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헤어짐도 있어요

그립지않다2016.09.17
조회12,174
저번 주말에 헤어진 이십대 중반 여자에요.

아직도 생생하지만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 쓰니 잊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멀리서 친구가 놀러와 있었는데 그사람은 그것도 기억 못하고 이별을 말하려 전화를 했다가 우물쭈물 대기에 내일도 모레도 바뀌는게 없으니 그냥 말하라고 했습니다.

평소에도 감정낭비 하는 것 정말 좋아하지 않고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 이별에 많이 동요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전 남친이 '미안해서 사귀는 게 낫냐, 미안하니까 헤어지는 게 낫냐' 물었을 때, 미안한 마음으로 사귈 바엔 헤어지자고 하라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그 질문 이후로 많은 준비를 했지요. 헤어짐을 기다리면서, 혹은 권태기라는 기간이 지나기만을.

그 이후 조금은 버티는 듯 했지만 3주 정도 후인 저번 주 이별을 말했습니다. 신기했던 건 자기 마음이 식어 헤어짐을 말하면서 많이 미안한지 오열을 하더라고요. 자기 마음을 어쩔까요. 평소에도 특별히 떠오르지 않고, 신경도 쓰이지 않을 뿐인 건데.

그래서 차이는 마당에 제가 위로 해 주었습니다. 나는 괜찮아, 많이 준비 했어, 너무 미안해하지마,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다 문득, 차인건 난데 오빠가 왜 울어? 묻기도 했어요. 처음 보는 우는 목소리에 죽을 병에 걸렸나 싶기도 했고.

우리가 많이 사랑하긴 했나보다 했습니다, 그냥.

헤어지는 이유랍시고 결혼이나 먼 미래의 이야기를 꺼내며 빙빙 돌리기에, 에이 그러지 말라고 그냥 마음이 식었다고 이야기하라고 미래를 생각하기 싫다고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괘씸한 건, 헤어짐을 말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 변명하면, 저는 상처를 받았는데 상처 준 사람은 없어지잖아요. 자기가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 많이 괴로워해야 하는데 저만 상처로 가득하고 자긴 다리 펴고 자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짜증나더라고요.

독한 건지 뭔지 결국 제대로 대답 듣고, 제대로 나쁜 사람을 만들고 나서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헤어지는 마당에 그래도 한마디는 해야할 거 같아서요. 이렇게 바로 떠날 거였는데 나보다도 오빠의 합격을 바란 멍청한 내가 밉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네요.

대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당일 바로 전화 문자 차단 카톡 차단, 차단 목록에도 뜨지 않게 지워서 받지도 못했겠지만요.

혹여라도 연락이 오면 그건 그거대로 더 실망할 것 같네요.
끝까지 책임 지려고 했다고 뒤통수 칠 일 없다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된 걸 보면 원래 약속은 안 지키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지만.

같이 가서 샀던 좀 비싼 운동복을 제 집에 두고 가는 바람에 이번 화요일에 우체국 가서 그 옷과 오빠가 준 편지와 명함, 증명사진들을 택배로 보내고 왔습니다. 버릴 수 없으니 보내는 거라고 인사는 하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고민 했지만 전화로 약속 했으니 그냥 보내줬습니다. 그 명함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줄 테고 증명사진도 따로 쓸 일 있을테니까.

그러나 편지는 아마 자기 손으로 버려야 겠지요.
그래주기를 간절히 빕니다.

만났던 2년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분명 언젠간 좋아하던 시절도 있었겠지요. 끝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한 없는 미래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이별을 한 지금은, 제발 지금 우리의 인연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지금 이걸 쓰면서도 왜 쓰는지 모르겠고 많이 힘듭니다.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제가 괜찮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럼 연락따윈 필요 없으니까. 미련 없이 좋아했다한들 어떻게 금방 괜찮아 질까요. 오래 걸릴 건 알지만 그래도 최대한 빠르게 이겨내고 싶어요.

그렇지만 절대로 연락하지 않을 겁니다.
나름 갑작스러웠던 헤어짐에도 저는 매달리지 않았어요.
자존심도 아니고, 그가 후회하길 바라면서 한 행동도 아니에요. 다만 저를 위해, 이런 권태기 하나에 가까운 사람을 버리는 사람인데 이 기회를 통해 그만 두라고.

전 그런 사람을 참 많이도 좋아했네요.
현실적으로 이별을 받아들이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이별도 있습니다. 많이 좋아했고 사랑했고 아꼈지만 서로 아무 미련 없이 떠나는 이별도 있어요.

연락은 오지 못할 거고, 저는 받지 못할 겁니다.
재회는 없습니다. 전 그걸 원해요.
독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재회를 바라며 연락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둔다거나 연락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둔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여기서 인연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끝은 끝이니까요.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괜찮아질 거예요.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