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10대의 후반을 보내고 있는 여학생 입니다.
저는 참.. 인생이 꼬였다? 라고 하면 될까요? 행복해 본적이 없습니다. 자살 안하고 살아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저는 일단 혼혈입니다. 읽고 바로 아시겠죠? 힘들겠다.
혼혈...네... 제 나이 4살 때 전 유치원에서 차별당했습니다.
뭐 지금도 꾸준히 계속 받고 있지만 처음은 4살 때 였습니다.
이유는 혼혈이여서 부모님중 한분이 서양인이라고해서 저보고 냄새가 난다며 친구들과 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때까진 기억이 잘안나서 별로 불행하진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드러가기 무렵 엄마와 아빠는 별거를 시작해 따로 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드러간지 3년 정도 지난후 아빠가 돌아가십니다.
저와 아빠는 정말 친했고 너무 사랑했고 전...어렸습니다.
일때문에 잘 들어오지 않는 엄마보다 좋았고 세상 천지 젤 좋았습니다.
어린 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건 다시는 볼수 없고 다시는 들을수 없으며 기억에서 살아져가 추억이 된다는걸.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초4때 성추행을 당합니다.
같은반 남자애 한테 어렸던 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전 진짜 무슨 뜻인지 왜이러는지 몰랐습니다.
그애는 제 가슴을만지고 옷을 벗겨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아시고 저와 그아이를 불러 혼을 내시고 끝내셨습니다. 전교에 비밀리에 소문이 퍼졌지만 선생님은 나몰라라 였습니다.
저는 왜 혼나는지 소문이 왜퍼지는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전학을 갑니다.
그리고 초5가 되자. 전 왕따가 됩니다.
이유는 그냥 눈에 밟혀서 저는 제주장을 확실히 하는 타입이라 전학 온지 3일만에 찍히고 말았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았고 그때문에 더 심했고 필통,가방은 가볍게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고
매일매일 폭언과 비하 차별 이렇게 대충 말하고있지만 매일매일이 지옥이였고 죽고싶고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전학을 갑니다.
초등학생 마지막 저는 여자 농구부에 들어 갔습니다.
숙소 생활을 시작했고 선배가 20 명정도 있었습니다.
한국 예의,생활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다나까 선배 먼저 혼날때 강아지만냥 처량하게 혼낼땐 미친개마냥 무섭게 일어나서 운동하고 학교 갔다 운동하고 밥먹고 청소하고 5분안에 씻고 취침시간에 맞쳐자고 집에는 일주일에 하루 아닐때 한달에 하루 갈때도 있었습니다.
나이많은 언니들 때문에 예의 눈치보기가 지옥보다 싫었고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중후반쯤 다른학교 운동부로 전학을 갑니다.
거기서 그학교는 선배 문제보단 감독이 문제 였습니다.
매일 손바닥이 부어서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엉덩이에 피멍이들어 앉지못하고 잘때도 업드려 자야 했습니다.
심한 폭행 폭언 살수가 없었습니다.
숙소 밖은 운동, 학교 갈때 빼고 나갈수 없었으며 매일 내일은 각목 말고 신문지 뭉댕이로 맞게 해달라고 빌 정도 였습니다.
저희 팀원 전체가 단체로 차도로 뛰어 들까? 죽는거랑 다른게 뭐냐 할 정도 였으니까요 .
매일 울었고 매일 아팠고 매일 죽고싶었습니다.
그리고 젤 웃긴건 여기 까지 말씀 드린 내용중 아무도 단한명도 제 얘길 듣고도 도와 주지 않았다는겁니다.
아직까진 살기 좋은 대한민국? ㅁㅊ 경찰,상담원,목사,부모님,친구,담임 전 이제 누구한테 더 당해야하나요.
매일 자기전 아빠가 넘보고싶어 울다 성추행법새끼 잘살고 있는거 보고 울다가 왕따가해자가 했던 말들 떠올라 울다가 선배들 갈굼이 떠올라 울다가 맞았던 곳의 흉터들 보며 울다가 새벽 5시가 넘습니다 살고 싶지도 않고 죽고 싶지도 않다는건 이럴때 쓰는 말 일까요?
