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여행지에서 겪은 기이한 일

ㅇㅇ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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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여행지에서 겪은 아주 기이한 일 >
무당, 가위, 미신 안 믿으시는 분들께는 뻘글일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다들 이상하고 기이한 경험 하나쯤은 하기 마련이다. 간발의 차로 죽음을 피하기도 하고, 어쩌다 꾼 꿈 하나로 비극적 사고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갈 때도 있다. 바로, 약 1년 전의 나처럼.

때는 2016년 2월. 당시 나는 네팔 및 인도로의 배낭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바로 그날, 나는 아주 기이한 꿈을 꿨다. 무려 일 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이날의 꿈을 아주 생생히 기억한다.

사람이 아주 많은 어느 길 위. 나는 인도 여행에서 사용했던 빨간 배낭을 메고 어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곳이었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그 버스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뒤, 낡은 버스가 내 앞에 섰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그 버스에 올랐다.

"아가씨. 돈은 내한테 주소."

버스에 타자 버스기사는 내게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돈 통에 돈을 넣는데, 딱 나 하나만 본인 손 위에 돈을 올리라고 했다. 당시 대구의 교통비는 1,200원. 당황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다행히 바지 주머니에 동전이 있었다. 나는 동전을 모두 꺼내 하나하나 세었다. 신기하게도 100원짜리가 딱 12개 있었다. 운전기사는 12개를 하나하나 꼼꼼히 세어보더니 인상을 쓰며 내게 이리 말했다.

'하이고오....아가씨. 하필 또 1,200원이 주머니에 있었는교. 쯧쯧..'

아저씨 말이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은 그냥 타기로 했다. 다들 꿈이란 걸 꿔봐서 알겠지만, 꿈속에서의 '나'는 온전히 이성적이기 힘든 법이다. 그래서 나는 어딘가가 이상하고 찝찝한 걸 알면서도 그냥 탔고, 그렇게 버스는 그대로 앞문을 닫았다.

버스 안의 구조는 매우 기이했다. 모두 전방을 향하게 되어있는 일반버스와 달리, 꿈속의 그 버스는 지하철처럼 옆으로 된 의자도 있었고, 군데군데 의자가 없는 빈 공간도 있었다. 나는 앉을 자리가 없어 배낭을 멘 채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어쩐 일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안 보이던 나의 절친들과 가족, 그리고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배웅을 나와있었다. 그들은 내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 역시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버스는 출발했다. 낡은 차량에 비해 승차감은 KTX 기차만큼이나 부드러웠다. 버스 안에는 노인도 있었고, 어린아이도 있었지만 내가 얼굴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도중, 버스가 어느 고속도로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의 양옆으로는 새파랗고 아름다운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끝없이 뻗은 그 길을 보며 '아, 요 매끄러운 길로 씽씽 달리면 완전 신나겠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완전히 진입하기 직전, 기사 아저씨는 마지막 손님을 태우기 위해 다시 앞문을 열었다. 그 누구도 그게 마지막 정거장이라 말해준 적 없었으나, 그냥 느낌이 그랬다.
앞문이 열리고 어떤 젊은 여자가 탔다. 그 여자는 버스 안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뭐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다음에 탈까..?"

흰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그 여자는 이 버스를 타고 갈지, 아니면 다시 내릴지를 고민했다. 우물쭈물하던 그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여자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를 통해 내게 그런다.

"거 빨간 가방 아가씨. 비좁은데 그냥 아가씨가 내리고 다음 꺼 타소. 딱 보이 다음 꺼 타도될 사람이구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는 요구였다. 내가 굳이 저 여자 때문에 이 버스에서 하차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왠지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 여자에게 다음 버스를 또 기다리게 하기엔 이미 너무 지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가 뒷문을 열어주자마자 그대로 그 버스에서 내렸다. (평소엔 그다지 착하지 않은데, 그날 꿈속에선 왜 양보를 했던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햇볕이 내리쬐는 거리에 다시 섰고, 버스는 내가 내리자마자 문을 닫고 그대로 출발했다. 그렇게, 그 꿈은 끝이 났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건 해몽을 의뢰할 것도 없이 명백한 흉몽이었다. 그간 친한 보살님과 무려 7년간의 연을 이어오며 주워들은 지식으로는, 그 버스는 저승행 버스가 분명했고, 내가 낸 1,200원은 노잣돈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꿈에서 깨자마자 친이모처럼 따르는 보살님께 전화를 했다. 이모는 내 이야기를 절반도 듣지 않으셨는데 '니 혹시 또 물 건너가나?' 하고 물었다. 나는 며칠 전 사진을 날리게 된 경위와, 그런 이유로 며칠 뒤 네팔 및 인도로 다시 출국을 하게 되었음을 알렸다. 그러자 보살님은, 지난 7년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했다.

