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부 갈등도 따지고 보면 시어미의 잔소리 때문이다. 왜 잔소리가 문제가 되는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개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입이 잘못된 것인가? 사랑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관심을 표명하는 한 방법이 아닌가?….
만약에 그 좋은 뜻으로 한 것이 선순환을 돕는 것이라면 그 개입으로 당사자들이 기뻐하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관계가 점점 발전해 갈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질서를 위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갈등이 나타나면 항상 하나님의 룰 위반이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곳을 수술해야만 아픔이 해소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개입'의 문제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고부갈등을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장모-사위 간의 관계가 좋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속담에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게 있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준다. 집안의 진귀한 것들을 망라하여 극진히 대접한다.
이렇게 하니 사위와 장모간의 사이가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사위에게는 이렇게 하면서 며느리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동일한 인물이 두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에게는 장화나 홍련 대접을 하고 사위가 나타나면 장쇠에게 하듯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결과도 각각 반대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성경은 말한다.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루라'고. 즉, '주권독립가정'을 세우라는 것이다.
장소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관계적으로 완전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의 기업인 인간을 세상에 보낼 때 특정한 부모의 태를 '빌어서'사용하시며 일정기간 양육할 책임을 주셨는데 그 위탁기간이 결혼함으로써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사람의 새 가정 문제에 그 누구도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들의 결정은 그 두 사람에 의해서 '주권적'으로 결정해야 하고 또 그것을 누구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서도 안되는 '독립적'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이다.
그런데 거기에 누구라도 개입을 하면 덤비게 되어 있다. 집에서 기르는 개라도 밥 먹는데 얼씬거리면 주인에게 사납게 덤비는 법이다.
며느리는 '내 것'이 아니다. 결코… 물론 사위도 '내 것'이 아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나면 시부모라도 처가부모라도 '내 아들', '내 딸'을 주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그 두 사람만의 공동체일 뿐이다.
시부모와 어렵든지 남편하고 반드시 어렵게 마련이다. 예로부터 처가와 변소는 멀수록 좋다고 하지 않던가! 반대로 아들에게 그렇게 하면 반드시 그 아들 부부관계는 어렵다. 세대차나 어리기 때문에 부모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쳐놓은 경계를 부모들이 넘어와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결혼시켰으면 '개입'하면 안된다. 물으면 답해 줄 수는 있으되 묻지도 의뢰하지도 않는데 자청하여 가르치고 지도하고 야단치면 안된다.
오라고 하지도 않는데 일방적으로 방문해도 좋을 것이 없다. 남에게는 사전에 통지하고 양해를 구하고 가면서 그들 보다 훨씬 존중 받아야 할 자녀들에게는 사전 통지나 양해도 없이 무단출입이라…? 그것은 실례다. 그러면 두 사람은 깨어지게 된다.
특히 시부모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부분이다. 어미 닭이 계란을 부화시키기 위하여 품고 있을 때 주인이 자꾸 옆에 와서 얼씬거리면 계란을 썩혀버리는 이치와 같다.
사위와 장모 사이가 좋은 것은 그를 '백년손님' 대접을 하기 때문이다. 손님 중에 가장 어려운 손님이니 얼마나 격식을 갖추고 예의범절과 친절을 베풀면서 존귀한 대우를 하겠는가? 그런 바에야 나쁜 관계도 호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며느리도 그렇게 대우해야 한다. <며느리는 백년손님>이라는 말을 이제 만들자.
그래서 개국 이래로 지속되고 있는 고부간의 잘못된 갈등전통을 일소해 버리자.