지금이랑 얼마전에 힘들었던건 안 쓸께요 저 알아보며 쪽팔리거든요 지금은 그냥 어떻게 죽어야 참신할까 고민 중이네요
내가 사는게 사는게 아니야
저는 참.. 인생이 꼬였다? 라고 하면 될까요? 행복해 본적이 없습니다. 자살 안하고 살아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저는 일단 혼혈입니다. 읽고 바로 아시겠죠? 힘들겠다.
혼혈...네... 제 나이 4살 때 전 유치원에서 차별당했습니다.
뭐 지금도 꾸준히 계속 받고 있지만 처음은 4살 때 였습니다.
이유는 혼혈이여서 부모님중 한분이 서양인이라고해서 저보고 냄새가 난다며 친구들과 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때까진 기억이 잘안나서 별로 불행하진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드러가기 무렵 엄마와 아빠는 별거를 시작해 따로 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드러간지 3년 정도 지난후 아빠가 돌아가십니다.
저와 아빠는 정말 친했고 너무 사랑했고 전...어렸습니다.
일때문에 잘 들어오지 않는 엄마보다 좋았고 세상 천지 젤 좋았습니다.
어린 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건 다시는 볼수 없고 다시는 들을수 없으며 기억에서 살아져가 추억이 된다는걸.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초4때 성추행을 당합니다.
같은반 남자애 한테 어렸던 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전 진짜 무슨 뜻인지 왜이러는지 몰랐습니다.
그애는 제 가슴을만지고 옷을 벗겨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아시고 저와 그아이를 불러 혼을 내시고 끝내셨습니다. 전교에 비밀리에 소문이 퍼졌지만 선생님은 나몰라라 였습니다.
저는 왜 혼나는지 소문이 왜퍼지는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전학을 갑니다.
그리고 초5가 되자. 전 왕따가 됩니다.
이유는 그냥 눈에 밟혀서 저는 제주장을 확실히 하는 타입이라 전학 온지 3일만에 찍히고 말았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진 않았고 그때문에 더 심했고 필통,가방은 가볍게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고
매일매일 폭언과 비하 차별 이렇게 대충 말하고있지만 매일매일이 지옥이였고 죽고싶고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전학을 갑니다.
초등학생 마지막 저는 여자 농구부에 들어 갔습니다.
숙소 생활을 시작했고 선배가 20 명정도 있었습니다.
한국 예의,생활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다나까 선배 먼저 혼날때 강아지만냥 처량하게 혼낼땐 미친개마냥 무섭게 일어나서 운동하고 학교 갔다 운동하고 밥먹고 청소하고 5분안에 씻고 취침시간에 맞쳐자고 집에는 일주일에 하루 아닐때 한달에 하루 갈때도 있었습니다.
나이많은 언니들 때문에 예의 눈치보기가 지옥보다 싫었고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중후반쯤 다른학교 운동부로 전학을 갑니다.
거기서 그학교는 선배 문제보단 감독이 문제 였습니다.
매일 손바닥이 부어서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엉덩이에 피멍이들어 앉지못하고 잘때도 업드려 자야 했습니다.
심한 폭행 폭언 살수가 없었습니다.
숙소 밖은 운동, 학교 갈때 빼고 나갈수 없었으며 매일 내일은 각목 말고 신문지 뭉댕이로 맞게 해달라고 빌 정도 였습니다.
저희 팀원 전체가 단체로 차도로 뛰어 들까? 죽는거랑 다른게 뭐냐 할 정도 였으니까요 .
매일 울었고 매일 아팠고 매일 죽고싶었습니다.
그리고 젤 웃긴건 여기 까지 말씀 드린 내용중 아무도 단한명도 제 얘길 듣고도 도와 주지 않았다는겁니다.
아직까진 살기 좋은 대한민국? ㅁㅊ 경찰,상담원,목사,부모님,친구,담임 전 이제 누구한테 더 당해야하나요.
매일 자기전 아빠가 넘보고싶어 울다 성추행법새끼 잘살고 있는거 보고 울다가 왕따가해자가 했던 말들 떠올라 울다가 선배들 갈굼이 떠올라 울다가 맞았던 곳의 흉터들 보며 울다가 새벽 5시가 넘습니다 살고 싶지도 않고 죽고 싶지도 않다는건 이럴때 쓰는 말 일까요?
지금이랑 얼마전에 힘들었던건 안 쓸께요 저 알아보며 쪽팔리거든요 지금은 그냥 어떻게 죽어야 참신할까 고민 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