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여행-1

바람200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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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단편을 올려 봅니다. 부족한 면이 있어도 용서하기를...

 

 

기이한 여행기이한 여행-1기이한 여행-1기이한 여행-1

 


때로는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시간만 무심히 흩어져 버리고 이제는 빈 끝자락만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 할 때가 있다. 그때 난 여행을 떠난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나에겐 또 다른 인생의 시작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마치 버릇처럼 기차를 타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정말 잘 못된 것이었다. 그 끔찍한 악몽이 도사리고 있단 걸 알았어야 했다.

결코...

 

 지리산 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버스 안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주말이면 항상 만원을 이루는 버스가 오늘처럼 이렇게 텅 비어 있기는 처음 이었다. 승객이라야 나와 한 쌍의 연이이 전부였다.

 

어차피 혼자하는 여행이라면 이렇게 텅 비어 있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 자리는 앞 쪽 세 번째 창가 쪽이었으나 이제는

그 의미가 없어 맨 뒷자리에 앉았다.

이상하게 항상 고속 버스를 타면 뒷자리가 더 편하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아마도 앞자리 보다 높고 답답하게 막혀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특히 여러 명 이서 같이 여행을 떠날 땐 뒷 자석에서 게임을 하면서 가면 시간가는 줄 몰라 좋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해야겠지만....


 확실히 주말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는 많은 차들로 인해 기다란 주차장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다행이라면 버스 전용 차선으로 달려 그나마 조금 덜하다는 것이었다. 차장 밖으로 붉게 물든 낙엽들이 흩어지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다가왔다 사라지곤 했다. 무수한 시간의 파편 속을 버스 달리고 또 달렸다.

 

사람이 없는 버스 안은 조용할 듯 했지만 결코 그렇지 못했다.
앞쪽에 앉은 연인은 꼭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붉은 색으로 머리염색을 한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는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남자는 여자를 두 팔로 감싸 앉고 있었다. 차 소리에 묻혀 무슨 소리인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조잘대는 여자의 목소리가 내 귀를 짜증나게 했다. 붉은 색 머리의 여자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그칠 줄 몰랐고 남자는 대단하게도 그 많은 푸념의 잔소리를 들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도 났고 내 자신의 일이 생각나 한 숨이 나왔다.

 

 

"정말이야?"
"....응!"
"....."
"너...나한테 이러면 안돼잖아!"
"미...안해!"
"미안? 우리가 언제부터 미안하다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했니?"
"할 수 없었어. 이미 부모님이.."
"부모? 네가 한두살 먹은 어린애야? 부모님 말에 따라 네 인생을 결정하게."
"민수씨도 잘 알잖아 우리 부모님이 완고 하시다는것."
"그래? 그럼 하나만 다시 불어보자."
"....."
"너...너 정말 부모님 때문에 이렇게 헤어지겠다는 거니?"
"......"
"정말이야? 이렇게 아무상관 없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어?"
"미안해! 난 이말 밖에 할 수 없어."
"너....후...! 그래...우리의 사랑과 그 시간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구나."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난 열병에 접어들었다. 그 어떤 아름다운 여인도 그녀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저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같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다. 그러고 내 눈에는 아름다운 천사처럼 맑아 보였다. 하루하루 그녀와의 만남이 겹쳐질 때마다 내 사랑의 열병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녀도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같았다. 내가 보는 눈을 그녀도 갖고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생각을 그녀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그녀가 떠나갔다.


이유는 부모님이 결정한 상대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차라리 내가 싫어졌다고 말을 하던지 차라리 나의 나쁜 점을 무수히 지적하고 헤어졌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거였다. 그런데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사랑해! 정말이야...그런데.....어쩔 수 없었어."
사랑한다고 울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다고....
"정말 미안해. 사랑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 할 자신이 없어."
"내가 네 부모님을 설득할게."
"안돼!"
"왜?"
"우리 부모님은 민수씨를 보자 마자 화내실 거야."
"뭐?"
"제발! 민수씨 우리 이렇게 끝내...이렇게 좋은 추억으로 사랑을 간직해."
"뭐....후후....추억...?"


