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입석표 논란 갈무리

개돼지퇴치201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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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의 좀비들은 실재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입석이신 분들은 제발 서서 가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무심코 열어보았다. 우선 제목만 보고는 열차 안에서 비켜달라는 좌석 예약자의 정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고 무례하게 비키지 않고 도리어 장유유서를 외치는 일부 몰지각한 늙은이들을 향한 뒷담화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글쓴이의 요지는 전혀 뜻밖이었다. 그저 입석표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떳떳하게 지불하고 힘들게 예약해서 산 자기 자리인데 왜 다른 사람이 함부로 앉아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글쓴이의 말에 의하면, 본인은 며칠 전 열차로 여행하기 위해 자신이 힘들게 예약한 자리 근처로 가서 주위를 한참 두리번거렸지만 다른 누군가가 계속 "눈치 없이" 그 자리에 앉아만 있길래 "자리 맞으세요?"라고 말을 걸었고, 그 말은 들은 문제의 "입석 거지"는 자신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 한 마디조차 없이 일어서서 다른 자리로 옮기더라는 것이다. 덧붙여서 그 "입석 거지"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평소의 자기 성격대로" 즉석에서 한 마디 따지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칼부림 날 수 있는 무서운 세상인지라 그냥 참았다면서, 내가 내 자리에 앉으면서 굳이 비켜달라고 말을 하는 귀찮은 수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신에겐 무척이나 짜증나는 일이고, 누군가가 자리 근처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눈치껏 벌떡 일어나야 마땅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입석표'란 말 그대로 서서 이용할 수 있는 기차표이므로 자기처럼 부지런하게 예약하는 수고 없이 그저 기차를 싸게 이용하고자 입석표를 구매했으면 그에 걸맞게 여행 내내 남의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되고 오직 서서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앉더라도 정차역마다 언제 자신과 같은 자리 주인이 도착할지 모르는 일이니 정차한지 최소한 5분은 지나서야 앉아야 마땅하다는 것.

참 재미있는 건, 글쓴이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이 무척 '개념있는' 시민의식의 발로이니만큼 많은 이들의 공감어린 댓글을 받고 위안을 얻고자 글의 성격 및 주제와는 전혀 무관한, 사이트 내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운 '결혼/시집/친정'이라는 게시판에 해당 글을 올렸고, 그런 자신의 기대 및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까대자 자신의 필명을 여러 번 바꿔가면서 자작 댓글로 셀프 방어를 하다가 들켰다는 것.

대부분의 반응은 글쓴이를 까는 내용들이었지만 까는 이유는 완전히 달랐다. 이를 각각 유형1, 유형2로 분류할 수 있는데, 유형1은 왜 즉석에서 그 점령자에게 면박을 주지 않고 소심하게 뒤(온라인)에서만 이렇게 욕하느냐는 것이고, 유형2는 입석표 구매자라도 자리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엄연히 앉아서 여행을 즐길 권리가 있으니 정중하게 비켜달라고 요구하면 된다는 내용으로 내가 이 부류에 속했다.

유형1: "나는 내 자리를 다른 사람이 점령하고 있으면 그 때마다 그 사람을 쫒아내는 희열을 느낀다"/ "지난 번 기차에서 '비키세요!'라고 외치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진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쫒아내는 사람을) 주변 사람들은 다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맞아맞아, 왜 개념없이 남의 자리를 점령하고 그래"/ "돈 없어서 입석표를 샀으면 앉지 말아야지"/ "다른 사람의 엉덩이로 뜨끈뜨끈하게 데운 그 자리에 앉을 때의 기분은 몹시 불쾌하다"/ "내 옆에 '입석충'들이 앉는 게 너무 싫고 혼자 앉고 싶어서 나는 일부러 두 개의 좌석을 한꺼번에 예약해서 여행하곤 하지. 그 때 그 자들을 쫒아내는 재미란!"

압도적으로 많은 유형1들의 등장에 적잖이 충격 받은 내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고, 곧이어 이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게 갈렸다. 내 글에 '추천하기'를 누르거나 댓댓글로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 혹은 또다른 댓글들로 내 논리를 뒷받침하는 사람들이 유형2에 속했다.

나: "원래 입석표라는 것은 좌석표가 매진되었을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라서 싸게 사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좌석표와의 가격 차이도 고작 몇 백 원 내지 천 몇 백 원밖에 안 난다. 자리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앉아 있다가 자리 주인이 비켜달라고 요구할 시에 비켜주면 되는 거다. 코레일 직원들조차 빈자리가 있을 경우엔 앉아서 가라고 종종 권하기도 한다. 입석표를 구매한 모든 사람들이 말 그대로 여행 내내 서있다고 가정해봐. 오히려 타인들의 출입에 방해만 되고 다리만 아플 뿐이지. 문제는 비켜달라는 자리 예약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고 무례하게 구는 늙은이들이다. 게다가 글쓴이가 좌석을 하루 종일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자신의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만 그 자리에 대한 권리가 있는 건데, 단지 입석표보다 꼴랑 몇 백 원 내지 천 몇 백 원 더 비싼 금액을 지불했다는 이유만으로 입석표 구매자들을 '입석 거지'로 몰아가는 건 그에 따른 우월감을 느끼면서 유세 떨고 싶은 갑질 본능 아닌가?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이게 바로 네가 말한 '거지'근성인 거다. 입석표가 아주 소액이라도 저렴한 이유는 절대 앉으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너처럼 목적지까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권리가 그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아서일 뿐이라고. '실례하지만 제가 예약한 자리이니 이제 비켜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분명하지만 정중하게 말을 못해? 소심한 것도 자랑이니? 네가 두리번거리는 행동이 곧 비켜달라는 뜻의 바디 랭귀지냐? 너는 집에서 말을 그 따위로 배웠니? 입석표 구매자가 무슨 죄인이라고 그런 너의 눈치를 봐야 하지? 사람들이 다 독심술로 네 마음을 헤아려야 해? 비켜달라는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귀찮고 짜증난다면 그게 벙어리고 사회성 떨어지는 거지."

