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은 혼자 남은 나를 보자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이미 도망칠 곳이 모두 막혀서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었다. 흉칙한 모습으로 점점 다가오는 놈들을 보자 공포 보다 차츰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래! 죽자! 네 놈들 모두 죽여버리겠어!"
뒤쪽에서 두 놈이 덮쳐 오자 입술을 깨물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한 놈이 옆구리에 맞고 나가떨어지고 다른 한 놈이 우측으로 파고들며 허리를 끌어안았다.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자 또 다른 놈들이 기회다 싶었는지 덮쳐왔다.
"이 새끼가!"
난 이빨을 꽉 깨물고는 팔꿈치로 옆구리에 매달닌 놈을 힘껏 내려쳤다.
"팍!"
하는 소리가 들리며 놈의 허리가 쉽게 끊어져 버렸다. 놈의 상체는 나을 꼭 붙잡고 있고, 하체는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 끔찍스러움에 진저리가처진 난 몽둥이로 놈의 머리를 찍었다. "퍽!" 썩은 나무토막 부서지듯 머리가 부서지며 놈의 상체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뒤 쪽에서 다른 놈이 내 어깨를 덮쳐왔다. 놀란 난 야구 방망이 휘두르듯이 세차게 휘둘렀다. "컥!" 내 방망이질에 놈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나가 자빠졌다.
"헉!...헉!!!.....헉!!"
끝없이 달려드는 놈들을 보며 난 점점 지쳐갔다.
더 이상 버틸 제간이 없었다.
또다시 덮쳐오는 놈들을 보며 시야가 흐릿해 보였다.
"그래! 죽어보자!"
내 자신에게 용기를 붇돋기 위해 크게 소리치며 다시 방망이를 휘둘렀으나 이미 힘이 딸려서 놈들이 쉽게 맞지 않았다. 오히려 놈들의 날카로운 손에 의해 가슴과 어깨에 기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이미 이태훈에 의해 상처를 입어 피를 많이 흘렸는데 또다시 놈들에게 상처를 입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환청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측으로 뛰어요! 빨리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주위를 살폈으나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시체들 뿐 아무도 없었다.
그때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뭐해요! 우측으로 뛰어 들란 말 이예요!" "우측은 거대한 토담으로 막혔는데 무슨 소리지?" 난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어차피 앞 뒤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시커멓게 덮쳐오는 놈들을 향해 세차게 몽둥이를 휘둘러 대자 녀석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피했다.
순간 놈들에게서 틈이 보이자 오른 쪽 토담을 향에 뛰어 들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토담에 몸이 부딪혀 튕겨 나갈 줄 알았던 내가 담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예기치 못한 일에 힘을 너무 줬던 난 바닥에 뒹굴었다.
"아야! 어떻게 된 일이야?" 놀라며 내가 벌떡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쪽에서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예요. 조금만 늦었어도....큰일 날 뻔했어요." 말소리를 듣고 뒤돌아 보자 아름다운 여자가 살풋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여긴 위험하니 피해야 해요." "다...당신은 누구죠?" "지금은 일단 이곳을 벗어나죠. 그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아요."
그녀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할 수없이 난 그녀의 뒤를 쫒아 가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는 또 누구지? 지금 난 왜 여기서 이렇게 헤메는 것이지?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저 여자가 열쇠인지도 모르겠군!' 기다란 검은머리가 허리아래까지 늘어져 있어 걸을 때마다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순간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눈데 투명한 눈동자 붉은 입술, 청순하고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얼마간 걸어갔을까 그녀는 조그마한 통로 앞에서 멈추어 서서 말했다.
"일단은 이곳을 통과해서 한 동안 피해 있어야 해요."
통로는 너무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두려움이 앞섰지만 그녀가 앞장서서 걸어 들어가자 곧 따라 들어갔다. 다행히 통로는 깊지 않아서 얼마간 들어가자 앞쪽에 밝은 빛이 보였다. 이곳에 온 후 처음 보는 밝은 빛이었다.
"거의 다 왔어요." 그녀가 말하며 통로를 빠져나가 나도 바로 뒤를 쫒았다. "아니!"
통로를 빠져 나온 난 또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앞쪽에 거대한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뻗어 있었고 좌측으로 맑은 계곡 물이 흘렀으며 우측으론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저쪽이 밤의 세상이라면 이곳은 마치 낮의 세상인 것 같았다. 햇볕도 따사롭고 밝았다. 넋이 빠진 나를 보고 그녀는 웃으며 한 집을 가르켰다.
