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될지를 모르겠네요ㅋㅋ저는 22살 군인입니다...그녀를 다시 만난지는 벌써 1년 반이 넘었네요군생활하던 중에 괜시리 첫사랑 생각이나 아련해져서 글이나 써봅니다.그녀가 이걸 봐주길 바라는건 아니고 그냥 뭐 하소연하는 차원에서? 써보네요ㅋㅋ 그녀와 처음 만났던건 중3때 였습니다.그녀는 서울, 저는 부산, 너무나 어리고 풋풋했었네요 순수의 결정체이던 시절이었습니다.그녀와 저를 이어준 사람은 동갑인 제 사촌이었어요부산에 살던 제 사촌과 저는 꼬꼬마 시절부터 항상 붙어다녔습니다.하지만, 초딩때 언젠가 제 사촌은 집안사정으로 서울로 상경하게 되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보냈지만, 그래도 이따금 연락하기도 했고 명절마다 만나서 못한 얘기들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된것도 추석때였네요.중3 추석, 사촌과 저는 어김없이 또 서로 못한 얘기들을 털어놓고 있었습니다.그러다 괜시리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해 사촌에게 서울여자나 소개시켜달라고 말했죠ㅋㅋ무슨 생각이었는지 참ㅎ.. 지금생각하면 이불킥 각나오는 그런 행동이네요.그래도 그 장난이 제 인생을 바꿔놨다고 생각합니다.어쨌든 그녀와 저는 어이없게도 그렇게 이어졌습니다.매일을 그녀와 연락하게 되었고, 연락하는 그 순간이 어느새 즐거워지더군요.그 나이엔 참 신선한 경험이었죠, 서울 토박이 여자와 부산 토박이 남자의 만남이었으니까요그렇게 어느새 얼굴 한번 보지 못한(영상통화는 했으니 보긴봤지만ㅎ) 그런 그녀에게 어느새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매일을 설렘에 취해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들고는 했습니다.그 덕분에 전화비가 15만원이나 나와서 집에서 오지게 닦였던 기억이..혀튼 그렇게 우리는 서로 좋아하게 되었고 저는 겨울 방학에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습니다.안그래도 없는 용돈 모아가며 서울에 갈 준비까지 철저하게 했습니다.오래 기다리던 끝에 방학이 찾아오고 저는 부산역으로 향했습니다.기차가 얼마나 느린지 서울까지 7시간이 걸렸네요.거기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고 싶었는데 기차는 기어가더군요.우여곡절끝에 7시간이 지나갔고,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설레는 맘으로 기차에서 내렸는데 사촌과 그녀가 플랫폼까지 마중 나와있었습니다.실물을 본건 그때가 처음이었죠ㅋㅋ처음으로 그녀와 저는 서로의 앞에 설 수 있었고 그 순간 서로에게 빠져들었습니다.제가 여태껏 만난 사람중에 제일 예뻤네요.그때 그녀의 웃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그리고 그때 마침 서울에 눈이 펑펑 내려서 더 달달했습니다.이게 바로 길다면 긴 제 첫사랑의 시작이었습니다.서울에서의 15일을 그녀와 행복하게 보냈습니다.연말과 새해를 그녀와 함께 보냈습니다.그만큼 행복했던 순간이 없는 것 같네요ㅎㅎ그 15일은 제 첫 휴가만큼이나 순식간에 증발해버렸습니다...서울의 마지막 날, 서울역 플랫폼 앞에서 그녀와 부둥켜안고 눙물 흘렸던 기억이 새록 새록...한참을 안고 있었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저희 둘을 갈라놨네요.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서울의 여운에 한참을 빠져있었습니다.사실 아직도 빠져있긴 하지만ㅎ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그때부터 뭔가 틀어지더군요.제 인생 최대의 암흑기였으리라 장담합니다.저는 어릴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요즘은 흔히 말하는 화목한 가정이 됐네요)아버지는 매일을 술에 절어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며 저를 보듬어 주셨습니다.하지만 어느날, 어머니가 넘어지시면서 크게 다치셨고, 병원에 반 년동안이나 입원해 계셨습니다.그 일 이후로 아버지는 병원비 부담, 생계 부담, 교육비 부담으로 스트레스에 빠져 사시더니 결국 불똥은 저에게 튀더군요.매일을 맞으며 아버지로써 자식에게 해서는 안될 말도 많이 들었고 제 몸 여기저기엔 상처가 나게되었습니다.저를 보듬어주시던 어머니도 없고, 제게 남은건 그녀 뿐이었습니다.하지만 저도 그때 멘탈이 많이 약해졌었는지 결국 상당히 좋지 않은 선택을 해버렸었네요.그녀와 저의 거리는 너무도 멀었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보다도 더 힘든건 그녀가 제 옆에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저는 그녀에게 전화해 이별을 통보했습니다.이별을 통보하면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그렇게 한참을 폰을 붙잡고 울었네요.그 이후로는 매일을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줄 놓고 살았습니다.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진정한 이별의 아픔이었으니까요.