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걸렸다.네 얘기를, 그리고 내 얘기를 덤덤히 써내려 가기까지.이제 정말 너를 보내려 한다.나는 이제 조금씩, 너에게서 자유로워 지려 한다. 존재만으로도 이쁘다던 나의 열아홉, 그리고 너의 스물 내가 좋아하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흥얼거리던 너, 대뜸 내가 쓴 곡을 쳐보라던 조금은 당돌했던 너.그런 첫모습이 나는 너무 좋았다.너에게 단지 친한 동생이였던 나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이성이였던 너였던 다른 시작에나는 너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너는 나에게 우정이란 감정을 키워나갔지만그런 우리의 관계조차 나는 너무나도 좋았다. 서로 같은 분야를 공부했고 같은 꿈을 키워왔던 덕분이였는지,아님 소위 말하는 '잘 통한다' 라는 설명을 뒷받침 해주듯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배려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였는지,나의 첫 고백이 매정하고 칼같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너와 난 빠르게 친해졌고, 빠르게 가까워졌으며, 빠르게 당연해졌다.이후에도 우린 우정이라는 이름하에 친구들 속에 묻어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해갔고,서로의 고민을 앞세워 솔직함을 내미는 그런 오빠동생사이가 되었다.그때까지 우린 참 괜찮았다. 아니, 그땐 그랬던 것 같다.오빠동생사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못박으며 나는 너에게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었고,성인이 되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적당히 예의를 지켜가며 둘도 없는, 아니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사이였다. 우린. 하지만 두어번의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내 감정은 다시끔 불이 피어오르듯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참 우습게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 한번도, 단 한순간도 난 네가 온연하게 편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그때의 넌, 솔직함과 직설적의 끝판왕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 얼굴로 나의 세번째 고백을 받아들였고, 우린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연인이 되고도 한동안 너는 나에 대한 확신없는 감정을 나에게 토로했고, 그때마다 난 너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바빴다.네가 나에게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연인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할때 즈음,우린 정말 좋았다. 고작 한달 반이라는 만남이 무색 하게도,우린 마치 몇 년은 같이 산 부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잘 물들어갔고, 내 인생의 너, 네 인생의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과거엔 이랬지, 지금은 이런데 나중엔 그래볼까 미래를 꿈꾸며 모든 시점엔 우리가 함께 서있었다.정말 말그대로 우린 서로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였다.그리고 너는 나라의 부름에 잠시 내 곁에서 멀어졌다.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우리에게 있어서 너 그리고 나의 존재는 남들과 사뭇 달랐다고 생각했고, 우린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잠시 멀어짐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난 잘 기다릴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너 또한 잘 해내고 올 것이라 믿었다.난 너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여덟살 이후론 써보지도 않던 일기를 쓰듯 매일 너의 부대에 나의 하루가 담긴 편지를 보냈고, 언제쯤 네 전화를 받을까 오매불망 핸드폰을 부여잡고 울리지도 않을 전화를 기다렸다.나는 우체국에서 지극한 고무신, 네 부대에선 선망의 대상으로 유명해 졌을 정도로 여자친구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와 동시에 내 일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기다림으로 하루를 채우는 그때 그 순간이 결코 아쉽지도, 아깝지도 않았다.