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3살의 남성입니다
그동안 많은 커뮤니티를 눈으로만 _다가
너무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주변 친구들도 좋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리고 굳이 판을 선택한 이유는 이 일은
남자들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버티고 계신 여자분들이 더 잘 이해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에 올립니다
저는 밝게 사는 제 성격이 싫어요
아니, 밝게 보이려고 연기하는 제가 싫어요
저는 주변인들에게 '그 애 어때?' 라는 식의 질문이 들어오면
밝고, 성실하고, 착하다의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다 연기하는 겁니다.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저는 제 자신의 감정의 입력값이
마치 '밝음', '해맑음', '행복' 이런 걸로만 입력 된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런 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저는 아홉살 때 어머니께서 가출을 하시고 알콜의존성이 다분했던 아버지와 누나 셋과 살아왔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 자존감을 갉아먹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애증의 존재이다. 그 말이 정말 저한테 해당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잃어버린 것도 내 책임.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것도 내 책임.
모든 일의 발생 원인을 모두 제 탓으로 돌렸고
저는 어린 나이에 그 모든 것에 수긍하고 제가 마치 죄인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저희 누나들 정말 존경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제가 누나들의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누나들은 공부면 공부, 엄마가 없어서 집안일의 몫을 누나들은 어렸을 때부터 척척 했고, 대인 관계 등 모두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누나들과 저는 서로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딸부잣집에 늦둥이 막내 아들인 저는 누나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건 했고 어떻게 보면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특권을 많이 쥐었습니다. 단순히 '아들'이라는 이유로 말이죠 누나들은 그런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포기하는 법을 배웠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저보다 뭐든지 잘하는 누나들이 자랑스러웠지만 사춘기가 오면서 누나들과 끊임없이 비교를 당했습니다 예를 몇가지 들자면
'누나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 해서 학비 벌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이 진리인 것 같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때도요
'누나들은 사춘기도 얌전히 잘 지나갔는데 너만 왜 이렇게 유난이냐'
= 저는 그 당시 정말 제 사춘기가 유독 유난스러워서 누나들을 괴롭게 하는 것 같아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누나들은 누나들 나름대로 사춘기를 보냈고 그게 집에서 표현이 안 됐을 뿐이었습니다.
'누나들은 알아서 다 잘하는데 너는 왜 야물딱지지 못하냐'
= 글쎄요, 이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정도지 실제로는 더 많은 비교를 당하고 살았고 그 비교 안에서 저는 끊임없이 자기 혐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더욱 큰 짐이 되었던 거는
'너는 엄마가 없으니까 늘 의젓하고 어른처럼 행동해야 해.'
아홉살 때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 늘 들어왔던 소리였습니다. 저는 착실하게 그 말을 이행했죠. 그렇게 제 성격은 참고 참고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또래 보다는 애어른스러운 면이 많아 보이는 성격을 비춰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속은 한없이 뭉개지고 곪고 터져도 저는 내색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고 중학교 때 저는 3년 내내 왕따를 당했습니다. 가해자들이 그러죠 '쟤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당하는 애야.' 저는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열불이 터지고 당장이라도 가해자들을 찾아가서 목이라도 졸라버리고 싶습니다. 대체 내게 왜 그랬느냐고, 그렇게 하는 게 재밌었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머리 위로 물을 뿌리고, 손이 심심하다고 나를 샌드백 삼아 때리고, 목에 티비 전선을 감아 기절놀이를 시키고... 저는 중학교 앨범을 칼로 난도질하고 불태워버렸습니다. 우울증 치료도 9개월 정도 받고 저는 저희 지역 내에 있는 학교를 도저히 다닐 생각이 나질 않아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다녔습니다. 무척 편하더라거요. 무척 행복했고요.
그렇지만 유년기와 사춘기 내내 성립 된 폭언들과 자기혐오증, 우울감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일 때 가출한 엄마랑 연락이 되고 저랑 엄마는 떨어진 8년을 보상받듯이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인이 되고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일을 하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군에 입대 전 날 저는 아버지랑 말다툼을 하고 아버지는 강원도 철원까지 저를 혼자 입대 시켰습니다. 말다툼을 한 이유는 제가 휴학 기간동안 돈을 벌어서 저축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사실 저도 모으려고 200만원 가량을 저축했다가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제대로 여행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제 삶이 너무 서러워서 아버지 몰래 저축 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제 삶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걸로 빈정대시더라고요...
내 삶이 실패한 인생인 것처럼 그깟 돈이 뭐라고...
