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해결해준다.

DoubleJ20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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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16000초, 3153600분, 52560시간, 2190일, 72개월, 6년

 

 

 

이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나는 그 말을 싫어해.

시간이 흘렀음에도 해결된 것은 거진 없기 때문이지. 

 

 

 

‘해결은 시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해야 되는 것이고,

그런 나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일 뿐이여서 시간이 해결해준 것처럼 느낄 뿐이다.’

라고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은 문제에 구태여 고집스런 답을 내리곤 했어.

스스로의 못남에 대한 원망을 담아서.

 

 

 

이런 내게도 기쁘고도 슬픈, 슬프고도 기쁜 변화가 진행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고, 앞당기고 싶어도 앞당길 수 없이...

천천히. 또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금씩.

그래서 네게 오랜만에 글을 남기고 싶었다. 수취인 불명의 편지처럼.

 

 

7년하고도 반년도 더 전의 일이 되었구나.

 

 

너와의 첫 만남이 아직도 기억이 나.

씩씩해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많이 여리다는 걸,

바보스러울 만큼 착한 사람이란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거든.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마치 홀린 사람마냥,

숫기 하나 없는 내가 어떻게 너에게 먼저 다가갔는지

나와 지인들은 아직까지도 의문이야.

 

 

 

어리숙하고 서툴렀던 나를, 너는 함께 해주었고,

나는 봄을 맞이하고 꽃을 피울 수 있었지.

그렇게 나의 스무 살은 화사했었지.

 

 

행복했다.

그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어서

그것이 행복인줄도 몰랐었지만

행복했다.

 

 

그래서 추억이 너무나도 많이 쌓였나보다.

 

 

난 기억력도 좋지 않은데 왜 너에 관한 건

사소한 추억들도 생각이 나는건지.

 

새콤달콤과 춥파춥스를 좋아했고, 남산을 좋아했지.

이승기와 유희열을 좋아했고, 라디오를 많이 들었었어.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해도 같이 술자리를 갖는 게 좋다며

매화수를 연거푸 마시기도 했었지.

작은 귀에 생각보다 많은 피어싱을 했었고,

긴 생머리에 청바지가 아주 잘 어울렸지.

치마를 입은 모습은 유니폼을 입었을 때 빼고는 한 번도 없었구나.

둘 다 노래 듣는 걸 좋아하지만 노래실력은 그랬지.

나는 고양이상이고 자기는 강아지상이라며 바뀌어야된다며

앙증맞게 툴툴거리기도 했었네.

호수 공원을 좋아했고, 인사동을 좋아했어.

책을 좋아했고 해리포터를 무척 좋아했지.

스페인에 가보고 싶어했고 추운 걸 싫어했지.

자전거 타는 걸 좋아했고 운동신경도 좋았지.

운전을 가르칠 때 도, 스키를 가르칠 때 도 곧 잘 따라왔잖아.

정동진도 참 좋아했는데..

 

 

 

많이 잊혀졌다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네.

저런 많은 추억 중에서 어제 일 같이 생생한 기억이 3가지가 있어.

 

 

하나는 우리가 함께한지 100일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날.

극장에서 국가대표를 보고 집까지 20여분의 거리를 걸어갔잖아.

도착해서 멀뚱거리는 멍청한 나를 다시 역 근처까지

배웅하겠다며 같이 내려가던 길이였지.

얼굴에 무언가 있다며 떼어주는 척 처음으로 뽀뽀하고 도망간 일.

후에 그래서 입만 쳐다봤냐는 귀여운 핀잔에 머쓱했었지.

 

 

 

다른 하나는 두 번째 맞이하는 여름에 집 가는 길.

서로 달리기에 대한 허풍 아닌 허풍을 늘어놓고

검증을 위해서 지칠 때 까지 달려보자며 손을 잡고 뛰었었지.

물론 둘 다 얼마가지 못해서 숨을 몰아쉬며 서로 마주보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잖아.

달리느라 숨이 가쁜 것보다 웃느라 숨이 더 찼던 그 날.

처음으로 이게 행복이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찼었어.

 

 

 

마지막으로 하나는

지금처럼 추운 계절. 화려했던 성탄절이 지나간 날이야.

짊어져야할 의무로 인해 너의 곁에 있어줄 수 있었던 마지막 날.

