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다 쓰면 내용이 꽤 길어질 것 같습니다. 다 읽어주시고 답변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저희집은 저와 아버지, 그리고 약 6년전에 재혼한 중국년 총 3명이서 살고있습니다 전 갓 20세가 되서 막 대학에 들어온 참입니다 대학교는 집과 정말 가까운 거리고, 저희집 형편이 넉넉치않아 학자금대출로 학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쳐 돌아버리겠는데도 집을 떠나고있질 못하네요. 돈이 없어서.. 또 저년이 언제 미쳐돌아서 아버지가 주무시는 새에 찔러 죽이진 않을까 걱정되서 못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저 중국년과 아버지는 중국현지에서 연애결혼을 했고 띠동갑입니다. 절 낳아준 친모는 집안일과 딸인 저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예쁜 옷과 장신구, 친구들하고만 놀러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사랑받고싶어 집안일도 다 제가 하고 교복빨래도 전부 알아서 하고살았는데 결국 돌아오는건 짐승을 쳐다보듯한 싸늘한 눈빛뿐이었습니다. 같이 살아보려고 아버지도 싸워도보고 설득도 해봤으나 그때만 알아들은 척, 바뀌는게 없어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아버지 일로 중국에서 1~2년 정도 살다 금방 한국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집을 다시 얻고 전 먼저 국내에서 살기시작, 아버진 일때문에 한국중국을 계속 왔다갔다 하다가 중국에서 저 여잘 만난거죠. 결혼전 아버진 저여자에게 또 애 낳아서 키울 생각도 없고(정관수술 한지가 오래되서 병원에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답니다. 이것도 사전에 얘기했습니다.) 우리집이 돈이 넉넉치 않다는것, 10대의 딸이 하나 있다는 것을 사전에 전부 얘기하고 그래도 같이 살 수 있겠느냐 물었으나 저 여자는 흔쾌히 OK를 외쳤고 그렇게 국내에 들어와 같이 산게 어언 6년을 찍고있습니다. 결혼 전 아버지가 중국인치곤 진짜 괜찮다고 해서 저도 아버지만 행복하면 상관없다고, 엄마라 부르기엔 저랑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으니 언니라 부르면서 잘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근데 대체 어디가 괜찮은 사람이라는건지, 처음엔 본인도 긴장해서 말 붙이는 것도 어색해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본성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엔 정말 말도 못했습니다. 하늘이 파라면 파래서 짜증을 냈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화낸다고 할까요. 고기먹기 전에 상추를 흐르는 물에 일일이 씻어 쌓아놨더니 그걸 낚아채서는 바가지에 물을 받고 그 물에 흔들흔들하면서 이렇게 씻는거라고 하질 않나, 덜 마른 빨래를 걷어왔길래 빨래가 덜 말랐다고 말하니 왜 덜 말랐냐, 니가 물을 부어서 다시 젖은건 아니냐는 개소리를 하질않나, 한국말을 본인이 제대로 못해서 오해가 생기면 본인이 문법이 틀려 내가 못알아먹은걸 자기말 못알아듣는다고 고함을 치고, 별것도 아닌 화도 안날 내용의 대화를 하면서 밥상을 검지손으로 팍팍 찍어가며 말하고, 미친 성조때문에 새벽에도 일상대화를 반 고성지르듯 말해서 이웃들이 신고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설거지할때 그릇은 쨍쨍소리나게 집어던지듯이 하고, 쿵쿵 뒷발로 찍고다녀서 아랫집 시끄럽다 주의를 줘도 고쳐지지않고.. 아버지가 허리가 안좋은걸 알면서도 좀 무겁다 하는 짐은 절대 본인이 옮기지않아 제가 옮기기도 하고, 아버지도 싫어하는 음식은 본인도 먹기 싫으면서 아버지 그릇에 덜어버리고... 본인이 생활하는 안방만 청결히 하고 빨래도 본인것만 따로모아 빨고 널고 걷습니다. 