'며느리는 딸과 같다'거나 '내 집안 식구'라든가 '내 종속된 소유물'처럼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며느리는 평생손님
'며느리는 딸과 같다'거나 '내 집안 식구'라든가
'내 종속된 소유물'처럼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에게 개입할 아무 권한도 자격도 부모라 하여도 주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시집을 가 종속되어지는 삶이 아닌, 인간적 결합인 결혼에 의해
주체적인 제 2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현명한 여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고부갈등이 있듯이 미국에서는 사위와 장모간의 관계가 어렵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장모의 잔소리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부 갈등도 따지고 보면 시어미의 잔소리 때문이다. 왜 잔소리가 문제가 되는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개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입이 잘못된 것인가? 사랑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관심을 표명하는 한 방법이 아닌가?….
만약에 그 좋은 뜻으로 한 것이 선순환을 돕는 것이라면 그 개입으로 당사자들이 기뻐하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관계가 점점 발전해 갈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의 질서를 위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갈등이 나타나면 항상 하나님의 룰 위반이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곳을 수술해야만 아픔이 해소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개입'의 문제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고부갈등을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장모-사위 간의 관계가 좋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속담에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게 있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준다. 집안의 진귀한 것들을 망라하여 극진히 대접한다.
이렇게 하니 사위와 장모간의 사이가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사위에게는 이렇게 하면서 며느리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동일한 인물이 두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에게는 장화나 홍련 대접을 하고 사위가 나타나면 장쇠에게 하듯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결과도 각각 반대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성경은 말한다.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루라'고. 즉, '주권독립가정'을 세우라는 것이다.
장소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관계적으로 완전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의 기업인 인간을 세상에 보낼 때 특정한 부모의 태를 '빌어서'사용하시며 일정기간 양육할 책임을 주셨는데 그 위탁기간이 결혼함으로써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사람의 새 가정 문제에 그 누구도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들의 결정은 그 두 사람에 의해서 '주권적'으로 결정해야 하고 또 그것을 누구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서도 안되는 '독립적'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이다.
그런데 거기에 누구라도 개입을 하면 덤비게 되어 있다. 집에서 기르는 개라도 밥 먹는데 얼씬거리면 주인에게 사납게 덤비는 법이다.
며느리는 '내 것'이 아니다. 결코… 물론 사위도 '내 것'이 아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나면 시부모라도 처가부모라도 '내 아들', '내 딸'을 주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그 두 사람만의 공동체일 뿐이다.
시부모와 어렵든지 남편하고 반드시 어렵게 마련이다. 예로부터 처가와 변소는 멀수록 좋다고 하지 않던가! 반대로 아들에게 그렇게 하면 반드시 그 아들 부부관계는 어렵다. 세대차나 어리기 때문에 부모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쳐놓은 경계를 부모들이 넘어와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결혼시켰으면 '개입'하면 안된다. 물으면 답해 줄 수는 있으되 묻지도 의뢰하지도 않는데 자청하여 가르치고 지도하고 야단치면 안된다.
오라고 하지도 않는데 일방적으로 방문해도 좋을 것이 없다. 남에게는 사전에 통지하고 양해를 구하고 가면서 그들 보다 훨씬 존중 받아야 할 자녀들에게는 사전 통지나 양해도 없이 무단출입이라…? 그것은 실례다. 그러면 두 사람은 깨어지게 된다.
특히 시부모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부분이다. 어미 닭이 계란을 부화시키기 위하여 품고 있을 때 주인이 자꾸 옆에 와서 얼씬거리면 계란을 썩혀버리는 이치와 같다.
사위와 장모 사이가 좋은 것은 그를 '백년손님' 대접을 하기 때문이다. 손님 중에 가장 어려운 손님이니 얼마나 격식을 갖추고 예의범절과 친절을 베풀면서 존귀한 대우를 하겠는가? 그런 바에야 나쁜 관계도 호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며느리도 그렇게 대우해야 한다. <며느리는 백년손님>이라는 말을 이제 만들자.
그래서 개국 이래로 지속되고 있는 고부간의 잘못된 갈등전통을 일소해 버리자.
'며느리는 딸과 같다'거나 '내 집안 식구'라든가 '내 종속된 소유물'처럼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에게 개입할 아무 권한도 자격도 부모라 하여도 주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