실질적으로 우리가 같이 웃을 수 있었던 그 날.

그 날의 그 마지막 순간. 그 순간 그 때 너의 그 눈망울.

원망과 애절함, 안간힘 다해 애쓰는 슬프도록 사랑스러운 그 눈망울은

나에겐 각인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마지막 하나의 추억..

그 후로 6개월가량의 시간이 있었지만 시립고도 시렸지.

 

 

계절은 점차 따사로워지는데 그와 반비례로

우리는 점차 차가워지고 말았잖아.

 

 

결국 내생일 언저리에 마침표를 찍었지.

가장 기쁜 생일선물로 너를 받았는데

가장 슬픈 생일선물로 너를 보냈어.

 

 

우리가 마침표를 찍던 날.

모지리인 나는 꽤나 펑펑 울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는 너도 끝내 눈물을 터트리게 했으니.

 

 

나를 돌려세우며 이제 돌아보지 말고 가야한다고 말했다.

 

 

네가 장난이 짓궂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괜찮다고 하며 내 손을 잡아주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남자가 울지 말라며 토닥이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나에게 오는 소리가 들리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잘못 생각했다고 말하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내 이름을 다시 부르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다시 나를 돌려세우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사랑한다 말하길 바라며 열을 셌다.

네가 있어주길 바라며 열을 셌다.

 

 

비가 내렸다.

 

 

 

맞아. 네가 말한 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가지 못했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나는 늘 다시 돌아보곤 했어.

 

 

 

돌아보기를 반복하는, 네가 사무치던 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눈망울을 보던 그 날을

나만의 기념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곤 함께 했던 그 장소들을 다시금 찾아갔다.

 

 

 

그렇지 않으면 수심에 잠긴 이 모지리가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참 신기하더라.

신비한 알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시곗바늘을 돌려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함께 했던 익숙한 그 장소들엔 우리가 있었다.

 

 

신나들떠 떠드는 내가, 경청하며 웃는 네가,

쓰다며 고갤 젓는 네가, 귀엽다며 웃는 내가,

미안하다며 멋쩍어하는 내가, 앙증맞게 뾰로통한 네가,

뽀뽀하고 도망치듯 가는 내가, 안보일 때 까지 손 흔들던 네가,

네 손을 잡고 웃으며 달리는 내가, 내 손을 잡고 웃으며 달리는 네가,

 

그렇게 곳곳에 우리가 있더라.

 

 

하나 둘.. 너와 나를 마주치고 나서.

마지막엔 그 날 그 순간 그 때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눈망울을

보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럼 1년을 버틸 수 있었어.

 

고래가 잠시 올라와 짤막한 숨을 쉬고 다시 깊숙이 잠수하듯

나는 나만의 기념일에 숨을 몰아쉬고 다시 잠길 수 있었어.

 

 

 

그렇게 다섯 번째 숨을 쉬고나서 이렇게 글을 남겨.

 

 

 

그래. 어쩌면 너를 사랑했던 나를

그리워한 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미련스러운 놈이니까.

 

 

그렇지만 이제 그 미련스러움도 아주 서서히 옅어졌단 걸 느꼈어.

 

무뎌지는 시간은

함께한 시간의 두 배정도 걸린다는 말도 있던데...

이미 한 참전에 두 배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참 오래 걸린다.

덧나고 다시 덧나고. 그렇게 천천히.

  

 

 

기쁘지만 슬프다. 슬프지만 기쁘다.

아니 사실은 슬프다. 슬프고 슬프다.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남이 아닌 남이 되었구나.

소식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하나 없는 게 원망스럽기까지 해.

 

 

 

새가 되어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던 꿈은 어떻게 됐을까.

자길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던 바람은 어떻게 됐을까.

곁에서 같이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너는 잘해내고 있으리라 생각해.

 

 

 

늘 해주고 싶었지만 전달되지 못한 말.

 

 

 

현명하지 못해서 네 꿈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해

내 모든 감정을 다해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바보 같은 내 손을 잡아주고 함께 해줘서

...

 

 

앞으로 얼마나 더 돌아볼지 모르겠다.

그치만 이젠 알겠어.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걸.

 

어쩌면 시간이 해결해 줄지도...

 

1년 중 마음 편히 네 생각을 해도 된다고 스스로 정한 날.

내 첫사랑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