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가는 남자의 솔직한 생각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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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는 남자의 마음을

짧은 연애에 빗대어서 써 보았습니다.

 

 

 

 

1. 만남의 시작

 

같은 회사에 다니는 당신과 나. 사람들 모두에게 다정하게, 따뜻하게 살뜰하게, 그리고 늘 쾌활하고 밝게 대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종종 뭐 저렇게까지 해야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그 모습을 좋아하고, 모두에게 예쁨받는 사람인 것 같아 나도 보기 좋았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우리는 친해지게 되었고, 점점 호감을 가져가려는 중에 그녀도 나의 표현에 긍정적으로 반응했했다. 생각보다 급작스러워서 얼떨떨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나도 당신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고 신기했다. 천천히 알아가면서 만나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회사이지만 층이나 업무가 달라 자주 마주치지 못했다. 게다가 비밀연애였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 많이 친한척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남들 앞에서는 서먹서먹하게 인사하지만, 회사가 마친 후엔 별일이 없으면 꼭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 갈등의 시작

 

한달여가 지났을까?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회사 일 때문에 여행을 취소하게 되었다. 회사 일이기 때문에 당신이 이해해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많이 서운해했다. 나랑 업무가 다르니 사정을 잘 몰라서 그러려니 싶기는 했지만.. 너무 기분이 안 좋아보였다. 더 달래봐야 달라지는 건 없고 그녀는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해있어 보여 가만히 화가 풀리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일을 하는데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별로 바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귀찮아서 부른 것 같기도 했다. 이것도 저것도 만사가 다 짜증났다. 그때 어제 화를 내던 당신한테 연락이 왔다. 화를 내서 미안하단다. 뭐, 당신이 미안할게 뭐있나. 내 업무 사정이 이런건데. 만나서 얘기 좀 하잔다. 하지만 이런 기분으로 만나봐야 좋은 얘기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평일에 보자고 하니 내일 보자고 조른다. 내일 보기로 했다.

 

 

다음날 만나니 내가 기분 좀 안 좋았던 사이에 이 사람은 차일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황당했다. 당신도 기분 안 좋아보였고, 나도 기분이 별로였고.. 그냥 좀 각자 맘 삭힐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있었을 뿐인데 이 사람은 혼자 뭔 생각까지 한거지? 솔직히 어이도 없었다. 눈물까지 글썽인다. 아 제발 울지만은 마라. 나더러 어쩌라고.. 어이없고 놀라긴 했지만 울먹울먹 하는데 어째. 대충 달래주고 밥을 먹으러 갔다.

 

 

다음날부터 다시 전처럼 연애를 하려는데 뭔가 기분이 좀 이상했다. 뭐 그 사람을 안 좋아하거나 그런건 아닌데.. 뭔가 다시 전처럼 행동하기엔 어색했다. 말 한마디도 신경이 쓰였고 행동도 그랬다. 그래도 뭐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은 정도였다. 

 

 

 

 

 

 

2. 갈등의 연장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람이 나의 작은 행동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다. 카톡을 읽고 바로 답장하지 않는 것, 전화할때 먼저 끊어버리는 것, 밥 먹기 전에 밥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것.. 나는 살면서 이런것들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이 사람은 이게 연인 사이에서 예의에 많이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대체 이게 왜? 왜 이거 가지고 나는 이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뭐 싫다는데 어쩌겠나. 알겠다고 해야지. 고쳐보겠다고 하지만 이런 시간이 거듭될수록 나도 말이 곱게 나가지는 않는다.

 

 

자꾸 나한테 내 마음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자기 감정을 말해준다. 자기는 이렇게 사소한거 하나하나 공유하고 나누는게 맞다고 생각한단다. 아니, 사실 그런건 친구들하고 수다떨면서 뭐 자기 애인 뒷담화 할때나 할 얘기들 같은데.. 왜 그런 낯뜨겁고 간지러운 얘기를 자꾸 내 입으로 듣고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솔직히 아직 우리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막 엄청나게 사랑을 한다거나 내 인생의 반쪽 같다거나 한 기분이 들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나? 하지만 이걸 어떻게 돌직구로 말하나. 나도 슬슬 짜증이 난다. 좀 그런 감정 어쩌고 하는 것들은 알아서 좀 했으면 좋겠다. 나도 내 마음 잘 모르겠으니 나한테 직접적으로 묻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왜 그냥 서로 알콩달콩 좋은 얘기만 하면서 사귈 수도 있는데 자꾸 이런걸 말하지? 피곤하다. 싸우고 싶지 않다. 제발 좀.

