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근혜다..최순실이다..해서 말이 많아서.. 저는 이런거 처음써보는 34살먹은 아줌마인데.. 예전에 노무현님과의 일화를 한번..써보려고해요. 저의 고향은 경기도 여주.. 라는 곳인데.. 그 여주에서도 아주 외곽.. 현재는 사슴마을이라고 명칭이 바뀌었는데.. 주록리라는 곳입니다.. 세대수가 제가 어릴때는 그래도 그 마을에 50세대 정도는 있었고 분교도 있었는데 제가 커가면서 점점 마을에 사람이 줄어들고.. 중고등 학생들은 학부모들은 수도권으로 이사를가고.. 분교도 폐교되고.. 아마 시골이 고향인 분들은 이런 상황 아실거라 생각해요.. 거기에 사는 분들은 점점 고령화가 되고.. 먹고살 것은 고작해봐야 농사.. 농사.. 농사.. 밖에는 없었습니다.. 여주쌀이 유명해서.. 그나마 땅은 넓지않아도 평균 일년에 사백정도 버셨던것 같아요.. 인권비 이런거는 저희 엄마가 전부 다 하셨기때문에..그런건 안치고.. 일년에 사백을 벌면..제 학비..언니 오빠들 학비.. 또 나이들어가면서 혼수.. 한 해 한해 제가 나이를 먹어갈 수록 엄마는 농협에 마이너스 통장으로 근근히 생활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엄마가 뭐 팡팡쓰고 그런 분도 아니예요. 혼수도 저렴하지만 정성깃든 장롱으로 좋은것..하나..정도만 보내셨구 일상생활에서는 집에서 농사지은 파.. 마늘.. 오이.. 고추.. 된장.. 이런것만 평생을 먹으셨고 저는 정말 된장찌개 오이 옛날엔 지긋지긋했습니다.. 지금도 똑같지만 예전에도 버스가 하루에 2대만 왔구.. 엄마는 그 차비가 아까워서 이포라는 곳까지 20리를 걸어다니셨어요.. 추운 겨울이든 더운 여름이든.. 그 차비 800원이 아까워서 걸어다니실 정도로 근면하게 사신 분인데도.. 매년 마이너스 통장을 긁고 생활할 만큼 가정형편이 좋지않았어요. 그런데 노무현님이 대통령이 되시고.. 한 10년 15전 이야기죠.. 저는 그때 서울에 살고 엄마와 떨어져 지냈었을때라 제가 직접 얼굴을 뵙진 못했었어요.. 하여튼 그때 노무현님이 그 작은.. 20세대나 되려나.. 그런 마을에 잠시 쉬고 갈 이유가 있었는지.. 일부로 오신건지는 모르지만 오셨었다고 하드라구요. 그래서 오랜만에 집에 가보니 노무현 방문 기념비도 있고 그렇더라구요. 근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다녀가신 후에.. 저희 동네에는 새 바람이 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굴 한번 비췄을뿐인데.. 아마 동네 어르신들이 얘기를 하셨나봐요. 저희 엄마두 그때 부녀회장이라.. 말을 주고 받을 기회가 있었나보드라구요. 아마도 민생을 살피러 오신건지..어쩐건지는 모르지만 그때 주민분들께서 다들 먹고살기 너무 힘들다.. 이런식의 말씀을 하셨나보더라구요. 어느 시골을 가든.. 아마 다들 그런 말씀들을 하시니 노무현님은 얼마나 많이 들으셨을까요..ㅎㅎ 그런데 그때 노무현님께서 그러시더래요 "이 동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물이 참 맑고 좋네요. 여름에 사람들이 좀 오지않나요??" 하시면서 이 동네의 이름이 주록리.. 붉은주에 사슴록자를 써서 주록리 이니까 이 마을을 사슴마을로 이름을 바꾸고 너무 외진 동네라 사람들과 교류할수가없으니..적적하니까 인터넷이라도 한번 해보시라구. 노인분들에게 컴퓨터로 고스톱도 치면서.. 겨울철 심심하시니 그런거라두 하시라구 하면서 그 분이 가신후에 인터넷도 안되던 마을에 인터넷을 깔아주셨고 컴퓨터를 집마다 한대씩 놓아주셨어요.(물론 아주 좋은건 아니더라구요..그냥 고스톱칠정도..) 마을 이름이 주록리에서.. 사슴마을로 바뀌고.. (개인적으론 아무래도 어감이 다가가기 좋은 마을인거같아요.) 어르신분들이 컴퓨터를 하게 되시면서 아주 전문적이진 않더라도 이메일 정도는 받아보실수 있게끔 지도하는 분이 오셔서 직접 가르쳐주고해서 저도 엄마와 이메일을 주고 받을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후 노무현님께서 이 마을은 경치가 좋고..물이 깨끗하다.. 이렇게 말씀만 하시고 가셨을뿐인데 거기에서 동네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어르신분들이 농사도 하시면서 투잡을 하게 되셨습니다. 거기가 그린벨트 지역이라 먹는 장사 이런거는 할수 없는 지역인데 평상 대여로 여름에 놀러오신분들 경치 구경하고 물놀이하고 놀고 또 농사만 지으면서 평생을 보내셨던 분들이 평상 대여를 조금씩 하시면서 소소하게 용돈벌이를 하실 수 있게 되셨어요. 