"저기가 제 집이 예요."
그녀가 가르키는 곳을 보니 아담하고 아름다운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푸른 기와와 초록색 담이 무척이나 특이했다. 그녀의 뒤를 쫒아 집으로 들어가니 안쪽에 조그만 정자가 나왔다. 그녀는 그곳으로 올라앉았다.
그곳에는 이미 조그마한 상이 놓여 있었는데 산채나물과 국 그리고 하얀 쌀밥이 먹음직스럽게 준비되어있었다. 허기진 난 입안에 모여드는 침을 삼키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드세요. 아마 무척 시장하실 거예요." 난 밥보다도 그녀가 더욱 궁금했다. 아니 이 곳이 더욱 궁금했다. "당신은 누구죠?" 내 물음에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마사라고 해요. 이곳에 살고요." "그럼...여긴 어디입니까?" "글세요. 뭐라고 설명해 드려야 할지..." 내 물음에 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며 귀엽게 웃었다. 그러나 난 왠지 그녀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나를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굳은 얼굴로 다시 물었다. "도대체 이곳이 어딥니까? 어떻게 산 아래로 내려가죠? 그리고 저 이상한 시체들은 뭐예요?" 내 퍼붇는 듯한 물음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말했다. "한번에 하나씩만 말해요. 뭐가 그렇게 급해요? 우선 식사부터 하지죠." "전 배가 고프지 않아요. 제 질문에 대답부터 해주세요." 난 그녀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말했지만 내 신체는 따라주지 못하고 연신 꼬르륵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나를 보며 그녀는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약속하죠! 당신이 식사를 하면 궁금한 것을 모두 말해 드릴께요." "정....뭐...그렇다면..." 할 수 없이 난 내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워낙 허기지고 힘들어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허겁지겁 밥을 먹어대는 내 모습을 보고 웃으며 그녀는 안 쪽 문을 열고 사라졌다.
"정말 알 수 없는 여자군!"
그녀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배속을 채웠다.
순식간에 반찬과 밥을 모두 바닥내고 쉬고 있으니,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조그만 쟁반이 들려있었는데 그곳에는 맑은 향이 나는 차가 있었다.
"정화차(精化茶)예요. 드셔보세요." 청자 빛이 흐르는 작은 찻잔 속에는 붉은 색의 차가 담겨있었다. 한 목음을 마시니 입안에 향기로운 내음이 가득 찼다. "무슨 차가 이렇게 향기롭고 맛이 좋죠?" "정화의 꽃잎을 양지와 음지에 일곱 번을 번갈아 말려서 띄운 거예요. 정신도 맑게하고 당신의 마음이에 용기를 붇돋아 줄거예요. 이 차를 마시면 용기가 솟아올라서 용차라고도 부르죠." "용차요?" "예. 평소에는 하지도 못하는 일을 이 차를 마시면 할 수 있거든요." "그래요? 그거 참 좋은 차네요. 용기를 주다니..." 내 말에 그녀는 묘한 시선과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참으로 좋은 차예요. 사람들이 왜 이런 차를 못 먹는지 그게 아쉬울 뿐이죠." "정화라는 꽃은 이곳에만 나는가보죠?" "아니요. 어느 곳에나 있지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모르죠?" "글세요."
그녀의 대답은 묘해서 알고 있는데도 대답을 안하는 것인지 몰라서 대답을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여기는 정말 어디입니까? 지리산이기는 한겁니까?" "민수씨는 여기가 아직도 지리산이라 생각하세요?" "어? 제 이름을 어떻게 알지요?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 알아요. 명부에 적혀 있으니..." "예? 명부라니요?" "이 곳 안개마을에 들어오게 되면 자연적으로 그 이름이 시간의 명부에 올라가게 되어있어요."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의 명부는 또 뭐란 말인가? "시간의 명부라뇨? 그리고 이 안개마을이라는 곳은 또 뭐죠?" "시간의 명부는 말을 해도 모를 거예요. 이곳은 혼돈의 강과 시간의 강 중간에 있는 안개마을이란 곳 이예요." "시간 뭐라구요? 무슨 강이요?" "혼돈의 강이요." "무슨 소리입니까? 방금까지 난 지리산에서 등산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강에 있다는 겁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를..." "이해가 안되겠죠. 그러나 이곳은 분명 혼돈의 강과 시간의 강 중간인 각성의 공간 이예요." 점점 더욱 알 수 없는 말만하는 그녀를 보며 머리가 아파왔다. "쉽게 말하면 현실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아님 지구나 한국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훗! 현실이지요. 꿈에서 깬 현실이라고 보면되요. 그리고 여기가 지구고 한국이며 그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곳이죠." "아! 정말 쉽게쉽게 말하란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당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거예요." "예? 그럼 제가 죽었다는 겁니까? 죽어서 저승 가는 길목에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은 반만 맞아요.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시간의 문이 열리면 저승으로 들어 가게됩니다."