기다림에 상이라도 주 듯, 아동바동 준비했던 내 공연 날 까까머리의 첫 휴가를 받은 널 다시 만났다. 우리가 연인으로써 함께한 첫 크리스마스였다.농후한 진심이 담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의 이벤트를 받고 너와 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기도, 서로의 진솔한 감정을 나누기도 하며 그렇게 진득하게, 더 깊게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묻어갔다.이후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며 기다림을 바쁨으로 꾸역꾸역 채워낸 나는 사회의 일부분으로, 넌 국방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넌 나와 가까운 자대로 옮겨왔고, 너의 휴가에도 주말에도 난 꾸준히 너와 국방의 의무를 함께 했다.이맘때 즈음이였던 것 같다. 너와 나의 사이에 조금씩 물음표가 생겼던 시점은.나의 바쁨을 너는 조금씩 서운해 했고, 나는 너의 부재가 아닌 나의 부재에 미안해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우리에게 그 사건이 일어났다.너의 이기심과 나의 조바심, 그리고 너의 조급함과 나의 이기심이 부딪히기 시작했고,너는 나에게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실수를 범하며, 처음으로 나에게 강압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조급했던 너의 강압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난 너의 모나고 강압적인 모습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너 혼자만 없었던 일로 하면 된다라는, 난 군인이고 넌 일반인이니깐 그냥 조용히 잘 넘기면 우린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처음 보는 이기적인, 강압적인 너의 모습 하나하나를 납득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함께했던 우리의 몇년여간 중 첫 싸움이였다.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우리가 딱 한가지 몰랐던 건,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싸움을 끝내야 할 지였다.서로가 본인의 얘기만 해대는 긴 과정속에 나는 입을 다물었고, 너는 날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린 헤어졌다.나에게 아픔을 남겼고, 너에게 모짐을 남겼던 우리는 그렇게 남이 되었다.헤어진 이후에도 너는 여전히 내 곁에 맴돌았고, 나를 아프게 했다.나는 너를 그리워했고, 동시에 나를 재촉했던 너를 원망했다.너 역시 나를 그리워했고, 동시에 입을 다물었던 나를 원망했다. 간간히 페이스북에서 보이던 친구들과 너의 모습을 보며 난 널 더 원망하고 화를 냈다.너의 소식을 듣지 않기 위해 너와 내가 묻어났던 모든 친구들을 끊어냈고, 동시에 나는 모든 SNS를 끊으며 숨어지내기 바빴다.움츠렸던 내가 조금씩 괜찮아 질 무렵, 난 너와 함께 그리던 미래를 1인칭 시점에서 키워나가고 있었고,넌 제대를 해 너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우린 정말 남이였다.그리고 넌 내 곁에 다시끔 맴돌기 시작했다.네 친구이자 나의 친구였던 그 친구에게 날 그리워 하던 너의 소식을 간간히 들었지만 그럴때마다 무시하고 화를 냈다.하지만 빌어먹을 나 또한 연인이 아닌 친구였던 널 그리워했고, 그래도 그동안 꽤 괜찮아졌을거라 착각했다. 그렇게 결국 우린 다시 만났다.2년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만나자마자 화가 치밀었던 나의 재회가, 너에게는 연인으로서의 가능성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우린 다시 엇갈리기 시작했다.다짜고짜 내 핸드폰에 네 번호를 입력하던 너의 첫 걸음과단 한번도 내가 어땠노라 얘기를 하지 않았던 그때의 응어리가 담긴 나의 첫 걸음의 무게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넌 나에게 다시끔 연애의 관계로 돌아가길 원했고 나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친구의 관계를 원했다.우린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같이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2년을 얘기하며,연인이기 이전에 친구였던 우린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넌 금새 너의 조급함을 스물스물 끌어냈고, 다시끔 연인의 관계로 돌아감을 원했다.