지금은 펜션도 여럿 들어서고.. 정말 지금 가서 보면 옛날 생각이 안날 정도로 좋은 집들이 그쪽 개천을 따라 죽 늘어서 있습니다. 그만큼 그 동네에 놀러오는 사람도 많아졌고 동네 분들의 얼굴이 확 피셨어요. 정치라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요? 어려운 분들을 꼭 물질적으로 도와야만 잘하는게 아니라.. 민생을 돌아보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고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캐치하는것..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을 조금 채워주고.. 삶을 조금 안정되게 해주는 것.. 저는 100억이라던지.. 천억이라던지.. 그 돈이 사실 어떤 의미인지 모릅니다.. 제가 그런돈이 있다면 저도 그 돈을 불리기 위해 노력했을까요? 많이 해먹고.. 이런거.. 저같은 서민들은 솔직히.. 감도 안와요 저 돈 나한테 1억만주지.. 이런 사람들이 태반일겁니다.. 좀 해먹으면 어때요..대통령인데.. 좀 해먹을수도 있죠 뭐.. 내가 그렇게 높은 자리라두 좀 해먹고싶을거예요..평생 쓸 돈정도는... 근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하시는건.. 물론 사가에있을때 언니한테 도움도 많이 받고 그래서.. 의리를 지키는 정치..? 였다고 좋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또 그 분의 딸이든.. 그 언니의 딸이였든.. 좋은 대학 보내고 싶었겠죠.. 내가 대통령이라도..안그러겠나요.. 그정도는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저는 치맛바람 세대에 살았고.. 그런거는 다 이해합니다.. 그치만 저같은 서민의 입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민생을 돌아보지 않으신게 가장 큰.. 실수가 아니였나 싶어요.. 명예라는게.. 어떤 의미인지.. 돈 있는 분들도.. 많이 버신 분들도..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무작정 도와주는것보다는.. 저런식의 어드바이스..? 좋게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시고.. 그 방향을 따를수 있도록 조력해주시는것.. 그게 바로 정치가 아닐런지..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 한번 적어봅니다.. 1
훈훈한..내가 생각하는 정치이야기
요즘 박근혜다..최순실이다..해서 말이 많아서..
저는 이런거 처음써보는 34살먹은 아줌마인데.. 예전에 노무현님과의 일화를 한번..써보려고해요.
저의 고향은 경기도 여주.. 라는 곳인데.. 그 여주에서도 아주 외곽..
현재는 사슴마을이라고 명칭이 바뀌었는데.. 주록리라는 곳입니다..
세대수가 제가 어릴때는 그래도 그 마을에 50세대 정도는 있었고 분교도 있었는데
제가 커가면서 점점 마을에 사람이 줄어들고.. 중고등 학생들은 학부모들은
수도권으로 이사를가고.. 분교도 폐교되고..
아마 시골이 고향인 분들은 이런 상황 아실거라 생각해요..
거기에 사는 분들은 점점 고령화가 되고..
먹고살 것은 고작해봐야 농사.. 농사.. 농사.. 밖에는 없었습니다..
여주쌀이 유명해서.. 그나마 땅은 넓지않아도 평균 일년에 사백정도 버셨던것 같아요..
인권비 이런거는 저희 엄마가 전부 다 하셨기때문에..그런건 안치고..
일년에 사백을 벌면..제 학비..언니 오빠들 학비.. 또 나이들어가면서 혼수..
한 해 한해 제가 나이를 먹어갈 수록 엄마는 농협에 마이너스 통장으로 근근히 생활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저희 엄마가 뭐 팡팡쓰고 그런 분도 아니예요.
혼수도 저렴하지만 정성깃든 장롱으로 좋은것..하나..정도만 보내셨구
일상생활에서는 집에서 농사지은 파.. 마늘.. 오이.. 고추.. 된장..
이런것만 평생을 먹으셨고 저는 정말 된장찌개 오이 옛날엔 지긋지긋했습니다..
지금도 똑같지만 예전에도 버스가 하루에 2대만 왔구..
엄마는 그 차비가 아까워서 이포라는 곳까지 20리를 걸어다니셨어요..
추운 겨울이든 더운 여름이든.. 그 차비 800원이 아까워서 걸어다니실 정도로
근면하게 사신 분인데도.. 매년 마이너스 통장을 긁고 생활할 만큼 가정형편이 좋지않았어요.
그런데 노무현님이 대통령이 되시고.. 한 10년 15전 이야기죠..