 그래도 난 그녀의 말에서 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끝낼 수 없었다. 사실 난 그녀의 부모님을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다. 그녀가 어떻게 나를 소개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직접 찾아 뵙고 잘 말씀드리면 허락을 받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그녀의 집은 부유했다. 그렇다고 내가 가난한 것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직장원이라는 것일 뿐. 평범한 직장생활을 한다고 그것이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 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어떤 놈인지 만나 보고 싶었다. 얼마나 잘 난 놈인데 부모님을 설득해 보지도 않고 나와 헤어지자고 하는지 보고 싶었다.


 매일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보아왔던 집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대문이 높고 커 보였다. 난 깊이 숨을 들이키고 초인종을 눌렀다.


.....띠리리링.....
 떨리는 내 마음처럼 길게 음악이 흘러나왔다. 

 안쪽에서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저...저기...강민수라고 합니다."
"강민수? 누구라고요?"
"저...은혜 남자 친구 강민수라고 합니다."
"....뭐...."


 내 답에 저쪽에서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이 우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안쪽을 향해 은혜를 부르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다급하게 온 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라고요?"
"나..민수야."
 내 목소리에 은혜는 당황한 듯 했다.
"뭐...너....너..잠깐만.."
 이내 은혜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뛰어 나와 내게 소리쳤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미쳤어?"
"아니...난..."


 난 말을 다 끝맺을 수 없었다. 은혜가 완강하게 내 팔을 붙잡고 끌고 가려 했기 때문이다. 난 화가 나서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뭐하는 짓이야? 난 그냥 네 부모님을 만나려고 온거라구!"
"뭐? 지금 여가가 어디라고 소리를 질러. 빨리 가자!"


 다급하게 말하는 은혜를 보며 난 기가찼다. 그리고 그녀가 다급하게 굴자 더욱 마음이 찹찹해져 오기로 움직이지 않았다.


"안돼! 난 네 부모님 만나기 전에는 못가!"
"뭐...?"


 우리가 소리를 높여 싸우자 집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키 크고 덩치 좋은 남자 한 명이 소리치며 은혜 앞을 가로막았다.

"은혜씨. 무슨 일입니까? 이사람 누굽니까?"
"이...사람은..."


 은혜가 어쩔줄 몰라하며 대답을 못할 때 은혜 부모님인 듯한 사람이 대문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래! 누군데 우리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냐?"


난 그녀의 어머님으로 느껴지는 사람으로부터 '행패'라는 말을 듯자 암담한 마음이 들었다. 저 밑 끝자락까지 내가 떨어져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난 은혜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을 듣고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잘 모르는 사람이예요. 하도 쫒아다녀서 그만 쫒아다니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그녀의 말에 덩치큰 놈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뭐야? 그럼 스토커 아냐? 이놈! 경찰서에 넘겨버리죠."


 덩치큰 놈은 소리치며 내 멱살을 잡고 당장이라도 경찰서에 끌고 가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이미 저 지옥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덩치큰 녀석이 경찰서로 끌고 갈 듯이 보이자 은혜는 놀라며 그 놈을 달랬다.


"그냥...내버려둬요. 불쌍한 사람인데."


'불쌍한 사람!'


 난 멍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디까지 나를 처참하게 만들것인지 궁금해서 였다. 내 눈빛을 의식했는지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엄마! 아빠!  분위기 망치지 말고 그냥 들어가요."


 그녀의 부모들은 대충 눈치를 챘는지 더 이상 소란이 일면 좋지 않을 것을 알고 덩치를 달랬다.


"그래! 김서방 그냥 들어가서 술이나 한 잔 더 하자고."


 덩치는 끝내 나를 경찰서에 데리고 가지 못한 것이 서운한 듯 힘껏 바닥에 나를 내던지고 한마디 했다.


"임마! 다음에 내 눈에 뛰면 죽는 줄알아!"


 그들은 다시 그 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은혜는 눈길 한번주지 않고 덩치의 팔짱을 끼고 다정 한 듯이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난 지옥 속에 남았다. 지옥 속에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에 갇혔는지 무엇을 잘 못했는지. 사랑한다는 것이 이렇게 죄가 되는 것인가! 그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허무라는 두 글자뿐이었다. 황폐한 허무의 시간들만이 지옥 같은 내 마음속에 가득 들어차 버린 듯 했다.

