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_으니라
@원어사전;
여리고:@Iericwv(2410, 히에리코) 여리고 Jericho.
여리고는 '예리호'와 관련이 있으며, '향기의 장소'를 의미한다. 작가들은 여리고의 종려 나무와 발삼 나무를 칭송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 이름이 '향기나는 장소'를 뜻한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셈족이 숭배한 달의 여신을 시사하고 있는 '달의 성읍'을 뜻한다고 추측한다. 이곳은 구약성경에서 '종려의 성읍', '종려 나무의 성'으로 불리웠다(신 34:3 삿 1:16 삿 3:13 대하 28:15).
디매오:Tivmaio"(5090, 티마이오스) 디매오 Timæus (인)
티마이오스는 히브리어 타메(불결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한글개역성경에서 디매오로 표시했다. 티마이오스/디매오는 신약성경에서 막 10:46에 한번 나온다. 그는 여리고 근처 길가에서 예수님께 고침 받은 소경 거지 바디메오의 아버지이다.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맹인:tuflov"(5185, 튀플로스) 눈먼 blind.
튀플로스는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 15:14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마치 바울이 롬 2:19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호데고이 투플론(소경들의 인도자)"이며, 그래서 이 말을 경칭으로써 사용할 자격이 있다고 하는 율법에 정통했던 유대인들의 가정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율법의 권위있는 해석자들로 여겼고, 따라서 그들만이 "눈먼" 이방인들을 합법적으로 인도하고 지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빛을 가져오는 자로 자부하며, 이방인들에게 소위 진리와 이해력을 제공해 주었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맹목 속에 빠져있는 바리새인들을 동정하시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셨다. 왜냐하면 그들 마음이 완악하여졌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참조: 마 23:16 이하; 마 23:19 마 23:26 마 16:4).
눅 6:39에 나타나는 마 15:14의 병행구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고찰되어진다. 이것은 판단에 대한 가르침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스스로가 눈이 멀어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조차 갖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판단하는 자로 자처할 수 있는가?
# 인간의 시각의 척도는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 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아니고는 인간이 바르게 인간과 세상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성경학자에게도 맹인이라 하시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불결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산 제물이며 천국의 하나님께도 인도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들은 맹인으로서 다른 사람들도 맹인으로 인도하여 같이 죽는 자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눈이 되시는 예수님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바디매오는 아무 지식과 재산이 없어도 오직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눈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눈은 오직 예수님 이시며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입이 되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 받는 귀도 바로 예수님이 되십니다. 디매오는 불결한 이란 뜻으로 하나님께 드려 질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눈이 떠지고 만물을 바로 보며 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사망의 길을 나아감으로 맹인이요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생명의 길로 나아감으로 눈을 바로 떠 바로 가는 자입니다.
이번 명절도 매우 안타까운 사건들이 우리 가정을 비롯하여 많았을 것입니다. 눈과 입과 귀가 닫힌 불신 식구들과의 말이 소통되지 않는 갈등 그리고 다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서로간 제사로 인한 믿음의 문제들도요 하나님은 말씀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언어와 소통의 신이 되시는 분입니다. 말씀 언어로 통해 질서가 세워지고 선한 역사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 소통의 기준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런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 말은 하는거 같아도 서도 통하지 않는 모순이 심히 발생하고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매우 심각한 현상입니다. 서로 믿지 않는 정상으로 남북한도 통하지 않으며 가족간 어느 한쪽이 믿지 않아 서로 통하지 않으며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파괴와 상해의 현상들이 끊임없이 세상에는 이어집니다. 성경의 방언은 원어 ‘글로사’로서 외국어 언어를 말합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파괴적 헬라어 원어를 ‘글롯솔라리아’ 라 하는데 이런 원어는 성경에 씌여 있지 않습니다. 질서 있는 언어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이건만 자주 이상한 파괴된 언어를 쓰는 교회도 있습니다. 지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디매오가 참된 시각의 기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영생이 그 가정에 긷드는 것을 봅니다. 이 구원은 그양 얻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찾고 구해야 합니다. 재산이라고는 겉옷 밖에 없을 거지가 예수님 이라는 다 벗어 던지고 달려 옵니다. 믿음은 간절히 사모하고 찾아야 합니다. 그 마음 중심을 보시고 주님은 생명길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와 주위 사람들은 그 생명의 예수님을 찾고 있는 지요...
