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와 매일 싸웠던 하나뿐인 내 동생에게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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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에 들어왔다가 깜짝 놀랐네요.
사실 동생이랑 너무 오래 떨어져있어선지 별로 실감이 안 나요.
당장 주말이 되면 교복 입은 동생이 현관문을 두드릴 것 같아요.
저도, 가족들도 이제 웃으며 동생 이야기를 할 거고 열심히 살 거예요.
이 글 보시는 모든 분들도 부디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그리고 제 동생 좋은 곳 가라고 한 번씩만 기도해주세요.
다들 사랑합니다.





날이 너무 좋았다.
네가 세상에 안녕을 고했던 화요일 늦은 오후의 날씨는 너무도 좋았다.
하늘은 청명했고, 그다지 춥지도 않아 겉옷을 껴입지 않아도 되었을 날이었다.
그렇게 좋은 날에 너는 세상을 떠나버렸다.

너는 무뚝뚝한 동생이었다.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연락도 잘 안 할 정도였다.
집에서는 말도 잘 안 하고 게임만 했었지만,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장난을 치곤 하던 평범한 남고생이었다.
바로 전날인 월요일까지만 해도 너는 평범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 밤 열 시.
자율학습 이후 쉬는시간에 너는 학교를 빠져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너는 아침 일곱시에야 터미널에 얼굴을 비췄고 십여 분을 앉아있다가 버스를 탔댔다.
처음부터 정해뒀던 것처럼 너는 전에 살던 집 근처에 있던 아파트로 향했고
그 곳에서 몸을 내던져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럴 거면 그냥 집으로 오지.

발부터 떨어져서 하반신의 뼈는 거의 산산조각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한 쪽으로 넘어지며 얼굴의 반이 뭉개졌다고 해서 차마 입관하는 너를 볼 수 없었다.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뗄 때 아빠는 지갑 속에 있던 너의 증명사진을 계속 보고 계셨고
엄마는 네 이름이 있을 테니까 주민등록등본을 하나 더 떼어 오라고 하셨다.

거의 막내 위치에 있었던 네 장례식은 내내 우울했다.
월요일에 입원하셨던 엄마는 근처의 병원에서 계속 진통제를 맞으셨고
그러면서도 너를 보며 계속 우셨다.
아빠는 맨정신으로 있기 힘드셨는지 자꾸만 술잔을 기우셨다.
외할머니와 외삼촌들, 외숙모는 애써 침착하게 문상객들을 받으셨고
고모들과 할머니는 충격이 크셨는지 계속 통곡을 하셨다.
첫 날에는 그 곳에 있으면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계속 자리를 피했지만
그럴 수록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니까 눈물이 나더라도 계속 자리를 지켰다.

사실 정말로 나가고 싶었던 건 너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이 왔을 때였다.
네 생각이 나서 교복을 입은 남자애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교복을 보는 게 힘들었다.

영정사진은 엄마 아빠 대신 내가 들었다.
사진은 무겁지도 않았고 함께 든 위패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아무런 표정 없는 네 사진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울음을 꾹 참으려고 했지만
화장터로 들어가는 너를 볼 때는 참을 수가 없어서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엄마는 같이 소각할 옷으로 너의 교복을 골랐다.
너는 더위를 잘 타서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초가을에도 선풍기를 키던 애였으니까
하복으로 한 게 맞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엄마는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수목장을 시켜달라고 하셨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수목장 가격을 알아보는 엄마를 보며 계속 숨을 삼키며 울었다.
다만 수목장은 우리 형편에 너무 어려워서 결국 평범하게 납골당에 안치하기로 했다.
너는 더워서 끈적거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엄마는 돈을 더 내고 납골함 안에 숯을 넣겠다고 하셨다.

이후에 받아든 납골함은 아주 작지만 무거웠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나보다 작았던 너는 중학교 2학년의 겨울에 하루가 다르게 컸다.
죽순이 자라듯 쑥쑥 커서 여자치고도 작은 편이었던 내가 완전히 가려질 정도로 너는 컸다.
그렇게 컸던 너는 한순간에 내 품에 안길 정도로 작아져 버렸다.
팔 힘이 약해서 물건을 곧잘 떨어뜨리곤 했던 나는 오기로 너를 안고 걸었다.
평소에 열이 많았던 너만큼 납골함은 뜨거웠지만 놓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내 눈높이보다 더 낮은 곳에 잠들게 된 너를 보며 나는 아주 오래 살겠다고 다짐했다.
아주아주 오래, 백 살도 넘게 살면서 계속 너를 기억하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다닌 모든 곳에 너의 발자취를 남길 것이다.
부모님 두 분도 내가 끝까지 지켜드릴 것이고,
다른 어떤 여자들이 봐도 부러워할 만큼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이제 나는 잃을 게 없으니 독하게 살기로 했다.

원래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겐 제삿상을 차려주지 않아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매년 네 기일과 생일에 간단하게 너 좋아하는 음식들로 차려주려고 한다.
먹는 거 좋아하는데 굶고 다니면 내가 너무 아플 테니까.

너는 아주 오랫동안 준비했던 것처럼
컴퓨터, 핸드폰, 학교, 집 모든 곳에 아무런 유서도 쓰지 않고 떠났다.
서비스센터에 가서 잠금을 풀었던 핸드폰에는 카톡도 없었고 연락 내역도 모두 지워져 있었다.
너는 정말로, 끝까지 야속했다.

나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떠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세상은 너무너무 살기 힘들어서
너는 더 편하고 행복한 곳으로 멀리 여행을 간 것이다.
몇십 년 뒤에 엄마랑 아빠도 그 곳으로 보내드리고
나는 한 백 년 뒤에야 우리 가족들 만나러 찾아갈 것이다.
이제 나는 울지도 않을 것이고 환하게 웃으면서 너를 볼 것이다.
그러니까 백 년 뒤까지 너는 그 곳에서 죽을만큼 행복하게 살아라.
너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울어준 만큼 눈물이 많았던 네가 걱정된다.
울지 말고 고마운 줄 알아라.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꼭 웃으면서 보자.
평생 할 일이 없을 것 같던 말을 나는 이제서야 한다.
내 동생 사랑해.


2017년 3월 23일 늦은 밤,
영원한 열아홉살인 내 동생에게세상에서 가장 못난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