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로 우울증으로 살다가 이겨내시분 있나요?

ㅎㅎ2017.05.25
조회469

안녕하세요. 한참 예쁘고 꽃피울 나이라는 스무살에 한 여자입니다.
제목 그대로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왕따로 생긴 우울증을 이겨낸 사례를 듣고 싶어요. 또한 제 얘기를 하고 싶어 이곳에 익명이란 힘을 빌려 이야기할게요.

제 이야기는 초등학교 때 첫 시작인것 같습니다.
그전에 저는 이혼가정입니다. 제가 두살 때 이혼하셨다고 했고 오빠가 있었지만 오빤 저보다 나이가 있어 저하나만 엄마가 데리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제 어린시절은 유치원에 원장선생님 그리고 한여자분? 선생님인지는 잘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한오빠와 한언니가 있었는데 저는 거기서 먹고자랐고 한달에 한번쯤 엄마가 찾아와서 얼굴을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자라다 초등학교 들어갈때쯤 엄마가 절 데리고 나왔고 한 남성분과 엄마는 함께였어요 네 남자친구죠 같이 집을 갔고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었어요 행복할줄 알았는데 그리 오래가지 못해 엄마 남자친구에 폭행 그렇게 다 파탄났어요. 자세히 아는것도 기억나는것도 이게 다에요. 그런상태로 초등학교를 갔다는거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제 초등학교시절에 우리엄마는 너무 바빴다는거.. 내가 일어나면 우리엄마는 자고 있었고 내가 학교갔다오면 엄마는 나가고 없었어요. 내가 잠드는 순간까지 들어오시지 않았어요. 밥한끼 먹지도 못한채 학교에 갔어야했고 집엔 따듯한 물 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말이 길어졌는데 그냥 씻지못한변명을 하고 싶었나봐요. 초등학교때 저는 거의 안씻었어요. 더럽죠 누가봐도 제 주변에 오려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더럽다며 비웃음 거리였어요 그냥 그랬어요 전학가고 싶단 생각은 잘안해봤던거 같아요 그냥 그랬는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비웃음은 조롱으로 조롱은 괴롭힘으로 가면 갈수록 심했어요. 이얘기를 들어줄 엄마는 내 옆에 없었어요 그런 와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을 때 슬펐는데 할아버지 이름앞에 있던 집 ㅇㅊ(지역)에 한 촌동네 같은 곳에 반지하 집 아무도 들어오질 않아서 이사가게 됬어요. 그때 저 진짜 좋았어요 그곳에서 벗어난다는게 그렇게 초등학교4학년에 끝 봄방학에 이사와 초등학교5학년에 시작을 첫 출발 했는데 이미 다들 너무 친하더라구여 그 어느곳에도 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은따라는걸 당했어요.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다녔고 이년은 나름 금방지나갔고 중학교에 갔는데 대부분이 모르는 애들이라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3월달 잘 보내다가 같이다니는 애들에게 보이지않는 벽이 생겼었어요. 그러다가 차츰 멀어지고 나중에 들어보니 걸ㄹ라는 소문만 있었죠. 소문은 제가 다 물어보고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빠르게 들려왔어요. 초등학교때부터 있던 소문이였고 저는 그저 원조교제를 하는 아이,몸을 파는 아이 였어요. 해명하지 않았어요. 난 아니니까 거짓이니까 아니라고 해줄거라 믿었어요. 근데 가면 갈수록 심해졌고 내가 지나가면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넓은 복도를 혼자 지나가도 어깨를 치고 다녔고 그래놓고 옷더러워졌다면서 지나가고 깨끗하게 씻어도 이럴 수 있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뭐 초등학교도 참았는데 하면서 참았어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때리고 욕하고 참을 수 있는게 없었어요. 학교 폭력신고도 하고 했는데 출석정지 8일, 교내봉사 그리고 저에게 오는건 보복 몇번을 신고했는데 안되서 경찰서갔는데 경찰이 그런건 고소해야된다면서 확실히처벌해준다더니 가해자학생을 만나고 사과받고 끝내라고 학생들끼리 일을 뭘 크게 가냐고 사과받고 끝났어요 그리고 보이지않는 보복이 있었고 어느덧 날에는 소문때문에 성폭행을 당해야했어요. 성폭행 가해자들은 엄마가 해준 합의로 끝났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끝나있었어요.그걸 알았을 때 저는 모든걸 포기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우울증이 오더라구여 아무희망이 없을때 처음으로 손목을 그엇는데 엄마그리고 새아빠한테 죽도록 맞았어요. 아 왜 엄마랑 사는데 얘기안했냐고 한다면 얘기했어요. 다만 무시하라고 하시더라구여 그렇게 맞고 몇달은 다시 그을 생각을 못했어요.
투신자살을 여러번 시도 했지만 위에 올라가 바라본 내 발밑세상은 어찌나 아찔하고 무서웠는지 한발 더 나아가기 힘들어 주저 앉아 울었어요 내가 겪고 있는 일보다 내 발 밑세상이 무섭다며 엉엉울었어요 그냥 내가 죽을 용기도 없는 사람 같아서 그날 이후로 먹으면 토해서 병원에 입원했고 이유는 찾을 수 없었어요. 이때 엄마가 건네주었던건 임신테스트기였고 더 살아있을 의미가 없는거 같아 미친듯이 손목을 긋고 병원옥상에 앉아있다가 무슨 생각이였는지 모르지만 간호사에게 갔고 응급실로 가서 꼬맷어요. 그렇게 처음 우울증 판단을 받아봤고 약도 상담도 받기시작했고 죽을거 같았던 중학교도 끝나고 아주멀리 고등학교갔는데 소문은 끝없이 따라왔고 전 그냥 미칠거 같았어요
아뇨 미쳤어요. 학교만 가면 숨을 쉴수도 없었고 쳐다보는 눈빛은 칼날이 스치는것 마냥 아팠어요 집에 혼자있어도 욕하는 소리는 들렸어요. 다시 하지않을것만 같았던 자해도 다시 시작했고 엄마도 새아빠도 왜그러냐며 때렸어요. 그냥 자퇴했어요 대응할 힘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이렇게 스무살에 왔는데 웃긴건 전 아직 우울증 약을 먹어요. 약이 없으면 잠을 못자고 아직도 숨을 못쉴때가 많아요 눈을 감고 잠들면 악몽을 꿔요. 다시 중학교때로 돌아가는
그래도 나름 잘 살아보고 싶어서 피팅모델했었는데 가해자애들이 아무렇지 않게 연락왔었어요. 전 너무 무서운데 잘사냐면서 번호도 바꾸고 했는데 sns통해서 오길래 탈퇴했어요 아직은 걔네와 마주앉을 힘이 없어요. 전 모든게 두렵고 무서워요. 언제가는 이겨낼 수 있을까요? 걔네와 마주앉아서 얘기하는걸 바라는게 아니에요 그냥 "연락하지마" 이 한마디라도 할 수 있을까요? 도망가는 삶이 아니라 그자리에만 이라도 서있을 수 있는 힘이 생길까요? 희망이 있을지 전 모르겠어요 아직 사람들에 시선은 너무 무서워요..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죠? 자꾸만 나쁜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그때 눈감고 뛰어내렸다면,손목을 더 제대로 그엇다면,간호사에게 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지금은 더 확실하게 할텐데 이생각이 머릿속에서 벗어나질 않아요 어떻게 견뎌내야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