요리하는 것 말곤 본인 생활구역 내에 다른데에 손대는 꼴을 본 적이 없네요. 위에 내용 말고도 수두룩합니다. 진짜 미친년입니다. 죽을거 같아요. 그래도 같이 살아보겠다고 설득도 하고 싸워도 봤지만.. 아버지나 제가 언성을 높이면 저 언니는 같잖은 이유를 대가며 개소리를 시전합니다. 평소때는 그냥 짜증을 달고 삽니다. 이젠 두분 중 한분만 언성을 높이면 제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꿈에서도 나와서 제 속을 뒤집어놓네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같이산지 2년될 때쯤엔 조선족놈이랑 바람나서 집나간 적도 있는 년입니다. 아버지가 증거를 잡아서 이혼소송 걸겠다고 하니 선수쳐서 1366 여성지원센터로 전화해서 숨어버리더군요. 여성지원센터에서는 신변보호랍시고 언닐 보여주지도 않고, 언니는 아버지가 본인을 폭행해서 도망나온 거라고 진술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온 여자들, 한다는 소리가 낯선 나라에 남편만 믿고 왔더니 폭행이나 하고 당신이 사람이냐고 했답니다. 아버지는 폭행으로 경찰서가 출동한 기록도 전무하고, 언니몸도 멍도 없이 성한 상태인데 조사한번 하지않았으면서 외국여자 말 한마디만 믿고 사람을 몰아세우냐, 준비한 증거자료는 왜 무시하고 사람은 폭력범으로 모는거냐고 말씀했답니다. 그랬더니 이주여성지원센터 사람은 언어도 하나의 폭력이라고 말을 바꾸며 폭언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로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했다더군요.. 조사 한번 하지않고 아버지를 졸지에 폭력남편으로 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검색도 해보고 다음에 국제결혼피해센터? 카페에 가입해서 보니 이주여성 말만 일방적으로 믿고 한국인남편을 무조건 폭력범으로 몰아버리는 사건이 한두건이 아니더군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소송싸움에서 아버지가 이겼습니다. 다행히 판사를 잘 만난것도 한몫했다고는 하나 언니가 바람이 났다는는 걸 알고 난 이후 철저히 계획을 세워 증거자료를 모은 게 가장 컸습니다. 그 언니가 조선족과 동거하는 집 앞에서 잠복까지 해가며, 카렌트며 뭐뭐해서 그 당시 3천만원 가까이 깨진걸로 압니다. 증거자료를 토대로 아버지가 행사한 적도 없는 폭력을 있었던 일 마냥 지껄인 중국언니에게 무고죄임도 밝히는 동시에, 말 바꿔가며 아버지를 약올린 지원센터와의 통화내용등도 전부 증거자료로 사용하셨습니다. 증거수집하고 자괴감에 괴로워하시던 석달새에 몸무게가 20킬로나 빠지셨었습니다.. 제 인생의 최대의 암흑기는 이 3개월입니다. 지옥같은 나날이었네요.. 여튼 그렇게 사활을 건 증거자료로 빼도박도 못하게되자 지원센터 여자들은 언니와 삼자대면 시켜줄테니 잘 풀어서 다시 데려가라고 나오더군요 하하.. 근데 그렇게 승소까지 했던 마당에 지금은 왜 또 같이 살고 있을까요? 예, 저희 핵고구마 아버지가 저 언니의 눈물에 넘어가 다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전 며칠밤낮 울어가며 아버지한테 싫다고 그간 당한걸 생각해보라고 수차례 얘기했으나 아버지의 대답은 지금 내나이에 돈도 없고 애딸린 남자랑 같이 살아줄 사람이 한국에 있을 것 같냐, 한번 저렇게 호되게 당했으니 또 안그럴것 아니냐... 였습니다. 결국 다시 저 언니는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1년간은 쥐죽은듯 지내더군요. 살림도 잘했고.. 하지만 그 버프는 1년만에 끝났고 악몽같은 순간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도 버리고 혼자 나가 살까 수차례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금전적인 문제도 있지만 친엄마도 버리고 간 저를 계속 키워주셨고, 어린시절 교회에서 쌀을 꿔다먹을정도로 힘들었던 때에도 뒤에선 우셨지만 제 앞에선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본인의 인생 최악의 암흑기였다고 말씀하시던 그 시기는 저에겐 힘든기억 하나 남긴것없이 그저 소박하게 행복하고 평범했던 시절로 남아있습니다. 