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bble, bubble, pasta pot,
끓어라, 끓어라, 파스타 냄비야,
Boil me some pasta, nice and hot,
나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파스타를 끓여주렴,
I'm hungry and it's time to sup,
배는 고프고 이제는 저녁 먹을 시간,
Boil enough pasta to fill me up.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파스타를 끓여다오.
- Tommie dePaola, "Strega Nona(마법사 노나 할머니)" 중에서
동화책에 나오는 마법 주문이지만 한편의 아름다운 시(詩)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커다란 냄비가 저절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맛있는 파스타를 한 가득 만들어 내는데
처음 이 동화책을 읽었을 때는 군침을 삼키며 어찌나 집중해서 봤던지.
어린 마음에는 금이나 은이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보다 맛있는 파스타가 잔뜩 나오는 냄비가 더 탐났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마법의 냄비가 없는 상황에서는 수고스럽더라도 직접 끓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예전에 리조또를 만들 때도 한 번 언급한 바 있지만 (http://40075km.tistory.com/23),
특정 품종의 식재료를 쓰지 않으면 만들기가 어려운 요리들이 종종 있습니다.
리조또를 만들 때는 아보리오 쌀이 필수였듯이 파스타를 만들 때는 듀럼 밀로 만든 세몰리나 밀가루가 필수입니다.
밀가루가 달라 봤자 얼마나 다르겠나 싶기도 하지만, 결과물은 일반 밀가루를 썼을 때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입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집에 있는 밀가루로 해 보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파스타라기보다는 칼국수에 가까운 요리가 되어버리더군요.
베트남 쌀로 초밥 만들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일까요.
밀가루만 구할 수 있다면야 다른 재료는 구하기 쉽습니다. 신선한 달걀과 소금이 전부니까요.
1인분 기준으로 세몰리나 밀가루 110~120그램과 달걀 한 개를 사용합니다. 달걀 크기에 따라 밀가루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밀가루를 보울에 담고 가운데를 파서 오목하게 만든 다음 소금을 뿌리고 달걀을 깨넣습니다.
포크나 젓가락 등으로 가운데부터 휘휘 저어서 점점 가장자리의 밀가루를 반죽으로 끌어들어들입니다.
가루가 날리지 않을 정도로 뭉쳐지면 반죽기에 넣고 10분 가량 반죽 해 줍니다.
손반죽으로 만들어도 되기는 하는데 반죽이 워낙 뻑뻑한지라 그닥 추천할만한 작업은 아닙니다.
직접 겅험해 본 바로는 스파게티 먹는 것보다 만드는 데 열량이 더 소모되지나 않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막노동.
반죽이 다 되면 비닐랩에 싸서 실온에 20분 정도 숙성시킵니다.
반죽이 숙성되는 동안 돼지고기를 잘라둡니다.
대부분 베이컨을 많이 사용하지만 오리지널 까르보나라는 관찰레나 판체타를 넣는 것이 원칙입니다.
관찰레는 돼지 목살을, 판체타는 돼지 뱃살을 사용해서 만듭니다.
베이컨과의 차이점이라면, 베이컨은 염장한 고기를 연기에 훈제해서 만들지만 관찰레나 판체타는 연기가 아니라 바람에 말려 숙성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때문에 숙성 기간도 훨씬 더 오래 걸리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더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달걀 한 개에 노른자 한 개를 추가로 넣고 파마산 치즈와 페코리노 치즈를 갈아넣습니다.
후추도 넉넉하게 뿌려주고 잘 섞어줍니다.
우유나 생크림은 안 들어갑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베이컨까지는 관대한 마음(?)으로 봐 줄지 몰라도 크림을 넣고 오리지널 까르보나라라고 주장하면 싸움 붙을 수도 있습니다.
숙성이 끝난 반죽은 밤톨 크기로 둥글게 떼어내서 파스타 기계로 뽑아냅니다.
원래 전통적인 파스타 기계는 밀대 두개를 이어붙여놓은 사이로 반죽을 계속 밀어넣어서 얇게 편 다음
칼날을 원하는 간격으로 셋팅해서 스파게티나 링귀니, 페투치니 같은 다양한 두께의 파스타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프레스식 기계를 사용하면 스파게티 뿐 만 아니라 마카로니나 푸실리, 부카티니 같은 파스타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진짜 전통적인 방법으로 파스타를 만들려면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일일히 밀어서 칼로 썰어줘야 하지만요.