저는 그때 서울에 살고 엄마와 떨어져 지냈었을때라 제가 직접 얼굴을 뵙진 못했었어요..
하여튼 그때 노무현님이 그 작은.. 20세대나 되려나..
그런 마을에 잠시 쉬고 갈 이유가 있었는지.. 일부로 오신건지는 모르지만
오셨었다고 하드라구요.
그래서 오랜만에 집에 가보니 노무현 방문 기념비도 있고 그렇더라구요.
근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다녀가신 후에..
저희 동네에는 새 바람이 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굴 한번 비췄을뿐인데.. 아마 동네 어르신들이 얘기를 하셨나봐요.
저희 엄마두 그때 부녀회장이라.. 말을 주고 받을 기회가 있었나보드라구요.
아마도 민생을 살피러 오신건지..어쩐건지는 모르지만
그때 주민분들께서 다들 먹고살기 너무 힘들다.. 이런식의 말씀을 하셨나보더라구요.
어느 시골을 가든.. 아마 다들 그런 말씀들을 하시니 노무현님은 얼마나 많이 들으셨을까요..ㅎㅎ
그런데 그때 노무현님께서 그러시더래요
"이 동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물이 참 맑고 좋네요. 여름에 사람들이 좀 오지않나요??"
하시면서 이 동네의 이름이 주록리.. 붉은주에 사슴록자를 써서 주록리 이니까
이 마을을 사슴마을로 이름을 바꾸고
너무 외진 동네라 사람들과 교류할수가없으니..적적하니까 인터넷이라도 한번 해보시라구.
노인분들에게 컴퓨터로 고스톱도 치면서.. 겨울철 심심하시니 그런거라두 하시라구 하면서
그 분이 가신후에 인터넷도 안되던 마을에 인터넷을 깔아주셨고
컴퓨터를 집마다 한대씩 놓아주셨어요.(물론 아주 좋은건 아니더라구요..그냥 고스톱칠정도..)
마을 이름이 주록리에서.. 사슴마을로 바뀌고..
(개인적으론 아무래도 어감이 다가가기 좋은 마을인거같아요.)
어르신분들이 컴퓨터를 하게 되시면서 아주 전문적이진 않더라도
이메일 정도는 받아보실수 있게끔 지도하는 분이 오셔서 직접 가르쳐주고해서
저도 엄마와 이메일을 주고 받을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후
노무현님께서 이 마을은 경치가 좋고..물이 깨끗하다..
이렇게 말씀만 하시고 가셨을뿐인데 거기에서 동네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어르신분들이
농사도 하시면서 투잡을 하게 되셨습니다.
거기가 그린벨트 지역이라 먹는 장사 이런거는 할수 없는 지역인데
평상 대여로 여름에 놀러오신분들 경치 구경하고 물놀이하고 놀고
또 농사만 지으면서 평생을 보내셨던 분들이 평상 대여를 조금씩 하시면서
소소하게 용돈벌이를 하실 수 있게 되셨어요.
지금은 펜션도 여럿 들어서고.. 정말 지금 가서 보면 옛날 생각이 안날 정도로
좋은 집들이 그쪽 개천을 따라 죽 늘어서 있습니다.
그만큼 그 동네에 놀러오는 사람도 많아졌고 동네 분들의 얼굴이 확 피셨어요.
정치라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요?
어려운 분들을 꼭 물질적으로 도와야만 잘하는게 아니라..
민생을 돌아보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고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캐치하는것..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을 조금 채워주고.. 삶을 조금 안정되게 해주는 것..
저는 100억이라던지.. 천억이라던지.. 그 돈이 사실 어떤 의미인지 모릅니다..
제가 그런돈이 있다면 저도 그 돈을 불리기 위해 노력했을까요?
많이 해먹고.. 이런거.. 저같은 서민들은 솔직히.. 감도 안와요
저 돈 나한테 1억만주지.. 이런 사람들이 태반일겁니다..
좀 해먹으면 어때요..대통령인데.. 좀 해먹을수도 있죠 뭐.. 내가 그렇게 높은 자리라두
좀 해먹고싶을거예요..평생 쓸 돈정도는...
근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하시는건.. 물론 사가에있을때 언니한테 도움도 많이 받고 그래서..
의리를 지키는 정치..? 였다고 좋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또 그 분의 딸이든.. 그 언니의 딸이였든.. 좋은 대학 보내고 싶었겠죠..
내가 대통령이라도..안그러겠나요.. 그정도는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저는 치맛바람 세대에 살았고.. 그런거는 다 이해합니다..
그치만 저같은 서민의 입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민생을 돌아보지 않으신게 가장 큰.. 실수가 아니였나 싶어요..
명예라는게.. 어떤 의미인지..
돈 있는 분들도.. 많이 버신 분들도..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무작정 도와주는것보다는.. 저런식의 어드바이스..?
좋게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시고.. 그 방향을 따를수 있도록 조력해주시는것..
그게 바로 정치가 아닐런지..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 한번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