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빵 집에 한 청년이 매일 와서 식빵을 사 가지고 갔습니다. 그 청년은 건강이 안 좋은지 얼굴이 늘 창백했고 가난해서인지 항상 싼 식빵만 사 갔습니다. 그러던 중 빵가게 여주인은 매일 오는 그 청년을 기억하게 되었고 허약해 보이는 그 청년이 영양가 없는 싼 빵만 사 먹는 것이 측은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빵에 버터를 듬뿍 넣어서 그 청년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 청년은 빵가게에 와서 여주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다가 마침내는 좌절한 표정으로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도시 설계 전에 응모하기 위한 설계도의 마무리 손질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계도의 지우개로 사용하기 위해 식빵을 사 갔는데, 이제 그 빵 때문에 설계도를 다 망쳤다는 것입니다. 여주인은 정말 순수한 사랑으로 그 청년을 도와주고 싶어서 자기 돈을 들여 버터를 넣어 주었지만 결국 그 청년에게 엄청난 손해만 끼치게 된 것입니다. 빵집 여주인은 청년이 무엇 때문에 빵을 사 가는지 재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기 생각만 가지고 사랑을 표현한 것이 결국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무지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무지하면 잘못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주인에 관해 무지한 나머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크게 낭패를 본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성경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는 오해하기 쉬운 몇 가지가 구절이 있어 잘못해석하고 엉뚱하게 설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구절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비유의 중심주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를 하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마태복음25장 1절에 기록된 대로 “천국은 마치” 라는 단어에 해답이 있습니다. 바로 천국 곧 하나님 나라가 중심주제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비유의 중심 주제를 충성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충성이라면 이 충성은 어느 대통령이나 회사상관에게 바치는 충성이 아니며 더더욱 남편에게 바치는 충성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로지 천국을 위하여 바치는 충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제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됩니다. 특별히 이 달란트 비유에는 돈, 분배, 노력, 결과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여러 방면에서 쓰여 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의 내용이 회사원이나 종업원의 충성을 강요하여 사업 실적이나 효과를 올리고자하는 데 쓰여 질 성격의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천국이요, 그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오늘, 현재,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말씀은 주인이 그 종들에게 소유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에 보면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세 명의 종을 불러 자기의 소유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종들은 본래부터 자기소유가 없습니다. 주인이 맡김으로 이제는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사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맡은 바를 가지고 산다는 청지기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건강과 생명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은 주인이신 주님께서 잠간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서1장 21절에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 이다 하고” 욥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거두시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자녀, 나의 재산, 나의 재능, 나의 명예, 나의 지식, 나의 직장. 이 모두가 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생각해야 할 말씀은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입니다. 흔히들 T. V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을 가리켜 탤런트라고 부릅니다.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달란트는 탈란톤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뜻은 금과 은의 화폐 단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내적이나 외적 재능으로 그 뜻이 바뀌다보니 탤런트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달란트(talent)라는 말은 영어의 의미에서 보면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재주라는 의미인데, 특별한 재능이나 특별한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금, 은 화폐의 단위도 되고 때로는 중량의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에 나타난 달란트는 돈의 단위 중에서도 가장 높은 금화의 단위입니다. 우리가 달란트, 달란트, 하면서도 실제 그 가치가 얼마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에서 달란트 항목을 찾아보니 한 달란트는 34.272Kg입니다. 그리고 1Kg은 266.666돈입니다. 그러면 요즘 금 한 돈을 50,000원이라고 본다면 금 한 달란트의 가치는 요즈음 우리 돈으로 34.272 X 266.666 X 50,000원 = 456,958,857원입니다.
그렇다면 크게 말하여 그 큰 부자 주인은 각각의 종들에게 그 재능대로 25억, 10억, 5억의 돈을 맡겼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제 우리가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찾아 함께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우선 주인은 세 명의 종들을 불러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 그리고 마지막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해서 갑절로 소득을 얻어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 자본을 이용해서 사업하여 다시 두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아예 일하지 않고 그 한 달란트를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와서 보고 드립니다.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똑같이 두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음을 보고하자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똑 같이 성경에 보면 한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칭찬을 해 주십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달란트 받은 종 차례입니다.
