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누르지 못한 메세지

김편견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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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연애학과'가 있었으면 난 합격하고 장학생이었을 것이다. 연애를 글로 마스터했기 때문에 학문, 이론 등 어떤 것 또한 부족하지 않았으니. 아! 실기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아주~ 모태 솔로는 아니었다. 첫,둘 연애는 나름 순탄했지만, 남들에게 떠밀려 얼떨결에 한 연애라 내 애정은 불타오르지 않았다.나만 바라보는 여자만 상처주다가 끝났다. 포트폴리오로 낼만한 내용이었다.그 헤어짐 당시, 난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하지만 상대는 헤어지고 나서 엄청 아팠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 소식에도 난 아프지 않았다. 난 몹쓸 놈이었다.
그런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되었다. 유독 죽이 잘맞았다.'동성같은 친구가 있어.'너가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줄 때 했던 말이다.너에게 난 항상 동성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남성의 생식기가 달려있는 데, 넌 나의 생식기를 무시했다.흔히 말하는 피타고라스도 답이 '없다'라고 정의한 '남녀사이에 친구는 있다'라는 명제를'참'이다라고 증명하려는 듯,너는 항상 친구들에게 그렇게 소개시켜주었다.나는 그렇게라도 너의 친구들한테 소개되고 싶었다. 
너의 약지는 항상 빛이 났다. 물론 너의 낯도 빛이 났지만.내가 너를 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가지각색 남자친구는 7번을 봤다. 그리고 불같은 사랑이 있으면 식기도 하는 법.일정 시간이 지날 즈음부터 너는 항상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남자친구가 어떠니 어떠니..'
거기서 너가 정해준 나의 위치는, 의견에 동조해주고 편이 되어주는 것이었다.근데 나의 위치에서 벗어나 언제부턴가 더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욕심이 나기 시작했던 것은 너가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날 잠시 만났을 때였다.
넌 이 날, 날 만나지 말았어야했다. 아니, 난 이날 널 만나지 말아야했다.그 날 유독 난 시간이 비었고, 너도 데이트 전 공백의 시간이 길었다.드럽게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인력거 끌면서 설렁탕 한 그릇 땡기는 날 이었다.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꾸민 모습을 처음 보았다.눈부신 꽃 원피스에, 웨이브를 적당히 넣은 긴 머리, 긴 속눈썹과 고운 화장은 항상 여성 숏컷을 이상형으로 고집하던 내 이상형을 바꾸게 만들었다.
너가 정해준 나의 위치에서 어긋나, 더이상 너의 남자친구 연애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다음 남자친구가 되고 싶었다.매일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게다가 날 위해서 꾸민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기가 찼다.
타이밍이 좋은 건 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너의 남자친구와 끝이 보였다.그래서 난 날잡고 고백을 했다. 이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다시 얼마를 기다릴 지 예측이 안되었기 때문이다.넌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마치 뒷통수를 크게 맞은 것처럼,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것처럼.나의 사랑고백은 너에게 있어 배신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너는 나한테 당황스럽다며,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 생각을 기다렸다. 그리고 너의 생각은 늦게 도착하지 않았다.아니, 너의 생각은 잘 알고 있었다. 거절 못하는 너의 성격을 이용한 것을 보면 나도 착한 놈만은 아니었다.대답은 오케이였다. 
하지만 어느 연애 이별 이야기가 그렇 듯,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은 않는다. 해피엔딩 이었으면 이런 글이 탄생했을 까?
너의 승낙에 나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대학교를 다니는 알바생에 불과하여 항상 지갑이 비어있어도, 저렴한 학식조차 먹지 않았다.친구들이 밥먹자고 하면, 난 오늘 밥이 안땡긴다며, 혼자 휴게실에서 신라면 컵라면을 먹으며 너에게 맛있는 디저트를 사주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여느 연애 이론만 충만한 사람들이 그렇듯, 나의 애정은 서툴기만 했다.나의 서툰 노력은 내가 봐도 싫었을 것이다. 나의 쏟아붓는 노력은 오래가지 못 했다.어느순간부터 너의 발 끝부터 손 끝 하나하나까지의 행동은, 내가 먼저 이별을 말하게 유도하고 있었다.나는 그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기암시를 걸었다.하지만 자기암시는 그렇게 길게 가지 않았다.