입대 하러 올라가는 날 저축 안 했다고 술을 거하게 마시고 들어와서는 나한테 온갖 모욕을 주고 나라 지키러 가는 아들 배웅 한 번을 안 해주나 이런 생각에 혼자 많이도 울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제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제가 가면을 쓰는 것을 더 견고하게 만든 일인 것 같습니다. 일병 때 저는 동료 병사도 아닌 의무병한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정말 저항을 할 수 없더라고요. 미디어나 매체에서 다루는 성폭행에서 피해자를 연기하는 배우가 마냥 가만히 망부석처럼 굳어서 눈물만 그렁그렁 맺는 경우가 간혹 보이면 '왜 저렇게 당하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제 상황이 되니 온몸이 얼음이 된 것 같고 사고회로가 정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성폭행을 당하고 매독에 감염 됐습니다. 매독 감염 직후 초기에 잡았기 때문에 금방 회복할 수 있었으나 성폭행 후 검진을 받으러 갈 때 저는 채혈을 위해 주사기를 꽂으면 혈관이 터지고 온몸은 식은 땀을 흘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힘들었던 건 같은 부대원들 사이에서의 수근거림이었습니다. 뒤에서 수근대면서 '쟤가 걔래.', '쟤는 자살 안 한대?' 등의 모욕적인 언행은 물론 제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의가사 전역을 하려고 했고 그 말이 돌면서 가끔은 관물대에 '몸 팔아서 전역하는 새끼.', '__' 라는 쪽지도 가끔 심심치 않게 들어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군 생활 9개월만에 의가사 제대 판정을 받고 현재 사회 복무 요원으로 복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제 자신이 용합니다 4개월 동안 온갖 모욕과 치욕을 받고도 밝게 웃으면서 다니고 철저히 속에서 울부짖는 저를 가두려고 부던히도 노력을 했죠. 가장 가까운 아버지는 저에게 합의를 하는 게 어떻냐고도 묻더라고요 그 이유요? 가해자가 불쌍하대요... 그 새끼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는 걸 재판 때 알게 됐거든요.
가면을 쓰는 이유, 그건 아마도 버림 받고 미움 받는 게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웃고, 어른스럽게 굴고, 성실하게 일하고... 그렇지만 요 근래에는 그런 제가 역겹고 꼴도 보기 싫습니다. 그냥 어느순간 내가 본체가 아니라 내 가면이 본체고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제가 거슬리는 존재 같이 느껴질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감정만 아니면 더 잘 연기 할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인 거죠...
이렇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성공하는 스토리는
동화든 자기 계발서든 드라마든 많은데 저는 그런 성공담의 주인공은 아닌가봐요 정말 끝도 없는 어둠을 계속 달리는 기분입니다.
가면 쓰고 사는 제 자신이 너무 꼴도 보기 싫어요
그동안 많은 커뮤니티를 눈으로만 _다가
너무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주변 친구들도 좋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그리고 굳이 판을 선택한 이유는 이 일은
남자들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버티고 계신 여자분들이 더 잘 이해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에 올립니다
저는 밝게 사는 제 성격이 싫어요
아니, 밝게 보이려고 연기하는 제가 싫어요
저는 주변인들에게 '그 애 어때?' 라는 식의 질문이 들어오면
밝고, 성실하고, 착하다의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다 연기하는 겁니다.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면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저는 제 자신의 감정의 입력값이
마치 '밝음', '해맑음', '행복' 이런 걸로만 입력 된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런 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저는 아홉살 때 어머니께서 가출을 하시고 알콜의존성이 다분했던 아버지와 누나 셋과 살아왔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 자존감을 갉아먹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애증의 존재이다. 그 말이 정말 저한테 해당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잃어버린 것도 내 책임.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것도 내 책임.
모든 일의 발생 원인을 모두 제 탓으로 돌렸고
저는 어린 나이에 그 모든 것에 수긍하고 제가 마치 죄인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저희 누나들 정말 존경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제가 누나들의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누나들은 공부면 공부, 엄마가 없어서 집안일의 몫을 누나들은 어렸을 때부터 척척 했고, 대인 관계 등 모두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누나들과 저는 서로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딸부잣집에 늦둥이 막내 아들인 저는 누나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건 했고 어떻게 보면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특권을 많이 쥐었습니다. 단순히 '아들'이라는 이유로 말이죠 누나들은 그런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포기하는 법을 배웠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저보다 뭐든지 잘하는 누나들이 자랑스러웠지만 사춘기가 오면서 누나들과 끊임없이 비교를 당했습니다 예를 몇가지 들자면
'누나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 해서 학비 벌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이 진리인 것 같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때도요
'누나들은 사춘기도 얌전히 잘 지나갔는데 너만 왜 이렇게 유난이냐'
= 저는 그 당시 정말 제 사춘기가 유독 유난스러워서 누나들을 괴롭게 하는 것 같아서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누나들은 누나들 나름대로 사춘기를 보냈고 그게 집에서 표현이 안 됐을 뿐이었습니다.
'누나들은 알아서 다 잘하는데 너는 왜 야물딱지지 못하냐'
= 글쎄요, 이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정도지 실제로는 더 많은 비교를 당하고 살았고 그 비교 안에서 저는 끊임없이 자기 혐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더욱 큰 짐이 되었던 거는
'너는 엄마가 없으니까 늘 의젓하고 어른처럼 행동해야 해.'
