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얘기를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서 익명인 이곳에서 저의 이야기를 풀어볼려고 합니다.
한명이라도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면 위로가 될까해서 글을 쓸게요.
간략하게 저의 집을 소개하자면 부모님, 오빠, 저 4식구입니다.
아빠는 타지역에서 근무를 하시고 한달에 한번 집에 내려오십니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엄마, 오빠, 저 이렇게 지낸 적이 많습니다.
어릴 적 얘기를 꺼내자면, 오빠는 유치원도 다니며 한글을 배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죠.
근데 저는 어릴 적에 미술학원에만 다니며 한글도 숫자도 모른채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상 학교에서 떨어지는 아이였습니다.
학습지며, 유치원이며 왜 저에게만 안 보낸지는 모릅니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 집도 아니였구요.
매일 방과후에 남아서 떨어지는 교육을 받으며, 학업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때 친척분께서 담임이 되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때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친척들에게 뒤떨어지는 아이라고 소문나는게 싫어서 새벽에 일어나며 공부하며
부족했던 것을 따라잡도록 노력하니 어느새 우등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쯤 집 주변에 학원을 다니며, 우등반에서 수업들으며 평범하게 사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들어가는 시점부터 저의 상황은 바뀝니다.
아빠는 갑자기 시작한 사업으로 부모님의 싸움이 잦았으며, 엄마가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시점에서 기록하는 것입니다.)
아빠는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힘들었는지 날카로워졌으며, 시험성적이 안 좋았을 때나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했습니다.
뺨을 때리던지,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로 맞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춘기시절 아빠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오르고 잇었습니다.
엄마는 의부증이 심합니다. 아빠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강한 편이고, 바람을 피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 있냐고 의심하여 싸움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엄마같지 않게 느껴지는 시점이 제가 2차 성징이 시작한 후부터 였습니다.
저희 엄마는 화를 내시면 자신의 화가 풀릴 때까지 3, 4차까지 화를 냅니다. 제 방에 있는 저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붓고 나서 잠잠해졌다가 중간에 다시 생각나면 다시 방에 찾아와서 욕설을 퍼붓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대에서 눈물 흘리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심한 날은 오후 6시부터 혼나서 새벽 2시까지 혼이 나고, 학교 가기 전 아침까지 혼이 납니다.
집에 있을 때 항상 혼이 나서 그런지 항상 학교에 갈 때 멍한 상태로 가서, 학교에서 자기만 했습니다. 매일같이 혼이 나니 얼굴은 회색빛에 웃음기도 없고 얼굴이 퉁퉁부어 있어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시절 항상 은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라도 그 웃음기 없는 사람과 친해지기 싫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혼나는 이유도 잘 모르니 반항심이 생겨서 3, 4차쯤 혼났을 때 "말로 하지말고, 차라리 때려 죽여라. 맞아 죽는게 덜 아플것 같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히스테리에 기름을 넣은 격이라 많이 맞았습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의부증이 심합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여서 그런 것일까요?
잘못된 방법으로 아빠에게 사랑받길 원했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말, 뱉지도 않은 말을 아빠에게 일러 아빠가 집에 내려오면 혼을 내면서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지낸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저는 하지도 않은 말로 혼이 나니 대들고 대들어서 혼이 나는 악순환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항상 혼이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화를 그렇게 내신 분이 아니였는데, 언제부턴가 저를 보면 화가 나는 가봐요.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해서 그렇게 미움 받았던걸 까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때 왕따를 심하게 당했습니다. 투명인간이였죠.
집에서는 엄마가 들들 볶고,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상대가 없는 외톨이였죠.
쉬는 시간이 제일 괴로웠습니다. 갈 곳이 없으니 눈을 뜨기가 싫었습니다.
인문계였으며, 잠만 자니 저의 학습능력은 최악으로 떨어졌습니다.
학원 선생님께서 난독증이 아닐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방송에서 어느 분이 그러셨죠.
난독증 환자는 글을 전체적으로 볼 줄 모르고, 돋보기를 통하여 글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구요.
성적은 저조했지만, 지방에 있으니 대학은 갈 곳이 있더군요.
대학 들어가면서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니 엄마랑 부딪히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히스테리 증상은 심하였고,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저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화풀이가 되어야 하는데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빠에게 화살이 갔습니다. 그러면서 아빠가 저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사이가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빠와 사이가 좋아지면서 증세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른이 된 저는 이때 엄마가 왜 나에게 학대와 폭언을 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크고 여성스러움이 나타나면서 저를 '딸'이 아닌 '여자'로 인지하면서 남편에게서 시선을 끄는 '여자'로 보여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학창시절 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좋은 대학이 아니라 취업하는게 힘드네요. 지금 취업준비를 하는 일년동안 정말 세지 못할 정도로 많이 부딪히네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보통 사람의 엄마의 감정은 아니지만, 그냥 사람으로 인지하였다면. 지금은 말도 꺼내기가 싫습니다.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싸움을 붙이고 아빠가 집에 와서 자신의 편을 만들어서 좋아서 신나는 웃음소리를 들으니 참... 제가 왜 여기 있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의 증세가 어떤지 압니다. 하지만 일이 고되고 힘드니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고 또 넘깁니다. 오히려 잊지 못하는 저를 탓합니다. 저는 왜 혼이 나야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혼이 나니 저의 신경은 예민해져서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왼쪽 팔과 다리가 떨며, 눈커플도 계속해서 떨립니다.