결국 내 입에서 헤어지자고 말이 나왔고, 너는 당연히 알겠다고 했다.구차하게도 나는 헤어지자고 하고 끝내면 될 것을, 미련이 남아 친구로 남자고 추가로 말했다.너는 그 말에도 당연히 알겠다고 했다. 마치 '헤어질 수 있다면 뭐라도 못하겠느냐' 라는 것처럼.'헤어지자' 말한건 나였지만, 내가 그걸 말하게 하기 위한 너의 수많은 노력들이 뒷받침되었다.페이스북은 열심히 하지만, 내 카카오톡 메세지는 수신국에서 오류가 나서 늦게 본다던 지. 말 안하고 남정네랑 단 둘이 밤새 술마시고 논다던 지.알지만 외면했다. 하지만 외면하고 뒤돌아도 보였다. 무시하려 불을 끄고 눈을 감으면 미야자키 하야오에 빙의한 것 처럼, 말도 안되는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내 상상속의 넌 남자와 술만 마시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난 상상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밤을 지샜다. 넌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다시 나에게 답장하였다. 난 충혈된 눈으로 너의 메세지를 읽었다.
'헤어짐을 말하는 사람이 찬 게 아니다.' 라는 말을 난 처음 느꼈다. 헤어지자고 내가 말했지만, 난 차였다.
그 다음날,"치어스!!!!"너의 SNS에는 헤어짐을 축복하는 듯, 재밌게 놀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고,나는 더이상 지켜볼 수 없어 너의 소식을 듣지 않기 설정해놓았다.내가 술을 잘 마시거나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한 달은 술로만 지새운 것 같다.그래봤자 맥주 두잔이겠지만.
그래도 너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졌다. 그 뒤로 날 걱정하는 친구들이과분한 여성분들을 소개를 시켜줬고 작게나마 조용조용히 계속 만나보았다. 내가 여자를 만난다는 말을 너가 들을까봐. 아주 조용조용히.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를 정도로.
혹시 너가 나에 대한 미련이 한톨이라도 남아있는 데, 소식을 듣고 한 톨마저 없앨까봐 말이다.왜인지 모르게 난 너가 돌아올 자리를 항상 마련해두고 있었다. 식당 예약석처럼.마음 한 편에 너가 있어서인지, 그 조용한 연애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내가 쏟아붓질 않으니, 여자 쪽에서 계속 쏟아붓는 애정을 했고, 결국 나는 너가 했던 것처럼,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그 여자에게 했다.
나의 발 끝부터 손 끝 하나까지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먼저 이별을 말하게 유도하였다.나쁜것만 배워버렸다.
너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 갔었지만, 널 잊는 데까지는 오래 걸렸다.'그래도 어찌되었든 잊었으니 된 것이다.' 하고 말았다. 매일 들락날락하던 너의 SNS도 일주일에 한번이 되더니,한달에 한번이 되고, 그리고 그 후엔 더이상 널 검색해보지 않았다.
널 잊고 나름 잘 살고 있었다. 외로움도 적절히 달래고, 아주 잘.하지만 잘 지냄도 잠시, 익숙한 번호로, 익숙한 이름으로 연락이 왔다.'잘 지내냐'고.
난 꿈인 줄 알았다.그래서 그 메세지를 미리보기로 냅두고 읽지 않았다.난 분명 다 잊었다고 생각했고, 너의 빈자리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 데,너가 다시 연락이 와도 담담할 거라고 생각했는 데. 망할. 넌 내 마음에 있어, 방 뺀 월세가 아니라 잠시 여행갔다 온 집주인였나보다.내가 굳게 쌓은 다짐을 강제 철거했다.
나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하였다.그리고 다음 날, 친구랑 술에 취해 결국 메세지를 읽어서 1을 없애버렸다.그리고 술김에 답장을 했다.'잘 지내지. 넌 잘 지내?'너의 답장은 바로 왔다.그리고 우린 다시 연락하게 되었다.
그 후, 넌 나와의 대화와 만남을 즐거워했다. 물론 내 착각일 지 모르지만, 그렇게 보였다.나 또한 그랬다. 친구랑 한달 전부터 만나자고 정해놓은 날이어도,너가 갑자기 만나자고하면 난 그 약속을 쉽게 깨버렸다.친구의 상처보다 너를 더 중요시했다. 
나는 사리분별이 안되는 미친 놈이 되어있었다.미치도록 바쁜 날에도, 너가 바쁘냐고 물으면 한가하다고 말했고,너가 어디냐 물어보면, 어디긴 니마음이지 라는 본심을 숨기며 차분하게 말했다.'집'이라고. 그리고 즉시 책을 덮고 택시타고 너를 만나러 갔다.
