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베이킹에 막 관심을 가졌을 무렵, 따끈따끈 베이커리라는 만화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따뜻한 손을 가진 제빵사가 반죽을 하면 발효가 잘 되면서 엄청나게 맛있는 빵이 만들어 진다는 내용이 있었지요.
손이 많이 가는 과자류나 케이크도 나름 만족스럽게 만들었던데다가 저 역시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는지라
'나는 (식빵을 만들기 위해) 선택받은 인물'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식빵 제조에 도전했습니다만
몇 차례에 걸쳐 딱딱한 밀가루 벽돌만 만들다가 결국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빵을 먹어서 지구를 대재앙에서 구하고 노벨평화상을 받는 그런 만화따위 믿는 게 아니었어"라고 투덜거리면서 말이죠.
식빵을 비롯한 발효빵이 워낙 흔하다보니 겉보기에 화려한 케이크보다 만들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이스트를 활성화 시키면서 발효를 촉진시켜야 하는 식빵의 난이도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재료는 밀가루, 이스트, 설탕, 소금, 달걀, 버터, 그리고 물이나 우유.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기 전에 달걀과 버터는 실온에 한 시간 정도 놔둬서 차갑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서 이스트를 뿌리고 설탕을 손 끝으로 한 꼬집 집어서 넣어줍니다.
그러면 효모균들이 활성화되면서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거품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이스트가 죽었다는 증거이므로 다른 이스트를 구해서 넣어야 합니다.
밀가루에 우유+이스트를 넣고 대충 섞다가 설탕과 소금을 넣고 마저 섞어줍니다.
대충 섞은 반죽을 반죽기에 넣고 제대로 반죽합니다.
재미있는 건, 한국에서는 믹서기라고 하면 아래쪽에 칼날이 달려서 과일 등을 갈아주는 기계를 말하는데 미국에서는 반죽기를 믹서라고 합니다. 갈아주는 기계를 구입하고 싶다면 블렌더를 달라고 해야 하지요 (도깨비 방망이는 핸드 블렌더).
예전 포스팅(http://40075km.tistory.com/48)에서 언급했던 사이다와 사과술도 그렇고, 미국에서는 핫도그가 빵 사이에 소세지를 끼운 음식이고 우리나라식으로 소세지에 막대기를 꽂아 튀김옷 입혀서 튀기는 음식은 콘도그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은근 같은 단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 합니다.
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반죽이 되었다 싶으면 말랑말랑해진 버터를 넣고 더 돌려줍니다.
밀가루에 수분이 골고루 퍼지게 하려면 버터나 식용유 등의 지방은 나중에 넣어주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식빵을 만드는 데 실패하는 원인의 상당수가 손반죽을 하다가 힘이 딸려서 제대로 반죽이 되지 않는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제빵사의 이미지 때문인지 처음 발효빵 제작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별 두려움 없이 시도하는 작업인데,
실제로는 거품기를 손으로 휘저어서 달걀 흰자로 머랭 만드는 것 만큼이나 고된 작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손반죽으로 만든 빵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네요.
잘 된 반죽은 조금 떼어서 손으로 늘려보면 지문이 비칠 정도로 얇게 늘어납니다.
손반죽으로는 죽었다 깨도 저 상태가 안되더라구요. 조금만 늘려도 툭툭 끊어지기 십상.
반죽을 둥글게 뭉쳐서 공 모양으로 만들어 줍니다.
숙련된 제빵사일수록 공 표면이 매끈하고 동글동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겨울이니까 발효를 돕기 위해 히팅 보울의 온도를 35도로 맞춰줍니다.
지금까지 수비드용 고기나 조리하고 양파즙이나 만들던 히팅 보울이 본연의 임무를 하는 순간입니다.
위에는 물에 적신 키친타월을 올려서 습도를 유지시켜 줍니다.
뭐랄까, 식빵을 만드는 동안에는 이스트를 자식 키우듯 아끼는 마음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한 시간이 지난 후의 반죽.
그릇을 뛰쳐 나올 기세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발효가 잘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반죽을 들어낼 때 보이는 단면을 잘 살펴보면 됩니다.
거미줄처럼 늘어지면 발효가 잘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1차 발효가 끝난 반죽은 똑같은 크기로 나눠서 모양을 잡아줍니다.
밀대로 밀어서 길게 편 후, 양 끝을 접어서 90도 회전시킨 다음 다시 밀어줍니다.
길게 밀어낸 반죽을 끝에서부터 돌돌 말아준 다음, 둘둘 말린 끝부분을 꼬집에서 뭉쳐주면 성형 작업은 끝.
몇등분으로 나누는지는 빵틀의 길이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모양을 잡은 반죽을 빵틀에 넣고 2차 발효를 합니다.
30분에서 40분 정도 지나면 또 다시 뛰쳐나올 기세로 부풀어 오르는 반죽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만드는 식빵은 샌드위치 식빵입니다.