"현지야. 니 이번에 방침 해야 된 데이. 안 그럼 다신 엄마품으로 못 돌아온다."

여기서 '방침'이란 굿, 혹은 부적 같은 것을 의미한다. 보살이모를 알고 지낸 7년 동안, 이모가 우리 가족에게 굿을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뒤늦게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굿을 열겠다 말했다. 나는 그 꿈을 꾸고도 여행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단 한 번도 반대를 한 적이 없었던 엄마는 이번에도 내 여행을 위해 큰 결심을 했다.

굿을 하기로 한 새벽. 나는 엄마랑 차를 타고 대구 팔공산으로 향했다. 팔공산 어느 기슭, 골프장으로 진입하는 옆 길엔 꽤 규모가 큰 계곡이 하나 있는데, 이 일대 무속인들 사이에선 이 계곡이 가장 기운이 좋고 영험한 명당이라 알려져 있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여러 명의 무속인과 그 의뢰인들이 계곡에서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보다 한참 전에 온 보살님이 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맞았다.

"갖고 온 거 꺼내 보이소."

엄마는 이모의 지시에 따라 가방에서 돈봉투를 꺼냈다. 보살님은 커다란 물동이에 계곡물을 받아오더니 엄마에게 그 물 위에 지폐를 한 장 씩 띄워보라고 지시했다.

"식구들 이름 하나하나 생각해가미, 식구 수대로 천천히 띄워 보소."

엄마는 물 위에 오만 원권 한 장을 올렸다. 나뭇잎이 물 위에 뜨듯 가볍게 수면 위에 동동 떴다. 두 개째도, 세 개째도, 그렇게 오만 원 지폐는 큰 문제없이 물 위에 차례로 올려졌다.
그런데 엄마가 네 번째 지폐를 올리는 순간, 갑자기 지폐가 안으로 말려들어가며 물아래로 쑥 가라앉았다. 엄마도, 보살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직감으로 알았다. 저 오만 원은, 바로 내 것이라는걸.

놀라운 일은 연달아 일어났다. 식구 수대로 밝힌 촛불 중 오로지 내 이름을 건 촛불만이 바람에 미친 듯이 흔들렸고, 제비뽑기를 하듯 뽑은 다섯 색깔의 작대기 중, 나만 주구장창 빨간색이 걸렸다.
보살님의 말에 따르면, 그 빨간색은 곧 '死'. 죽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빨간색을 볼 때마다 이상할 만큼 기분이 나빴으니까.)

그렇게 두 시간여의 굿판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내가 마침내 빨간색이 아닌 다른 색깔의 막대기를 뽑았을 때, 보살님은 그제야 흔들던 방울을 멈췄다.

"현지 어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현지한테 달렸데이. 내 부적하나 써줄 텐께 현지 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몸에 꼭 갖고 댕기라."
"네. 알겠어요. 그냥 그것만 하면 돼요?"
"하나 더 있다. 네 한국 떠나고 나서 처음 3일 밤, 그리고 돌아오기 전 마지막 3일 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머리랑 다리 방향을 거꾸로 두고 자야한데이 꼭! 알긋재?? 안 그럼 니 자다가 가위 크게 눌릴끼다. 운 나쁘면 큰일 날 수도 있데이"

보살 이모는 내게 재차 신신당부를 했다.
머리와 다리 방향을 거꾸로 해서 자라니. 물론 이모 말대로 처음 3일, 마지막 3일 동안은 시키는 대로 하긴 할 거였지만,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모가 일러준 이 방침을 딱히 맹신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오히려 '에이, 그래도 설마 진짜 가위눌리겠어.' 하는 약간의 의심을 했으면 했지.

며칠 시간이 흘러, 드디어 출국하는 날이 다가왔다. 이번 일정은 네팔 카트만두로 들어가 인도로 아웃하는 일정. 당시 타이항공 티켓을 끊었기 때문에 나는 태국에서 아홉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와씨..피곤해 죽겠네."