확실한건 매일 울면서 잠들었다는 겁니다.그러다 결국 못견뎌서 친구놈들한테 하소연했더니, 친구놈들은 "ㅄ아 그럴거면 찾아가서 매달리든가" 라더군요.친구놈들도 미친놈들이고 저도 미친놈이었네요.그래서 바로 그녀에게 전화했지만, 그녀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습니다.그 말을 듣고 바로 서울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아마도 이때부터 정신상태가 상당히 안좋았던거 같네요.다음날, 저는 아침에 학교에서 아프다고 핑계를 대면서 조퇴를 허락받았습니다.그리고 바로 부산역으로 달려갔습니다.교복입은 상태로 바로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네요ㅋㅋㅋ그리고 그녀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했습니다.그녀의 학교 앞에서 두시간 정도 기다렸습니다.마침내 저를 만나러 나오더군요, 옆에 친구를 끼고서.하고싶은 말이 굴뚝같았지만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결국 저는 나중에 둘이서 얘기하자며 집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습니다.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네요.그냥 그녀의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그녀만 기다렸습니다.전화도 해봤지만 전원이 꺼져있더군요.결국엔 만나지 못했습니다.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왠 미친놈 하나가 자기 하나 보겠답시고 부산에서 바로 올라왔으니 많이 무서웠겠죠.그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던 제 잘못이었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찌질하기 짝이없네욬ㅋㅋㅋㅋ혀튼 그렇게 비참하게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길고 힘든 시간이 시작됐습니다.매일을 이별의 아픔에 빠져 살았고 가정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어느날, 그녀의 카톡 프사는 웬 남자와 같이 찍은 사진으로 바뀌어있더군요.때마침 타이밍 오지게 아버지의 주정이 시작됐습니다.결국 엄청 심하게 다투고 술병으로 머리를 맞았습니다.몸과 마음이 망가질대로 망가지더군요.결국 다음날, 학교가는 버스안에서 사고가 터졌습니다.저는 이유모를 공포감에 벌벌 떨면서 울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저를 죽이려고 제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결국 저는 버스에서 기절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앰뷸런스를 타고있었습니다.병원에서 MRI,뇌파검사 다 받아봤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정신과로 가야한다는 얘기를 하더군요.제 병명은 공황장애, 그리고 그로 인한 합병증(?)이라 해야될지 광장공포증, 대인기피증, ADHD라더군요.부모님께는 말하지 않고, 담임쌤한테 부탁드려 도움을 받았습니다.집에 말하지말고 보호자인 척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그 사실을 부모님이 아시게 되는게 죽도록 싫었습니다.모두들 힘든 상황인데 말하게 되면 불에 기름 붓는 꼴이 될테니까요.쌤은 흔쾌히 도와주신다더군요.병원에는 부모님이 바빠서 전화가 안된다며 잡아떼며 "진단서 주면 제가 알아서 집에 갖다 놓을께욧!" 라고 했더니 뭐 여차저차 잘 넘어가더군요.쌤은 뭔가 걸리시는지 집에 연락하겠다 했지만, "엄빠가 이거 아는 순간 저 자퇴합니다." 라는 제 고집에 쌤도 결국 손을 드시더군요.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면서 세 달을 집에만 쳐박혀 있었습니다.그 지옥같은 세 달은 평생 못 잊을 그런 기억이네요.저는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 할 때까지 집 옥상에 올라가 짱박혀있다가, 아버지가 출근 하시면 다시 집에 틀어박혀 이불만 덮어쓰고 그 지옥같은 시간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빌었습니다.아무도 만나기 싫었고, 죽고싶었습니다.매일을 컴컴한 방 속에 그리고 이불 속에 짱박혀서 누군가가 문득 나타나 날 죽일 것이다 라는 공포감에 떨면서 살았습니다.매일 저를 이렇게 만든 아버지와 그녀를 원망하며 울면서 잠들었습니다.제 인생 어느때보다 힘들고 길었던 세 달이었습니다.차마 죽지 못해 살아갔습니다.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그 어린 나이에 지금에서도 견디기 힘들 그런 고통을 어떻게 견뎠나 싶네요.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니까 그나마 나아지더군요.격투기하던 친구놈이 제가 안쓰러워 챙겨주다 저에게 운동을 시켰습니다.운동을 시작하니 많은게 바뀌더군요.운동은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그게 심해져서 지금은 운동 중독까지 되버린ㅎ...