이후 몇일이 지나지 않아 넌 여자친구가 생겼고, 난 너에게 다시끔 인연의 끝을 고했다.얼굴도 모를 네 여자친구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기 싫었고, 행복하지 못한 내가 네가 다른여자랑 행복한 모습을 보기 싫었던 배알꼴린 자존심도 있었다.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연인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던 결말엔 친구라는 범주가 포함되어있었다.너와의 인연을 놓고싶지 않아 외면하고 있었던 한가지였다.넌 이런 날 이해하지 못했고 우린 또 다시 답을 못낼 싸움을 했다. 그렇게 우린 또 다시 남이 되버렸다. 이후 난 더욱더 진한 워커홀릭으로 하루를, 한달을 끌어나갔고, 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굳혀냈다.다시끔 시작했던 SNS에 태그되어 보이는 너와 여자친구 모습에서 너의 행복을 보며 난 행복하지 못한 나의 순간과 너를 원망하면서, 또한 너의 행복을 빌었다.복잡한 감정을 감당할 수 없어 난 또다시 숨어들었다.나에게 너무나도 컸던 너와 끊어내는 과정을 두번 겪으면서, 사람이 너무나도 소중한 나에게 너는 모난 돌이 되었고, 난 네 이름만 언급되도 미친개처럼 득달같이 달려드는 감정적인 여자가 되어있었다.그리고 또다시 1년이 흘렀다.지긋한 워커홀릭으로 동기들 중 제일 그럴싸한 직업을 갖고 있었던 덕분이였는지, 너와 함께 그렸던 유학이란 미래가 1인칭 주어시점이 되어 고작 두어달 남았는 덕분이였는지,주변인들에게 있어 나는 꽤 괜찮고 멋있는 여자가 되어있었고,너에 대한 나의 상태 또한 꽤 괜찮아져있었다. 이런 나를 약올리기라도 하듯 넌 또다시 나를 쿡쿡 찔러왔다.기나긴, 어쩌면 새로운 터전이 될 유학길에 오르는 내 소식을 듣고, 다시 못볼 생각에 잘 다녀오라 인사하고 싶어 연락했다던 네가 반가웠다.그랬다. 그런줄 알았던 그 순간에 네가, 다시끔 내 친구를 찾은 것 같아 반가웠다.그리고 사실을 알았을 때 난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여자친구랑 싸우고 네 미래를 함께 할 상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함을 나한테 얘기하는 네가,화해하기전에 나한테 연락해서 여자친구랑 다시 잘 되면 결혼까지 할 것 같은데 그전에 내 생각을 듣고 싶다고 생각없이 얘기하는 네가,과거까지 끄집어 내 미친듯이 화를 내는 나를 고작 감정에 휩쓸려 정확한 판단을 못하는 여자로 만드는 네가,나와의 3일간의 길고 타협없는 싸움을 끝내자마자 다시끔 SNS에 여자친구랑 행복한 사진을 올리는 네가,죽일듯이 미웠고 화가났다. 나를 함부로 대하고 하찮게 여기는 네가,이미 끝이 난 멜로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로 만들어 나를 끼워넣는 네가,나에게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땐 그랬지 안주거리 삼을 수 있는 친구라는 티끌조차 지워버린 네가,너무나도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또 다시, 우린 세번째 남이 되었다. 난 이제 너를 보내려 한다.세번의 끝마침을 겪으며, 너와 나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너를 다시 그리워하지도 찾지도 않을것이다.난 이제 숨지 않을 생각이다.
내 생일을 잊지않고 문득 찾아와 케이크부터 내밀던 네가 좋았다.밀가루를 못 먹는 날 위해 한강을 돌고돌아 밀가루 옷 입은 치킨대신 전기통닭을 찾아 사오던 네가 좋았다.고3 입시가 힘들어 찡찡대는 날 맥주한캔으로 달래주며 이것만 먹고 내일부터 힘내라던 네가 좋았다.밤샘 프로젝트에 지쳐 졸고 있는 내게 어깨를 빌려주던 네가 좋았다.컴플렉스였던 내 뚱뚱한 하체를 섹시하다고 치켜세워주던 네가 좋았다.외박여행을 떠날 땐 나보단 우리 부모님께 연락드려 허락부터 여쭸던 믿음직한 네가 좋았다.열아홉살, 나의 동경의 대상이였고 이십대, 나의 전부였던 너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렇다. 한때는 내 동경의 대상이였고, 내 소중한 친구였으며, 나의 연인, 그리고 원망의 대상.조금은 민망하게도, 내 꽃다움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넌 네게 그런 사람이였다. 내 인생의 첫번째 봄날이었던 따듯함이었지만,매 가을마다 우리가 연인이란 이름으로 처음 만난 가을의 냄새가 아른거리지만, 함께보낸 크리스마스의 아늑함을 잊을 수 없겠지만, 내 인생의 5년을 날려보내야 하지만.이제 이 모든 걸, 너의 모든 걸 보내려 한다. 나의 5년을 놓기까지 이토록 힘들고 오래걸릴 만큼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다.세차례 너와 끝냄의 과정을 겪으며, 넌 나에게 너무나도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네가 밉고 원망스럽다. 그래도 넌 잘 살았으면 좋겠다.나는 너를 잊으려 하지만, 너는 나를 조금이나마 길게 후회했으면 좋겠다. 잘가라, 나의 첫번째 봄이여.