저여자를 제외한다면 정말 너무너무 사랑하는 제 아버지입니다. 게다가 이젠 건강도 안좋으신데 저여자랑 뒀다가 돌봐줄리도 만무하고, 정말 무슨을 할지 몰라 아버지를 두고갈 엄두도 안납니다. 최근에 와서야, 이제와서야 아버지도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이혼하고싶다고 하십니다. 근데 저 중국년이 먼저 이혼하자고 하지 않는이상 아버지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1366에 다시 전화할게 뻔한데 여성가족부의 빵빵한 지원을 받는 이주여성지원센터는 기본 변호사를 10명씩 끌고온다고, 저번처럼 정확한 증거가 아니면 이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미친 여성부년들은 출몰이래 국내여성들을 위한 일은 한번도 안해놓고 이주여성들만 내국인남성을 죽여가며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준답니까. 망할 여성가족부, 치가 떨립니다. 하여 여쭙습니다. 이혼사유로 효용되는 사례로는 저 언니가 집안일을 안하고, 저희에게 폭언을 행사하는 녹음파일같은건 인정이 될 수 없는건가요? 제가 수집할 수 있는건 저것들밖에 없습니다. 만약.. 방법이 없다면 힘내라고 다독여만주시고, 혹여 작은 가능성이라고 알고계신게 있다면 부디 말씀해주세요. 죽이고 싶고, 죽어버리고 싶습니다. 중국의 중 자만 들어도 분노가 치밉니다. 이번 IS의 선전포고를 보고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병이 오는것 같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714
중국년과 재혼한 아버지, 중국년때문에 죽을것 같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다 쓰면 내용이 꽤 길어질 것 같습니다. 다 읽어주시고 답변주신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저희집은 저와 아버지, 그리고 약 6년전에 재혼한 중국년 총 3명이서 살고있습니다
전 갓 20세가 되서 막 대학에 들어온 참입니다
대학교는 집과 정말 가까운 거리고, 저희집 형편이 넉넉치않아 학자금대출로 학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미쳐 돌아버리겠는데도 집을 떠나고있질 못하네요. 돈이 없어서..
또 저년이 언제 미쳐돌아서 아버지가 주무시는 새에 찔러 죽이진 않을까 걱정되서 못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저 중국년과 아버지는 중국현지에서 연애결혼을 했고 띠동갑입니다.
절 낳아준 친모는 집안일과 딸인 저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예쁜 옷과 장신구,
친구들하고만 놀러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사랑받고싶어 집안일도 다
제가 하고 교복빨래도 전부 알아서 하고살았는데 결국 돌아오는건 짐승을 쳐다보듯한 싸늘한
눈빛뿐이었습니다.
같이 살아보려고 아버지도 싸워도보고 설득도 해봤으나 그때만 알아들은 척, 바뀌는게
없어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아버지 일로 중국에서 1~2년 정도 살다 금방 한국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집을 다시 얻고 전 먼저 국내에서 살기시작, 아버진 일때문에 한국중국을 계속 왔다갔다
하다가 중국에서 저 여잘 만난거죠.
결혼전 아버진 저여자에게 또 애 낳아서 키울 생각도 없고(정관수술 한지가 오래되서
병원에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답니다. 이것도 사전에 얘기했습니다.) 우리집이 돈이
넉넉치 않다는것, 10대의 딸이 하나 있다는 것을 사전에 전부 얘기하고 그래도 같이
살 수 있겠느냐 물었으나 저 여자는 흔쾌히 OK를 외쳤고 그렇게 국내에 들어와 같이
산게 어언 6년을 찍고있습니다.