결국 친구놈 덕분에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저는 일상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하지만, 남들이 흔히 말하는 양아치가 되어버렸죠.참 이래저래 방황 많이했습니다.경찰서와 학교에 아버지가 몇 번 불려오시기도 했었습니다.그래도 제가 본성이 상당히 착해서ㅎㅎㅎㅎ 금방 정신 차리고 공부도하기 시작했죠.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어느덧 고3이 되었습니다.저는 그녀와 헤어진 이후로 단 하루도 그녀를 잊었던 날이 없었습니다.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고3이 되면서 절정을 찍더군요.수능 200일정도 남았을 무렵에 야자하던 도중 창밖을 보다 문득 그녀 생각에 아련해졌습니다.이전의 그녀에 대한 증오감은 사라진지 오래, 그냥 그녀를 뒷모습이라도 좋으니 한 번 더 보고싶어졌었습니다.미칠듯이 보고싶었습니다.저는 결국 수능이 끝나자마자 그녀에게 연락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왜 굳이 수능 끝나고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할 기간이 수능까지라고 저 스스로 정한게 아니였나 싶습니다.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능이 끝나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연락해봤습니다. 잘 지내냐고.답장은 의외로 상당히 살갑더군요.그녀는 저를 오래된 친구 대하듯이 답장해줬습니다.그리고 서로 서로 여유가 생기게 되면 얼굴이라도 보기로 약속했지만, 아쉽게도 여유가 나질 않더군요.사실 그때 때마침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습니다.(혹시나 오해들 하실까봐 그녀한테 연락했을때는 그 사람과 사귀던 사이가 아니였습니다)여유가 안 나는게 아니라 안 냈다라는 표현이 맞는거 같네요.그렇게 또 다른 사랑을 하면서 제 스무살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를 7개월, 또 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매일을 일과 운동에 빠져지냈네요.그렇게 그 사람을 잊으려 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 사람 생각보단 첫사랑 생각이 났습니다.문득 문득 그녀 생각이 미친듯이 머리를 맴돌더군요.이유는 모르겠습니다.그냥 문득 생각이 났고, 그 생각은 계속 커져만갔습니다.그래서 저는 바로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었고, 알바하는 중에 다음 날 새벽 1시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예약했습니다.정신없이 일과 운동에만 빠져 사는것도 힘들었고, 힐링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무엇보다 그녀가 너무 보고싶었습니다.그렇게 알바가 끝나자마자 짐챙기고 곧바로 터미널로 직행했죠.그 주 알바는 다 제껴버리기로 하고 그냥 대책 없이 올라갔습니다ㅋㅋㅋ하지만 정작 서울에 가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녀에게 연락을 할지 말지 수십번을 고민했습니다.그렇게 결국 연락할 엄두도 못내고 등신같이 이틀을 날려먹었네요...그래도 고민 끝에 기왕 서울까지 올라온거 목적은 이루고 내려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셋째 날 밤, 겨우 용기내서 그녀에게 연락했습니다.그녀는 어김없이 살갑게 오랜 친구처럼 대답해주더군요ㅠ너무 고마웠습니다.언제 연락하든 살갑게 받아주는 그녀가, 그녀가 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게 너무 고마웠습니다.그녀는 얼굴 한 번 보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더군요.다음날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고 떨려서 잠도 한숨도 못잤습니다.그토록 사랑하던 그녀를 3년 반만에 다시 만난다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시간은 금방 갔고, 어느새 그녀와의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저는 약속장소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있었죠.시간은 다 되었고 전화가 오더군요.노원역 9번출구. 3년 반의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를 다시 만나는 장소였습니다.익숙한 얼굴이 계단을 내려왔습니다.예전의 그 예쁘고 천사같던 그녀의 모습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그리고 훨씬 성숙해졌고 더 예뻐졌습니다.하지만 뭔가가 허전하더군요.이유모를 공허함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습니다.