 

 

 

 

 

 

3. 갈등의 절정

 

데이트를 했다. 같이 있으면 좋기는 한데.. 마주앉아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잘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렇게 감정 어쩌고 하는 진지하고 심각한 얘기 하기 전에는 우리 어떤 얘기 하고 놀았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런 기분으로 연애를 하는게 맞나? 서로 뭐해달라 뭐 하지 말아달라 요구만 하면서 만나는거였던가 원래? 내가 지금 좋아서 하는 연애이긴 한건가? 문득문득 이상한 생각들이 스쳤다.

 

 

항상 내 솔직한 감정을 말해주길 원하는 당신이었으니, 이런 마음을 말하면 내 속도 시원하고 당신도 좀 생각해볼 수 있으려나? 내 생각에는 자꾸만 우리가 서로 다른 연애관 때문에 부딪히면서 싸우게 되느라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이런걸 표현하고 서로 맞춰가길 원했던 사람이니, 말해보면 뭐가 좀 나아지려나?

 

 

근데 이건 뭐지? 자기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냐고? 그래서 어떻게 하고싶은 거냐고? 무슨 말이야 이게. 아니, 이런거 서로 솔직하게 편하게 오픈하고 대화하자면서? 감정 궁금하다면서? 근데 그게 왜 이렇게 돼? 그냥 나는 요즘, 그리고 오늘 데이트하면서 들었던 복잡미묘했던 내 마음을 털어놨을 뿐인데 이게 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로 들리는거지? 하.. 나도 진짜 더이상은 답답해서 안되겠다.

 

 

서로 격해져서 싸운채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진짜 살면서 이렇게 초반부터 많이 싸우는 연애를 해본적이 없다. 사귀고 한 1,2년 됐을때 나올까말까한 싸움을 지금 2개월만에 하고 있다. 

 

 

 

 

 

 

4. 지침의 시작

 

솔직히 지쳤다. 싸우는게 지친다고 말하는것 마저 지친다. 초반부터 이렇게 싸워버리면 나중에 가서는 어떻게 해야하지? 우리 완전 처음에 사이 좋았을때는 무슨 얘기를 했지? 제발.. 제발 이제는 더이상 하기 힘들고 피곤하니 뭐 대단한 발전도 필요없고 그냥 싸우지만 말고 6개월만 버텼으면 좋겠다.

 

 

나도 알고는 있다. 사귀자마자 처음 3,4주 까지는 둘이 당장 다음달에라도 결혼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맞았었고 잘 놀았다. 근데 자꾸만 어긋나고 싸우게되고 서로 싫은 소리만 하는 시간이 반복되다보니 나도 마음이 좀 굳었고.. 이런 마음으로는 전처럼 애교넘치고 다정한 반응을 하는건 솔직히 가식이고 억지다. 좋게 잘 지내다보면 나도 맘이 풀리고 다시 가능하겠지. 지금은 이런 반응 하나하나보다는 우리의 이 어찌보면 조금은 경직된 관계가 풀리는게 먼저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바빠서 잘 보지도 못한 것도 있으니.. 바쁜게 나아지고 전처럼 자주 보게되면 또 나아질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 이브다. 몸이 많이 아파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크리스마스에는 제대로 놀아야지 라는 생각에 링겔까지 맞고 당신 있는 곳으로 갔다. 아파서 뭐 대단히 활동적인건 못했지만 그냥 하루 이것저것 하면서 나름 나쁘지 않게 지냈다.