아홉살 때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 늘 들어왔던 소리였습니다. 저는 착실하게 그 말을 이행했죠. 그렇게 제 성격은 참고 참고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또래 보다는 애어른스러운 면이 많아 보이는 성격을 비춰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속은 한없이 뭉개지고 곪고 터져도 저는 내색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고 중학교 때 저는 3년 내내 왕따를 당했습니다. 가해자들이 그러죠 '쟤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당하는 애야.' 저는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열불이 터지고 당장이라도 가해자들을 찾아가서 목이라도 졸라버리고 싶습니다. 대체 내게 왜 그랬느냐고, 그렇게 하는 게 재밌었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머리 위로 물을 뿌리고, 손이 심심하다고 나를 샌드백 삼아 때리고, 목에 티비 전선을 감아 기절놀이를 시키고... 저는 중학교 앨범을 칼로 난도질하고 불태워버렸습니다. 우울증 치료도 9개월 정도 받고 저는 저희 지역 내에 있는 학교를 도저히 다닐 생각이 나질 않아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다녔습니다. 무척 편하더라거요. 무척 행복했고요.
그렇지만 유년기와 사춘기 내내 성립 된 폭언들과 자기혐오증, 우울감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일 때 가출한 엄마랑 연락이 되고 저랑 엄마는 떨어진 8년을 보상받듯이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인이 되고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일을 하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군에 입대 전 날 저는 아버지랑 말다툼을 하고 아버지는 강원도 철원까지 저를 혼자 입대 시켰습니다. 말다툼을 한 이유는 제가 휴학 기간동안 돈을 벌어서 저축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사실 저도 모으려고 200만원 가량을 저축했다가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제대로 여행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제 삶이 너무 서러워서 아버지 몰래 저축 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냥 제 삶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걸로 빈정대시더라고요...
내 삶이 실패한 인생인 것처럼 그깟 돈이 뭐라고...
입대 하러 올라가는 날 저축 안 했다고 술을 거하게 마시고 들어와서는 나한테 온갖 모욕을 주고 나라 지키러 가는 아들 배웅 한 번을 안 해주나 이런 생각에 혼자 많이도 울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제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제가 가면을 쓰는 것을 더 견고하게 만든 일인 것 같습니다. 일병 때 저는 동료 병사도 아닌 의무병한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정말 저항을 할 수 없더라고요. 미디어나 매체에서 다루는 성폭행에서 피해자를 연기하는 배우가 마냥 가만히 망부석처럼 굳어서 눈물만 그렁그렁 맺는 경우가 간혹 보이면 '왜 저렇게 당하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제 상황이 되니 온몸이 얼음이 된 것 같고 사고회로가 정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성폭행을 당하고 매독에 감염 됐습니다. 매독 감염 직후 초기에 잡았기 때문에 금방 회복할 수 있었으나 성폭행 후 검진을 받으러 갈 때 저는 채혈을 위해 주사기를 꽂으면 혈관이 터지고 온몸은 식은 땀을 흘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힘들었던 건 같은 부대원들 사이에서의 수근거림이었습니다. 뒤에서 수근대면서 '쟤가 걔래.', '쟤는 자살 안 한대?' 등의 모욕적인 언행은 물론 제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의가사 전역을 하려고 했고 그 말이 돌면서 가끔은 관물대에 '몸 팔아서 전역하는 새끼.', '__' 라는 쪽지도 가끔 심심치 않게 들어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군 생활 9개월만에 의가사 제대 판정을 받고 현재 사회 복무 요원으로 복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제 자신이 용합니다 4개월 동안 온갖 모욕과 치욕을 받고도 밝게 웃으면서 다니고 철저히 속에서 울부짖는 저를 가두려고 부던히도 노력을 했죠. 가장 가까운 아버지는 저에게 합의를 하는 게 어떻냐고도 묻더라고요 그 이유요? 가해자가 불쌍하대요... 그 새끼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는 걸 재판 때 알게 됐거든요.
가면을 쓰는 이유, 그건 아마도 버림 받고 미움 받는 게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웃고, 어른스럽게 굴고, 성실하게 일하고... 그렇지만 요 근래에는 그런 제가 역겹고 꼴도 보기 싫습니다. 그냥 어느순간 내가 본체가 아니라 내 가면이 본체고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제가 거슬리는 존재 같이 느껴질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감정만 아니면 더 잘 연기 할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인 거죠...
이렇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성공하는 스토리는
동화든 자기 계발서든 드라마든 많은데 저는 그런 성공담의 주인공은 아닌가봐요 정말 끝도 없는 어둠을 계속 달리는 기분입니다.
이제 더는
밝게 살고 싶지 않은데
저는 또 다시 내일 다른 가면을 또 쓰겠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