우리는 서로 못해온 얘기들을 했고,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그와중에도 그 공허함은 사라지질 않더군요.어느새 시간은 막차시간이 다되었고, 그녀가 버스를 탈때까지 같이 기다렸습니다.그녀는 계속 말을 걸어줬지만, 저는 정체모를 감정에 정신을 못차려 대답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네요.버스는 금방 도착했고 그녀는 갔습니다.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저는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걸.제가 사랑했던 그녀는 예전의 순수하던 시절의 그녀였던 것이지 현재의 그녀가 아니였습니다.저는 예전의 추억에 젖어서 그녀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착각했던 것이었네요.제가 여태껏 사랑했던건 그녀가 아닌 그녀와 사랑했던 추억이었던 거죠.참으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정입니다.그 이유모를 공허함이 바로 그것 때문인거죠.더 이상 그녀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3년 반이라는 시간을 과거에 계속 머물렀으니 이제 다시 현재를 바라볼 때가 되었더군요.그날 밤, 가만히 누워 생각해봤어요.제가 서울에 갔었던 이유를.그제야 내가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구나 라는걸 느끼게 되었습니다.그렇게 바로 다음날 밤 1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습니다.그러고는 맘편히 잠들었습니다.다음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그녀와 다녔던 곳들을요ㅋㅋㅋ괜시리 감성에 젖어서 추억팔이가 하고싶더군요ㅎ하루종일을 그렇게 돌아다녔습니다.그러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기다리던 그녀의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았습니다.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그저 가만히 앉아서 그녀와의 모든 걸 정리해갔습니다.그러다 밤 10시나 되어서야 자리를 옮겼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 그때 전화가 울렸습니다.그녀였습니다.그녀는 다짜고짜 어디냐고 물어보더군요.왜그러냐 물으니 뒤돌아보라는 겁니다.예ㅎ 조낸 드라마같은 개떡같은 장면이 연출되죠ㅎ그녀는 제 뒤에 있었고 퇴근하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를 본거죠.저를 보고는 전화했답니다.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죠ㅋㅋ우리는 서로 짧게 얘기나누고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됩니다. "이제 가야겠다." "부산 내려가?" "어. 서울에서 할 것도 없고 일하러가야지 이제." "아쉽네. 조심히 내려가~" "그래... 니도 들어가고." 예. 무뚝뚝하기 짝이 없습니다.부산남자에요...딱히 할 얘기도 없었거든요.아무튼 그렇게 시덥잖게 작별인사를 하는데, 그녀의 마지막 말이 싱숭생숭하게 제 마음을 흔들더군요. "다음에 또 볼거지?" 이 말에 저는 대답 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녀와 저는 우연이라도 만나기 힘든 그런 사이입니다.다음에 또 볼 수 있다는 기약을 할 수가 없더군요.사실, 또 다시 보고싶어질테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기 싫었습니다.이제는 그저 그녀를 추억으로만 묻어두고 싶었거든요.그래서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그저 멋쩍은 미소를 지어주며 인사 한 마디만 건넸습니다. "간다." 그렇게 3년 반동안의 첫사랑을 다시 서울에 남겨두고 부산으로 내려왔네요.이게 3년 반의 시간을 거친 제 첫 사랑의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군생활하면서 고무신거꾸로 신는것도 당했는데, 왠지모르게 또 다시 첫사랑 생각이 문득 떠오르더군요.선임들이 이 얘기는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며 인터넷에 올려보라길래 하소연 하는김에 올려봅니다ㅋㅋ그냥 뭐 이런 연애도 있는거구나 하고 예쁘게 봐주세요ㅎ필력이 좀 딸려서 재미 없을 수도 있겠네요ㅠ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그녀의 마음은 어땠는지 몰라도 제겐 의미있는 여자였습니다.그녀에게 제 학창시절을 고이 갖다 받쳤습니다.그녀는 행복했던 추억도 많이 만들어줬습니다.그리고 결과적으로 저를 성숙하게 만들어준 너무나도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사랑의 기쁨, 아픔, 슬픔 그리고 사랑이란걸 알게 해준 그녀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5
3년반 만에 헤어진 첫사랑 다시 만난 썰(스압)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될지를 모르겠네요ㅋㅋ
저는 22살 군인입니다...