결혼 전 아버지가 중국인치곤 진짜 괜찮다고 해서 저도 아버지만 행복하면 상관없다고,
엄마라 부르기엔 저랑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으니 언니라 부르면서 잘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근데 대체 어디가 괜찮은 사람이라는건지, 처음엔 본인도 긴장해서 말 붙이는 것도 어색해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본성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엔 정말 말도 못했습니다. 하늘이 파라면 파래서 짜증을 냈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화낸다고 할까요.
고기먹기 전에 상추를 흐르는 물에 일일이 씻어 쌓아놨더니 그걸 낚아채서는 바가지에 물을
받고 그 물에 흔들흔들하면서 이렇게 씻는거라고 하질 않나, 덜 마른 빨래를 걷어왔길래
빨래가 덜 말랐다고 말하니 왜 덜 말랐냐, 니가 물을 부어서 다시 젖은건 아니냐는 개소리를
하질않나, 한국말을 본인이 제대로 못해서 오해가 생기면 본인이 문법이 틀려 내가
못알아먹은걸 자기말 못알아듣는다고 고함을 치고, 별것도 아닌 화도 안날 내용의 대화를
하면서 밥상을 검지손으로 팍팍 찍어가며 말하고, 미친 성조때문에 새벽에도 일상대화를
반 고성지르듯 말해서 이웃들이 신고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설거지할때 그릇은
쨍쨍소리나게 집어던지듯이 하고, 쿵쿵 뒷발로 찍고다녀서 아랫집 시끄럽다 주의를 줘도
고쳐지지않고..
아버지가 허리가 안좋은걸 알면서도 좀 무겁다 하는 짐은 절대 본인이 옮기지않아 제가 옮기기도
하고, 아버지도 싫어하는 음식은 본인도 먹기 싫으면서 아버지 그릇에 덜어버리고...
본인이 생활하는 안방만 청결히 하고 빨래도 본인것만 따로모아 빨고 널고 걷습니다.
요리하는 것 말곤 본인 생활구역 내에 다른데에 손대는 꼴을 본 적이 없네요.
위에 내용 말고도 수두룩합니다. 진짜 미친년입니다. 죽을거 같아요.
그래도 같이 살아보겠다고 설득도 하고 싸워도 봤지만.. 아버지나 제가 언성을 높이면 저 언니는
같잖은 이유를 대가며 개소리를 시전합니다. 평소때는 그냥 짜증을 달고 삽니다.
이젠 두분 중 한분만 언성을 높이면 제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꿈에서도 나와서 제 속을 뒤집어놓네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같이산지 2년될 때쯤엔 조선족놈이랑 바람나서 집나간 적도 있는 년입니다.
아버지가 증거를 잡아서 이혼소송 걸겠다고 하니 선수쳐서 1366 여성지원센터로 전화해서
숨어버리더군요.
여성지원센터에서는 신변보호랍시고 언닐 보여주지도 않고, 언니는 아버지가 본인을 폭행해서
도망나온 거라고 진술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온 여자들, 한다는 소리가 낯선 나라에 남편만 믿고 왔더니 폭행이나 하고 당신이 사람이냐고 했답니다.
아버지는 폭행으로 경찰서가 출동한 기록도 전무하고, 언니몸도 멍도 없이 성한 상태인데
조사한번 하지않았으면서 외국여자 말 한마디만 믿고 사람을 몰아세우냐, 준비한 증거자료는
왜 무시하고 사람은 폭력범으로 모는거냐고 말씀했답니다.
그랬더니 이주여성지원센터 사람은 언어도 하나의 폭력이라고 말을 바꾸며 폭언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로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했다더군요..
조사 한번 하지않고 아버지를 졸지에 폭력남편으로 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검색도 해보고 다음에 국제결혼피해센터? 카페에 가입해서 보니 이주여성 말만
일방적으로 믿고 한국인남편을 무조건 폭력범으로 몰아버리는 사건이 한두건이 아니더군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소송싸움에서 아버지가 이겼습니다.