 

 

 내가 잠깐 기억 속에 빠져있을 때 차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아마도 앞에 앉은 두 남녀가 말다툼을 벌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차안에 사람이 없어 그런지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그렇게 다정하게 말을 나누던 연인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죽일 듯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니 우수워 보였다.

 

 사람과 사람사이는 참 묘한 것 같다. 인연, 정, 사랑...모든 것이 얽히고 설켜서 하나의 인생이 만들어 지는 것인가.
 그들의 싸움은 한동안 계속되다 차가 휴게소에 정차해서야 끝났다. 버스를 세우며 마음 좋게 생긴 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하하하...사람이 없어서 오늘 잘 못하면 졸음 운전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두 분께서 열심히 방송을 해 주어서 지루하지 않게왔네요."


 기사의 말에 난 웃음을 지었고 그들은 약간 미안한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시끄러웠죠?"
"하하하. 뭐 운전하다 보면 많은 것을 보게되는 걸요. 두분은 오히려 재미있었어요. 사랑싸움하는 연인들의 말다툼 만큼 재미난 것도 없죠."


 밝게 말하는 기사 아저씨를 보고 그들도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팔짱을 끼고 휴게소 안으로 사라졌다. 뒤쪽에서 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씁씁한 웃음을 지으며 휴게소에 들어갔다.

휴게소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이 가족과 친구들끼리 여행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모두의 얼굴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이 묻어났다. 그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니 나의 처진 마음도 동화되는 듯 했다.


 시간으로 볼 때 예정시간 보다 무척 늦어질 것 같다. 이미 전용차선도 버스들로 꽉 차있었다. 이미 난 밤 산행을 준비하고 왔지만 어두운 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충분히 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음식을 든든히 먹어두었다. 보통은 많이 먹지 않았지만 오늘의 산행은 이상하게 기대가 되며 음식 당겼다.


 내가 휴게소에서 나와 버스에 오르니 이미 두 연인은 들어와서 당정하게 앉아있었다. 그들의 좌석을 지나치려 할 때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예?"


 잘생긴 얼굴의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저희 때문에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저 이거 한병 드세요." 
"아! 괜찮은데...감사합니다."

 

 남자는 친근한 얼굴로 자신과 여자 친구를 소개했다.


"저는 김철민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는 이향숙 이구요."
"예! 저는 강민수라고 합니다."


 인사를 하며 여자를 살짝보니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산을 좋아하시나보죠?"
"예. 이 친구 향숙이가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등산을 많이 했다고요."
"아. 그래요? 그럼 산을 많이 타 보셨겠네요?"
 내 질문에 향숙이란 여인은 웃으며 붉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예요. 산은 좋아하지만 많이 올라보지는 못했어요. 사실은 지리산도 이번이 첨인데요."
"그래요? 철민씨도 지리산은 처음 입니까?"
"예. 사실 전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향숙이가 좋아하고 지리산의 가을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해서 큰마음 먹고 움직이는 겁니다."
"좋죠! 지리산의 가을 풍경은 정말 평화롭고 아름답지요. 보시면 후회 안하실 거예요."
 내 말에 이향숙은 어린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좋아하며 말했다.
"그래요? 민수씨는 지리산을 많이 가보셨나보죠?"
"한 몇 번요."
"그래요? 그럼. 우리가 도움을 많이 받아야 겠네요. 저와 향숙이는 처음이니.."
"얼마든지 도와 드리죠. 원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이 인자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하하하"


 처음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 마치 친구와 같아진다. 여행의 즐거움은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과의 만남 또는 자연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찰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여행의 진짜 의미가 되는 것이 아닐까.

 

 

 차는 5시간여를 거쳐 구례에 도착했다. 구례에서 화엄사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김철민과 이향숙과는 헤어졌다. 도착한 시간이 저녁 5시가 넘으니 그들은 구례에서 하루를 묵고 새벽에 천은사로 출발할 예정이라 했다.
어차피 같이 다니기도 서로 어색했고 우리의 산행 코스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난 된다면 늦게라도 산을 오를 예정이었다. 가을이라 야간산행이 가능할지 몰랐지만 일단 화엄사로 들어가는 군내 버스에 올랐다.


 항상 백무동 계곡에서부터 산행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화엄사부터 3일간 등산을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야간에 필요한 장비와 식량 등 필요한 물품을 꼼꼼히 챙겨두었기 때문에 늦게부터 산을 오른다고 해도 걱정은 없었다.