그녀를 다시 만난지는 벌써 1년 반이 넘었네요
군생활하던 중에 괜시리 첫사랑 생각이나 아련해져서 글이나 써봅니다.
그녀가 이걸 봐주길 바라는건 아니고 그냥 뭐 하소연하는 차원에서? 써보네요ㅋㅋ
그녀와 처음 만났던건 중3때 였습니다.
그녀는 서울, 저는 부산, 너무나 어리고 풋풋했었네요 순수의 결정체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녀와 저를 이어준 사람은 동갑인 제 사촌이었어요
부산에 살던 제 사촌과 저는 꼬꼬마 시절부터 항상 붙어다녔습니다.
하지만, 초딩때 언젠가 제 사촌은 집안사정으로 서울로 상경하게 되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보냈지만, 그래도 이따금 연락하기도 했고 명절마다 만나서 못한 얘기들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것도 추석때였네요.
중3 추석, 사촌과 저는 어김없이 또 서로 못한 얘기들을 털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괜시리 호기심과 장난기가 발동해 사촌에게 서울여자나 소개시켜달라고 말했죠ㅋㅋ
무슨 생각이었는지 참ㅎ.. 지금생각하면 이불킥 각나오는 그런 행동이네요.
그래도 그 장난이 제 인생을 바꿔놨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녀와 저는 어이없게도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매일을 그녀와 연락하게 되었고, 연락하는 그 순간이 어느새 즐거워지더군요.
그 나이엔 참 신선한 경험이었죠, 서울 토박이 여자와 부산 토박이 남자의 만남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어느새 얼굴 한번 보지 못한(영상통화는 했으니 보긴봤지만ㅎ) 그런 그녀에게 어느새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을 설렘에 취해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들고는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전화비가 15만원이나 나와서 집에서 오지게 닦였던 기억이..
혀튼 그렇게 우리는 서로 좋아하게 되었고 저는 겨울 방학에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안그래도 없는 용돈 모아가며 서울에 갈 준비까지 철저하게 했습니다.
오래 기다리던 끝에 방학이 찾아오고 저는 부산역으로 향했습니다.
기차가 얼마나 느린지 서울까지 7시간이 걸렸네요.
거기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고 싶었는데 기차는 기어가더군요.
우여곡절끝에 7시간이 지나갔고,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설레는 맘으로 기차에서 내렸는데 사촌과 그녀가 플랫폼까지 마중 나와있었습니다.
실물을 본건 그때가 처음이었죠ㅋㅋ
처음으로 그녀와 저는 서로의 앞에 설 수 있었고 그 순간 서로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제가 여태껏 만난 사람중에 제일 예뻤네요.
그때 그녀의 웃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때 마침 서울에 눈이 펑펑 내려서 더 달달했습니다.
이게 바로 길다면 긴 제 첫사랑의 시작이었습니다.
서울에서의 15일을 그녀와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연말과 새해를 그녀와 함께 보냈습니다.
그만큼 행복했던 순간이 없는 것 같네요ㅎㅎ
그 15일은 제 첫 휴가만큼이나 순식간에 증발해버렸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날, 서울역 플랫폼 앞에서 그녀와 부둥켜안고 눙물 흘렸던 기억이 새록 새록...