마사의 말에 난 당황되고 혼란스러웠다.
"그 말이 그 말이지요. 아니 내가 어떻게 죽었단 말지요? 내가 누구에게....아!"
순간 숲에서 이상한 동물에 쫒기 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제가 그 이상한 동물에게 죽은 건가요?" 내 물음에 마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조용히 말했다. "아니요!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죠." "그런데 왜 제가 여기 있죠?" "그건 저 안개마을의 대모 때문이죠. 그 할머니가 아마 당신을 잡아왔을 거예요." "예? 제가 무슨 잘 못을 했다고 죽을 운명도 아닌 저를 여기에 잡아왔다는 말입니까?" "그건 안개마을의 대모만이 알겠죠. 당신 말고도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이 각성의 공간에 잡혀오고 있어요. 당신이 본 시체 같은 사람들은 이곳에 잡혀 온 사람들이예요." "예? 그럼 그 대모라는 할머니가 그들을 죽여서 조정한다는 겁니까?" "예! 이미 당신 동료들도 그렇게 만들어 졌을 거예요." "이건 말도 안돼!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여기서 저들을 피해 살 수 있죠? 당신도 잡혀 온건가요?" "전 이곳 시간마을의 문지기예요." "시간마을은 또 뭐하는 곳이죠?" "이곳은 시간의 강이 열릴 때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곳이죠. 그런데 최근에 안개마을의 대모가 많은 사람들을 잡아와서 각성의 공간에 혼란이 오고 있어요." "왜 사람들을 잡아오는 거죠? 죽을 운명이 한참 남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뭐를 할려구..." "그들을 정화한대요." "정화요?"
내 말에 마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설명했다.
"세상은 몇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당신들이 사는 세계 삼(三)과 우리들이 사는 세계 사(四)그리고 이 세상들을 통제하는 순환의 세계 육(六)이죠. 또한 이 것을 통제하고 나누는 36개의 공간이 존재하죠. 이것은 하나의 톱니처럼 서로를 물고 오차 없이 흐르게 되어있어요. 그것은 마치 당신들의 인생처럼 태어나서 죽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자연적인 흐름을 저 대모가 역행하고 있는 바람에 이 각성의 공간이 혼란에 빠졌어요. 그래서 전 혼란을 막기 위해 대모가 잡아 온 사람들을 다시 이승으로 돌려 보내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난 장황한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크게 이해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만이 내 머리 속에 각인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 갈 수 있다고요?" 내 물음에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원한다면 돌아 갈 수 있어요." "그래요? 전 갈 겁니다. 돌아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지요?" 내 말에 그녀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지금 돌아가면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무슨 소리죠?" "당신은 이곳에서 많은 것을 듣고 보았을 거그렇죠? 당신에 대해 몰랐던 많은 것을 알았을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분명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특별한 것은 느낄 수 없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내 말에 그녀는 또다시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이 곳을 나가면 생각 날거예요. 아주 또렷하게 머리 속에 남아서 당신을 즐겁게도 할 수 있고 괴롭힐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것 또한 당신의 주어진 운명일 수도 있지요."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줄 수 없어요? 제가 여기서 나 갈 수는 있는 겁니까?" "그래요.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 정화차를 한 잔 더 드세요. 당신이 돌아갔을 때 무척 많은 도움이 될거예요."