이렇게 뽑아낸 스파게티는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건조대에 빨래 널듯 널어줍니다.
파스타 면발이 쭉쭉 뽑혀나오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법의 냄비가 부럽지 않습니다.
면을 삶을 때는 들러붙지 않도록 올리브유를 살짝 뿌리고
일반적인 건면 삶을 때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재빨리 삶아줍니다.
갓 뽑아낸 스파게티는 대략 3~4분 정도면 다 익습니다.
하지만 까르보나라는 소스 부어서 한번 더 익히기 때문에 살짝 덜 익은 상태에서 건져주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스파게티를 삶을 때 알덴테(Al dente)라고 해서 이빨에 씹히는 느낌이 조금 남아있는 정도로 익히는 것이 최고라고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건조된 면을 기준으로 할 때이고, 갓 뽑은 생면은 딱딱한 심이 아예 없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느낌입니다.
씹는 맛이 가운데 심에서 나오는 건면과는 달리 생면은 면발의 탄력을 통해서 식감을 만들어 냅니다.
팬에 판체타를 볶다가 그 위에 그대로 삶은 스파게티 면을 붓고 기름에 볶아줍니다.
너무 뻑뻑해진다 싶으면 면 삶은 물을 몇 스푼 정도 넣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다 볶아지면 불을 줄이거나 끈 다음 소스를 붓고 빠르게 저어줍니다.
팬이 너무 뜨겁거나 느리게 저으면 달걀이 익어서 스크램블드 에그 파스타가 되어버리고
스파게티가 너무 식은 상태에서는 달걀이 면에 제대로 코팅되지 않습니다.
다 만들어진 스파게티를 접시에 담은 후, 치즈 약간과 후추를 갈아서 뿌리면 파스타 알라 까르보나라 완성입니다.
요리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까르보나라(석탄 광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후추가 뿌려진 모습이 석탄 가루 뿌린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 탄광의 광부들이 주로 만들어 먹었다는 설,
이탈리아 통일전쟁 초기의 비밀 결사인 까르보나리에게 헌정된 음식이라는 설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돼지기름과 달걀, 치즈를 사용한 파스타 소스는 남부 이탈리아 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만들었던지라
후추가루를 듬뿍 뿌린 것을 제외하면 사실 그렇게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파스타이기도 하지요.
파스타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있어서 거의 국가정체성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 등에서 까르보나라를 만들면서 생크림을 넣는 것이 큰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었죠.
우리나라로 치면 러시아에서 한국산 컵라면 먹을 때 마요네즈 잔뜩 뿌려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요.
워낙 이슈가 되다보니 거대 파스타 제조업체인 바릴라(Barilla)에서는 유튜브에 올라온 생크림 까르보나라 제작 영상에
자기 회사의 제품이 사용된 것에 항의하며 영상을 내려달라고 항의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요리라는 것이 국경을 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면서 생기는 당연한 현상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맘마미아를 외치면 어떤가요. 내 입맛에 크림 넣은 까르보나라가 더 잘 맞으면 그만인거지요.
개인적으로는 오리지널 버전을 더 좋아하지만요.
달걀과 치즈로 잘 코팅된 스파게티를 포크로 둘둘 말아 한 입 먹으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사실 소스야 예전에도 자주 해먹었으니 그닥 새로울 것은 없는데, 직접 뽑은 스파게티 면이 끝내줍니다.
탄력있는 식감도 식감이지만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네요.
잘 만든 파스타는 따로 소스 안 뿌려도 맛있다는데, 이 스파게티는 진짜 올리브유와 소금만 쳐서 먹어도 맛있습니다.
Enough, enough, pasta pot.
충분하다, 충분해, 파스타 냄비야.
I have my pasta, nice and hot,
따뜻하고 맛있는 파스타를 받았으니
So simmer down my pot of clay,
열을 식히거라, 도자기 냄비야
Until I'm hungry another day.
나중에 내가 다시 배고파 질 때까지.
- Tommie dePaola, "Strega Nona(마법사 노나 할머니)" 중에서
다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파스타 기계에 주문을 외워줍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키스 세 번도 잊으면 안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