한참을 안고 있었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저희 둘을 갈라놨네요.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서울의 여운에 한참을 빠져있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빠져있긴 하지만ㅎ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뭔가 틀어지더군요.
제 인생 최대의 암흑기였으리라 장담합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요즘은 흔히 말하는 화목한 가정이 됐네요)
아버지는 매일을 술에 절어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며 저를 보듬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어머니가 넘어지시면서 크게 다치셨고, 병원에 반 년동안이나 입원해 계셨습니다.
그 일 이후로 아버지는 병원비 부담, 생계 부담, 교육비 부담으로 스트레스에 빠져 사시더니 결국 불똥은 저에게 튀더군요.
매일을 맞으며 아버지로써 자식에게 해서는 안될 말도 많이 들었고 제 몸 여기저기엔 상처가 나게되었습니다.
저를 보듬어주시던 어머니도 없고, 제게 남은건 그녀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때 멘탈이 많이 약해졌었는지 결국 상당히 좋지 않은 선택을 해버렸었네요.
그녀와 저의 거리는 너무도 멀었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것보다도 더 힘든건 그녀가 제 옆에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전화해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이별을 통보하면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그렇게 한참을 폰을 붙잡고 울었네요.
그 이후로는 매일을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줄 놓고 살았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진정한 이별의 아픔이었으니까요.
확실한건 매일 울면서 잠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결국 못견뎌서 친구놈들한테 하소연했더니, 친구놈들은 "ㅄ아 그럴거면 찾아가서 매달리든가" 라더군요.
친구놈들도 미친놈들이고 저도 미친놈이었네요.
그래서 바로 그녀에게 전화했지만, 그녀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서울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정신상태가 상당히 안좋았던거 같네요.
다음날, 저는 아침에 학교에서 아프다고 핑계를 대면서 조퇴를 허락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부산역으로 달려갔습니다.
교복입은 상태로 바로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네요ㅋㅋㅋ
그리고 그녀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녀의 학교 앞에서 두시간 정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저를 만나러 나오더군요, 옆에 친구를 끼고서.
하고싶은 말이 굴뚝같았지만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결국 저는 나중에 둘이서 얘기하자며 집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그녀의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그녀만 기다렸습니다.
전화도 해봤지만 전원이 꺼져있더군요.
결국엔 만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왠 미친놈 하나가 자기 하나 보겠답시고 부산에서 바로 올라왔으니 많이 무서웠겠죠.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찌질하기 짝이없네욬ㅋㅋㅋㅋ
혀튼 그렇게 비참하게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길고 힘든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매일을 이별의 아픔에 빠져 살았고 가정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어느날, 그녀의 카톡 프사는 웬 남자와 같이 찍은 사진으로 바뀌어있더군요.
때마침 타이밍 오지게 아버지의 주정이 시작됐습니다.
결국 엄청 심하게 다투고 술병으로 머리를 맞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망가질대로 망가지더군요.
결국 다음날, 학교가는 버스안에서 사고가 터졌습니다.
저는 이유모를 공포감에 벌벌 떨면서 울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죽이려고 제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결국 저는 버스에서 기절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앰뷸런스를 타고있었습니다.
병원에서 MRI,뇌파검사 다 받아봤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정신과로 가야한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제 병명은 공황장애, 그리고 그로 인한 합병증(?)이라 해야될지 광장공포증, 대인기피증, ADHD라더군요.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고, 담임쌤한테 부탁드려 도움을 받았습니다.
집에 말하지말고 보호자인 척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사실을 부모님이 아시게 되는게 죽도록 싫었습니다.
모두들 힘든 상황인데 말하게 되면 불에 기름 붓는 꼴이 될테니까요.
쌤은 흔쾌히 도와주신다더군요.
병원에는 부모님이 바빠서 전화가 안된다며 잡아떼며 "진단서 주면 제가 알아서 집에 갖다 놓을께욧!" 라고 했더니 뭐 여차저차 잘 넘어가더군요.
쌤은 뭔가 걸리시는지 집에 연락하겠다 했지만, "엄빠가 이거 아는 순간 저 자퇴합니다." 라는 제 고집에 쌤도 결국 손을 드시더군요.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면서 세 달을 집에만 쳐박혀 있었습니다.