 

서울의 복잡스런 거리를 보며 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차 창 밖의 모습은 허
전한 느낌이 들었다. 휭황찬란한 불빛 대신 낡은 가로등 불빛의 은은함이 더욱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등성이 그림자가 두려움으로다가 들기도 했다.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 화엄사 쪽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접어드니 야간산행 금지에 대한 푯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리산은 무척이나 넓게 자리잡혀 있는 산이다. 그리고 무척이나 험준하여 사고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겨울로 접어드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밤에 산에 오르다 사고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국립공원 측이 이를 제한 것이다.

 

난감했다. 이곳에는 따로 숙박 곳도 마땅치 않았고 요즘처럼 주말과 같은 때는 늦으면 방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눈을 피해 뒤쪽으로 산을 올라갈까...'
 눈 딱 감고 모험을 할 생각도 했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마침 매표소 근처를 보니 그곳에서도 나와 같은 사람 몇몇이 국립공원 직원들과 실강이를 하는 것 같았다.


"아! 이 사람아 내가 이 산행 코스를 올 들어 10번째야 그것도 모두 야간산행으로 그런데 왜 안된다는 거야?"


 붉은 쪼기에 붉은 파카를 입은 아저씨 한 분이 공원직원 인듯한 사람과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 주위에는 일행 인듯한 남녀가 5명이 있었다. 아마도 등산회같은 모임 인 것 같았다.

공원 직원과 말다툼을 하고있는 사람은 대략 40대 초반으로 이 등산회의 리더로 보였고,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두명이 그 아저씨를 도와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세 명이 그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공원직원의 머리는 끄덕일 줄 몰랐다.


 나도 어차피 지금 산행을 하지 못하면 다시 아래로 내려가 숙박을 해야 할 입장이라 다가가서 한마디 거들었다.


"저기 아저씨 아직 날도 많이 어둡지 않으니 적당한 곳에 올라 야영을 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냥 올라가게 해 주세요."


 내가 옆에서 거들고 나서자 침을 튀기며 말하던 붉은 옷의 아저씨는 응원군을 만나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두워지기 전에 좋은 곳을 찾아서 야영을 하고 낼 새벽에 산에 오르면 될게 아닌가!"


 때 쓰는 듯이 매달리자 공원직원도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되면 왜 산행을 말리겠습니까! 방침이 이미 내려졌고 전 그 방침에 따라서 산행을 막는 겁니다. 만약에 당신들이 올라가서 사고라도 나면 전 어쩝니까? 밥 줄 끊길 일 있습니까? 안돼요!!"


 단호한 공원직원의 말에 붉은 옷의 아저씨도 어쩔 수 없는지 한 숨을 내 쉬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의향을 묻는 것이다.
 여자 셋은 어떻든 상관 없다는 듯이 반응이 없었고 젋은 남자 두 명은 단념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난 단념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끝나면 있을지도 모르는 방을 구하기 위해 헤매야하기 때문이다.


"저기 아저씨 정말 안됩니까? 여기서 내려가 봤자 지금은 방 구하기도 힘든데 어디서 자라구요. 차라리 산에 좀 올라서 야영을 하는게 더 났죠."


 내 말에 붉은 옷의 아저씨는 다시 희망이 담긴 눈으로 공원직원을 바라보았다.


"그건 나도 알지만...어쩔수 없네. 낼 새벽에 올라오게. 나도 힘들어."


 끝내는 그의 허락을 받아 낼 수 없을 듯 보였다.
등산회 사람들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이 남아 쉽게 발이 떨어지지 못했다. 그런 나를 안스럽게 보았는지 공원직원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정 방을 구할 수 없으면 조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샛길이 우측으로 나 있는데 그 쪽으로 가봐. 그곳으로 쭉 가다보면 깊숙히 자리잡은 작은 초가집이 한채 있는데 그곳 할머니께 말씀 잘 드리면 잠은 재워 줄거야."