그 남북간의 갈등과 위협과 그 가족간의 갈등과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예수님을 찾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들은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보고는 합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웅이 될 사람이 예수님이 없어 왕따가 되고 지옥에 갑니다. 가진거 없고 잘나지 못해도 단지 예수님을 믿어 성인 군자로 인정을 받고 장차 천국 3층 보석집에서 살게 되며 모든 죄가 사함을 받습니다. 아무공로 없이 단지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에 천국과 지옥 영웅과 왕따가 갈리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를 찾아야 합니까 오직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거닌 우상의 도시 여리고가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여리고의 뜻 답게 향기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더러운 뜻의 이름 바디매오가 향기의 예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꼭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이 전도의 글을 전파해도 읽지 않고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오늘 밤도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과 불신, 소통과 불통의 혼란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가치기준의 척도인 예수님이 있고 없고의 카오스 무질서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옳고 주님이 질서가 되고 주님만이 진리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없어 주님의 참된 기준 참된 가치가 없어 세상이 망해가고 세상이 싸움 가운데 살아 갑니다. 이 분란한 남북과 이 분란한 우리 가족과 이 분란한 사람들의 세상 속에 우리의 구원이 되어 주시옵소서 모든 걸 바로 잡아 주시고 화평이 없는 세상에 거대한 바위 반석 기준이 되어 흔들리지 않는 진리가 되어 주시옵소서 그 진리가 온 세상에 가득하여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고 강한 평강이 되어 주소서 모든 갈등과 분란 속에 받은 큰 상처들을 모두 치유하여 화목이 되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QUiNrebhu5E?list=PLkDm9k3-yeTjQEh4qSlvK3Ds5Vam71vOu
주님의 숲 사랑이야기
어느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저 숲속에
평온하게 쉴수있는 곳을 찾아
(1절)
당신이 지나온 이 거리는 언제나 낮설게 느껴
그 어디에도 평화없네 참 평화 없네
그렇지만 당신의 앞에 펼쳐진 주님의 숲에
지친 당신이 찾아온다면 숲은 두 팔을 벌려
그렇게도 힘들어 했던 당신의 지친 어깨가
이젠 쉬도록 편히 쉬도록 여기 주님의 숲에 우-
참된 눈과 입, 귀가 되시는 예수님
{참된 눈과 입, 귀가 되시는 예수님}
주품이 큐티 ^ ^
https://youtu.be/vKqb2kb_zrg
카보드 2016 9 18 우리교회 성가대입니다 ^ ^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_으니라
@원어사전;
여리고:@Iericwv(2410, 히에리코) 여리고 Jericho.
여리고는 '예리호'와 관련이 있으며, '향기의 장소'를 의미한다. 작가들은 여리고의 종려 나무와 발삼 나무를 칭송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 이름이 '향기나는 장소'를 뜻한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셈족이 숭배한 달의 여신을 시사하고 있는 '달의 성읍'을 뜻한다고 추측한다. 이곳은 구약성경에서 '종려의 성읍', '종려 나무의 성'으로 불리웠다(신 34:3 삿 1:16 삿 3:13 대하 28:15).
디매오:Tivmaio"(5090, 티마이오스) 디매오 Timæus (인)
티마이오스는 히브리어 타메(불결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한글개역성경에서 디매오로 표시했다. 티마이오스/디매오는 신약성경에서 막 10:46에 한번 나온다. 그는 여리고 근처 길가에서 예수님께 고침 받은 소경 거지 바디메오의 아버지이다.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맹인:tuflov"(5185, 튀플로스) 눈먼 blind.
튀플로스는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 15:14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마치 바울이 롬 2:19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호데고이 투플론(소경들의 인도자)"이며, 그래서 이 말을 경칭으로써 사용할 자격이 있다고 하는 율법에 정통했던 유대인들의 가정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율법의 권위있는 해석자들로 여겼고, 따라서 그들만이 "눈먼" 이방인들을 합법적으로 인도하고 지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빛을 가져오는 자로 자부하며, 이방인들에게 소위 진리와 이해력을 제공해 주었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맹목 속에 빠져있는 바리새인들을 동정하시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셨다. 왜냐하면 그들 마음이 완악하여졌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참조: 마 23:16 이하; 마 23:19 마 23:26 마 16:4).
눅 6:39에 나타나는 마 15:14의 병행구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고찰되어진다. 이것은 판단에 대한 가르침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스스로가 눈이 멀어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조차 갖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판단하는 자로 자처할 수 있는가?