그 지옥같은 세 달은 평생 못 잊을 그런 기억이네요.
저는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 할 때까지 집 옥상에 올라가 짱박혀있다가, 아버지가 출근 하시면 다시 집에 틀어박혀 이불만 덮어쓰고 그 지옥같은 시간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빌었습니다.
아무도 만나기 싫었고, 죽고싶었습니다.
매일을 컴컴한 방 속에 그리고 이불 속에 짱박혀서 누군가가 문득 나타나 날 죽일 것이다 라는 공포감에 떨면서 살았습니다.
매일 저를 이렇게 만든 아버지와 그녀를 원망하며 울면서 잠들었습니다.
제 인생 어느때보다 힘들고 길었던 세 달이었습니다.
차마 죽지 못해 살아갔습니다.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그 어린 나이에 지금에서도 견디기 힘들 그런 고통을 어떻게 견뎠나 싶네요.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흐르니까 그나마 나아지더군요.
격투기하던 친구놈이 제가 안쓰러워 챙겨주다 저에게 운동을 시켰습니다.
운동을 시작하니 많은게 바뀌더군요.
운동은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게 심해져서 지금은 운동 중독까지 되버린ㅎ...
결국 친구놈 덕분에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저는 일상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흔히 말하는 양아치가 되어버렸죠.
참 이래저래 방황 많이했습니다.
경찰서와 학교에 아버지가 몇 번 불려오시기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본성이 상당히 착해서ㅎㅎㅎㅎ 금방 정신 차리고 공부도하기 시작했죠.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어느덧 고3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와 헤어진 이후로 단 하루도 그녀를 잊었던 날이 없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고3이 되면서 절정을 찍더군요.
수능 200일정도 남았을 무렵에 야자하던 도중 창밖을 보다 문득 그녀 생각에 아련해졌습니다.
이전의 그녀에 대한 증오감은 사라진지 오래, 그냥 그녀를 뒷모습이라도 좋으니 한 번 더 보고싶어졌었습니다.
미칠듯이 보고싶었습니다.
저는 결국 수능이 끝나자마자 그녀에게 연락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왜 굳이 수능 끝나고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할 기간이 수능까지라고 저 스스로 정한게 아니였나 싶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능이 끝나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연락해봤습니다. 잘 지내냐고.
답장은 의외로 상당히 살갑더군요.
그녀는 저를 오래된 친구 대하듯이 답장해줬습니다.
그리고 서로 서로 여유가 생기게 되면 얼굴이라도 보기로 약속했지만, 아쉽게도 여유가 나질 않더군요.
사실 그때 때마침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습니다.(혹시나 오해들 하실까봐 그녀한테 연락했을때는 그 사람과 사귀던 사이가 아니였습니다)
여유가 안 나는게 아니라 안 냈다라는 표현이 맞는거 같네요.
그렇게 또 다른 사랑을 하면서 제 스무살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를 7개월, 또 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매일을 일과 운동에 빠져지냈네요.
그렇게 그 사람을 잊으려 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 사람 생각보단 첫사랑 생각이 났습니다.
문득 문득 그녀 생각이 미친듯이 머리를 맴돌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문득 생각이 났고, 그 생각은 계속 커져만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었고, 알바하는 중에 다음 날 새벽 1시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예약했습니다.
정신없이 일과 운동에만 빠져 사는것도 힘들었고, 힐링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너무 보고싶었습니다.
그렇게 알바가 끝나자마자 짐챙기고 곧바로 터미널로 직행했죠.
그 주 알바는 다 제껴버리기로 하고 그냥 대책 없이 올라갔습니다ㅋㅋㅋ
하지만 정작 서울에 가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녀에게 연락을 할지 말지 수십번을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결국 연락할 엄두도 못내고 등신같이 이틀을 날려먹었네요...
그래도 고민 끝에 기왕 서울까지 올라온거 목적은 이루고 내려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셋째 날 밤, 겨우 용기내서 그녀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녀는 어김없이 살갑게 오랜 친구처럼 대답해주더군요ㅠ
너무 고마웠습니다.
언제 연락하든 살갑게 받아주는 그녀가, 그녀가 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녀는 얼굴 한 번 보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더군요.