이제 안녕하려 한다.
존재만으로도 이쁘다던 나의 열아홉, 그리고 너의 스물 내가 좋아하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흥얼거리던 너, 대뜸 내가 쓴 곡을 쳐보라던 조금은 당돌했던 너.그런 첫모습이 나는 너무 좋았다.너에게 단지 친한 동생이였던 나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이성이였던 너였던 다른 시작에나는 너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너는 나에게 우정이란 감정을 키워나갔지만그런 우리의 관계조차 나는 너무나도 좋았다.
서로 같은 분야를 공부했고 같은 꿈을 키워왔던 덕분이였는지,아님 소위 말하는 '잘 통한다' 라는 설명을 뒷받침 해주듯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배려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였는지,나의 첫 고백이 매정하고 칼같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너와 난 빠르게 친해졌고, 빠르게 가까워졌으며, 빠르게 당연해졌다.이후에도 우린 우정이라는 이름하에 친구들 속에 묻어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해갔고,서로의 고민을 앞세워 솔직함을 내미는 그런 오빠동생사이가 되었다.그때까지 우린 참 괜찮았다. 아니, 그땐 그랬던 것 같다.오빠동생사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못박으며 나는 너에게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었고,성인이 되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적당히 예의를 지켜가며 둘도 없는, 아니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사이였다. 우린.
하지만 두어번의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내 감정은 다시끔 불이 피어오르듯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참 우습게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 한번도, 단 한순간도 난 네가 온연하게 편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그때의 넌, 솔직함과 직설적의 끝판왕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 얼굴로 나의 세번째 고백을 받아들였고, 우린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연인이 되고도 한동안 너는 나에 대한 확신없는 감정을 나에게 토로했고, 그때마다 난 너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바빴다.네가 나에게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연인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의지하기 시작할때 즈음,우린 정말 좋았다. 고작 한달 반이라는 만남이 무색 하게도,우린 마치 몇 년은 같이 산 부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잘 물들어갔고, 내 인생의 너, 네 인생의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과거엔 이랬지, 지금은 이런데 나중엔 그래볼까 미래를 꿈꾸며 모든 시점엔 우리가 함께 서있었다.정말 말그대로 우린 서로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였다.그리고 너는 나라의 부름에 잠시 내 곁에서 멀어졌다.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우리에게 있어서 너 그리고 나의 존재는 남들과 사뭇 달랐다고 생각했고, 우린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잠시 멀어짐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난 잘 기다릴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너 또한 잘 해내고 올 것이라 믿었다.난 너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여덟살 이후론 써보지도 않던 일기를 쓰듯 매일 너의 부대에 나의 하루가 담긴 편지를 보냈고, 언제쯤 네 전화를 받을까 오매불망 핸드폰을 부여잡고 울리지도 않을 전화를 기다렸다.나는 우체국에서 지극한 고무신, 네 부대에선 선망의 대상으로 유명해 졌을 정도로 여자친구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와 동시에 내 일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기다림으로 하루를 채우는 그때 그 순간이 결코 아쉽지도, 아깝지도 않았다.기다림에 상이라도 주 듯, 아동바동 준비했던 내 공연 날 까까머리의 첫 휴가를 받은 널 다시 만났다. 우리가 연인으로써 함께한 첫 크리스마스였다.농후한 진심이 담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의 이벤트를 받고 너와 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기도, 서로의 진솔한 감정을 나누기도 하며 그렇게 진득하게, 더 깊게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묻어갔다.이후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며 기다림을 바쁨으로 꾸역꾸역 채워낸 나는 사회의 일부분으로, 넌 국방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넌 나와 가까운 자대로 옮겨왔고, 너의 휴가에도 주말에도 난 꾸준히 너와 국방의 의무를 함께 했다.이맘때 즈음이였던 것 같다. 너와 나의 사이에 조금씩 물음표가 생겼던 시점은.나의 바쁨을 너는 조금씩 서운해 했고, 나는 너의 부재가 아닌 나의 부재에 미안해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우리에게 그 사건이 일어났다.너의 이기심과 나의 조바심, 그리고 너의 조급함과 나의 이기심이 부딪히기 시작했고,너는 나에게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실수를 범하며, 처음으로 나에게 강압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조급했던 너의 강압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난 너의 모나고 강압적인 모습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너 혼자만 없었던 일로 하면 된다라는, 난 군인이고 넌 일반인이니깐 그냥 조용히 잘 넘기면 우린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처음 보는 이기적인, 강압적인 너의 모습 하나하나를 납득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함께했던 우리의 몇년여간 중 첫 싸움이였다.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우리가 딱 한가지 몰랐던 건,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싸움을 끝내야 할 지였다.서로가 본인의 얘기만 해대는 긴 과정속에 나는 입을 다물었고, 너는 날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린 헤어졌다.나에게 아픔을 남겼고, 너에게 모짐을 남겼던 우리는 그렇게 남이 되었다.헤어진 이후에도 너는 여전히 내 곁에 맴돌았고, 나를 아프게 했다.나는 너를 그리워했고, 동시에 나를 재촉했던 너를 원망했다.너 역시 나를 그리워했고, 동시에 입을 다물었던 나를 원망했다.
