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친정부모님이 미워요. 속좁은가요.+내용추가요.

아무나2017.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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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복합적인 아동학대를 당하면서 살았어요.
지금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 뱃속에 둘째가 몇개월 후에 세상에나와요.

저도 부모가 돼서 아이를 키워 보니 참 내인생이 서럽다 싶은 생각이 들고 지금 임신중에 몸이 힘드니 갑자기 우울해져서 딱히 터놓을곳이 없어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판에 글써봐요.

제 나이7살에 29살동갑내기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아빠는 저랑12살 차이 나는 여자랑 바람난 끝에 별거 하다가 이혼하고 바로 재혼 했어요.

7살 이후로는 1년에 딱 한번 제 생일에도 볼까 말까였어요.
10살에 친엄마 이혼 후에 시골 조부모님집에 맡겨지기전까지요.
조부모님 댁에서 자랄때도 사실 두번 명절에도 얼굴 볼까 말까였어요.

우선 7살 ㅡ 10살 엄마랑 보낸 시기가 지금 생각해보니 억울하고 분하고 그래요.


엄마는 밤에 물장사를 했습니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29살 지금으로 치자면 어린 이혼녀가 어린딸을 데리고 생활하자니 애로사항이 많았을거라 미루어 미루어 짐작은 합니다.

낮에는 늦게까지 자고 하루에 한달에 엄마가 밥을 챙겨준날이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정도로 지내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오면 엄마가 집에 있었을때는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였어요.
아침은 원래 굶고 점심은 빵과우유 저녁은 라면 끓여먹던가 수퍼에서 과자골라서 대충 떼우고
저의 일과에 엄마는 없었습니다

제가 엄마를볼 수 있던 날은엄마가 애인이라던 삼촌들을 집에 데려오는 날이였습니다.

그때는 음식솜씨 좋은 엄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였습니다.

그 조차도 한달에 한두번 이였고요.
방치돼서 살았습니다.


생일이 빨라서 7살에 입학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정말 엉망진창으로 살았네요.

학교에 씻지도 않고 등교하고 양말은 있으면 신고 거의 안신고 다닌거 같아요.

애들이 양말 안신었다고 놀리면 다음날 짝짝이로 신고가서 또 놀림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급식이 없었을때는 수퍼에서 보름달빵 하고 우유 사갔었고 또 애들이 매날 빵싸온다고 놀려서 지금 첫째아이와 같은 나이 아홉살때 부터는 밥솥에 밥해서 반찬이라고 후랑크 소세지 구워서 제대로된 반찬통도 없어서 위생비닐에 담아가서 밥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또 그거대로 놀림을 받았어요.
급식이 시행되고 이제 점심시간에 놀림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얼마나 안도하고 마음이 가벼웠는지모릅니다.

다행이 혼자있는 시간에 책읽는걸 좋아해서 공부는 못했어도 어디가서 바보라는 소리는 안듣고 살았어요.

이런저런 방치는 차라리 저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였습니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안심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불안하고 또 불안했어요.

폭력과 폭언 때문입니다.

하도 못먹으니까 제가 영양실조가 와서 어느날 보약을 먹이더라고요.
먹고나니까 없던 식욕도 돌고 정말 돌도 씹어먹을 수있겠더라고요.

어느날은 왠일로 콩나물 이랑 시금치 무쳐놓고 두부조림을 해놨더라고요.
정말 몆달만에 반찬다운 반찬을 보고 눈이 뒤집혔어요.
맨날 집앞수퍼에서 외상으로 라면 과자 빵 가져다 먹었거든요. 외상이라서 눈치가 보이니까 정말 뱃가죽이 등에 외닿을것 같고 괴로울때 한번가서 몇개 집어오고 했어요.

밥을 한그릇 먹고 맛있어서 또 먹고있으니까 자고있다가 일어나서 돼지같은년이 게걸스럽게 거지처럼 쳐먹고 자빠졌다는둥 저 살찐거 보라고 __이라고 폭언을 하데요.