태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밤. 나는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썬배드 처럼 생긴 침대형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며칠 못 쉬고 다시 출국하는 거라 몸이 굉장히 고단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고단함에 지쳐 아주 중요한 것을 한가지 놓치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이 방콕에서의 하룻밤이, 한국을 떠난 후에 맞는 '1일째 밤'이란 것을 말이다. (공항에서 대충 노숙하는 거였기 때문에 그게 '1박'이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훤히 불이 켜져 있는 방콕 공항에서, 나는 거짓말처럼 그 형광등 불빛을 정면으로 바라본 채 가위에 눌렸다. 사람이 내 옆으로 오가는 게 뻔히 보이고, 내 옆자리에 누운 여자가 뒤척뒤척 움직이는 게 곁눈으로 다 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굳은 육체 안에 정신이 단단히 갇힌 채로 그렇게 나는 몇 분 일지도 모를 공포의 시간을 보냈다. 발가락을 미친 듯이 꼼지락 거리고, 혓바닥을 최선을 다해 움직여 어떻게 어떻게 그 가위에서 풀려나긴 했지만, 나는 그때부터 네팔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단 한 잠도 자지 못했다. 너무 무섭고, 또 미친 듯이 두려워서.

그렇게 다음날, 우여곡절 끝에 네팔에 도착을 했고, 나는 2개의 2층 침대가 마련되어 있는 4인실 도미토리에 짐을 풀었다. 혼자 있으면 무서울 것 같아 일부러 도미토리에 들어왔건만, 그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입실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또 혼자 자야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밤이 찾아왔다. 나는 보살 이모가 챙겨준 부적과 엄마가 챙겨준 소금을 단단히 챙기고, 머리와 다리 방향을 반대로 누운 채 불을 훤히 켜놓고 잠을 청했다.

'그래, 시키는 대로 다 했으니 이번엔 안 눌리겠지. 그래그래. 괜찮을 거야.'

단 몇 시간만 참으면 금세 아침이 찾아올 거라는 믿음. 얼른 잠들어버리면 이 두려운 밤이 빨리 지나갈 거라는 기도.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도, 나는 자리에 누운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삽시간에 몸이 굳고 말았다.
네팔에서의 가위는 전날 태국 공항에서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원래 나는 가위에 눌려도 조금만 발가락을 움직이면 금세 풀리곤 했고, 또한 남들처럼 이상한 것이 보인다거나 기이한 소리가 들린다거나 했던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가위라는 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를.

또다시 몸이 굳은 채로 버둥거리던 중(2층 침대 중 1층에서 잤다), 갑자기 어디선가 시꺼멓고 길쭉한 두 개의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흡사, 길다란 기둥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무겁고 뜨뜻한 두 개의 기둥은 조금씩 조금씩, 누워있는 내 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마부터 발끝까지, 숨도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나를 짓눌렀다. 그런 공포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 길고 검은 두 개의 기둥일 뿐이었지만, 나는 몸에 닿은 느낌만으로 그 기둥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건 분명, 누군가의 뜨겁고 길쭉한 두 다리였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가위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던 것까지만 기억날뿐, 가위에서 풀려나 안심했던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선 그대로 잠이 들었거나, 혹은 기절했거나, 둘 중에 하나였을 테다.
어젯밤 보았던 그 검은 기둥. 누군가의 두 다리. 만일 내가 거꾸로 자지 않고 정방향으로 누워 잠이 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아마, 나는 두 다리가 아닌,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한 채 목을 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미 이틀 연속으로 가위에 눌렸다는 사실에 겁을 집어먹었다. 그래서 그날 카트만두에서 만나기로 한 한국인 동행에게(온라인 카페에서 만남) 연락을 해 최대한 빨리 이곳으로 와 줄 것을 부탁했고, 그렇게 3일째 되던 날엔 여자 일행과 함께 밤을 맞을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동행이 생긴 이후로는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본래는 이모 말에 따라 3일째도 가위에 눌려야만 했지만, 옆에 누군가가 함께해서 그런지 3일째부터는 별다른 수면장애 없이 정상적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가위의 공포를 잊어갔고, 그렇게 나의 네팔 및 인도 여행은 순조롭게 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6년 3월 30일. 인도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마지막 3일'에 대한 방침 역시 잊지 않고 지켜서인지 가위도 더 이상 눌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인도에서 만난 동행들에게 카톡을 했다.