다행히 판사를 잘 만난것도 한몫했다고는 하나 언니가 바람이 났다는는 걸 알고 난 이후
철저히 계획을 세워 증거자료를 모은 게 가장 컸습니다.
그 언니가 조선족과 동거하는 집 앞에서 잠복까지 해가며, 카렌트며 뭐뭐해서 그 당시
3천만원 가까이 깨진걸로 압니다.
증거자료를 토대로 아버지가 행사한 적도 없는 폭력을 있었던 일 마냥 지껄인 중국언니에게
무고죄임도 밝히는 동시에, 말 바꿔가며 아버지를 약올린 지원센터와의 통화내용등도
전부 증거자료로 사용하셨습니다.
증거수집하고 자괴감에 괴로워하시던 석달새에 몸무게가 20킬로나 빠지셨었습니다..
제 인생의 최대의 암흑기는 이 3개월입니다. 지옥같은 나날이었네요..
여튼 그렇게 사활을 건 증거자료로 빼도박도 못하게되자 지원센터 여자들은 언니와 삼자대면
시켜줄테니 잘 풀어서 다시 데려가라고 나오더군요 하하..
근데 그렇게 승소까지 했던 마당에 지금은 왜 또 같이 살고 있을까요?
예, 저희 핵고구마 아버지가 저 언니의 눈물에 넘어가 다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전 며칠밤낮 울어가며 아버지한테 싫다고 그간 당한걸 생각해보라고 수차례 얘기했으나
아버지의 대답은 지금 내나이에 돈도 없고 애딸린 남자랑 같이 살아줄 사람이 한국에 있을
것 같냐, 한번 저렇게 호되게 당했으니 또 안그럴것 아니냐... 였습니다.
결국 다시 저 언니는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1년간은 쥐죽은듯 지내더군요. 살림도 잘했고..
하지만 그 버프는 1년만에 끝났고 악몽같은 순간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도 버리고 혼자 나가 살까 수차례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금전적인 문제도 있지만 친엄마도 버리고 간 저를 계속 키워주셨고, 어린시절 교회에서
쌀을 꿔다먹을정도로 힘들었던 때에도 뒤에선 우셨지만 제 앞에선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본인의 인생 최악의 암흑기였다고 말씀하시던 그 시기는 저에겐 힘든기억 하나
남긴것없이 그저 소박하게 행복하고 평범했던 시절로 남아있습니다.
저여자를 제외한다면 정말 너무너무 사랑하는 제 아버지입니다.
게다가 이젠 건강도 안좋으신데 저여자랑 뒀다가 돌봐줄리도 만무하고, 정말 무슨을 할지
몰라 아버지를 두고갈 엄두도 안납니다.
최근에 와서야, 이제와서야 아버지도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이혼하고싶다고 하십니다.
근데 저 중국년이 먼저 이혼하자고 하지 않는이상 아버지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1366에 다시 전화할게 뻔한데 여성가족부의 빵빵한 지원을 받는 이주여성지원센터는
기본 변호사를 10명씩 끌고온다고, 저번처럼 정확한 증거가 아니면 이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미친 여성부년들은 출몰이래 국내여성들을 위한 일은 한번도 안해놓고 이주여성들만
내국인남성을 죽여가며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준답니까. 망할 여성가족부, 치가 떨립니다.
하여 여쭙습니다.
이혼사유로 효용되는 사례로는 저 언니가 집안일을 안하고, 저희에게 폭언을 행사하는
녹음파일같은건 인정이 될 수 없는건가요?
제가 수집할 수 있는건 저것들밖에 없습니다. 만약.. 방법이 없다면 힘내라고 다독여만주시고,
혹여 작은 가능성이라고 알고계신게 있다면 부디 말씀해주세요.
죽이고 싶고, 죽어버리고 싶습니다. 중국의 중 자만 들어도 분노가 치밉니다.
이번 IS의 선전포고를 보고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병이 오는것 같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