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 수 있기를

끔찍한어제2017.01.29
조회120

익명의 힘을 빌어 남기는 이야기, 너무 오래되어 그 비극의 시작점이 어디인지조차 모를 이야기.

스스로 내 감정을 추스릴 수 있길 바라며, 타인의 이야기이길 바라는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타인의 이야기처럼 남기고 싶네요 ... 편의상 반말로 남깁니다.

 

-----------------------------------------------------------------------------

 

폭력의 양상이란 그런 것이다.

가해자는 그것이 가해행위임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아니,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피해자는 영원히 고통받지만, 가해자는 그 고통을 영영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일이더라도.

 

물리적인 폭력이 있어야 폭력이라고, 폭력을 최협의로 정의한다.

그러나 단순 물리적인 폭력만큼이나 동등한 크기로 언어폭력이, 그 잔재가 잔인하고도 또 잔인하게 누군가의 영혼을 파괴한다.

 

29년, 짧은 생을 살면서 내가 기억하는 나의 삶은 20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라는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처럼, 망각이라는 방어기제마저 없었으면 오늘날 내가 있었을까

그러나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들과 느낌, 무의식으로 대변되는 꿈에 의해 무너지고 또 망가진다.

 

 

‘아버지’ 한없이 원망하고 그 원망이 지나쳐 저주스러운 이름이었다.

새롭게 가정을 만들고 한 남자의 아내로 살면서도, 빨리 결혼한 이유였던 그는

여전히 꿈에서 나와 죽고 죽이는 관계이다. 내가 목을 조르건, 그가 목을 조르건.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라면 죽거나 죽임당하거나, 해야한다고 늘 내 무의식이 말하는걸까?

 

얼마 전 왔던 카톡에 갑자기 구토가 올라오면서 소름이 돋았다.

벌레 수천마리가 있는 방에 들어간 그 기분, 등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름에 바로 메시지를 지우고 차단했다.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 과한 욕심이었을까

 

그 메시지나 반복되는 악몽들보다 더 끔찍했던건 그의 장례식장에서 겉으로는 슬퍼하면서 뒤에서 미소 짓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럴 수가 있는가. 스스로가 끔찍하고 무서워지는 순간들이었다.

 

 

한 번이라고 했다.

그 한 번 가지고 왜 지랄이냐는 그 욕설과 고함, 비속어에 이성을 온전히 잃었다. 가해자는 그것이 가해행위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늘 속으로만 생각했던 그 외침이 드디어 입밖으로 터져나왔다.

 

 

감정을 소리지르고, 욕하고, 부수어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명예가 중요했고, 실체가 없는 권력을 추구했으며, 자신의 폭력성을 포장하려 들었고 오만함과 자존심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이었다.

 

치마가 짧다고 창녀란 이야기를 들었다. 쳐죽일년, *발년, *같은년, 어떤 감정의 동요조차 일으키지 못할 만큼 습관처럼 들었다.

젖*이만 큰 무식한 년들,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이루 말하고 표현할 수 없는 성적인 모욕들.

그것이 성(姓)적 학대임을 너무 늦게서야 알았다. 학대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학대라는 것도 인식하기 힘들어진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욕으로 일관했다. 소리치고 고함지르며, 자신이 하는 말이 세상의 진리라고 떵떵거렸다.

 

시집가면 출가외인인 년이지만, 대를 이을 아들이 중요하지만, 키워봤자 소용 없는 년이지만, 이루지 못한 내 꿈을 대신 이뤄야 할 년이었다. 내 소유물이라고 자랑스럽게, 또 당연하게 수천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내 몸에서 나왔으니 넌 내거라고. 언제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발언에 대해 그는 단 1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임용고시 1차에 합격한 후, 최종합격하고 그 합격을 3억에 팔고 빚을 대신 갚으라는 말을 웃으며 악의 없이 내뱉었다.

온 몸에 또 소름이 돋았다. 변했다고 우기지만, 결국 똑같다.

 

 

 

내가 지금보다 약자였을 때는 많이 맞았다. 참 가정폭력의 흔하고 흔한 레파토리.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자식을 여겼다. 이성을 잃고 ‘팼다’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온몸을 가리지 않고 맞았다.

그러다가 손가락 아래를 맞았고, 말리던 어머니는 같이 맞았으며 던져진 계란과 물건은 어쩌면 우리의 목숨까지도 위협했다. 그 밤의 기억들을 그는 ‘한 번’ 이라 치부하며 스스로 자기위안하겠지. 웃기지마. 한번이라고? 그렇게 믿고싶겠지. 사춘기 시절, 내 일기장에 적혀있었던 저주가 오늘도 살아서 숨쉰다.

 

 

사랑한다는 말로,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를 입에 달고 산다.

사랑이라는 단어도 무섭고 끔찍하게 점철될 수 있다. 그것이 가정폭력의 틀 안에서 왜곡되고 뒤틀어질 수도 있다.

 

그의 어린시절은 불행했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가정폭력에 시달렸으면서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남아있었다. 이건, 훗날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의 인생이 불쌍하다고 해서, 나의 남은 생까지 불쌍하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일가친척이 없었고, 정붙일 데가 없었다. 둘의 공통점은 서로에게, 그리고 태어난 자식들에 대한 집착이 된다.

어머니는 약한 사람이었다. 자살을 시도한 손목의 흉터가 남아있었고 처녀성에 집착했다.

늘 눈물을 보였다. 눈물이 무기였고 약한 몸이 무기인 여자였다.

장녀라는 이유로 자신이 살면서 받아온 상처를, 집안의 어려움, 과거 남편의 바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런 모습들을 모두 받아들이기에 10대 중반의 나는 어렸고 이기적이었으며 무기력했다.

 

 

가장 큰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 폭력의 피해자임을 자각하지 못했다.

왜곡된 표현일지언정 사랑받는다고 믿는다.

딸과 남편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남편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했다.

동네에 소문난 잉꼬부부. 지역 신문에도 나온 잉꼬부부이니까.

오늘도 어머니는 그에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고, 그의 고함과 윽박지름을 덤덤히 들었다. 


 

 

치료를 제안했던건, 심리상담이나 치료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이 악몽에 시달린다면 내게 명분이 생길 것이다. 할만큼 했노라고.

 

 

먼 훗날 후회한다고 해도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저당잡혀 살고 싶지 않다.

한 번 뿐인 삶. 나를 위해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29세엔 심란하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하루하루 나이들어가는게 좋다. 나의 시간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

뒤를 돌아보면 너무 많은 것이 끔찍하기에 단 한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다.

그렇게 오늘을 산다면, 참 좋을텐데....

참,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