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출몰하는 황당한 진상들.

원무과장2017.02.24
조회3,535
안녕하세요 조그만 병원에서 6년째 근무중인 원무과장입니다.
비슷한 톡선을 보고 몇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삭여왔던 황당한 일들 몇개를 풀어봐야겠다 마음 먹었어요.
모바일로 쓰지만 맞춤법 오류는 최대한 지양하겠습니다. 글이 길어서 음슴체로 빨리빨리 풀게요. 2시면 점심시간 끝남. 는 무슨 글 쓰다보니 시간 엄청 훅 가네 ㅋㅋㅋㅋ 곧 퇴근 시간.

1. 퇴원환자가 거치형 선풍기 떼어간 썰
때는 작년 초여름.
저희 병원은 1층에 진료실, 대기실이 있고 4,5층에 입원실이 있음.
근데 퇴원환자가 1층에서 퇴원 수속을 하고는 점심 먹고 다른 환자들이 오후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사이에 4인실에 벽에 걸려 있던 벽걸이 선풍기를 떼어간거임.... 와.... 첨 봄..... 다른 환자들 치료받고 오자마자 왜 선풍기를 떼어갔냐고 덥다고 바로 클레임이 들어옴. 황당해서 cctv를 돌려보니 방금 퇴원했던 50대 아주머니가 까만 비닐로 선풍기를 소중하게 싸서 나가시는 모습이 선명히 잡힘... 동네 창피해서 그냥 아무말 없이 넘어가기로 함. 그날 이후 선풍기는 옥션에서 가장 싸구려로 씁니다. ㅠ

