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고생만 하다 마지막 죽은 순간까지 처참하게 간 엄마, 엄마는 우리 다섯 형제를 입히고 가르치고 먹이기 위해 남자들도 힘들다는 노동일을 20여년간 하다 그날도 지하철 보수 공사 파이프 테잎 감다가 열차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열차는 그대로 밀고 지나갔지. 피가 낭자한 새면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엄마를 주위사람들은 구경만하고 있고.....
엄마는 머리와 얼굴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를 정도로 짓이겨진채 그렇게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어.
우리가 어떻게 할까? 우리 형제들이 죽기까지 평생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 형벌이야.
요즘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 언니들은 날 엄마 모습 못보게 해서 엄마 마지막 모습도 못보았어. 경찰서에서 찍은 사진을 우연히 보고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지.
엄마. 왜 그렇게 가야만 하는데
엄마가 무슨 죄가 있다고, 무능한 남편 만나 십년 넘게 병수발에 처자식에 대해 등한시 했던 아버지 대신해 삶의 전선에 뛰어든 죄밖에 없는데....
내가 천주교에서 영세 받은지 16년짼데 나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
하느님도 이세상의 그 어떤 것도 지금의 나의 마음에 위로가 안되
어떻게 살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고 너무 힘겨운데
지난번에는 팔목을 그었어. 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이 발견하고 김서방이 날 때리더라구. 차라리 맞아서 죽었으면 하는 생각과 미쳐버리는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요즘 눈 뜨면 엄마의 모습 음성 기억들이 날 너무 힘들게해
언니들도 모두 제 정신들이 아냐. 그까짓 돈이 뭐길래
가난한 인부의 생명 하나쯤은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기관사 놈.
그 놈을 저주할 힘조차 없어. 오직 불쌍한 우리 엄마 생각뿐.
단하나, 희망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나도 언젠가는 아니 곧이 될지도 모르지만 죽는다는거야 그때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엄마를 부르면 왜 하고 대답할것 같고 엄마 집으로 전화하면 항상 지친 엄마의 목소리 "여보세요". "엄마 나야, 엄마 막내 딸" 그럼 엄마는 "그래 별일 없니? 전화세 많이 나온다 빨리 끊어라"하고 재촉하던 엄마.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까? 아니 가슴속에 더 또렸하기만한 엄마의 인생이 날 결국 울게 만들어.
다섯 형제 키우면서 무식한 노동자 남자 틈바구니 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와 멸시를 받았을까? 우리들이 속상하게 할때 엄만 누구에게 의논하고 위로 받았을까? 엄만 그 힘든 일로써 모든 삶의 무게를 지탱해 나갔지.
오늘은 큰 언니하고 국제전화했어. 언니도 울더라구. 못견디겠다구. 이곳 먼 타국에서 혼자 떨어진 나 엄마가 너무 그리워. 그리고 미안하구.
약을 먹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까지 갔어. 정신과에서 준 약이 다 떨어져 가는데, 하루를 살아내기가 너무 힘겨워.
하느님을 원망하고 싶지도 않아. 그럴 기운도 없고 지쳤어. 다만 묻고 싶은건 그렇게 힘들게 산 우리 엄마 꼭 그런 방법으로 데려가셔야만 하는거야.
우리 다섯 형제들의 형벌이라면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는데,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구.
우리 기억속에서 엄마의 처참한 모습이 어떻게 잊혀질까?
시간이 흐르면 더하겠지. 그래서 엄마 나 장담은 못해. 내가 날 어떻게 감당이 안돼.
나도 모르게 엄마 곁으로 갈지도 몰라.
그때 하느님이 나에게 죄를 물으신다면 따질거야. 나약한 인간, 견딜 수 없을 만큼 자기 통제가 안되게 해 놓고 왜 소중한 생명을 끊게 만드셨냐고.
지금 구정 휴가인데, 여기도 휴가기간이야. 하지만 우리 휴가기간 내내 집에만 있었어. 어디에도 가고 싶은 맘도 없고.