난 쏟아붓는 서툰 연애 그대로였다. 난 그대로였지만, 이별동안 너가 상상하던 내 이미지가 그대로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저 헤어지고 난 뒤의 긴 시간이 너의 상상력을 복돋아주었을 뿐, 난 거기에 못 따라갔다.너가 잘지내냐 연락하기까지 생각한 나의 이미지는이런 이미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 더 남자다운 이미지었겠지.
'연애의 온도'란 영화가 있다.다시 만난 사람은 98% 같은 이유로 다시 헤어진다는 말.그 말이 말이 되냐 싶었는데, 말이 되었다.
내가 마치 미래를 보는 예지능력이 생긴 것처럼. 미래가 보였다.내가 남들에게 연애 상담을 잘 안하는 편인데, 너랑 만나며 자꾸 상담하게 만들었고 대답은 똑같았다.물론 그 대답이 돌아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친구들 중 한명이라도 다르게 말해주길 속으로 원했다.'그래도 계속 만나보라'고 말해주길 원하였다.
하지만 그 대답은 한명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아직도 병신이냐'라는 이야기만 메아리로 돌아왔다.4년 만에 자기 암시가 또 시작되었다. 나의 자기암시는 저번의 상처를 덧대어 완고하였고, 친구들의 화끈한 독설과 욕설도나의 자기암시를 깨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덧 나를 위한 친구의 독설을 맞받아치며 싸웠다.널 욕하는 친구가 미워보여서. 홧김에 날 좋아한다고 해주었던 널 욕하는 내 친구가 꼴불견처럼 보여서.몇 년을 매일같이 만나던 친구를, 다신 만나지 않게 되었다.
이 완고한 자기암시를 깨준 것은 다행히 너였다. 여전히 넌 다른 남자와 술마시고 자주 놀며, 나의 연락은 주인을 못찾아 감감 무소식이었다. 가끔 너무 연락에 목말라 소리치면, 넌 다가와 하루치 물을 한꺼번에 다 주고 홀연히 떠나갈 뿐.난 매마른 선인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격주만에 널 다시 만났을 때, 너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너는 횡급히 화면을 가리고 전화좀 하고 온다고 했지만.핸드폰의 화면에는 하트가 번듯이 보였었다. 그리고 난 몰래 너의 뒤를 따라갔고.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몰래 위치하였다.너의 핸드폰에서는 남자 목소리가 울렸고,넌 통화 내내 애교섞인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일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넌 아버지가 안 계셨다.나의 자기암시는 그 때 완전히 깨졌다. 나는 너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저 친구랑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모든 대우가 다 똑같으니 말이다. 아니, 소위 말하는 것처럼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일 뿐.그 뒤로 너가 아무렇지 않게 나한테 말을 걸어왔지만,난 그날 속이 안좋다며 너의 말을 무시해버리고는 집으로 가버렸다.
이후 너한테 '속 괜찮냐'며 계속 메세지가 왔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물론 내가 과민반응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길 바라지만.넌 얼마 후 다른 남자와 연애중을 올려버렸다.
난 이제 정말 널 놓아주기로 했다. 물론 널 처음 좋아할 때의 나라면, 아직도 붙들고 있겠지만,세월이 무섭게도 날 조금 더 유순하게 만들어줬다. 나도 더이상 내 자존감이 없는 연애를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널 지금도 좋아하지만, 이번에마저 널 다시 붙잡고, 만나고 헤어지면 그땐 저번처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젠 시작이 무서워졌다.이미 너의 다시온 "잘지내니"라는 메세지 한통으로 인해 나의 몇년을 쌓아온 친구관계는 깨질대로 깨졌고, 나의 마음도 처참히 깨졌다.
그 조각조각을 주워 본드로 붙이면, 오래 걸리겠지만.다른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할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너 잘못이 아니다. 그저 내 이해심이 부족했던 것이다.너의 친구들과의 만남, 인맥을 이해하지 못한 내 잘못인 것이다.이러면서도 너의 연락을 기다리는 난 한심하기 그지없다.물론 연락이 오면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의 다짐은 너가 연락을 해도 받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도 너의 SNS는 나의 즐겨찾기다. 다행히 싸이월드가 아니라서 방문자수가 나오지 않아 다행이야.점차 이것이 하루에 한 번이 되고, 일주일에 한 번, 한달에 한 번이 되다가,더이상 너의 흔적을 찾지 않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