그는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와서 보고를 하는데 한 달란트만 가지고 와서 자신이 본전만 가지고 올 수밖에 없는 견해를 늘어놓습니다. 24절을 보시면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 종은 먼저 주인에 대해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굳다"는 것으로 직역된 '스크레로스' 라는 헬라어는 여러 가지 뜻으로 번역될 수가 있습니다. 굳은 상태 외에 완악한, 혹독한, 엄한, 잔인한, 고집 센 등의 많은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종은 주인을 완악하고 고집이 센 잔인한 수전노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무지에서 오는 자기 생각입니다. 그래서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말합니다. 내가 알았다는 것은 자기 생각입니다. 한 마디로 내가 복음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 아닙니다. 수전노가 아니란 말입니다. 주인이 한일을 보십시오! 주인이 수전노였다면 한 달란트 받은 자의 것을 빼앗아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또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남긴 것을 모두 주인이 가져야 합니다만 그러지 않습니다. 남긴 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은 것을 보면 주인은 도리어 주고 베풀며 사는 훌륭한 분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수전노요 혹독하고 엄한 분으로 알고 있다는 것은 자기 생각 곧 내가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두려워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판단에서, 자기 마음대로 주인을 무서워했습니다. 주인을 폭군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깊은 뜻과 맡겨준 신뢰와 사랑에는 무감각한 채,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 곧 내가 생각하기에 하는 내가복음이 주인을 비정한 수전노와 폭군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이 종이 주인을 두려워 한 것은 자신이 장사라도 해서 일을 하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큰 벌이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적어도 주인이 굳은 사람이라 생각했으면 주인에게라도 미리 말씀드려 이 한 달란트를 가지고 혹시 제가 장사를 해서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요? 하고 묻던지 아니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를 여쭈어 보고 행동을 했더라면 좋을뻔하였습니다. 이 종은 자기 생각대로 주인은 굳은 사람이고 수전노고 내가 혹시라도 이 돈을 가지고 장사하다가 밑천을 다 날리는 날에는 나는 끝장이다. 그러니 이것을 땅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오면 원금을 가져다 드리면 되겠지 하는 자기 생각에 빠져서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건 네 생각이고! 입니다. 그것은 자기 생각이지 주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그건 네 생각이고라고 책망 받은 사람 한분을 사무엘상15장7-11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왕 사울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되 완전히 몰살시키라고 그리고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다 없애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멜렉 왕 아각을 살려두고 아말렉 사람들의 가축 중에 기름진 양과 소 그리고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겨두고 가치 없고 쓸모없는 것들만 불사르고 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 삼으신 것을 한탄하십니다. 사무엘을 이것을 알고 밤새워 부르짖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 사무엘이 찾아오자 사울은 변명을 합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기름지고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두었다고 그때 사무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음을 왕은 모르십니까? 한마디로 그건 네 생각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 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무지하여 주인의 뜻은 생각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참으로 하나님이 벌이나 내리시고 벼락이나 치시는 분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자기가 잘해서 살았다는 것이란 말입니까? 벌을 내리시고 벼락을 치신다면 벌써 치셨고, 이미 내 인생은 끝나고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은혜로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은혜로 살 것입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인은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사업하다가 완전히 실패하였다고 합시다. 그리고 주인 앞에 나가 이러 저러해서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하였다면 그 주인이 무엇이라고 하였겠습니까? 아마도 그 주인은 오, 그래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하였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겠느냐? 사업을 하다보면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는 법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거늘, 낙심 말고 다시 한 번 해보아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제 좁은 소견대로 주인을 평가하였다는 것 때문에 주인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이 종은 다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주면서 자신에게는 한 달란트밖에 안 주었다는 형평성에서부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공평성 곧 형평성, 평등하지 않음을 생각하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였습니다. 문제는"각각 그 재능대로"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어진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가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다른 종에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마지막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누구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누구에게는 두 달란트 더 나아가 누구에게는 한 달란트 밖에 안주냐? 하고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공평의 길인가 하는 것은 꼭 같이 나눈다는 의미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무조건 같아지기를 바라며 그래야 공평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것은 공산당 식 공평이지 참다운 공평은 아닙니다. 진정한 공평이란 그 능력에 따라, 재능이 많은 자에게는 더 주고 재능이 적은 자에게 적게 주는 것이 공평인 것입니다. 주인은 세 명의 종들에게 이미 주어진 경험들과 능력의 한계와 수준을 알고 그 재능대로 각각 다르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공평 안에 공평성입니다. 다 사도가 아니요, 다 목사도 아니며, 다 교사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두는 각각 하나같이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이며 특별히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재능의 한계가 있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있는데 무조건 아무 것이나 주어진다고 능사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재능에 맞게 달란트를 주셨으니, 이 얼마나 중요하며 참으로 공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국교회에는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영혼이 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송명희 시인은 1963년 서울에서 출생한 날부터 뇌성마비 장애를 가졌습니다. 11세에 독학으로 한글을 배우고 17세에 하나님을 만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약 4년간 하루 5시간씩 기도하며 성경 30여 번 통독으로 주님의 지도하심을 받아 시를 쓰게 되었고, 1985년 5월 시집 2권과 1권의 간증 수기를 출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권의 저서와 작사 찬양 100여곡을 발표하였고, 교회, 학교, 방송출연 등 1,500여회 집회 활동과 기독신문 칼럼을 11년간 연재 집필하였습니다.