너무 괴롭고 서러웠어서 28년된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__,____,디루디룩 살찐 돼지같은년, 거지같은년,
신발년,_같은년 등등.
저는 어린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도 육두문자는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
애아빠가 운전중이라 던가 화나서 무의식적으로 ㅆ자 비슷하게만 나와도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기함하면서 애들 앞에서 말조심 해야한다고 애들 듣고 배운다고 욕을 안배우고 안쓸수는 없지만 실생활에서 상스럽게 사용하지는 않게 하자고 협조를 구합니다.

차라리 욕설은 폭력 보다는 마음이 편합니다.
몸은 안아프니까요.
쇠로된 옷걸이, 엄청무거운 쇠로된 연탄집게, 빨래방망이,재떨이,나무빨래판 정말 안맞아본 도구가없습니다.

특히 연탄집게 빨래판은 머리에맞고 혹이 어마어마하게나서 몇주동안 누워있으면 머리가 아파서 고생했던 기억도 나고요.
맞다가 도망가다가 잡혀서 계단에서 질질 끌려가서 다시 맞고요.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습니다.

옆에 누군가 말려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다행인데주변에아무도 없을때 맞을거 같은기분이 들다가 실제로 맞게되면 아ㅡ오늘은 정말재수가 없구나.
말려줄 사람도 없으니 최대한 울지말고 얌전히 맞아야겠다. 그래야지 한대라도 덜맞겠구나. 악소리도 내지 말아야지. 이순간을 잘버텨서 모면해봐야겠다.
무조건 손이 발이 되도록 잘못했다 빌어야겠다싶더라고요.


한번은 맞다가 목을 졸려서 정마로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다가 노래지다가 나중에는 새하얘지더라고요. 목이 졸리니 피가 몰려서 고막도 멍멍하고 씨빨,_팔 욕하는 엄마 목소리도 까마득히 멀어지더라고요.

제평생 지금ㄲㅏ지 기절이라는걸 해본적이 없는데 그때 잠시 정신을 잃었던것 같네요.
눈을 떴는데 자기도 죽일까봐 무서웠는지 그날은 더이상 안때려서 안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ㅡ 드디어 오늘은 맞는거 끝났구나.
행복감까지 밀려들었어요.


맞는 이유도 그때그때 달랐어요.
별거 아닐때가 더 많았어요.
청소 안했다. 방이 지저분하다.
어쩔때는 밥해놨는데 밥안처먹고 수퍼에서 외상해서 군것질만 처한다.
어떤날은 배고프다했다가 돼지같은년 먹을것맛 처먹는다.
어떤날은 준비물 사가야된다고 말했다가 맞고
어떤날은 학교에 안가고 거려서 맞고
안간이유는 얼굴이고 팔다리고 맞아서 여기저기 멍들고 생채기 투성이라서ㅡ 애들이 왜그러냐고 물어보고 계단에서 헛디뎌서 굴러 떨어졌다고 거짓말을하는것도 한두번이고 무엇보다 창피했어요.
맞은것도,때린사람이 엄마라는 것도, 그런엄마랑 살고 있다는 것도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학교 선생님도 왜그러니? 계단에서 헛디뎌넘어졌다고 하면 그러냐고 하고 끝이었어요.

글을 쓰면서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단편적으로 자꾸 떠오르니 마음이 또 힘들고속상하네요.
그외에 자잘한 일들도 많은데 지금 떠오르는대로 몇가지만 적어봤어요.

엄마의 애인이라더 삼촌이라는 작자는 어느날 엄마도 일하러가고 없는데 술이 떡이돼서 뜬금없이 문따고 들어오더니 같이자자고 맨엉덩이 조물거리기래 자다가 놀라서 튀쳐나와서 두세시간 한강고수부지 가있다가 들어가서 그사람 곯아 떨어진것 확인하고 다른방 가서 잤던기억도 나요.
위에 일들은 전부 제나이 7-10살 사이에 겪은 학대입니다.