 

크리스마스엔 그녀가 중요한 날이라고 무리를 좀 했다. 평소에 많이 받았다며 오히려 더 좋아했다. 좋아한다는 가수의 콘서트도 봤다. 나는 다 모르는 노래들이라 쫌 지루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고, 뭐 그녀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도 좋았다. 다음날 건강검진이라 저녁을 못 먹이고 보낸게 조금 맘에 걸리긴 하지만.. 다음에 만나서 더 재밌게 놀면 되지.

 

 

새해가 밝았다. 10월경부터 시작해서 순탄치 않았던 연애, 이제는 즐겁게 재밌게 보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도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새해 첫 출근을 했다. 그러고보니 당신하고 술한잔 한지도 오래됐다. 술한잔 하자고 했고, 그 사람도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폭탄이 떨어졌다. 회사에 전직원 비상이 걸렸다. 출장이나 휴가를 낸 직원들도 모두 취소하고 심지어 2주간 칼퇴근도 불가능한 상황이 터졌다. 하.. 일도 일이지만 당신한테 뭐라고 하지? 또 전처럼 싸움이 되면 어떡하지.. 하지만 지금 회사 메신저에서도 난리난거 알고있고, 이해 못해줘도 어쩔수가 없다.

 

 

전처럼 화를 내거나 싸움이 나지는 않았지만 역시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진 않는다. 뭐, 그건 당연한 거겠지. 그래도 일이 끝나면 더 재미있게 놀자고 나름 계속 달랬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고 하루이틀 회사 바쁘게 돌아가는걸 당신이 눈치채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을때도 이렇게 이해를 해주고 믿어줬으면 좋았으련만.. 뭐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안게 어디야. 얼른 이 지긋지긋한 일들 좀 끝났으면 좋겠다.

 

 

 

 

 

 

5. 폭풍 전야

 

폭풍같은 한주가 지났다. 다음주 한주가 지나면 당장 비상인 상황은 끝난다. 하지만 그거 끝나면 다른 정산, 그거 끝나면 다른거.. 다른거... 당신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했고 나도 아는 후배 만난 후 주말엔 집에서 쉬었다.

 

 

카톡을 주고받는데 또 뭔가 조짐이 요상했다. 내가 연락을 자주 안한다는 말을 계속 한다. 연락을 자주 안해? 생각날때 하고 피곤하지 않을때 하고 잊을만하면 하고 시간 될 때 하는데.. 왜 연락을 안한다고 생각하지? 또 싸움걸려고 그러나? 피곤의 기운이 몰려온다. 그렇게 내가 마음에 안들면 그냥 딴 사람 만나던지, 왜 이렇게 자기 입맛대로 나를 고치려고 하지? 대체 나를 얼마나 알았지?

 

 

약간 긴장된 대화가 이어지긴 했지만 대충 웃으면서 넘겼다. 아무튼 요는 나보고 연락을 좀 자주 하란다. 먼저 전화 좀 하란다. 하겠다고 했다. 그냥 내가 해주면 돼? 할게. 하라니까 할게. 휴..

 

 

 

 

 

 

6. 폭발

 

다음날이 됐다. 하루종일 또 정신이 없었다. 야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같이 일했던 후배를 만났다. 만나는 중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비밀로 해야하는 후배라 안 받았는데 끊기자마자 또 전화가 왔다. 뭐지? 뭔데 두번씩이나 전화를 하지?

 

 

끝나고 전화를 했다. 솔직히 쫌 짜증이 났다. 퇴근할때 연락한다고는 했지만 아직 집 들어가기 전이고 나도 볼일 보고 가는건데. 뭐, 내가 이 친구 만나고 간다는 말을 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들킬뻔 했어서 나도 깜짝 놀랐던 모양이다. 전화한 목소리에 약간의 짜증이 묻었다. 들어보니 전화 신호음이 처음에 안 걸려서 그랬단다. 약간 머쓱해졌다. 그랬구나. 내가 너무 짜증냈나?

 

 

목소리가 좋지 않다. 무슨일 있나? 아무일도 없단다. 근데 목소리는 여전히 다운이다. 한숨도 푹푹 쉰다. 뭔데? 무슨일이야 말해봐. 말을 안한다. 이 사람은 내 앞에서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가 못할까, 괜한 기분이 또 몰려왔다. 계속 물어보니 하나하나 힘들었던 부분을 말을 한다.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래 뭐 내가 노력해야하는 부분도 있는거니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심 좀 지친다. 피곤하다.