그녀는 백설 같은 손으로 차를 따라 주었다. 답답한 마음에 목이 타 난 연거푸 두 잔이나 더 마셨다. 입안에서 감미로운 향기가 퍼지며 머리가 맑아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긴장되던 마음이 사라지고 아무 걱정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차 오르며 열기가 얼굴로 올라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마사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기 위해서는 안개마을로 되돌아 가야해요." "뭐요? 저 지옥으로 다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모든 원인은 안개마을에 있으니 그 대답을 풀 수 있는 곳도 저기죠." "저 쪽으로 가서 어떻게 해야되죠?" "저 통로를 따라 나가 안개마을로 들어가면 아랫 쪽 길로 쭉 따라서 내려가다 보면 거대한 집이 한 채 나올거예요. 그 곳이 대모의 집이죠." 마사의 말에서 난 그 큰 기와집을 떠올렸다. "알아요. 그곳에 가 봤어요." "그래요? 그 곳에 들어가면 안 쪽 깊은 곳에 검은 연못이 있어요. 그 연못 우측으로 세 번째 나무를 자세히 보면 그 곳에 이상한 글씨가 새겨져 있을 거예요. 그 글씨를 누르면 연못의 물이 빠지며 지하 통로가 나와요. 그 통로를 쭉 따라가다 보면 커다란 홀이 나올 거예요. 그 홀 중앙에 큰 신상이 있는데 그 신상의 오른손을 옆으로 틀면 바닥에서 혼돈의 문이 열리며 당신을 다시 돌려보내 줄 꺼예요." 난 약간은 복잡한 설명을 들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저 혼자 갑니까?" 내 말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전 못 가요. 저는 안개 마을로 들어갈 수 없어요. 미안해요." "할 수 없죠! 이렇게 절 구해 주신 것 만해도 고마운 일인데." "후후. 모르는 일이죠.." "예?" "아니예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요. 조심해야 할 거예요. 많은 사람이 지키고 있으니..."
그녀는 참으로 묘했다.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을 간직하기도 했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약간 차가운 면이 보이기도 했다. 볼수록 알 수 없고 묘한 여인이었다.
기이한 여행-5
공포에 질려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질 않았다.
놈들은 혼자 남은 나를 보자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왔다. 이미 도망칠 곳이 모두 막혀서 더 이상 피할 곳도 없었다. 흉칙한 모습으로 점점 다가오는 놈들을 보자 공포 보다 차츰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래! 죽자! 네 놈들 모두 죽여버리겠어!"
뒤쪽에서 두 놈이 덮쳐 오자 입술을 깨물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한 놈이 옆구리에 맞고 나가떨어지고 다른 한 놈이 우측으로 파고들며 허리를 끌어안았다.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자 또 다른 놈들이 기회다 싶었는지 덮쳐왔다.
"이 새끼가!"
난 이빨을 꽉 깨물고는 팔꿈치로 옆구리에 매달닌 놈을 힘껏 내려쳤다.
"팍!"
하는 소리가 들리며 놈의 허리가 쉽게 끊어져 버렸다. 놈의 상체는 나을 꼭 붙잡고 있고, 하체는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 끔찍스러움에 진저리가처진 난 몽둥이로 놈의 머리를 찍었다.
"퍽!"
썩은 나무토막 부서지듯 머리가 부서지며 놈의 상체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뒤 쪽에서 다른 놈이 내 어깨를 덮쳐왔다. 놀란 난 야구 방망이 휘두르듯이 세차게 휘둘렀다.
"컥!"
내 방망이질에 놈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나가 자빠졌다.
"헉!...헉!!!.....헉!!"
끝없이 달려드는 놈들을 보며 난 점점 지쳐갔다.
더 이상 버틸 제간이 없었다.
또다시 덮쳐오는 놈들을 보며 시야가 흐릿해 보였다.
"그래! 죽어보자!"
내 자신에게 용기를 붇돋기 위해 크게 소리치며 다시 방망이를 휘둘렀으나 이미 힘이 딸려서 놈들이 쉽게 맞지 않았다. 오히려 놈들의 날카로운 손에 의해 가슴과 어깨에 기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이미 이태훈에 의해 상처를 입어 피를 많이 흘렸는데 또다시 놈들에게 상처를 입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환청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측으로 뛰어요! 빨리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주위를 살폈으나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시체들 뿐 아무도 없었다.
그때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뭐해요! 우측으로 뛰어 들란 말 이예요!"
"우측은 거대한 토담으로 막혔는데 무슨 소리지?"