영열이가 많이 힘들거야. 우린 그래도 결혼이라도 해서 짝이 있는데, 김서방은 있으나 마나 지만 그래도 없는것 보단 낳아.. 하지만 영열인 혼자인데
엄마와 얼마나 각별한 사이였어. 엄마가 통곡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 하늘나라에 있는들 맘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엄마 걱정하지마. 우리가 여기서 조금 자리 잡히면 영열이 이곳으로 불러 함께 살테니까
내가 빨리 맘을 잡아야 하는데, 밥이 술이요 반찬이 담배가 내 생활이 되어버렸어. 그리고 후식으로 정신과 약 먹고, 그래야만 조금 안정할 수 있으니 이게 사람사는 꼴인지
엄마 정말 미안해. 강한 모습 보여주지 못해서.
눈 감으면 우리집 거리, 아파트, 거실....
엄마, 한국엔 굉장히 춥데. 엄마 항상 겨울엔 한대서 일하니까 귀가 얼어 터지고 병원가서 꿰메고, 여름이면 온몸에 땀띠 투성이에 집에 와선 소금물에 수세미로 따가우니까 박박 문지르며 씻는 그런 고통이젠 안해도 되겠네. 그럴때마다 우리들 가슴 얼마나 무너졌는지, 답답했는지,
엄마 갈대하며 꽃시장에 팔던 때도 생각나. 하루종일 온 산을 뒤집고 다니며 갈대를 꺾어 밤이며 다듬고 이름 새벽 그 무거운 갈대 묶음을 이고 꽃 도매 시장에 팔던 때, 그렇게 해서 만원 2만원 번 돈으로 우리 학비하고, 엄마 머리는 그래서 찌그러져 있다는 것도 알아.
이건 엄마가 고생한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이런 엄마였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태양과 짓푸른 하늘이 오늘은 위선으로 보여.
엄마 죽어선 슬퍼하지마. 우리 형제 걱정도 말고. 엄마 사랑했던 사람들 만나 행복하게 사는거야.
그런 엄마 모습 꿈에서나마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나 이젠 더이상 가슴 아파하지 않을께.
가여운 우리 엄마
엄마를 부르며 잠이들고 눈을 뜬지 이제 7개월로 접어드네.
엄마, 엄마 지금 어때?
하늘나라는 어떤 곳이야?
어제는 하느님께 날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구 기도했어. 살아있기엔 너무 힘든 고통이야.
뭇사람들은 쉽게 얘기 해. 죽을 용기로 열심히 살라구. 나도 그랬으니까.
엄마, 나 점점 자신이 없어져. 이제 버티기가 힘들어.
한평생 고생만 하다 마지막 죽은 순간까지 처참하게 간 엄마, 엄마는 우리 다섯 형제를 입히고 가르치고 먹이기 위해 남자들도 힘들다는 노동일을 20여년간 하다 그날도 지하철 보수 공사 파이프 테잎 감다가 열차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열차는 그대로 밀고 지나갔지. 피가 낭자한 새면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엄마를 주위사람들은 구경만하고 있고.....
엄마는 머리와 얼굴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를 정도로 짓이겨진채 그렇게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어.
우리가 어떻게 할까? 우리 형제들이 죽기까지 평생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들, 형벌이야.
요즘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 언니들은 날 엄마 모습 못보게 해서 엄마 마지막 모습도 못보았어. 경찰서에서 찍은 사진을 우연히 보고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지.
엄마. 왜 그렇게 가야만 하는데
엄마가 무슨 죄가 있다고, 무능한 남편 만나 십년 넘게 병수발에 처자식에 대해 등한시 했던 아버지 대신해 삶의 전선에 뛰어든 죄밖에 없는데....
내가 천주교에서 영세 받은지 16년짼데 나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
하느님도 이세상의 그 어떤 것도 지금의 나의 마음에 위로가 안되
어떻게 살아? 살아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고 너무 힘겨운데
지난번에는 팔목을 그었어. 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이 발견하고 김서방이 날 때리더라구. 차라리 맞아서 죽었으면 하는 생각과 미쳐버리는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요즘 눈 뜨면 엄마의 모습 음성 기억들이 날 너무 힘들게해
언니들도 모두 제 정신들이 아냐. 그까짓 돈이 뭐길래
가난한 인부의 생명 하나쯤은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기관사 놈.
그 놈을 저주할 힘조차 없어. 오직 불쌍한 우리 엄마 생각뿐.
