흉을 보고 그 일로 고모들이 전화와서 뭐라고 하고...
솔직히 다들 되짚어봤으면 좋겠다.
정말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는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걸까?
일보다는 감정의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