제가 하지 않은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 엄마와 저의 대화를 녹음해야하는 제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더러븐 년, __ 니 면상만 보면 치가 떨린다. 앞으로 니 엄마 아니니깐. 내가 차린 음식 쳐먹지마!', '너는 욕들어먹을만 하니깐 욕듣는거야.','머리를 싸잡아서 질질 끌어도 시원찮은 년.' . 밥 쳐먹지 말라고 하여 안 먹다가 그래도 한달에 한번 내려오는 아빠와 식사를 할 때 한번 먹으니 아빠 없어지자 마자 "너 왜 아빠 있을 때 연기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안 먹을 테니 그만해라고 했죠. 그러고선 아빠 있을 때는 "**가 밥 안 먹어서 걱정이야..."라고 하니 저는 미치기 일분 직전이었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이유가 누군가에게 이용가치나 수단이라는 느낌이 드니 살기가 싫더군요. 새벽 달빛에 비친 어두운 제 얼굴을 보니 거울을 깨고 자살기도까지 했습니다.
그제서야 딸을 살려야 겠다며 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빠 손에 이끌려 정신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오랜 상담을 받으며 정신과 의사가 아빠에게 "왜 방치하셨죠? 지금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따님을 왜 데리고 오셨죠?"라고 되물으니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저에게는 강압적이여도, 엄마한테는 항상 질질 끌려다니시는 분이고, 또 세뇌당하셨겠죠. 그래서 결국 흐지부지 제대로 된 상담도 이루어지지 않고 끝나버렸습니다.
저는 항상 원했습니다. 가족 전체가 가족상담을 받기를. 하지만 이집에서는 사건을 잊지못하는 저만 정신병자였습니다. 히스테리 엄마를 비위를 맞추지 못하는 병신인거죠.
저는 지금 갈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요.
제가 집을 나와서 혼자 살면 세상은 밝아보일까요? 가족들과 연락 다 끊고 맛있는 음식 먹고 살면 행복할까요? 집에서 숨쉬는 것도 버거워 사랑다운 사랑도 못해보고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내가 사랑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어요.
전 불효자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의 얘기를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서 익명인 이곳에서 저의 이야기를 풀어볼려고 합니다.
한명이라도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면 위로가 될까해서 글을 쓸게요.
간략하게 저의 집을 소개하자면 부모님, 오빠, 저 4식구입니다.
아빠는 타지역에서 근무를 하시고 한달에 한번 집에 내려오십니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엄마, 오빠, 저 이렇게 지낸 적이 많습니다.
어릴 적 얘기를 꺼내자면, 오빠는 유치원도 다니며 한글을 배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죠.
근데 저는 어릴 적에 미술학원에만 다니며 한글도 숫자도 모른채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상 학교에서 떨어지는 아이였습니다.
학습지며, 유치원이며 왜 저에게만 안 보낸지는 모릅니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 집도 아니였구요.
매일 방과후에 남아서 떨어지는 교육을 받으며, 학업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때 친척분께서 담임이 되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때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친척들에게 뒤떨어지는 아이라고 소문나는게 싫어서 새벽에 일어나며 공부하며
부족했던 것을 따라잡도록 노력하니 어느새 우등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쯤 집 주변에 학원을 다니며, 우등반에서 수업들으며 평범하게 사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들어가는 시점부터 저의 상황은 바뀝니다.
아빠는 갑자기 시작한 사업으로 부모님의 싸움이 잦았으며, 엄마가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시점에서 기록하는 것입니다.)
아빠는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힘들었는지 날카로워졌으며, 시험성적이 안 좋았을 때나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했습니다.
뺨을 때리던지,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로 맞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춘기시절 아빠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오르고 잇었습니다.
엄마는 의부증이 심합니다. 아빠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강한 편이고, 바람을 피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 있냐고 의심하여 싸움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엄마같지 않게 느껴지는 시점이 제가 2차 성징이 시작한 후부터 였습니다.
저희 엄마는 화를 내시면 자신의 화가 풀릴 때까지 3, 4차까지 화를 냅니다. 제 방에 있는 저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붓고 나서 잠잠해졌다가 중간에 다시 생각나면 다시 방에 찾아와서 욕설을 퍼붓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대에서 눈물 흘리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심한 날은 오후 6시부터 혼나서 새벽 2시까지 혼이 나고, 학교 가기 전 아침까지 혼이 납니다.