또 다른 이름은 풀먼 식빵(Pullman Bread)으로, 풀먼 열차회사의 식당칸에서 사용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요.
그냥 식빵과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빵 틀에 뚜껑을 덮어서 사각형으로 구워낸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죠.
180도 오븐에서 30분 가량 구워줍니다.
빵이 다 구워질 때 쯤이면 온 집안에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퍼집니다.
비단 빵 뿐만이 아니라 음식을 하면서 나는 맛있는 냄새가 집에 퍼질 때는 뭔가 편안하면서 안락한 분위기가 생기는 게 왠지 모르게 보호받는 느낌이 듭니다.
어릴 적부터 경험해 온, '밥 하는 냄새'라는게 주는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방심은 할 수 없는게, 밀가루 벽돌 구울 때도 냄새는 좋더라구요.
이번에는 다행히도 아주 잘 구워졌습니다.
잘 구워진 빵은 이렇게 삶은 닭가슴살 찢어지듯이 결을 내면서 찢어집니다.
그래서 식빵을 만들면서 체크하는 세 가지가 반죽 후 지문 확인, 1차 발효 후 거미줄 확인, 굽고 나서 닭가슴살 확인이라고 하지요.
갓 구운 빵을 "앗뜨거 앗뜨거"하면서 쭉쭉 찢어먹는 맛은 집에서 빵을 굽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삼분의 일은 얇게 썰어서 샌드위치나 토스트용으로 남겨두고, 삼분의 일은 허니브레드용 통식빵으로 남겨둡니다.
나머지 삼분의 일은... 썰다 보면 없어집니다. 우유라도 한 컵 옆에 있으면 더 빨리 없어지지요.
식빵이 가장자리는 딱딱하면서 속은 부드러워서 빵칼로 예쁘게 써는게 쉽지만은 않은데 그래도 오늘은 그렇게 많이 뭉개지지는 않았네요.
원래 빵집에서는 빵을 덩어리 단위로 팔았기 때문에 이렇게 얇게 자른 빵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 들어서 식빵 자르는 기계를 도입한 제빵회사가 대량으로 슬라이스된 빵을 찍어내기 전까지는 각자 집에서 썰어먹어야 했으니까요.
이 당시 회사의 광고가 "식빵이 포장되어 팔리기 시작한 이후 제빵업계의 가장 큰 발전"이었는데,
이 말이 변형되어 오늘날 뭔가 대단한 물건을 봤을 때 자주 쓰이는 관용구인 "썰어놓은 식빵 이후 최고의 물건(The best thing since sliced bread)"이 되었습니다.
허니브레드를 만들기 위해서 버터에 꿀과 파슬리 가루를 뿌려줍니다.
한 시간 정도 놔둔 후, 버터가 말랑해지면 숟가락으로 잘 섞어준 다음 통식빵에 칼집을 내서 윗면과 안쪽에 골고루 발라줍니다.
180도 오븐에 윗면이 노릇노릇해질 정도로 구워줍니다.
허니브레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지만 이것저것 곁들여 먹는 재미가 또 쏠쏠하지요.
딸기와 블루베리, 라즈베리, 블랙베리를 곁들이고 접시에는 초콜렛 소스를 뿌린 후 생크림을 곁들이면 완성입니다.
대다수의 허니브레드는 빵 위에 크림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리고 그 위에 다시 초콜렛 시럽이나 캐러맬 시럽을 뿌립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올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보기에는 좋지만 뜨거운 빵 때문에 크림이 금방 녹아버리고, 결국엔 빵이 질척질척하게 젖으면서 무슨 밀가루 죽 먹는 기분이 들게 되거든요.
그래서 가게에서 허니브레드를 주문할 때는 크림이나 아이스크림은 반드시 옆에 따로 얹어달라고 부탁하곤 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중의 하나가, 이 허니브레드는 한국에서 발명한 메뉴라는 점 입니다.
물론 버터 발라 구운 토스트를 꿀에 찍어먹는 건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허니브레드라는 음식은 없었거든요.
그나마 비슷한 게 허니번이라고 빵반죽에 설탕 대신 꿀을 넣은 건데, 허니브레드와는 차이가 크지요.
커핀그루나루의 김은희씨가 2004년에 최로로 메뉴를 개발한 이후로 한국은 젖(으로 만든 버터)와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으니
허니브레드가 없었다면 허니버터칩 열풍도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빵을 썰어서 크림을 푹 찍은 다음 딸기를 하나 얹어 먹으면 엄청 맛있습니다.
뜨겁고 달달한 빵에 차갑고 고소한 생크림, 여기에 신 맛이 섞여있는 딸기가 포인트를 주면서 입에서 녹아내립니다.
칼로리가 높은 재료들이 왕창 들어가는 바람에 자주 만들기는 좀 그렇지만 주말에 간식으로 하나 구워서 먹으면 좋은 메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