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소년들의 수난시대입니다. 질주하고 싶은 소년의 본능에 족쇄를 채우는 교육 현실도 그렇지만, 엄마하고만 밀착된 일상 생활도 문제입니다. 소년이었던 적이 없는 엄마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볼 소년은, 유독 소년다운 소년입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장군감이라고 칭찬받았을지 모를 행동이 지금은 그 아이를 엄마들 사이에 기피 대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는 말합니다. 나조차도 아들을 마음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겠다고. 우리 엄마들이, 나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의 1퍼센트씩만 이웃의 악동에게 나누어 줄 수는 없을까요? 그 마음이 100이 되면, 악동을 기르는 모범생 엄마의 고충은 눈 녹듯 사라질 텐데요.
홍여사 드림
저희 부부는 외모부터 전혀 다른 분위기라 그런지, 잘 어울린다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저한테 농담조로 묻는 사람들이 있죠. 남편의 어떤 점에 끌린 거냐고요. 그런 질문에 그저 웃기만 하지만, 실은 저도 궁금합니다. 우린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저는 무색무취에, 융통성 없는 모범생이고 남편은 어디에서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입니다. 떠들썩하고, 즉흥적이고, 친구도 많은 사람이죠. 어쩌면 저는 저 자신과 너무도 다른 남편의 성격에 반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결혼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을 바라보면서 신기해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라면 저런 발상이 가능하기나 할까? 오래되다 보니, 더 이상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배울 점은 배우고, 고칠 점은 고쳐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편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외모부터 남편의 판박이인 아들은, 남편의 성격까지 그대로 닮았습니다. 젖먹이 때부터 한 성격 하는 아이, 다루기 힘든 아이였죠. 그 대신 남편처럼 제대로 놀 줄 아는 아이입니다. 아이디어도 많고 흥도 많습니다. 그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 상황까지 갔습니다. 활동량이 너무 많고, 여기저기서 일을 자꾸 벌이기 때문에 따라다니며 치우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친척 어른들은 애가 별나서 엄마가 비쩍 말라간다고 걱정해주시는데, 정작 우리 시부모님은 그렇지 않으시더군요. 아이의 노는 모습이 남편의 어린 시절과 똑같다며 너무 좋아하십니다. 네 남편처럼, 크면 멀쩡해진다고요. 사실 남편의 현재 모습은 '말썽쟁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놀기 좋아해도 공부도 저보다는 잘했고, 어디 가서도 문제는 안 일으키거든요. 게다가 부모님께, 장인 장모님께 잘하는 효자입니다. 그런 남편을 닮은 아들이니, 일단 믿고 키워봐야겠죠. 저는 어서 세월만 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유치원을 들어가면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의 규칙과 틀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못 하게 하면 아이는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저는 그런 상황들이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린 시절에 선생님 말씀을 어겨서 주의를 받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주위 친구들과 자주 부딪쳤습니다. 놀이를 주도하면서, 내 말을 안 듣는 친구에게 화를 내는 겁니다. 목소리도 크고 동작도 크고, 감정 기복도 큽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친구가 어떤 기분일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요.
친구들은 제가 듣는 앞에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는 뭐든지 마음대로 하려고 해요!'라고요. 저는 선생님께 따로 부탁을 드리고, 다른 엄마들에게 사과를 하러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엄마들 사이에 우리 아이는 이미 요주의 인물이 되어있더군요. 엄마들은 예의 바른 얼굴로 우리 모자를 따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아들과 비슷한 성격이었다면,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면, 이 상황을 좀 견디기 나았을까요? 언제나 규칙대로, 남들 하자는 대로 해오던 저로서는, 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어쩌면 저런 행동을 하고, 저런 취급을 받을까? 아들은 왜 이 엄마를 사람들 앞에 머리 숙이게 만들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남편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 일로 스트레스 받는 아내가 안쓰러울 뿐, 아들은 가만 두면 저절로 좋아진다고 믿는 듯해요. 자꾸만 아들의 장점을 보라고 하네요. 행동은 거칠지만, 의외로 배우는 건 좋아해서 한글도, 시계도, 구구단도 남들보다 훨씬 일찍 깨우쳤다는 것. 그리고 눈물이 많아서 불쌍한 사람이나 동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 어디 가서도 리더가 되는 것….
그렇습니다. 딱 남편의 성격이에요. 남편이 보기엔 아들 성격은 지극히 정상적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아들이 나중에 남편처럼 평범한 사회인이 된다 해도, 거기까지 가려면 수십년 세월이 걸립니다. 그 먼 길을 아들과 제가 나란히 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겪는 상처와 굴욕을 견디고, 아들의 착한 본성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미술 전공자로, 한동안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미혼이었던 저는 아이들에 대해 아주 간단한 이분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착한 아이, 그리고 못된 아이. 그 기준에 의하면 제 아들은 못된 아이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그 단순하고 폭력적인 이분법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아이에겐 착한 천사와 잔인한 악동이 다 들어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 사람들에게 제 아들을 그렇게 봐달라는 말을 차마 못 합니다. 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십분 이해합니다. 저와 친하게 지내던 엄마들이 하나 둘 멀어지고, 수영 단체 강습을 신청하면서도 우리만 빼놓고, 우리가 모르는 장소에서 생일 파티가 벌어져도 저는 이해합니다. 그리고 어떤 기분인지 아세요? 그들을 이해하는 저 자신이 아들한테 미안해집니다. 그리고 너무 슬픕니다. 사랑하는 아들 때문에 슬프고, 그런 아들을 부끄러워하는 저 자신 때문에 슬픕니다.
유치원 '요주의 인물' 우리 아들… 크면서 남편처럼 저절로 나아질까요?