집에 있을 때 항상 혼이 나서 그런지 항상 학교에 갈 때 멍한 상태로 가서, 학교에서 자기만 했습니다. 매일같이 혼이 나니 얼굴은 회색빛에 웃음기도 없고 얼굴이 퉁퉁부어 있어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시절 항상 은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라도 그 웃음기 없는 사람과 친해지기 싫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혼나는 이유도 잘 모르니 반항심이 생겨서 3, 4차쯤 혼났을 때 "말로 하지말고, 차라리 때려 죽여라. 맞아 죽는게 덜 아플것 같다."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히스테리에 기름을 넣은 격이라 많이 맞았습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의부증이 심합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여서 그런 것일까요?
잘못된 방법으로 아빠에게 사랑받길 원했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말, 뱉지도 않은 말을 아빠에게 일러 아빠가 집에 내려오면 혼을 내면서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지낸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저는 하지도 않은 말로 혼이 나니 대들고 대들어서 혼이 나는 악순환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항상 혼이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화를 그렇게 내신 분이 아니였는데, 언제부턴가 저를 보면 화가 나는 가봐요.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해서 그렇게 미움 받았던걸 까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때 왕따를 심하게 당했습니다. 투명인간이였죠.
집에서는 엄마가 들들 볶고, 학교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상대가 없는 외톨이였죠.
쉬는 시간이 제일 괴로웠습니다. 갈 곳이 없으니 눈을 뜨기가 싫었습니다.
인문계였으며, 잠만 자니 저의 학습능력은 최악으로 떨어졌습니다.
학원 선생님께서 난독증이 아닐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방송에서 어느 분이 그러셨죠.
난독증 환자는 글을 전체적으로 볼 줄 모르고, 돋보기를 통하여 글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구요.
성적은 저조했지만, 지방에 있으니 대학은 갈 곳이 있더군요.
대학 들어가면서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니 엄마랑 부딪히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히스테리 증상은 심하였고,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저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화풀이가 되어야 하는데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아빠에게 화살이 갔습니다. 그러면서 아빠가 저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사이가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빠와 사이가 좋아지면서 증세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른이 된 저는 이때 엄마가 왜 나에게 학대와 폭언을 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크고 여성스러움이 나타나면서 저를 '딸'이 아닌 '여자'로 인지하면서 남편에게서 시선을 끄는 '여자'로 보여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학창시절 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좋은 대학이 아니라 취업하는게 힘드네요. 지금 취업준비를 하는 일년동안 정말 세지 못할 정도로 많이 부딪히네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보통 사람의 엄마의 감정은 아니지만, 그냥 사람으로 인지하였다면. 지금은 말도 꺼내기가 싫습니다.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싸움을 붙이고 아빠가 집에 와서 자신의 편을 만들어서 좋아서 신나는 웃음소리를 들으니 참... 제가 왜 여기 있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의 증세가 어떤지 압니다. 하지만 일이 고되고 힘드니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고 또 넘깁니다. 오히려 잊지 못하는 저를 탓합니다. 저는 왜 혼이 나야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혼이 나니 저의 신경은 예민해져서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왼쪽 팔과 다리가 떨며, 눈커플도 계속해서 떨립니다.
제가 하지 않은 말을 증명하기 위해서 엄마와 저의 대화를 녹음해야하는 제 상황이 너무 싫었습니다. '더러븐 년, __ 니 면상만 보면 치가 떨린다. 앞으로 니 엄마 아니니깐. 내가 차린 음식 쳐먹지마!', '너는 욕들어먹을만 하니깐 욕듣는거야.','머리를 싸잡아서 질질 끌어도 시원찮은 년.' . 밥 쳐먹지 말라고 하여 안 먹다가 그래도 한달에 한번 내려오는 아빠와 식사를 할 때 한번 먹으니 아빠 없어지자 마자 "너 왜 아빠 있을 때 연기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앞으로 안 먹을 테니 그만해라고 했죠. 그러고선 아빠 있을 때는 "**가 밥 안 먹어서 걱정이야..."라고 하니 저는 미치기 일분 직전이었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이유가 누군가에게 이용가치나 수단이라는 느낌이 드니 살기가 싫더군요. 새벽 달빛에 비친 어두운 제 얼굴을 보니 거울을 깨고 자살기도까지 했습니다.
그제서야 딸을 살려야 겠다며 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빠 손에 이끌려 정신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오랜 상담을 받으며 정신과 의사가 아빠에게 "왜 방치하셨죠? 지금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따님을 왜 데리고 오셨죠?"라고 되물으니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저에게는 강압적이여도, 엄마한테는 항상 질질 끌려다니시는 분이고, 또 세뇌당하셨겠죠. 그래서 결국 흐지부지 제대로 된 상담도 이루어지지 않고 끝나버렸습니다.
저는 항상 원했습니다. 가족 전체가 가족상담을 받기를. 하지만 이집에서는 사건을 잊지못하는 저만 정신병자였습니다. 히스테리 엄마를 비위를 맞추지 못하는 병신인거죠.
저는 지금 갈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요.
제가 집을 나와서 혼자 살면 세상은 밝아보일까요? 가족들과 연락 다 끊고 맛있는 음식 먹고 살면 행복할까요? 집에서 숨쉬는 것도 버거워 사랑다운 사랑도 못해보고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내가 사랑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어요.
저는 오늘도 홀로 방에서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