 공원직원 아저씨의 말이 고마워 인사를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얼마쯤 내려가다 보니 그의 말처럼 샛길이 보였다. 내게는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 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한 사람정도만 간신히 지나 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나무도 울창했고 수풀도 길게 자라서 얼핏보면 길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서 보니 가끔 사잇길로 갈라지는 줄기가 보였다. 넓지는 않았으나 사람하나는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길들이었다. 그리고 그 길들은 모두 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인 것 같았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약초를 캐기위해 움직이는 또 다른 산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저 길로 올라갈까...올라가다 보면 등산로와 만날 수 있을 텐데.'


 시간을 보니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산은 이미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고 약간의 바람이 불어 스산함이 묻어 났다.

막상 혼자서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니 겁이 났다.


'일단은 그 초가집까지 가 보고 그래도 산을 올라갈 생각이 들면 그때 움직이자.'


 약각을 더 올라가자 길이 좌측으로 빠지면서 그 옆쪽으로 다 쓰러질 것 같은 초가집 한 채가 보였다. 요즘 에는 거의 볼 수 없는 골통품과 같은 집이었다. 어스름한 어둠에 묻혀서 숲과 동화된 듯이 서 있는 집을 보니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고 전설의 고향에 초대된 듯한 생각이 들어 오싹한 기분도 들었다. 다행이라면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사람 냄새가 나는 듯해 안심이 되었다. 집 안뜰로 들어가며 사람을 불렀다.


"저...여보세요."
....
 사람이 없는 걸까.
"아무도 안계세요?"


 몇 번을 불러봐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집을 둘러보니 방 하나에 부엌이 달린 작은 구조의 초가집이었다. 마당 한켠에 장독 몇 개가 덩그라니 놓여 있을 뿐 굴뚝에서 연기만 나지 않았다면 사람 사는 집인지도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아무도 없나...주방에는 사람이 저녁 준비를 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멀리 가진 않았을 텐데..."


 하늘을 보니 점점 더 시커먼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얼쩡거린다면 정말 여기서 하룻밤을 신세를 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집 구조를 보아 방이 하나인데 모르는 사람과 같이 한 방에서 밤을 새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 어차피 한 두 번 하는 산행도 아닌데. 그냥 샛길로 올라가자."


 결심을 굳히고 막 뒤돌아 서던 난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아악!!"
 그때 내 귓가로 거친 음성이 들렸다.


"미친놈!! 사람보고 자빠지는 놈 첨 봤네."
 
난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을 못하고 뒤돌았는데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가 앞을 막고 있어서 놀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초가집 할머니가 서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할머니 놀라서 죽는줄 알았잖아요. 기척 좀 내시고 오시지."

"이눔아! 내집에 내가 오는데 뭔 기척을내! 그리고 넌 뉘기여?"
"예? 아...아니 그냥 지나가다 물어 볼 것이 있어서요."
"뭘?"
"예?"
"이눔이 정신머릴 어디다 놓고 있냐? 뭘 물어본다며?"
"아...하하...예..저기..."


 난 얼떨결에 하룻밤 신세지려 했다는 말을 못하고 어뚱한 말을 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혹 저기 샛길로 올라가면 산으로 올라가게 되나요?"
"그럼 네 눈엔 저 길로 올라가면 산으로 올라지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야?"
"예? 그렇죠. 그게 아니라 화엄사와 노고단 쪽으로 빠질 수 있는 등산로와 연결되었냐구요."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을 들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올라 가보면 알거아녀? 산 위쪽으로 올라 우측으로 빠지면 화엄사 쪽으로 가기는 가."
"그래요? 감사합니다."
"야 이눔아! 지금 올라가려구?"
"예!"
"미친눔! 지금 어두워서 앞도 보이지 않는데 저 산을 오르겠다는 거여?"
"헤헤. 괜찮아요. 준비를 철저히 해서요. 그리고 야간산행은 많이 해봐서 잘 알아요."
"헛짓 말고 오늘밤은 여기서 자고 낼 새벽에 올라가. 지금 가면 다쳐!"
"예? 왜요?"
"미친눔! 어둔 밤에 가면 귀신에게 잡혀가 이눔아!"
"하하하. 귀신은 무슨 귀신이요. 무덤도 아니고 산인데."
"네 눈엔 저 산이 커다란 무덤으로 안보이냐? 눈 잘 못 뜨면 한 순간에 잡아먹혀."


 할머니의 말에 난 거대한 산을 돌아보며 등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방 하나에서 할머니와 같이 밤을 지내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걱정해 주셔서 고마운데. 전 그냥 올라 가볼께요."