첫째는 아들이라 이런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는데 뱃속에 딸이라는데 요즘들어 문득문득 별별생각이 다나네요.

첫째 임신때도 많이 우울하고 겁났었어요.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부모 되지 말아야지
잘못은 알려주고 혼내고 고쳐주더라도 손은 절대 대지 말아야지 육두문자 쓰지 말아야지ㅡ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해야지ㅡ
정서적인 교감을 많이 해야지ㅡ

생각했던것들 전부 잘지키고 있고 아이와 대화를 많이합니다.

제가 엄마가 되고 아이를 길러 보니 엄마라는 사람이 자식 한테 어쩜 그렇게 했을까ㅡ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데 ㅡ 아직까지도 원망스럽고 증오 합니다.
4-5년전에 외국에 시집가서 살고 있던 엄마라는 사람 수십년만에 만났어요.
그때 일말의 그리움 마저도 마음에서 털어냈어요.
자기는 잘못 없다고 네가 유별난아이였다고 어린나이에 혹달고 나도 고생했다고 네가 지금 잘났다고 큰소리 치지만 나 없었으면 이세상에 없었다고 태어나게 해준것에 감사는 못할망정 잘했네 못했네 따지지말라고 하데요.
귀국하고 죽은사람으로 생각하고 삽니다.

엄마도 엄마지만 아빠도 별로 보고싶지 않아요.
그래도 딸인데 어쩜 저렇게 나몰라라 했을까 싶어서요.
아빠딴에는 너무 어려서 자주보면 제가 마음에 안정을 못찾고방황할까봐 그랬다지만 본인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빠라는 생가을 떨칠 수가없네요.
지금이야 자식도 저뿐이고 손자도 우리애뿐이니 아쉬워하는게 없지않아 있을겁니다.
그래도 아빠는 저에게 손찌검 이나 육두문자는 안쓰셨었고 점잖으시니 천만다행이죠.

다행이 두번째 새엄마는 양반인 분이라 친모보다 친부보다 믿고 의지하면서 뵙지만 평범한 친정은 아니네요.
아이들에게 안큼은 제가 겪은 지옥 겪게하고 싶지 않아서 부부가 살다가 닥치는 어려움들이 가끔 있을때도 이악물고 버텼네요.

요 몇년새 아동학대 기사나 뉴스를 접하면 아찔합니다.
나도 죽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이가 얼마나 끔찍하고 괴롭고 죽고싶었을까 아니 살고싶었을까 싶어서요.


휴대폰으로 두서없이 작성한글 읽느라고ㅈ고생하셨어요.
가끔 드는 어린시절의 불행했던 생각들은 안하고 싶은데 호르몬 때문인지 우울할때가 많아지네요.
빨리 몸풀고 예쁜 딸 만나서 첫째처럼 친구같고 편안한
엄마 사랑이넘치는 가정.잘ㅈ꾸려볼랍니다.
좋은내용도 아닌 긴글읽게 해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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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이라 호르몬 때문인지 기분이 널뛰기 했을때 별기대없이 작성하고 지금 들어와보니 여러분들께서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해주셔서 눈가가젖어드네요.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런지요.
혹시라도 많이 걱정하시는 분 있으실까봐서 몇자 더 적어봐요.

첫째때 정말 무섭고 용기가 많이 필요했네요.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베풀줄 안다고 하는데 내가 과연 엄마로서 한 인생에 올바른 길잡이가 될수 있을까 많이 걱정 했는데 첫째가 태어나고 정말 천사같은 아이가 내게 와주었구나ㅡ 조금 오버해서 내가 이 아이를 세상에 남기려고 모진 고생 버텼구나 싶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제 자신도 아이와 함께정신적으로 강인해지고 더욱 철이 들어감을 느낍니다.
아마 아이가 어른이 돼서 자기몫을 다하게 될때까지는 아이의 성장과 함께 저도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을 겪어 나가겠죠.