단하나, 희망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나도 언젠가는 아니 곧이 될지도 모르지만 죽는다는거야 그때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엄마를 부르면 왜 하고 대답할것 같고 엄마 집으로 전화하면 항상 지친 엄마의 목소리 "여보세요". "엄마 나야, 엄마 막내 딸" 그럼 엄마는 "그래 별일 없니? 전화세 많이 나온다 빨리 끊어라"하고 재촉하던 엄마.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까? 아니 가슴속에 더 또렸하기만한 엄마의 인생이 날 결국 울게 만들어.
다섯 형제 키우면서 무식한 노동자 남자 틈바구니 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와 멸시를 받았을까? 우리들이 속상하게 할때 엄만 누구에게 의논하고 위로 받았을까? 엄만 그 힘든 일로써 모든 삶의 무게를 지탱해 나갔지.
오늘은 큰 언니하고 국제전화했어. 언니도 울더라구. 못견디겠다구. 이곳 먼 타국에서 혼자 떨어진 나 엄마가 너무 그리워. 그리고 미안하구.
약을 먹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까지 갔어. 정신과에서 준 약이 다 떨어져 가는데, 하루를 살아내기가 너무 힘겨워.
하느님을 원망하고 싶지도 않아. 그럴 기운도 없고 지쳤어. 다만 묻고 싶은건 그렇게 힘들게 산 우리 엄마 꼭 그런 방법으로 데려가셔야만 하는거야.
우리 다섯 형제들의 형벌이라면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는데,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구.
우리 기억속에서 엄마의 처참한 모습이 어떻게 잊혀질까?
시간이 흐르면 더하겠지. 그래서 엄마 나 장담은 못해. 내가 날 어떻게 감당이 안돼.
나도 모르게 엄마 곁으로 갈지도 몰라.
그때 하느님이 나에게 죄를 물으신다면 따질거야. 나약한 인간, 견딜 수 없을 만큼 자기 통제가 안되게 해 놓고 왜 소중한 생명을 끊게 만드셨냐고.
지금 구정 휴가인데, 여기도 휴가기간이야. 하지만 우리 휴가기간 내내 집에만 있었어. 어디에도 가고 싶은 맘도 없고.
영열이가 많이 힘들거야. 우린 그래도 결혼이라도 해서 짝이 있는데, 김서방은 있으나 마나 지만 그래도 없는것 보단 낳아.. 하지만 영열인 혼자인데
엄마와 얼마나 각별한 사이였어. 엄마가 통곡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 하늘나라에 있는들 맘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엄마 걱정하지마. 우리가 여기서 조금 자리 잡히면 영열이 이곳으로 불러 함께 살테니까
내가 빨리 맘을 잡아야 하는데, 밥이 술이요 반찬이 담배가 내 생활이 되어버렸어. 그리고 후식으로 정신과 약 먹고, 그래야만 조금 안정할 수 있으니 이게 사람사는 꼴인지
엄마 정말 미안해. 강한 모습 보여주지 못해서.
눈 감으면 우리집 거리, 아파트, 거실....
엄마, 한국엔 굉장히 춥데. 엄마 항상 겨울엔 한대서 일하니까 귀가 얼어 터지고 병원가서 꿰메고, 여름이면 온몸에 땀띠 투성이에 집에 와선 소금물에 수세미로 따가우니까 박박 문지르며 씻는 그런 고통이젠 안해도 되겠네. 그럴때마다 우리들 가슴 얼마나 무너졌는지, 답답했는지,
엄마 갈대하며 꽃시장에 팔던 때도 생각나. 하루종일 온 산을 뒤집고 다니며 갈대를 꺾어 밤이며 다듬고 이름 새벽 그 무거운 갈대 묶음을 이고 꽃 도매 시장에 팔던 때, 그렇게 해서 만원 2만원 번 돈으로 우리 학비하고, 엄마 머리는 그래서 찌그러져 있다는 것도 알아.
이건 엄마가 고생한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이런 엄마였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태양과 짓푸른 하늘이 오늘은 위선으로 보여.
엄마 죽어선 슬퍼하지마. 우리 형제 걱정도 말고. 엄마 사랑했던 사람들 만나 행복하게 사는거야.
그런 엄마 모습 꿈에서나마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나 이젠 더이상 가슴 아파하지 않을께.
엄마 머지않아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내가 어리석은 짓 하지 않게 도와줘.
내 마음좀 꽉 붙들어줘.
엄마, 정말 보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