 내가 인사를 하며 초가집을 떠나려하자 뒤쪽에서 할머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허 고놈! 운명 줄을 놓을 줄 모르는 구먼! 정 올라가겠다면 샛길을 오르다 좌측으로 빠지는 길로는 가지말아라. 알것냐?"
"왜요?"
"젊은 놈이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냐! 가지 말라면 말것이지 나이든 사람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거여. 내 말 헛으로 듣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할머니"


 할머니는 말을 마치더니 휑하니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할머니의 거침없는 말에 재미있어 한번 씩웃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는 길을 다시 되짚어 올라갔다.


 좀 올라가니 위쪽으로 빠지는 길이 보였다. 길 양쪽으로 거대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긴 수풀이 밀림처럼 펼쳐져 있어 길임에도 불구하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해는 숲에서 밀려났고 어둠은 발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풀숲에는 알지 못하는 풀벌레 소리가 간간히 들려와서 홀로 어둠을 걷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것 같았다.

 칠흑 같은 어둠을 후레쉬 불빛에 의지하면 오르려니 발걸음이 느렸다. 그래도 나름대로 등산에는 자신있다고 생각하여 쉬지 않고 1시간여를 오르니 온 몸이 땀으로 축축해 졌다. 길은 좁다란 길이 끊어 질 듯 간간하게 계속해서 이어져 있어 특별하게 쉴만한 공간이 없었다.

잠시만 한 눈을 팔거나 길을 잘 못 잡으면 숲 속의 미아가 될 것 같았다. 긴장을 하며 올라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30여분을 더 올라갔을까,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하나는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우측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갈라지는 길목이라 그런지 그런데로 앉아서 쉴만한 바위가 보였다.


"휴! 오랜만에 등산을 하니 힘들구나!"


 어둠 속에 하얀 피부를 드러내 놓고 있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물을 한목음 마셨다. 시원한 물줄기가 목을 타고 들어가니 터질 것 같던 심장이 환호성을 지른다.


"얼마나 더 올라야 하나...시간이나 거리로 보면 앞으로 1시간여만 더 올라가면 등산로가 보일 것도 같은데.."


 지도를 놓고 내 위치를 찾아보고 계산을 해 보니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쉬면서 어두운 숲 속에 혼자 있다고 느껴지니 약간의 두려움과 고독이 밀려왔다.

숲이 하늘도 가렸고 시야도 가렸다.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갈라놓고 있었다.

저 복잡한 고민의 홍수에서 나를 보호하는 듯하기도 했고, 단절시켜 영원히 되돌아가지 못하게 막는 것 같기도 했다.

참으로 이상하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 나온 저 혼돈의 세상이 갑자기 그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역시 사람은 혼자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건가.

난 어둠 속에서 혼자 실없이 웃으며 일어났다. 그때였다.


"놔! 이거 못놔!"


 분명 사람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암흑의 숲에서 여자의 외침이 들린 것이다. 처음에는 환청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으나 또다시 여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놔! 놓으란 말야! 난 지금 내려갈 거야."


 여자의 고함 뒤로 남자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장난 하냐? 갑자기 왜 그래?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너 나를 안지 몇 년 됐냐? 그렇게도 나를 모르냐?"
"그럼. 그건 뭐야? 그년 거잖아!"
"나도 몰라! 이게 왜 내 주머니에 있는지."
"그게 말이돼? 자기 주머니에 있는 물건이 왜 있는지도 모른다구?"


 두 남 여의 다툼 소리에 어둠의 정적이 부서져 내렸다.

 시끄럽게 다투는 소리를 듣고 나는 오히려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저렇게 싸우는 귀신은 없으니...

그런데 그들의 싸우는 소리를 들을수록 귀에 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의 목소리 같아 조용하게 소리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투는 소리는 좌측 아랫길에서 났다. 아래로 길이 내려가면서 우측으로 꺽여 졌는데 그곳 어디에서 불빛이 어름거리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그들의 말소리가 커지고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괜히 남 사랑싸움하는데 끼는 것 아니야. 그냥 갈까....살짝 얼굴만 확인하지뭐.'


 우측으로 꺽어지는 곳에서 난 조용히 고래를 내밀었다.


'어! 저 사람들은...'