- 나 지금 꼴까따! 곧 아웃해. 다들 한국에서 보자!!

나는 마지막 남은 인도 데이터로 동행들과 수다를 떤 후, 3월 30일에서 31일로 넘어가는 새벽, 북인도 꼴까따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나의 세 번째 인도 여행은, 그렇게 평화롭게 끝이 나는 듯 보였다.

인도에서 태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넘어오는 동안, 2016년 3월 31일 밤이 됐다.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 유심을 끼우고 데이터를 켰다. 근데 데이터가 켜지자마자 카톡이 이상할 만큼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 현지 언니! 어디야? 언니 괜찮은 거지!?
- 딸. 31일 새벽 비행기였지? 지금 비행기 안 맞지?
- 현지야, 비행기 잘 탔지? 카톡 보면 꼭 답장해 꼭!

뭐지? 다들 왜 이러는 거지?
나는 동행들 및 가족들이 보낸 카톡을 천천히 확인했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가 캡쳐해서 보낸 기사를 클릭했다.

2016년 3월 31일. 북인도 꼴까따 고가도로 붕괴.
22명 사망. 75명 부상. 100여 명 매몰.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반나절만 지체했다면 그 다리 위에, 혹은 그 붕괴된 철근 아래에 내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겪은 기이한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출발 전에 꾸었던 저승 꿈, 굿을 하는 내내 뽑았던 빨간색 깃발, 그리고 두 번의 독한 가위와 누군가의 다리, 딱 반나절 차로 피한 마지막 날의 사고. 생각해보니, 이 모든 상황들이 어느 것 하나 소름 돋지 않는 것이 없었다. 나는 진정, 인도에서 목숨을 잃을 운명이었던 걸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보살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이미 사고 소식을 접한 보살 이모는, 내게 그 꿈속에서 만난 버스 운전사에게 평생 감사하며 살라고 하셨다. 그 운전사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 버스를 탄 채 쭉 저승행 고속도로를 건넜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 남자가 덕분에, 내가 지금 좀 더 살고 있는 거라고.

지금은 스리랑카의 어느 산기슭.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을 보내고 있자니, 작년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며 겪었던 기이한 일들이 하나둘 떠올라 그간 주변 지인들만 알고 있었던 이 이야기를 일기장에 끄적여본다.

2016년 2월. 내가 꾼 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말 나는 그 운전기사 덕분에 죽음을 피했던 것일까. 만일 그게 맞다면, 나는 그 기사에게 어떤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해야 할까. 아마 정황상 죽을 때까진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사람이겠지만, 혹시라도, 어쩌다 꿈속에서 슬쩍이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 날 버스에서 밀어내 줘서 참 고마웠다고. 나, 당신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 이렇게 새로운 여행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덧)
- 제가 직접 겪은 실화입니다. 안믿으셔도 상관은 없으나, 과거 회상하듯 털어낸 솔직한 이야기에 '거짓말 아니냐' 의심하는 분이 있으실까 싶어 관련 사진들 몇 개 첨부합니다.

- 원래 제가 꿈이 좀 잘 맞는 편이에요. 집안의 모든 길흉화복과 관련된 꿈은 보통 제가 꾸는 편이라 이때도 특히 더 조심했던 것 같습니다. 시시때때로 굿을 여는 그런 맹신도(?)는 아니니 오해말아주세요. 사실, 저는 모태 천주교 신자입니다(소근소근).

- 여행을 앞두고 기이한 꿈을 꾸었다면, 대수롭잖게 여기지 마시고 인터넷으로라도 해몽 한 번 해볼 것을 추천합니다. 미신을 안믿으신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맘에 걸리는게 있다면 굵은 소금을 살짝 챙겨가실 것을 조언드려요. 또다른 방법으로는 질 좋은 명주실을 사다 집안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놓고 여행을 떠나는 방법도 있습니다.

- 만일 꿈 속에서 비행기를 제외한 그 어떤 교통수단을 타셨거든, 최선을 다해 거기서 내리도록 하세요. 그리고 누군가와 동전을 주고 받는 꿈은 대체로 흉몽입니다. 만일 꿈을 꾸는 도중 '아, 이거 꿈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때면, 최대한 동전을 보지도, 만지지도 마시고 그대로 눈을 감으실것을 조언드립니다. 모두,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길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