간간히 페이스북에서 보이던 친구들과 너의 모습을 보며 난 널 더 원망하고 화를 냈다.너의 소식을 듣지 않기 위해 너와 내가 묻어났던 모든 친구들을 끊어냈고, 동시에 나는 모든 SNS를 끊으며 숨어지내기 바빴다.움츠렸던 내가 조금씩 괜찮아 질 무렵, 난 너와 함께 그리던 미래를 1인칭 시점에서 키워나가고 있었고,넌 제대를 해 너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우린 정말 남이였다.그리고 넌 내 곁에 다시끔 맴돌기 시작했다.네 친구이자 나의 친구였던 그 친구에게 날 그리워 하던 너의 소식을 간간히 들었지만 그럴때마다 무시하고 화를 냈다.하지만 빌어먹을 나 또한 연인이 아닌 친구였던 널 그리워했고, 그래도 그동안 꽤 괜찮아졌을거라 착각했다. 그렇게 결국 우린 다시 만났다.2년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만나자마자 화가 치밀었던 나의 재회가, 너에게는 연인으로서의 가능성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우린 다시 엇갈리기 시작했다.다짜고짜 내 핸드폰에 네 번호를 입력하던 너의 첫 걸음과단 한번도 내가 어땠노라 얘기를 하지 않았던 그때의 응어리가 담긴 나의 첫 걸음의 무게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넌 나에게 다시끔 연애의 관계로 돌아가길 원했고 나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친구의 관계를 원했다.우린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같이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2년을 얘기하며,연인이기 이전에 친구였던 우린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넌 금새 너의 조급함을 스물스물 끌어냈고, 다시끔 연인의 관계로 돌아감을 원했다.이후 몇일이 지나지 않아 넌 여자친구가 생겼고, 난 너에게 다시끔 인연의 끝을 고했다.얼굴도 모를 네 여자친구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기 싫었고, 행복하지 못한 내가 네가 다른여자랑 행복한 모습을 보기 싫었던 배알꼴린 자존심도 있었다.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연인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던 결말엔 친구라는 범주가 포함되어있었다.너와의 인연을 놓고싶지 않아 외면하고 있었던 한가지였다.넌 이런 날 이해하지 못했고 우린 또 다시 답을 못낼 싸움을 했다. 그렇게 우린 또 다시 남이 되버렸다.
이후 난 더욱더 진한 워커홀릭으로 하루를, 한달을 끌어나갔고, 나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굳혀냈다.다시끔 시작했던 SNS에 태그되어 보이는 너와 여자친구 모습에서 너의 행복을 보며 난 행복하지 못한 나의 순간과 너를 원망하면서, 또한 너의 행복을 빌었다.복잡한 감정을 감당할 수 없어 난 또다시 숨어들었다.나에게 너무나도 컸던 너와 끊어내는 과정을 두번 겪으면서, 사람이 너무나도 소중한 나에게 너는 모난 돌이 되었고, 난 네 이름만 언급되도 미친개처럼 득달같이 달려드는 감정적인 여자가 되어있었다.그리고 또다시 1년이 흘렀다.지긋한 워커홀릭으로 동기들 중 제일 그럴싸한 직업을 갖고 있었던 덕분이였는지, 너와 함께 그렸던 유학이란 미래가 1인칭 주어시점이 되어 고작 두어달 남았는 덕분이였는지,주변인들에게 있어 나는 꽤 괜찮고 멋있는 여자가 되어있었고,너에 대한 나의 상태 또한 꽤 괜찮아져있었다.