 길 중간쯤에 붉은 색 머리의 여자가 나무에 기대있고 남자가 두 팔로 나무를 잡고 있어 여자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들은 낮에 고속버스에서 만났던 이향숙과 김철민이었다.


'이상하다. 저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지?'


 난 이해가 안되었다. 분명 구례에서 하룻밤을 쉬고 새벽에 산을 오른다고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것 아니라도 그들은 화엄사로 오지 않고 천은사 쪽으로 빠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어둠이 잠긴 숲에서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이다.


 한 동안 말이 없던 이향숙이 차갑게 말했다.


"비켜줘! 이제는 정말 지겨워!"


 이향숙의 말에 김철민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래서? 지금 헤어지겠다는 말이야?"
"....."
"내 눈을 봐!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잘 말해!"


 김철민의 말에 이향숙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제는....못...믿겠어. 더 이상 속아주는 것도...이젠 지겨워!"
"훗! 그래?"


 김철민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그의 얼굴을 보고 이향숙이 겁먹은 듯이 더듬거렸다.


"이젠....나도..."
"됐어! 네가 정 그렇다면 나도 널 잡을 수는 없지."


 의외 말에 이향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철민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을 받은 김철민은 은은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내려가자!"

 

 더 이상 그들의 대화를 엿듣다가는 들킬 수도 있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이 씁쓸해 졌다.

 은혜의 차가운 눈동자가 생각났다. 덩치큰 놈의 팔에 친근한 듯 붙어서 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르며 가슴이 아파왔다. 분노가 솟아올랐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좁은 길을 다시 따라 올라갔다. 그들이 헤어지는 것이 안된 일이기는
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막 쉬던 바위까지 왔을 때였다.

처절한 외침이 어두운 공기 속을 가르고 퍼져왔다.


"안돼!! 살려줘!"


 그건 분명 이향숙의 외침이었다. 공포에 질려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뭐야? 여자를 폭행하나...'

 

 난 고심되었다. 그녀의 비명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렇다면 김철민에게 구타를 당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남의 일인데 괜히 참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주춤되었다.

 

그때 다시 들려온 이향숙의 목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으아아아악!!"


 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아래 길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향숙씨!!"


뛰어내려가며 이향숙을 불렀는데 이상하게 대답이 없었다. 더 이상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된 나는 그들이 싸웠던 곳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김철민씨!.....이향숙씨!."


 소리 높여 불렀지만 아무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혹 몰라 아래쪽으로 좀더 내려갔지만 그들의 모습은 어디에 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빨리 내려 간다해도 만났어야했는데 그들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다.

 어둠속에 그들의 후레쉬 불빛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길로 내려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비명소리는 분명 멀리서 들리지 않았으니 이 근처인데 이렇게 빨리 사라질 수 있을까."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여태 내가 보고들은 것이 모두 환상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정도였다.


"아니야. 분명 그들은 여기 있었어. 위로 올라가서 다시 살펴보자."


 왔던 길로 돌아가 그들을 처음 본 장소로 가서 후레쉬로 주위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몇 번을 살펴보아도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허참! 이거 도깨비에 홀린건가."


 이향숙의 비명소리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며 그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내가 헛것을 보았을 수도 있고 그들이 다른 길로 내려갔는데 내가 못찾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뒤돌아 서려할 때 이상한 느낌이 뒷목을 타고 내려왔다. 싸늘하고 오싹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후레쉬를 길옆 우거진 수풀 쪽으로 비추었다.


"저게 뭐야?"


 얼핏 후레쉬 불빛에 빛추어진 것은 붉은 색이었다, 섬짓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설마!"


 가까이 다가가 풀에 후레쉬 불빛을 비추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풀에 묻어있는 붉은 액체를 만져보았다. 미끈거리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아...아닐거야....설마..피는 아니겠지."


 고개를 흔들며 붉은 액체가 묻은 손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런 제길!"


 나도 모르게 상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분명 비린내였다. 피비린내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향숙씨를 김철민씨가 죽였다는 말인가....아니겠지...그래...그냥 폭행을 해서 피가 났을거야.'


 다시 한 번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어떻할까 생각했다. 피가 수풀에 묻어있다는 것은 이쪽 방향으로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을 찾아야 할까. 솔직히 두려움이 밀려왔다. 머리 속에서는 계속 아닐 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살인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생각하기도 끔찍스럽다.


