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만난 애인은 서운함이라고는 태어날때부터 모르고 자랐던 사람 같았다. 그는 나의 서운함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구색을 갖추기 위한 적당한 말들을 지어냈다.
네가 다른 이성이랑 친하게 지내는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라든지, 술자리를 가진다고 하면 병적으로 전화 걸기, 라든지.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구색들을 미루어보아 그 사람은 나를 끔찍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바라는 바가 없으니, 바라는 바가 충족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실망감이나 서운함도 없었을 것이다. 참 어리석게도 나는 이것이 안정된, 건강한, 진정한 어른들이 하는, 정착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사람이나 친구로서 좋아했을 수는 있지만, 연인으로서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와 했던 연애가 편했을 것이다. 완벽하게 그 자신의 생활과 그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면서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그를 몇번 만나보지 않은 사람, 동성들이 보기에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사람은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좋은 학벌, 꽤 호감형인 외모, 적당한 나이 차이, 부드러운 이미지, 그는 뭇 여성들이 이성을 만날때 원하는 모습들을 얼추 다 갖추고 있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나에게 모든 이성들이 그러듯, 자신의 장점들로 호감을 샀고, 나 역시 그의 조건들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온몸이 절여져오는, 하루에도 마음이 몇 번씩 바뀌는, 혼자 밤잠을 설치게 되는, 너무 좋아서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온몸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나는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안정적인 연애'의 시작이라고 치부해 버리고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관계의 끝은 관계의 시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나에게 다가왔었다. 마치 젊은이가 몸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해 큰 병에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린 것과 같이, 관계의 적신호는 항상 알게 모르게 울리고 있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그것을 사소한 치통으로 치부해버려, 그것이 치아 신경을 건드릴 때만큼 썩어버려, 간단한 시술로 해결할 수 있었던 충치를, 시간이라는 나태함에 미루고 또 미루어버려 내 입 안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애써 알면서도 오히려 꼭꼭 숨겨버렸다.
누가 나의 이런 모습을 알아채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우리의 관계. 아니 나의 관계라고 이야기 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예상보다 더 쉽고 허무하게 관계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걸 지키려고 했던 나의 (나조차 이유를 모르는) 노력들은 단번에 무시당했다. 그래도 꽤 긴 연애를 했었는데, 사람의 마음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이제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제는 자꾸 바라고 싶다.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그 아이의 사랑처럼, 누군가와 더 자주 보고 싶고, 누군가와 이걸 먹고 싶고, 누군가와 이걸 하고싶고, 누군가의 모든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 사람이 다른 이성과의 문제로 인해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고, 누군가가 계속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바라던 적이 있었던 건, 정말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면 시간의 속도에서 항상 뒤처지고 싶다.
가장 무서운 것
- 너에게 바라는 점이 있었던가 생각했다.
이번에 만난 애인은 서운함이라고는 태어날때부터 모르고 자랐던 사람 같았다. 그는 나의 서운함에 관해서 관심이 없었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구색을 갖추기 위한 적당한 말들을 지어냈다.
네가 다른 이성이랑 친하게 지내는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라든지, 술자리를 가진다고 하면 병적으로 전화 걸기, 라든지.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구색들을 미루어보아 그 사람은 나를 끔찍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바라는 바가 없으니, 바라는 바가 충족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실망감이나 서운함도 없었을 것이다. 참 어리석게도 나는 이것이 안정된, 건강한, 진정한 어른들이 하는, 정착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사람이나 친구로서 좋아했을 수는 있지만, 연인으로서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와 했던 연애가 편했을 것이다. 완벽하게 그 자신의 생활과 그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면서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그를 몇번 만나보지 않은 사람, 동성들이 보기에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사람은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좋은 학벌, 꽤 호감형인 외모, 적당한 나이 차이, 부드러운 이미지, 그는 뭇 여성들이 이성을 만날때 원하는 모습들을 얼추 다 갖추고 있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나에게 모든 이성들이 그러듯, 자신의 장점들로 호감을 샀고, 나 역시 그의 조건들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온몸이 절여져오는, 하루에도 마음이 몇 번씩 바뀌는, 혼자 밤잠을 설치게 되는, 너무 좋아서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온몸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나는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안정적인 연애'의 시작이라고 치부해 버리고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관계의 끝은 관계의 시작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나에게 다가왔었다. 마치 젊은이가 몸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해 큰 병에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린 것과 같이, 관계의 적신호는 항상 알게 모르게 울리고 있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그것을 사소한 치통으로 치부해버려, 그것이 치아 신경을 건드릴 때만큼 썩어버려, 간단한 시술로 해결할 수 있었던 충치를, 시간이라는 나태함에 미루고 또 미루어버려 내 입 안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애써 알면서도 오히려 꼭꼭 숨겨버렸다.
누가 나의 이런 모습을 알아채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우리의 관계. 아니 나의 관계라고 이야기 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예상보다 더 쉽고 허무하게 관계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걸 지키려고 했던 나의 (나조차 이유를 모르는) 노력들은 단번에 무시당했다. 그래도 꽤 긴 연애를 했었는데, 사람의 마음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서로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이제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제는 자꾸 바라고 싶다.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그 아이의 사랑처럼, 누군가와 더 자주 보고 싶고, 누군가와 이걸 먹고 싶고, 누군가와 이걸 하고싶고, 누군가의 모든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 사람이 다른 이성과의 문제로 인해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고, 누군가가 계속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바라던 적이 있었던 건, 정말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면 시간의 속도에서 항상 뒤처지고 싶다.
: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한 익명의 글에 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