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광릉참봉이었던 이이첨이 목숨을 걸고 건져낸 세조영정 알다시피 조선 전기 임금들의 어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궁궐이 불타면서태조, 문종, 덕종, 세조 어진을 빼고는 홀라당 다 타버리고왜란 직후에는 국가가 막장 상태라서인지 어진을 그리지 않다가(선조는 후세에 욕 처먹을 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 어진 그리기를 거부)숙종 때가 돼서야 다시 그리기 시작하였다.그리고 세월은 흘러흘러 1921년. 일제강점기당시 각 궁궐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역대 임금들의 어진을 창덕궁 신선원전에 모아놓고 이때, 마지막 어진 화가라는 '이당 김은호'(1892 ~ 1979)라는 사람이 1928년 이왕직(일제시대에 조선 왕가의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의 주문으로창덕궁 신선원전에서 세조의 어진을 이모(본떠서 그림) 하였는데 그 어진마저도1954년 12월, 한국전쟁을 피해 임시수도 부산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화재로 인해 다른 유물들과 함께 몽땅 타버렸어이렇게 세조의 어진은 사라졌고. (이 때의 부산대화재로 인해 최종적으로 태조, 영조, 문조(익종), 철종, 고종의 어진만 남음) 그러나.... 1969년 5월 14일자 경향신문에서김은호씨(아까 세조의 어진을 이모한 그 분)가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행해지던 수많은 역사 인물 '표준 영정과 동상' 제작 사업 중에세종대왕 동상의 수염 고증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신이 이모했던 세조의 어진과 비교하는 기사를 냈는데여기서 놀랍게도 자료 그림으로 세조 어진의 초본이 등장! 따라서 1969년 까지는 김은호씨나 누군가의 손에 세조 어진의 초본이 남아 있었다는 추정을 할 수 있으나1979년 김은호씨의 타계 이후 그의 유품이 상당수 개인에게 매각되고 뿔뿔히 흩어지면서 세조 어진 초본의 향방은 또다시 묘연하게 되어버렸으나...그런데 올 해, 2016년 11월!어진이 부산에서 불타버린지 약 60년만에 세조 어진 초본이 서울옥션에 나타났다. 고궁박물관에서 7200만원에 낙찰한 세조영정 현재 디지털 복원중이라고 한다... 2
비정한 조선 7대 세조임금 영정 디지털 복원중
임진왜란 당시 광릉참봉이었던 이이첨이 목숨을 걸고 건져낸 세조영정
알다시피 조선 전기 임금들의 어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궁궐이 불타면서
태조, 문종, 덕종, 세조 어진을 빼고는 홀라당 다 타버리고
왜란 직후에는 국가가 막장 상태라서인지 어진을 그리지 않다가
(선조는 후세에 욕 처먹을 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 어진 그리기를 거부)
숙종 때가 돼서야 다시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흘러 1921년. 일제강점기
당시 각 궁궐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역대 임금들의 어진을 창덕궁 신선원전에 모아놓고 이때, 마지막 어진 화가라는 '이당 김은호'(1892 ~ 1979)라는 사람이
1928년 이왕직(일제시대에 조선 왕가의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의 주문으로
창덕궁 신선원전에서 세조의 어진을 이모(본떠서 그림) 하였는데
그 어진마저도
1954년 12월, 한국전쟁을 피해 임시수도 부산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화재로 인해 다른 유물들과 함께 몽땅 타버렸어
이렇게 세조의 어진은 사라졌고.
(이 때의 부산대화재로 인해 최종적으로 태조, 영조, 문조(익종), 철종, 고종의 어진만 남음)
그러나....
1969년 5월 14일자 경향신문에서
김은호씨(아까 세조의 어진을 이모한 그 분)가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행해지던 수많은 역사 인물 '표준 영정과 동상' 제작 사업 중에
세종대왕 동상의 수염 고증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신이 이모했던 세조의 어진과 비교하는 기사를 냈는데
여기서 놀랍게도 자료 그림으로 세조 어진의 초본이 등장!
따라서 1969년 까지는 김은호씨나 누군가의 손에 세조 어진의 초본이 남아 있었다는 추정을 할 수 있으나
1979년 김은호씨의 타계 이후 그의 유품이 상당수 개인에게 매각되고 뿔뿔히 흩어지면서
세조 어진 초본의 향방은 또다시 묘연하게 되어버렸으나...
그런데 올 해, 2016년 11월!
어진이 부산에서 불타버린지 약 60년만에 세조 어진 초본이 서울옥션에 나타났다.
고궁박물관에서 7200만원에 낙찰한 세조영정 현재 디지털 복원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