 

 

한마디만 더 해도 되냐고 한다. 하라고 했다. 연락에 대한 부분이다. 계속해서 예전 타령을 한다. 예전에는 우리 이랬는데, 예전에는 우리 연락 자주했는데... 아 솔직히 이젠 진짜 좀 짜증이 많이 났다. 만난지 얼마나 됐는데 예전 타령이며, 내가 연락을 안한것도 아니고, 서로 뭐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연락이 없으면 자기가 하면 되는거 아닌가? 대체 뭘 어떻게 해달라는건지 도무지 알지도 못하겠고 알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 연애를 처음 해보는 사람도 아니고 이 전 연애는 그럼 어떻게 했는데? 그 사람하고도 이렇게 맨날 닦달하고 뭐라고하고 요구하고 강요하면서 만났나?

 

 

참다참다 내가 말했다. 대체 이 전 연애는 어떻게 한거냐고. 그랬더니 말한다. 그 사람은 이렇게 빨리 변하지 않았다고.

 

 

아, 이 사람은 끝까지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는구나. 내가 변한거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집에 들어가 쉬지도 못하고 말했던 모든 내용은 그냥 공중분해 된거고, 이 사람은 자기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구나. 내가 변했다는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구나. 이 대화는 진짜 아무 의미가 없구나. 그냥 우리는 계속해서 싸움만 하는거구나.

 

 

맥이 탁 풀리며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다. 이 대화에 열을 올려봐야 의미가 없다. 일단 전화를 끊자고 했다. 전화를 끊고나니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서까지 연애를 이어가는 의미? 이어갈 필요? 그런게 대체 있는걸까?'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계속 해야하나?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과 연애를 해야하나?'

 

 

이런 마음을 담아 그사람에게 톡을 보냈다. 왜 내가 아니라고 하는데 듣지 않는건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건지. 왜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연애를 해야하며 당신은 왜 나를 믿지 못하면서 연애를 해야하는건지. 하루정도 생각을 해보고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7. 정리

 

일단 바빠서 일은 한다만, 그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 당신, 우리, 연애, 주기적인 싸움. 다시 나, 당신, 우리, 연애, 갈등.. 연애. 그리고 갈등.

 

 

연애를 갈등하자고 만나는건 아닌데, 우리는 갈등을 반복한다. 통하지 않는다. 통하려고 하면 할수록 힘만 들고 가까워지지를 않는다. 뭘 어떻게..? 하 뭘 어떻게 해야할지 이제는 모르겠다. 놓아버리면 편할까? 놓아버릴까? 놓는것만이 답일까? 잡고있는건 너무 스트레스인데, 그래버릴까? 안 놓고 스트레스 안 받는 방법은 없을까? 글쎄.. 그런 생각하기도 솔직히 지친다. 일도 피곤하고 정신없어 죽겠는데 연애까지 이렇게 불편하게 하기엔 나도 너무 힘들고 지친다. 맞아. 나는 지금 지쳤다. 더 힘이 남아있지 않다. 더 하고 싶지가 않다.

 

 

 

 

 

 

8. 대화

 

하루가 더 지나고 그 사람 집앞에서 만났다. 차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했다.

시간이 지나니 격한 마음은 좀 들어간 것 같지만, 분위기는 서먹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래서는 나는 당신을 만날 수가 없다고. 솔직히 너무 지친다고.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인사하면서 지내야하고 서로 나이도 있으니 더 나쁜 모습 보이고 나쁜 인상 주기전에 여기서 마무리하는게 어떠냐고.

 

 

그 사람은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다음에 한번 더 싸우게 되면 그때 정말 놓자고 한다. 글쎄.. 나는 다음을 생각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나 혼자 생각으로 대뜸 헤어지자고 하는건 이 사람한테 너무 못할짓일수도 있겠다.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래. 나도 더 생각해봐야지. 하루의 시간을 더 가져보기로 했다.