난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어차피 앞 뒤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시커멓게 덮쳐오는 놈들을 향해 세차게 몽둥이를 휘둘러 대자 녀석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피했다.
순간 놈들에게서 틈이 보이자 오른 쪽 토담을 향에 뛰어 들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토담에 몸이 부딪혀 튕겨 나갈 줄 알았던 내가 담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예기치 못한 일에 힘을 너무 줬던 난 바닥에 뒹굴었다.
"아야! 어떻게 된 일이야?"
놀라며 내가 벌떡 일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쪽에서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예요. 조금만 늦었어도....큰일 날 뻔했어요."
말소리를 듣고 뒤돌아 보자 아름다운 여자가 살풋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여긴 위험하니 피해야 해요."
"다...당신은 누구죠?"
"지금은 일단 이곳을 벗어나죠. 그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아요."
그녀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할 수없이 난 그녀의 뒤를 쫒아 가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는 또 누구지? 지금 난 왜 여기서 이렇게 헤메는 것이지?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저 여자가 열쇠인지도 모르겠군!'
기다란 검은머리가 허리아래까지 늘어져 있어 걸을 때마다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순간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눈데 투명한 눈동자 붉은 입술, 청순하고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얼마간 걸어갔을까 그녀는 조그마한 통로 앞에서 멈추어 서서 말했다.
"일단은 이곳을 통과해서 한 동안 피해 있어야 해요."
통로는 너무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두려움이 앞섰지만 그녀가 앞장서서 걸어 들어가자 곧 따라 들어갔다. 다행히 통로는 깊지 않아서 얼마간 들어가자 앞쪽에 밝은 빛이 보였다. 이곳에 온 후 처음 보는 밝은 빛이었다.
"거의 다 왔어요."
그녀가 말하며 통로를 빠져나가 나도 바로 뒤를 쫒았다.
"아니!"
통로를 빠져 나온 난 또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앞쪽에 거대한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뻗어 있었고 좌측으로 맑은 계곡 물이 흘렀으며 우측으론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저쪽이 밤의 세상이라면 이곳은 마치 낮의 세상인 것 같았다. 햇볕도 따사롭고 밝았다. 넋이 빠진 나를 보고 그녀는 웃으며 한 집을 가르켰다.
"저기가 제 집이 예요."
그녀가 가르키는 곳을 보니 아담하고 아름다운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푸른 기와와 초록색 담이 무척이나 특이했다. 그녀의 뒤를 쫒아 집으로 들어가니 안쪽에 조그만 정자가 나왔다. 그녀는 그곳으로 올라앉았다.
그곳에는 이미 조그마한 상이 놓여 있었는데 산채나물과 국 그리고 하얀 쌀밥이 먹음직스럽게 준비되어있었다.
허기진 난 입안에 모여드는 침을 삼키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드세요. 아마 무척 시장하실 거예요."
난 밥보다도 그녀가 더욱 궁금했다. 아니 이 곳이 더욱 궁금했다.
"당신은 누구죠?"
내 물음에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마사라고 해요. 이곳에 살고요."
"그럼...여긴 어디입니까?"
"글세요. 뭐라고 설명해 드려야 할지..."
내 물음에 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며 귀엽게 웃었다. 그러나 난 왠지 그녀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나를 가지고 노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굳은 얼굴로 다시 물었다.
"도대체 이곳이 어딥니까? 어떻게 산 아래로 내려가죠? 그리고 저 이상한 시체들은 뭐예요?"
내 퍼붇는 듯한 물음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말했다.
"한번에 하나씩만 말해요. 뭐가 그렇게 급해요? 우선 식사부터 하지죠."
"전 배가 고프지 않아요. 제 질문에 대답부터 해주세요."
난 그녀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말했지만 내 신체는 따라주지 못하고 연신 꼬르륵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나를 보며 그녀는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약속하죠! 당신이 식사를 하면 궁금한 것을 모두 말해 드릴께요."
"정....뭐...그렇다면..."
할 수 없이 난 내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워낙 허기지고 힘들어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허겁지겁 밥을 먹어대는 내 모습을 보고 웃으며 그녀는 안 쪽 문을 열고 사라졌다.
"정말 알 수 없는 여자군!"
그녀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배속을 채웠다.
순식간에 반찬과 밥을 모두 바닥내고 쉬고 있으니,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조그만 쟁반이 들려있었는데 그곳에는 맑은 향이 나는 차가 있었다.