2. 50살 아저씨가 27살 물리치료사 예비신부에게 뜬금 프로포즈한 썰
어느날 예비신부인 물리치료사 A씨가 내게 과자 몇개와 손편지를 갖고 내려옴.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토로함. (이 분은 괜찮은 예비 신랑과 결혼식이 몇달 안 남은 상황이었음.)
시간을 거슬러 그때로부터 약 한 달 전, 사건의 발단은 달달한 연애중인 A쌤이 모든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치료를 해 준 것에서부터 시작함. 정삼송(비슷한가명)씨는 A쌤이 자신을 좋아해서 (초음파 치료 중 수기로 5분 정도 모든 환자에게 해주는) 마사지 손길에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다고 확신하심...... 모든 불행이 시작됨... 날마다 찾아와서 A쌤을 불러대고 치료 중에 심지어 터치를 시도하셨으며 ㅡㅡ 기겁한 A쌤이 삼송씨를 피하자 온갖 손글씨로 적힌 (나중에 알고보니 심지어 한글 모르셔서 대필을 맡기셨음) 편지를 전하기 시작함. 편지를 물리치료실장이 차단하자 이때부터 치료는 안 오시고 새벽 4시 병원 청소 이모가 병원 청소를 위해 2층 물리치료실을 여는 순간을 노려서 그 쌤 책상 위에 편지를 올려놨고 출근해서 기겁한 A쌤이 엄청난 위협을 느껴서 드디어 원무과에 사건 해결을 의뢰하신 것.
개인정보보호법엔 어긋나지만 다급해진 우리는 그분 이름... 대기업의 그 이름... 정삼송씨를 조회했고 이 분이 만 48세이며 의료보호 1급 환자라는 사실을 알아냄.... 의료보호1급은... 간단하게 극빈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런 수입이 없고 재산도 0이라고 보시면 대충 맞음.
A쌤은... 흠 후하게 잡아서 열화판 김태희 정도로 이쁜 분이셨음.
예랑도 공단에서 월급 많이 받는 훤칠한 분으로 알고 있음.
어쨌든 원무과에서는 모든 선물과 손편지를 사진을 찍어놓고 손도 안 대고 커다란 상자에 모으기 시작했음. 선물이래봤자 초콜릿, 봉지과자 정도였습니다만... 손편지는 가관이었음. 일주일에 두세편씩 원무과로 압수되는 편지에는 (대략 4년쯤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정말 충격적이던 구절들만 적어보자면)"나으 이쁜 꼬싸슴은 수줍어서 이름을 왜 안 갈쳐줍니다" (A쌤이 필사적으로 이름의 노출을 막았다고 합니다.), "곧 겨론을 한다는 거짓말은 하지마오 마음이 아팟읍니다." (아냐... 사실이야.... 진짜 옆에서 봐도 미쳐버리겠음...) "나말고 모든 남자들은 늑대 나쁜 사람입니다. 순진한 우리 꼬싸슴을 내가 지켜야지" (이 말 본 후부터 저녁에 항상 예랑님이 데리러 왔습니다.... 진심 무서웠음...)
[쓰니의 추측 부분]A쌤은 진퇴양난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올 축의금 때문에 병원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그만두면 결혼휴가도 못 챙겨먹고... 신고를 하자니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다가 예신의 입장에서 일이 커지는 것이 필시 두려웠을겁니다. 예랑에게는 사건에 대해 정확히 말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달쯤 후 3만원짜리 꽃다발과 함께 손편지로 프로포즈가 도착했습니다. A쌤은 예랑과의 결혼이 코앞이었죠... 그날 오후 정삼송 씨는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만 아는 A쌤에게 보낸 프로포즈의 대답을 듣기 위해 오후에 병원을 찾았고 물리치료 실장님, 부장님, 저, A쌤은 그분의 존안을 뵙게 됩니다. 츄리닝을 입고 배가 많이 나온, 머리가 반 쯤 벗겨진 할아버지임... 그 자리에서 A쌤은 정말 엄청난 포스로 다다다닥 쏴 대셨고(정말 말로 칼을 꼽으시더군요. 옆에서 보는데 후덜덜덜. 말로 정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부장님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음. 그러자 삼송씨는 충격을 먹은듯 후퇴하셨다가 한시간 쯤 후 병원 진료실에서 드러누웠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선물한 것을 낼름 ㅁㅊㄴ이 쳐먹고 날랐다는 것입니다. 전부 내놓으라고 하기에 저희는 모아놓던 상자채로 그대로 드렸습니다. 막상 선물한걸 그대로 다 돌려받자 A씨는 2차 충격을 먹은 듯 했습니다. 깽판 놓을 꺼리가 사라진거죠... 들고 사라지시더니 바로 다시 오셔서 이딴거 필요없으니까 전부 돈으로 돌려 내놓으라는 겁니다. 선물 사고 대필 맡기고 하느라 돈을 10만원을 쓰셨답니다 내놓으랍니다... 아니 선물 쓰지도 않은거 전부 드리지 않았느냐 무슨 소리냐 그러니 그럼 꽃다발 값이라도 병원이 물어내랍니다. 허허... 저건 환불이 불가능하고 안 받는다는 소리를 안 하고 받았으니 책임지랍니다.(1층 접수대에서 물리치료실에 이쁜선생님에게 갖다달라고 배달원이 갖고 왔길래 A쌤 예랑이 결혼 앞두고 보냈나보다 하고 받았답니다.) 그래서 결국 원장님이 3만원 물어주심.... 사건 종결. A쌤은 결혼 두 달 후 퇴사하심. 삼송 씨는 사건 후로도 울 병원 가끔 왔었음. 1급보호환자 지정병원이 우리병원이라 바꾸기 까다로웠나봄.지금은 못본지 몇년 됨.

중간에 살을 붙이자면 엄청나게 길어지겠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fact만 간략하게 기술함. 재미를 위해 더하거나 뺀 부분이 없음을 맹세합니다. 삼송 씨 편지 사진 옛날에 찍어놓은거를 기를 쓰고 뒤져봤으나 폰 바꾸면서 다 지웠나봅니다 ㅠ 퇴근 전에 일 봐야 될 거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썰 품. 다들 즐거운 불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