# 인간의 시각의 척도는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 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아니고는 인간이 바르게 인간과 세상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성경학자에게도 맹인이라 하시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불결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산 제물이며 천국의 하나님께도 인도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들은 맹인으로서 다른 사람들도 맹인으로 인도하여 같이 죽는 자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눈이 되시는 예수님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바디매오는 아무 지식과 재산이 없어도 오직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눈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눈은 오직 예수님 이시며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입이 되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 받는 귀도 바로 예수님이 되십니다. 디매오는 불결한 이란 뜻으로 하나님께 드려 질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눈이 떠지고 만물을 바로 보며 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사망의 길을 나아감으로 맹인이요
영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생명의 길로 나아감으로 눈을 바로 떠 바로 가는 자입니다.
이번 명절도 매우 안타까운 사건들이 우리 가정을 비롯하여 많았을 것입니다. 눈과 입과 귀가 닫힌 불신 식구들과의 말이 소통되지 않는 갈등 그리고 다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서로간 제사로 인한 믿음의 문제들도요 하나님은 말씀이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언어와 소통의 신이 되시는 분입니다. 말씀 언어로 통해 질서가 세워지고 선한 역사를 이룹니다. 그러나 그 소통의 기준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런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 말은 하는거 같아도 서도 통하지 않는 모순이 심히 발생하고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매우 심각한 현상입니다. 서로 믿지 않는 정상으로 남북한도 통하지 않으며 가족간 어느 한쪽이 믿지 않아 서로 통하지 않으며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파괴와 상해의 현상들이 끊임없이 세상에는 이어집니다. 성경의 방언은 원어 ‘글로사’로서 외국어 언어를 말합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파괴적 헬라어 원어를 ‘글롯솔라리아’ 라 하는데 이런 원어는 성경에 씌여 있지 않습니다. 질서 있는 언어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이건만 자주 이상한 파괴된 언어를 쓰는 교회도 있습니다. 지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디매오가 참된 시각의 기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영생이 그 가정에 긷드는 것을 봅니다. 이 구원은 그양 얻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찾고 구해야 합니다. 재산이라고는 겉옷 밖에 없을 거지가 예수님 이라는 다 벗어 던지고 달려 옵니다. 믿음은 간절히 사모하고 찾아야 합니다. 그 마음 중심을 보시고 주님은 생명길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와 주위 사람들은 그 생명의 예수님을 찾고 있는 지요...
그 남북간의 갈등과 위협과 그 가족간의 갈등과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예수님을 찾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들은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보고는 합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웅이 될 사람이 예수님이 없어 왕따가 되고 지옥에 갑니다. 가진거 없고 잘나지 못해도 단지 예수님을 믿어 성인 군자로 인정을 받고 장차 천국 3층 보석집에서 살게 되며 모든 죄가 사함을 받습니다. 아무공로 없이 단지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에 천국과 지옥 영웅과 왕따가 갈리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를 찾아야 합니까 오직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거닌 우상의 도시 여리고가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여리고의 뜻 답게 향기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더러운 뜻의 이름 바디매오가 향기의 예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꼭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이 전도의 글을 전파해도 읽지 않고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오늘 밤도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과 불신, 소통과 불통의 혼란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가치기준의 척도인 예수님이 있고 없고의 카오스 무질서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주님만이 옳고 주님이 질서가 되고 주님만이 진리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없어 주님의 참된 기준 참된 가치가 없어 세상이 망해가고 세상이 싸움 가운데 살아 갑니다. 이 분란한 남북과 이 분란한 우리 가족과 이 분란한 사람들의 세상 속에 우리의 구원이 되어 주시옵소서 모든 걸 바로 잡아 주시고 화평이 없는 세상에 거대한 바위 반석 기준이 되어 흔들리지 않는 진리가 되어 주시옵소서 그 진리가 온 세상에 가득하여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고 강한 평강이 되어 주소서 모든 갈등과 분란 속에 받은 큰 상처들을 모두 치유하여 화목이 되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youtu.be/QUiNrebhu5E?list=PLkDm9k3-yeTjQEh4qSlvK3Ds5Vam71vOu
주님의 숲 사랑이야기
어느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저 숲속에
평온하게 쉴수있는 곳을 찾아
(1절)
당신이 지나온 이 거리는 언제나 낮설게 느껴
그 어디에도 평화없네 참 평화 없네
그렇지만 당신의 앞에 펼쳐진 주님의 숲에
지친 당신이 찾아온다면 숲은 두 팔을 벌려
그렇게도 힘들어 했던 당신의 지친 어깨가
이젠 쉬도록 편히 쉬도록 여기 주님의 숲에 우-
(2절)
당신이 느꼈던 지난날의 슬픔의 기억들을
생각하고 잊어 버리고 또 생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