"정화차(精化茶)예요. 드셔보세요."
청자 빛이 흐르는 작은 찻잔 속에는 붉은 색의 차가 담겨있었다. 한 목음을 마시니 입안에 향기로운 내음이 가득 찼다.
"무슨 차가 이렇게 향기롭고 맛이 좋죠?"
"정화의 꽃잎을 양지와 음지에 일곱 번을 번갈아 말려서 띄운 거예요. 정신도 맑게하고 당신의 마음이에 용기를 붇돋아 줄거예요. 이 차를 마시면 용기가 솟아올라서 용차라고도 부르죠."
"용차요?"
"예. 평소에는 하지도 못하는 일을 이 차를 마시면 할 수 있거든요."
"그래요? 그거 참 좋은 차네요. 용기를 주다니..."
내 말에 그녀는 묘한 시선과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참으로 좋은 차예요. 사람들이 왜 이런 차를 못 먹는지 그게 아쉬울 뿐이죠."
"정화라는 꽃은 이곳에만 나는가보죠?"
"아니요. 어느 곳에나 있지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모르죠?"
"글세요."
그녀의 대답은 묘해서 알고 있는데도 대답을 안하는 것인지 몰라서 대답을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여기는 정말 어디입니까? 지리산이기는 한겁니까?"
"민수씨는 여기가 아직도 지리산이라 생각하세요?"
"어? 제 이름을 어떻게 알지요?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 알아요. 명부에 적혀 있으니..."
"예? 명부라니요?"
"이 곳 안개마을에 들어오게 되면 자연적으로 그 이름이 시간의 명부에 올라가게 되어있어요."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의 명부는 또 뭐란 말인가?
"시간의 명부라뇨? 그리고 이 안개마을이라는 곳은 또 뭐죠?"
"시간의 명부는 말을 해도 모를 거예요. 이곳은 혼돈의 강과 시간의 강 중간에 있는 안개마을이란 곳 이예요."
"시간 뭐라구요? 무슨 강이요?"
"혼돈의 강이요."
"무슨 소리입니까? 방금까지 난 지리산에서 등산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강에 있다는 겁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를..."
"이해가 안되겠죠. 그러나 이곳은 분명 혼돈의 강과 시간의 강 중간인 각성의 공간 이예요."
점점 더욱 알 수 없는 말만하는 그녀를 보며 머리가 아파왔다.
"쉽게 말하면 현실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아님 지구나 한국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훗! 현실이지요. 꿈에서 깬 현실이라고 보면되요. 그리고 여기가 지구고 한국이며 그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곳이죠."
"아! 정말 쉽게쉽게 말하란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당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거예요."
"예? 그럼 제가 죽었다는 겁니까? 죽어서 저승 가는 길목에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은 반만 맞아요.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시간의 문이 열리면 저승으로 들어 가게됩니다."
마사의 말에 난 당황되고 혼란스러웠다.
"그 말이 그 말이지요. 아니 내가 어떻게 죽었단 말지요? 내가 누구에게....아!"
순간 숲에서 이상한 동물에 쫒기 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제가 그 이상한 동물에게 죽은 건가요?"
내 물음에 마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조용히 말했다.
"아니요!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죠."
"그런데 왜 제가 여기 있죠?"
"그건 저 안개마을의 대모 때문이죠. 그 할머니가 아마 당신을 잡아왔을 거예요."
"예? 제가 무슨 잘 못을 했다고 죽을 운명도 아닌 저를 여기에 잡아왔다는 말입니까?"
"그건 안개마을의 대모만이 알겠죠. 당신 말고도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이 각성의 공간에 잡혀오고 있어요. 당신이 본 시체 같은 사람들은 이곳에 잡혀 온 사람들이예요."
"예? 그럼 그 대모라는 할머니가 그들을 죽여서 조정한다는 겁니까?"
"예! 이미 당신 동료들도 그렇게 만들어 졌을 거예요."
"이건 말도 안돼!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여기서 저들을 피해 살 수 있죠? 당신도 잡혀 온건가요?"
"전 이곳 시간마을의 문지기예요."
"시간마을은 또 뭐하는 곳이죠?"
"이곳은 시간의 강이 열릴 때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곳이죠. 그런데 최근에 안개마을의 대모가 많은 사람들을 잡아와서 각성의 공간에 혼란이 오고 있어요."