어릴때부터 많이 무덤덤 했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에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던것같아요.
눈물 많고 마음은 여렸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긍정적 이였던것 같아요.

좋지 않은 기억은 되도록 생각 안하려하고 잊어버리고 체념 하면 편하다는걸 일찍 터득 했네요.


속마음은 안그래도 겉으로는 나름 밝고 활발하다 생각했는데ㅡ 첫째 낳고 아이가 이쁘고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말뜻이 이해되면 될수록 그것과는 별개로 부모님이라는 사람들이 밉고 원망스러워서 1-2년 정도 우울했네요.

그때는 애아빠도 저도 철이 없던 시절이라 많이 싸우고 사네 못사네 ㅡ 고비도 여러번 있었는데 갈라설 생각하다보면 아이가 눈에밟혀서 이를 악물고버텼어요.

데려가자니 겁나고 무섭고 두고가자니 천덕꾸러기에
애물단지 구박덩어리 될까 겁나고 걱정되고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더라고요.

하루가 멀다하고 아동학대 기사나고 뉴스나고 말이죠.

그런데 어느순간 부터는 마음이강인해지고 견고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엄마인 내가 독해지자 싶더라고요.
2ㅡ3년 그렇게 버티니까 그전에 우울하던 마음이 껴들자리도 없어지고 애아빠도 함께 노력해서 어려운 시기 잘극복해내고 아이도 생각외로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주고 있고 부부사이에도 전우애?비슷한것이 생기고 아이 자라는 재미와 기쁨, 슬픔을 함께하다 보니 요즘처럼만 살면 화목한 가정 잘 꾸려 나갈수 있겠구나 싶을때 늦둥이 둘째가생겼네요.

초기 중기에는 별로 우울감도 없고 그랬는데 몸이 점점무거워지고 나름 노산이라 힘드러지니 최근들어 우울산 생각이 들어서 전혀 모르는 분들 보라고 한풀이로 적었는데 따뜻한 마음 한조각씩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날은 아픔을 감추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표현해 보자 싶어서 아빠한테 자세하게는 말안하고 지금으로 치면 아동학대 받으면서 방치돼고 폭력 폭언에 시달릴 동안 왜 모른척 했냐고도 물었더니

아빠는 설마 자기자식을 심하게 대할줄은 몰랐다고 그래도 딸이라 남자인 나보다는 엄마가 잘키울줄 알았다고 지난일 들먹엿니 뭐하냐고 잊어 버리라고 제가 느끼기에는 변명 같이 들렸지만 제가 사춘기때 반항하고 제가 생각해도 큰 잘못을 저질렀던 딱 한번빼고는 때린적이 없었으며 육두문자는 절대 사용 안하시는분이라 묻고 가기로 했어요.

미안하다고는 안하셨지만 목소리에 그래도 일말의미안함은 묻어나오더라고요.
또 지금 새엄마는 저 고등학교때 오셔서 고생하시면서도
저 아침밥에 도시락까지 꼭꼭 살뜰히 챙겨주시고 제가 마음을 못열어서 그렇지 나이먹고ㅈ보니까 감사할 부분이 많고 존경 할 수 있는 그런 분이시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친모네요.
저를 수소문하고 다닌다기에 몇년전에 그렇게 만나고 더욱 실망하고 연끊고 삽니다.

뭐언제는 나한테 엄마가 있었나 싶더라고요.

친정은 있지만 없는듯 있는 곳이라 애초부터기대도 안하고살았고 잃을게 없기에두려울것도 없는 조금은 씁쓸한 끝맺음이네요.

아동학대 가정불화의고리는 저의 대에서 끊어버리고
아이들에게행복한 가정과 사랑을 물려주고 싶어서 부족하지만 매일 노력하면서 잘살아보려 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 조언과 위로 남겨주신분들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고 댁내 편안하고 무탈하시기를 마음으로부터 기원합니다.

모바일로 작성하니 두서없고 맞춤법 띄어쓰기 다 엉망이네요.
다시 한번 긴글로ㅈ괴롭혀?드려서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