다음날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고 떨려서 잠도 한숨도 못잤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그녀를 3년 반만에 다시 만난다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시간은 금방 갔고, 어느새 그녀와의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약속장소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있었죠.
시간은 다 되었고 전화가 오더군요.
노원역 9번출구. 3년 반의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를 다시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익숙한 얼굴이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예전의 그 예쁘고 천사같던 그녀의 모습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훨씬 성숙해졌고 더 예뻐졌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허전하더군요.
이유모를 공허함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못해온 얘기들을 했고,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그와중에도 그 공허함은 사라지질 않더군요.
어느새 시간은 막차시간이 다되었고, 그녀가 버스를 탈때까지 같이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계속 말을 걸어줬지만, 저는 정체모를 감정에 정신을 못차려 대답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네요.
버스는 금방 도착했고 그녀는 갔습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걸.
제가 사랑했던 그녀는 예전의 순수하던 시절의 그녀였던 것이지 현재의 그녀가 아니였습니다.
저는 예전의 추억에 젖어서 그녀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착각했던 것이었네요.
제가 여태껏 사랑했던건 그녀가 아닌 그녀와 사랑했던 추억이었던 거죠.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정입니다.
그 이유모를 공허함이 바로 그것 때문인거죠.
더 이상 그녀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3년 반이라는 시간을 과거에 계속 머물렀으니 이제 다시 현재를 바라볼 때가 되었더군요.
그날 밤, 가만히 누워 생각해봤어요.
제가 서울에 갔었던 이유를.
그제야 내가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구나 라는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로 다음날 밤 1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습니다.
그러고는 맘편히 잠들었습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녀와 다녔던 곳들을요ㅋㅋㅋ
괜시리 감성에 젖어서 추억팔이가 하고싶더군요ㅎ
하루종일을 그렇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기다리던 그녀의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았습니다.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그녀와의 모든 걸 정리해갔습니다.
그러다 밤 10시나 되어서야 자리를 옮겼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 그때 전화가 울렸습니다.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다짜고짜 어디냐고 물어보더군요.
왜그러냐 물으니 뒤돌아보라는 겁니다.
예ㅎ 조낸 드라마같은 개떡같은 장면이 연출되죠ㅎ
그녀는 제 뒤에 있었고 퇴근하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를 본거죠.
저를 보고는 전화했답니다.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죠ㅋㅋ
우리는 서로 짧게 얘기나누고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됩니다.
"이제 가야겠다."
"부산 내려가?"
"어. 서울에서 할 것도 없고 일하러가야지 이제."
"아쉽네. 조심히 내려가~"
"그래... 니도 들어가고."
예. 무뚝뚝하기 짝이 없습니다.
부산남자에요...
딱히 할 얘기도 없었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시덥잖게 작별인사를 하는데, 그녀의 마지막 말이 싱숭생숭하게 제 마음을 흔들더군요.
"다음에 또 볼거지?"
이 말에 저는 대답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와 저는 우연이라도 만나기 힘든 그런 사이입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다는 기약을 할 수가 없더군요.
사실, 또 다시 보고싶어질테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기 싫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그녀를 추억으로만 묻어두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멋쩍은 미소를 지어주며 인사 한 마디만 건넸습니다.
"간다."
그렇게 3년 반동안의 첫사랑을 다시 서울에 남겨두고 부산으로 내려왔네요.
이게 3년 반의 시간을 거친 제 첫 사랑의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군생활하면서 고무신거꾸로 신는것도 당했는데, 왠지모르게 또 다시 첫사랑 생각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선임들이 이 얘기는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며 인터넷에 올려보라길래 하소연 하는김에 올려봅니다ㅋㅋ
그냥 뭐 이런 연애도 있는거구나 하고 예쁘게 봐주세요ㅎ
필력이 좀 딸려서 재미 없을 수도 있겠네요ㅠ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마음은 어땠는지 몰라도 제겐 의미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녀에게 제 학창시절을 고이 갖다 받쳤습니다.
그녀는 행복했던 추억도 많이 만들어줬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저를 성숙하게 만들어준 너무나도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사랑의 기쁨, 아픔, 슬픔 그리고 사랑이란걸 알게 해준 그녀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