"왜 사람들을 잡아오는 거죠? 죽을 운명이 한참 남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뭐를 할려구..."
"그들을 정화한대요."
"정화요?"
내 말에 마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설명했다.
"세상은 몇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당신들이 사는 세계 삼(三)과 우리들이 사는 세계 사(四)그리고 이 세상들을 통제하는 순환의 세계 육(六)이죠. 또한 이 것을 통제하고 나누는 36개의 공간이 존재하죠. 이것은 하나의 톱니처럼 서로를 물고 오차 없이 흐르게 되어있어요. 그것은 마치 당신들의 인생처럼 태어나서 죽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자연적인 흐름을 저 대모가 역행하고 있는 바람에 이 각성의 공간이 혼란에 빠졌어요. 그래서 전 혼란을 막기 위해 대모가 잡아 온 사람들을 다시 이승으로 돌려 보내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난 장황한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크게 이해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만이 내 머리 속에 각인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 갈 수 있다고요?"
내 물음에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원한다면 돌아 갈 수 있어요."
"그래요? 전 갈 겁니다. 돌아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지요?"
내 말에 그녀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지금 돌아가면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무슨 소리죠?"
"당신은 이곳에서 많은 것을 듣고 보았을 거그렇죠? 당신에 대해 몰랐던 많은 것을 알았을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분명 많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특별한 것은 느낄 수 없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내 말에 그녀는 또다시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이 곳을 나가면 생각 날거예요. 아주 또렷하게 머리 속에 남아서 당신을 즐겁게도 할 수 있고 괴롭힐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것 또한 당신의 주어진 운명일 수도 있지요."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줄 수 없어요? 제가 여기서 나 갈 수는 있는 겁니까?"
"그래요.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 정화차를 한 잔 더 드세요. 당신이 돌아갔을 때 무척 많은 도움이 될거예요."
그녀는 백설 같은 손으로 차를 따라 주었다.
답답한 마음에 목이 타 난 연거푸 두 잔이나 더 마셨다. 입안에서 감미로운 향기가 퍼지며 머리가 맑아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긴장되던 마음이 사라지고 아무 걱정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차 오르며 열기가 얼굴로 올라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마사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기 위해서는 안개마을로 되돌아 가야해요."
"뭐요? 저 지옥으로 다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모든 원인은 안개마을에 있으니 그 대답을 풀 수 있는 곳도 저기죠."
"저 쪽으로 가서 어떻게 해야되죠?"
"저 통로를 따라 나가 안개마을로 들어가면 아랫 쪽 길로 쭉 따라서 내려가다 보면 거대한 집이 한 채 나올거예요. 그 곳이 대모의 집이죠."
마사의 말에서 난 그 큰 기와집을 떠올렸다.
"알아요. 그곳에 가 봤어요."
"그래요? 그 곳에 들어가면 안 쪽 깊은 곳에 검은 연못이 있어요. 그 연못 우측으로 세 번째 나무를 자세히 보면 그 곳에 이상한 글씨가 새겨져 있을 거예요. 그 글씨를 누르면 연못의 물이 빠지며 지하 통로가 나와요. 그 통로를 쭉 따라가다 보면 커다란 홀이 나올 거예요. 그 홀 중앙에 큰 신상이 있는데 그 신상의 오른손을 옆으로 틀면 바닥에서 혼돈의 문이 열리며 당신을 다시 돌려보내 줄 꺼예요."
난 약간은 복잡한 설명을 들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저 혼자 갑니까?"
내 말에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전 못 가요. 저는 안개 마을로 들어갈 수 없어요. 미안해요."
"할 수 없죠! 이렇게 절 구해 주신 것 만해도 고마운 일인데."
"후후. 모르는 일이죠.."
"예?"
"아니예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요. 조심해야 할 거예요. 많은 사람이 지키고 있으니..."
그녀는 참으로 묘했다.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을 간직하기도 했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약간 차가운 면이 보이기도 했다. 볼수록 알 수 없고 묘한 여인이었다.
"이제 저 통로를 따라서 가보세요. 제 할 일은 여기까지니까요. 후후.."
그녀는 묘한 웃음을 날리며 안 쪽으로 사라졌다.
무슨 말인가 하려 했지만 그녀는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신비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래! 가 보자! 난 꼭 살고 말 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