이런 나를 약올리기라도 하듯 넌 또다시 나를 쿡쿡 찔러왔다.기나긴, 어쩌면 새로운 터전이 될 유학길에 오르는 내 소식을 듣고, 다시 못볼 생각에 잘 다녀오라 인사하고 싶어 연락했다던 네가 반가웠다.그랬다. 그런줄 알았던 그 순간에 네가, 다시끔 내 친구를 찾은 것 같아 반가웠다.그리고 사실을 알았을 때 난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여자친구랑 싸우고 네 미래를 함께 할 상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함을 나한테 얘기하는 네가,화해하기전에 나한테 연락해서 여자친구랑 다시 잘 되면 결혼까지 할 것 같은데 그전에 내 생각을 듣고 싶다고 생각없이 얘기하는 네가,과거까지 끄집어 내 미친듯이 화를 내는 나를 고작 감정에 휩쓸려 정확한 판단을 못하는 여자로 만드는 네가,나와의 3일간의 길고 타협없는 싸움을 끝내자마자 다시끔 SNS에 여자친구랑 행복한 사진을 올리는 네가,죽일듯이 미웠고 화가났다.
나를 함부로 대하고 하찮게 여기는 네가,이미 끝이 난 멜로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로 만들어 나를 끼워넣는 네가,나에게 오랜 시간이 지나 그땐 그랬지 안주거리 삼을 수 있는 친구라는 티끌조차 지워버린 네가,너무나도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또 다시, 우린 세번째 남이 되었다.
난 이제 너를 보내려 한다.세번의 끝마침을 겪으며, 너와 나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너를 다시 그리워하지도 찾지도 않을것이다.난 이제 숨지 않을 생각이다.
내 생일을 잊지않고 문득 찾아와 케이크부터 내밀던 네가 좋았다.밀가루를 못 먹는 날 위해 한강을 돌고돌아 밀가루 옷 입은 치킨대신 전기통닭을 찾아 사오던 네가 좋았다.고3 입시가 힘들어 찡찡대는 날 맥주한캔으로 달래주며 이것만 먹고 내일부터 힘내라던 네가 좋았다.밤샘 프로젝트에 지쳐 졸고 있는 내게 어깨를 빌려주던 네가 좋았다.컴플렉스였던 내 뚱뚱한 하체를 섹시하다고 치켜세워주던 네가 좋았다.외박여행을 떠날 땐 나보단 우리 부모님께 연락드려 허락부터 여쭸던 믿음직한 네가 좋았다.열아홉살, 나의 동경의 대상이였고 이십대, 나의 전부였던 너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렇다. 한때는 내 동경의 대상이였고, 내 소중한 친구였으며, 나의 연인, 그리고 원망의 대상.조금은 민망하게도, 내 꽃다움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넌 네게 그런 사람이였다.
내 인생의 첫번째 봄날이었던 따듯함이었지만,매 가을마다 우리가 연인이란 이름으로 처음 만난 가을의 냄새가 아른거리지만, 함께보낸 크리스마스의 아늑함을 잊을 수 없겠지만, 내 인생의 5년을 날려보내야 하지만.이제 이 모든 걸, 너의 모든 걸 보내려 한다.
나의 5년을 놓기까지 이토록 힘들고 오래걸릴 만큼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다.세차례 너와 끝냄의 과정을 겪으며, 넌 나에게 너무나도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네가 밉고 원망스럽다. 그래도 넌 잘 살았으면 좋겠다.나는 너를 잊으려 하지만, 너는 나를 조금이나마 길게 후회했으면 좋겠다.
잘가라, 나의 첫번째 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