 

 

 

 

 

 

9. 끝

 

그녀가 차에서 내리고 집으로 가는 길. 다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계속? 다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아... 아니다. 마음이 쓰면 닳아 없어지는 에너지 같은 것이라면 나는 그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다음엔 이러지 말아야지, 이렇게 해봐야지 라는 생각이라도 있었는데, 그냥 '다음'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하고 지친다.

 

 

그래도 애써 생각해봤다. 우리? 글쎄... 다음에는...? 아니야.

물론 당분간은 또 적당히 잘 지내겠지. 또 그런 다툼이 생긴다면.. 아니 그런 다툼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다. 아닌가보다. 내가 더이상 노력할 마음이 없나보다. 버티고 싶지도, 어떻게든 시도를 해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이 관계에서 생겨나는 모든 일들이 무겁고.. 지친다.

 

 

다음날, 다시 같은 곳에 차를 세우고 그녀가 탔다.

그녀가 먼저 말을 했다. 미안하다고 한다. 나더러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거라고 한다. 이런일 없도록 한번만 더 노력해보자고 한다. 뭐라뭐라 길게 말을 준비한 것 같은데 대충 그정도 내용인 것 같다.

 

 

내가 말했다. 사실 나는 어제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고. 더이상 뭐를 더 하고 싶지 않다고. 여기서 서로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평소에 내 한마디한마디에 크게 상처받고 의미부여하던 그녀라 나름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계속해서 그녀는 싫다며 나를 잡았다. 반 정도는 이럴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더 연애를 지속한다는건 말도 안되고 앞으로를 떠올리는 것 자체도 너무 피곤한데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마음이 닫혔는데. 차분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떨린다. 점점 다급해진다.

 

 

피곤하고 또 피곤했다. 지치고 힘들었다. 약간은 안타깝기도 했다. 왜 진작 이런 마음으로 우린 만나지 못했을까. 그녀는 왜 이 절절함으로 그때의 내 힘듦을 알아주지 못했을까. 내 맘이 다 떠난후에 이런들.. 정말 우리는 타이밍이 이렇게까지도 안 맞는구나.

 

 

그녀가 점점 크게 말하고 떼를 쓴다. 마음도 마음인데 이제는 집에 가서 자고싶다. 나라고 이러는게 즐겁고 신날까. 요 며칠 너무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고 이젠 좀 자유로워지고 싶다. 근데 나를 붙잡고 계속 하잔다. 차에서 안 내리겠단다. 끝까지 우리는 이래야하나? 답답해진다.

 

 

매달리는게 길어지니 나도 슬슬 짜증이 났다. 제발 좀 내려줬음 좋겠다. 이제 나는 당신 남자친구도 아니고 뭐도 아니다. 물론 나 때문에 슬픈거겠지만 이제 나에겐 그런걸 알아주고 보듬어야할 이유도 의무도 힘도 없다. 적당히 했으면 좋겠는데, 어지간히 내려줄 생각이 없다. 짜증이 점점 났다. 만날때도 그렇게 자기 마음 알아달라고 난리더니, 헤어지는 마당에도 이렇게 남 피곤하고 힘든거 신경 안 쓰고 매달리기만 하다니. 지치고 힘든 마음에 이제 넌덜머리까지 날 것 같다.

 

 

화가 나기도 났고, 이렇게 밤새 있을수는 없어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차를 놓고 가야겠다. 차를 놓고 택시를 타고가던 뭐던 나는 더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가 않다.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내렸다. 내가 내리니 그녀도 내렸다. 가겠다고 한다. 왜? 자기 속 다 풀릴때까지 하고싶은거 다 해보지 왜? 그렇게 남 피곤하게 하려고 안 가고 버티더니 나 간다니까 가? 기가막히고 화가 났다.

 

 

 

 

 

 

10. 그 후

 

회사 식당에서 그녀를 봤다. 눈 마주치기 싫어 슥 지나갔다. 얼핏 봐서는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어제가 떠올랐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신경쓰고싶지 않다.

 

이것이 우리의 끝. 끝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