"이대로 산으로 내려가서 신고를 할까...그런데 뭘 보고 신고를 해...핏자국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산이나 올라가.."


 머리가 복잡해 졌다. 생각 같아서는 아무 것도 못 본 걸로 하고 등산을 하고 싶지만 마음이 좋지 못했다.


"아니야. 혹! 이향숙씨가 다쳤을 수도 있는데....그냥 가면 안돼잖아."


 끝내는 그냥 갈 수 없었다. 낮에 보았던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조심해서 가보지 뭐!"


 조심스럽게 수풀을 헤치고 앞쪽으로 나갔다. 풀들이 갈대처럼 워낙 길게 자라서 앞으로 나가기 힘들었다. 그런데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나왔다. 수풀들이 꺽어져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풀 중에 드문드문 붉은 핏방울이 묻은 것들이 보였다. 그 피를 보자 다시 두려움이 몰려왔으나 또한 강한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풀숲을 걷자니 무척 힘들었다. 몇 분을 헤치며 걸어 가갔지만 이상하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풀들이 꺽여져 있어 사람이 들어간 흔적이 남았지만 좀 더 들어가자 그런 흔적도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서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 너무 조용했다. 아까 들리던 밤 새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의 정적. 그것뿐이었다.


"이...이상하다. 정말 내가 환상에 빠지기라도 한 것일까...이렇게 헤매다가는 나도 큰일 나겠다."


 더 이상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잘 못하다가는 나 또한 숲의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

 

 내가 막 그들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리려는 찰라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릉.....크르르릉....


"무슨 소리지?"]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사람 소리가 아닌 것 같다. 무슨 소리지...'


크르르릉.....크르르릉....


 또다시 이상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그 소리가 거칠어지고 커지는 것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늑대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살쾡이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지리산이라면 알지 못하는 동물들이 많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미 우리 나라에는 늑대나 호랑이는 멸종되었다고 하지만 모를 일이었다. 거대한 지리산에 숨어있는 동물을 어떻게 모두 알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 멍청하게 주춤거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난 소리나는 곳의 반대로 천천히 뒷걸음 쳤다. 무엇인가 갑자기 덮쳐 오지나 않을까 생각되어 발걸음을 빨리 할 수 없었다.

 

그때,


크아아앙!! 크아아앙!!


 어둠을 뚫고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들려오며 무엇인가 빠른 놀림으로 수풀을 헤치며 달려오는게 느껴졌다.


놈은 사람의 냄새를 맡고 성질이 포악해 졌는지 거칠게 수풀을 헤짚고 나오는 것이 결코 귀여워 해달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공포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난 뒤돌아서 정신없이 달렸다. 어디로 어떻게 달려나가는 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저 공포스럽고 흉폭스런 이빨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내가 달려나가는 속도 보다 놈이 달려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으나 얼핏 뒤 쪽을 보고는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
것은 야차였다. 거대한 덩치에 붉은 눈을 번쩍거리며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야차.

 

늑대가 없는 줄 알지만 늑대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너무 컸다. 마치 호랑이처럼 거대했다. 아니 어쩌면 호랑이 일지도 몰랐다.

 

놈의 거친 숨결이 점점 내 뒷목에 와 닿았다. 심장이 터지고 달리는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안돼!! 좀 만 더... 아!!......살려줘!!'


 내 머릿속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태어나서 그렇게 목청 크게 소리쳐 본적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어둠의 숲 속에 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밤은 공포로 변했다.


크아아앙!! 컹!!"


 놈이 흉폭한 울음을 토해 내며 뒷발을 물려고 다가들었다. 놈은 너무 빨랐다.

 

난 이미 숨이 턱까지 올라 차서 달리기 힘들었고 놈의 날카로운 이빨은 달빛에 빛났다. 거친 놈의 숨결이 바로 뒤에서 느껴지며 덮쳐오는 것을 느끼고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아아아악!!"


크아아앙!!


 내 비명소리와 놈의 거친 울부짖음이 겹쳐지며 난 밑으로 몸이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놈의 흉폭한 이빨이 내 어깨를 물며 덤벼는 모습도 보였다.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추어지는 듯 했고, 과거의 모든 것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는 한없이 아래로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한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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