"그리고 면전에서 대놓고 내쫒지 못했다는 이유로 글쓴이를 까댄 너희들, '비키세요'나 '제 자린데요', '자리 맞아요?'라니, 이건 또 무슨 못 배워먹은 개돼지적 행동이니? 자신의 이런 행동으로 스스로 희열을 느끼고 뿌듯해한다니, 그리고 이런 용자들이 진짜 멋있고 부럽다니, 이게 바로 자존감 낮은 애들의 특징이지. 평소에 얼마나 성취감을 느낄 기회가 없었고 타인들로부터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았으면 꼴랑 몇 백 원 내지 천 몇 백 원 더 냈다고 유세 떨고 갑질을 하냔 말이다. 자리에 앉으려거든 짧고 무례하게 내쫒는 방식이 아니라 정중하게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엄연한 내 자리를 돌려달라고 하는 건데 내가 왜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해야 하냐고? 그럼 북미 및 유럽 사람들은 허구헌날 남한테 꿀리고 죄 지어서 'Excuse me'를 입에 달고 사냐? 이건 죄가 있고 없고, 또는 떳떳하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기본 에티켓의 문제야. 여행 목적지에서의 일정을 예상할 수 없어서, 혹은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인해 예약 없이 표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사람들마다 제각기 여행의 목적은 다르다. 이렇듯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입장에 처한 게 아닌데도 마치 입석표를 산 사람들은 자신만큼 철두철미하지 못하고 게을러서, 혹은 싼값으로 남의 자리를 점령하려고 하는 '입석 거지'로 매도하는 (글쓴이 포함) 너희들의 행동은, 기꺼이 비켜줄 사람들조차 잠재적 '거지'로 취급해버리는 못돼먹은 인성, 자기 위주로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편협함, 이기심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말 답 없는 성격이구나."

"글쓴이, 그리고 입석표 구매자의 면전에서 면박을 주지 않은 글쓴이의 소심함을 까는 유형1의 사람들, 너네들은 마치 영화 '부산행'에 나오는 좀비들과 똑같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무리들조차 감염되었을 거라고 의심하고는 자기들만 살아남기 위해 집단으로 왕따 시키더니 결국에는 자신들이 먼저 감염되어서 좀비가 되고 마는! 설령 모든 사람들이 너희들처럼 계획여행으로 철저하게 자리 예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서 어쩔 수 없이 입석표를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을 마치 무임승차한 얌체 내지 거지로 취급하는 게 그 좀비들과 다를 게 뭐냐? 나야말로 공공장소에서 시민의식과 에티켓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고 빡빡하게 구는 성격인데, 글쓴이가 제기한 이 문제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문제다. 정작 크게 분노해야 할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그렇게들 침묵하면서, 전혀 엉뚱한 번지에서 이렇게 집단 광기를 보이다니, 참으로 다들 한심하구나.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 이런 좀비들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 받았다. 나름 흥행 영화인 것으로 아는데, 적어도 영화를 보려면 그저 말초적인 재미만 추구하고 논할 게 아니라 뭔가 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훈을 찾아내야 하는 것 아니겠니? 글쓴아, 너는 이제 조용히 찌그러져 자숙하고 내일 해가 뜨면 코레일에 직접 전화해서 네 말이 맞는지 심판해달라고 해봐. '입석표를 사놓고 자리 주인이 오기 전까지 앉아도 돼요?'라고. 이 글의 링크를 네 지인들에게 보내줘 봐. 네가 그러고도 왕따 안 당하면 다행일 거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마치 한 번에 종결해주겠다는 듯 제3의 댓글이 등장했고, 예상한 대로 이내 글쓴이는 본문을 삭제하고 자취를 감췄다. 그 댓글은 다음과 같았다.

종결자: "저는 매월 정기권을 끊어서 열차를 타는 사람인데요, 정기권엔 항상 '자유석'이라고 써있어요. 자유석이란 말 그대로 아무 빈자리에나 앉을 수 있다는 뜻인데, 그럼 당연히 주인이 오기 전까지 앉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글쓴이는)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왜 그러세요?"

결국 글쓴이는 부끄러움을 아는지 꼬리를 감추고 사라졌지만, 생각보다 개돼지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로 인한 충격의 여파가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이 곧 상식이자 에티켓이라고 착각하는 글쓴이와 유형1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오면 꼭 이상하게 왜곡되고 굴절된 형태로 변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은데, 서구식 에티켓과 시민의식이 자본주의와 결합하면 이렇게 천박하게 변하고 마는 게 바로 대한민국 시민의식이다. 앞으로 진보고 보수고 나발이고 간에 잘 모르는 사람의 인성과 가치관을 알고 싶거든 이 일화를 들려주고 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자리 비켜달라고 하면 '싸가지 없는 젊은이'라는 소릴 듣거나 칼부림 한다는 사람들로 인한 피해의식에서 비롯한 행동이니 이해해야 함? 그럼 '강남역 묻지마 살인' 피해자 추모장과 인터넷 곳곳에서 '여혐(여성혐오)'이라는 이상한 신조어 만들어내고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들로 몰고 남/녀 편 갈라서 대결 구도 만드는 속칭 '매갈년'들하고 저런 애들하고 다를 게 뭐냐고. 피해망상도 치료가 필요한 병이라서 병원에나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