다음의 글은 송명희 시인이 쓴 “나는 황제보다 하인이 부럽습니다” 라는 책에 있는 글입니다.
이십대가 될 무렵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되어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동갑내기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나는 늘 방안에서 기도생활만 하는 초라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내 자신을 한탄하며 절규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자유롭지 못한 몸,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난 정말 밥만 축내는 사람인가요? 땅만 버리는 무화가 나무처럼 무익한 종인가요?”
그런 나에게 주님은 기름을 부으시며 나를 쓰겠다고 하셨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었고 주님을 시를 불러주셨다. “말하는 대로 써라!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는 왼손에 토막 연필을 쥐고 엎드려져서 울면서 써 내려갔다.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폭발하는 울음을 발산하며 소리쳤다.
“아니요! 난 못 쓰겠어요! 하나도 공평해 보이지 않아요! 뭐가 공평해요?
내겐 아무것도 없잖아요!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아요!”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써라!”
치열한 공방전이 반복되고 결국 하나님의 고집이 승리하셨다. 그런 형태로 시를 썼다. 단어 하나라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었고 내 마음대로 하더라도 다시 지우고 불러 주시는 대로 모은 것이 몇 권의 노트가 되어갔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송명희 시인은 1997년 말부터 무리한 활동으로 목 디스크를 얻어 전신 마비가 되었고 지금도 온 몸의 통증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여전히 ‘공평하신 하나님’ 입니다.
여러분도 송명희 시인처럼 ‘공평하신 하나님’ 이라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남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란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다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하나님의 공평을 시인하지 않고서는 충성하는 일의 시작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시인하는 겸손! 그것이 있고야 충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 종에게서 가장 큰 결함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필요 없는 것, 있으나마나한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좋은 재능과 지혜도 묻어두었습니다. 세월이 가고 나의 모습은 변하는데 그대로 묻어두었다가 어디에 쓰겠다는 말입니까?
서울대학을 나오고 동서고금의 모든 책들을 읽고 섭렵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의 아파트에는 책으로 가득 찰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그것도 모자라 도서관에 파 묻혀 살았습니다. 그는 입만 열면 어디에 무엇이 있고 역사적인 사건을 줄줄이 뀌기도 하며 성경을 비롯한 동서양의 모든 종교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5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관절염과 위장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다가 죽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는 세상 지식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높은 지식을 소유한 분이었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그가 소유한 지식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바른 길을 제시하거나, 한권의 책을 써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과 변화를 가져다주는 일 없이 그저 여러 책을 읽고 지식의 세계만 넓혔을 뿐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그가 받은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간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인 인생을 살다간 한 사람을 저는 그 청년 바보 의사」 라는 책에서 찾을수 있었습니다. 