바야흐로 소년들의 수난시대입니다. 질주하고 싶은 소년의 본능에 족쇄를 채우는 교육 현실도 그렇지만, 엄마하고만 밀착된 일상 생활도 문제입니다. 소년이었던 적이 없는 엄마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볼 소년은, 유독 소년다운 소년입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장군감이라고 칭찬받았을지 모를 행동이 지금은 그 아이를 엄마들 사이에 기피 대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는 말합니다. 나조차도 아들을 마음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겠다고. 우리 엄마들이, 나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의 1퍼센트씩만 이웃의 악동에게 나누어 줄 수는 없을까요? 그 마음이 100이 되면, 악동을 기르는 모범생 엄마의 고충은 눈 녹듯 사라질 텐데요.
홍여사 드림
저희 부부는 외모부터 전혀 다른 분위기라 그런지, 잘 어울린다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저한테 농담조로 묻는 사람들이 있죠. 남편의 어떤 점에 끌린 거냐고요. 그런 질문에 그저 웃기만 하지만, 실은 저도 궁금합니다. 우린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저는 무색무취에, 융통성 없는 모범생이고 남편은 어디에서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입니다. 떠들썩하고, 즉흥적이고, 친구도 많은 사람이죠. 어쩌면 저는 저 자신과 너무도 다른 남편의 성격에 반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결혼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을 바라보면서 신기해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라면 저런 발상이 가능하기나 할까? 오래되다 보니, 더 이상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배울 점은 배우고, 고칠 점은 고쳐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편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외모부터 남편의 판박이인 아들은, 남편의 성격까지 그대로 닮았습니다. 젖먹이 때부터 한 성격 하는 아이, 다루기 힘든 아이였죠. 그 대신 남편처럼 제대로 놀 줄 아는 아이입니다. 아이디어도 많고 흥도 많습니다. 그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한계 상황까지 갔습니다. 활동량이 너무 많고, 여기저기서 일을 자꾸 벌이기 때문에 따라다니며 치우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친척 어른들은 애가 별나서 엄마가 비쩍 말라간다고 걱정해주시는데, 정작 우리 시부모님은 그렇지 않으시더군요. 아이의 노는 모습이 남편의 어린 시절과 똑같다며 너무 좋아하십니다. 네 남편처럼, 크면 멀쩡해진다고요. 사실 남편의 현재 모습은 '말썽쟁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놀기 좋아해도 공부도 저보다는 잘했고, 어디 가서도 문제는 안 일으키거든요. 게다가 부모님께, 장인 장모님께 잘하는 효자입니다. 그런 남편을 닮은 아들이니, 일단 믿고 키워봐야겠죠. 저는 어서 세월만 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유치원을 들어가면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의 규칙과 틀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못 하게 하면 아이는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저는 그런 상황들이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린 시절에 선생님 말씀을 어겨서 주의를 받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주위 친구들과 자주 부딪쳤습니다. 놀이를 주도하면서, 내 말을 안 듣는 친구에게 화를 내는 겁니다. 목소리도 크고 동작도 크고, 감정 기복도 큽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친구가 어떤 기분일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요.
친구들은 제가 듣는 앞에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는 뭐든지 마음대로 하려고 해요!'라고요. 저는 선생님께 따로 부탁을 드리고, 다른 엄마들에게 사과를 하러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고개를 숙여도 엄마들 사이에 우리 아이는 이미 요주의 인물이 되어있더군요. 엄마들은 예의 바른 얼굴로 우리 모자를 따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아들과 비슷한 성격이었다면,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면, 이 상황을 좀 견디기 나았을까요? 언제나 규칙대로, 남들 하자는 대로 해오던 저로서는, 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어쩌면 저런 행동을 하고, 저런 취급을 받을까? 아들은 왜 이 엄마를 사람들 앞에 머리 숙이게 만들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남편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 일로 스트레스 받는 아내가 안쓰러울 뿐, 아들은 가만 두면 저절로 좋아진다고 믿는 듯해요. 자꾸만 아들의 장점을 보라고 하네요. 행동은 거칠지만, 의외로 배우는 건 좋아해서 한글도, 시계도, 구구단도 남들보다 훨씬 일찍 깨우쳤다는 것. 그리고 눈물이 많아서 불쌍한 사람이나 동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 어디 가서도 리더가 되는 것….
그렇습니다. 딱 남편의 성격이에요. 남편이 보기엔 아들 성격은 지극히 정상적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아들이 나중에 남편처럼 평범한 사회인이 된다 해도, 거기까지 가려면 수십년 세월이 걸립니다. 그 먼 길을 아들과 제가 나란히 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겪는 상처와 굴욕을 견디고, 아들의 착한 본성이 활짝 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미술 전공자로, 한동안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미혼이었던 저는 아이들에 대해 아주 간단한 이분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착한 아이, 그리고 못된 아이. 그 기준에 의하면 제 아들은 못된 아이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그 단순하고 폭력적인 이분법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아이에겐 착한 천사와 잔인한 악동이 다 들어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 사람들에게 제 아들을 그렇게 봐달라는 말을 차마 못 합니다. 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십분 이해합니다. 저와 친하게 지내던 엄마들이 하나 둘 멀어지고, 수영 단체 강습을 신청하면서도 우리만 빼놓고, 우리가 모르는 장소에서 생일 파티가 벌어져도 저는 이해합니다. 그리고 어떤 기분인지 아세요? 그들을 이해하는 저 자신이 아들한테 미안해집니다. 그리고 너무 슬픕니다. 사랑하는 아들 때문에 슬프고, 그런 아들을 부끄러워하는 저 자신 때문에 슬픕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