안 수현이란 크리스천 의사의 이야기를 기록한 잭인데 저는 읽는 내내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만 큼 감동스런 인생을 살다간 청년의사 이야기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과 전문의이자 크리스천인 故안수현씨는 삶의 1순위에 예배와 말씀 그리고 그것들의 실천을 두고, 2순위에 학업과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획득을 둔, 다수의 사람들과는 반대의 삶을 살아온 청년입니다. 말씀듣기와 성경읽기에 익숙하신 분들에게는 삶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책입니다. 故 안수현 의사는 의학도로서 가장 바쁘고 피곤하다던, 본과 3학년 시절에도, 역시.. 하나님이, 삶의 최우선이었습니다. 그의 주머니와 가방에는.. 수많은 신앙서적들과, 찬양 테이프가 들어 있었고, 그는 늘 병상의 환자를 만나거나.. 힘겨운 누군가를 만날 때면, 얼른 주머니에서 테이프와 책을 꺼내.. 복음과 함께 선물해 주곤 합니다. 소아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의 기댈 어깨가 되어 주며, 대화의 상대가 되곤 합니다. 돌아보는 환자가 아프다고 할 때.. 그저 약 한 알 오더 내려 주는 의사가 아니라,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 손이라도, 잡아 주며.. 어깨라도 다독이는 의사로, 하루가 분주한 분이었습니다. 병원의 궂은일 남이 꺼려하는 보직을 자원하며.. 소파에서 새우잠을 청하면서도, 환자들과 밤늦도록 기도하며.. 넋두리를 들어 주던, 바보 의사.. 언제나 양손에 먹을 것과 나눌 것을 들고, 짠~하고 나타나.. 사람들을 힘나게 했던, 베풂이 삶이던 바보 의사, 돌보던 환자가 임종하면.. 옷 갈아입고, 영안실 찾아가 함께 울어 주며, 장례식장에도 나타나..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었던 바보 의사..치료 받거나, 검사 받을 돈이 없다고.. 병원을 도망치듯 나서는, 극빈자들을 쫓아가 ..자신의 카드로, 검사 비 내주며.. 다정하고 친절하게, 치료를 해 주었던 바보 의사..퇴원한 환자의 생일날을 기억해 두었다가.. 케익 사들고 찾아가, 함께 기뻐하며 복음을 제시했던 바보의사, 여친이나 결혼보다는.. 환자에게 복음 전함이 우선이라며, 여친을 만들지 못한 채.. 외로운 양치기로 살았던 바보 의사, 환자의 아픔보다, 환자의 보호자와 가족들 간의 쓴 뿌리를 보듬으며, 가정의 회복과 하나 됨에.. 많은 시간과, 땀을 흘렸던 바보 의사..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으로 끌어안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도울 길을 찾아 다녔던 바보 의사..
살아생전에.. 남모르게, 헌혈을 300회나 할 정도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았던 바보 의사..청소 하시는 아주머니, 구두 닦는 아저씨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던 바보 의사, 죽을 래야 죽을 시간도 없던, 본과 시절에도 짬짬이 시간 만들어.. 찬양을 듣고, 주님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던 바보 의사. 어떤 불이익과, 손해가 있더라도 타협치 않으며.. 사람의[상사, 교수님, 선배] 평판보다, 하나님의 평가에 더 신경을 쓰던 바보 의사, 자기 몸, 돌볼 시간까지 쪼개어.. 한명의 환자라도 더 고치고, 살리고, 영혼 구원하려, 동분서주하던 바보 의사..자신의 불편과 불이익을.. 주를 위해 껴안으며, 힘들고 아픈 자들을 찾아 다녔던 바보 의사..응급실, 술주정뱅이 환자가, 하루 종일 굶었다는 소식에.. 컵라면 사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던 바보 의사..주치의 보다, 교수님 보다, 환자들은.. 이 바보 의사를 더 그리워했고 찾았단다.
결국.. 이렇게 살던 어느 날, 군의관으로 있으면서 병사들이 훈련할 때.. 군의관이라는 특혜로, 앰뷸런스에 있어도, 되지만..병사들과 함께, 삶을 나누어야.. 복음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병사들과 어울리며.. 풀밭에서 훈련 받던 중에, 유행성출혈열이라는 병을 얻어.. [긴급으로] 앰블러스에 수현 형제를 태워, 안암 고대 병원으로 후송하게 됩니다.
"빈 베드 하나, 부탁 한다"는 후배 의사의 부탁에, 고대 병원 응급실 수간호사[바보 의사에게 전도 받은]는.. "환자가 누구냐" 물었고, 후배 의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현 선배"라고 말할 때, 병원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그날 이후, 수현 형제[환자]에게 수혈 할, 혈소판을 구한다는 광고가 나가자.. 병원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수혈자들이 자원하여 몰려왔을 정도였다. 그 후.. 병세가 잠깐 호전되었으나, 그 이듬해 1월, 만 33세의 일기로.. 수현 형제에게.. 나눔과 사랑의 빚을 잔뜩 진, 후배 의사들에 의해..심폐소생술을 거쳐.. 사망 선고를 받고, 결혼식 같은 장례식을 통해.. 국립 현충원에 묻힘과 동시에, 하늘나라로 영광스럽게 입성하게 됩니다. 그의 장례식은 영락교회에서 한 경직목사님 이후 가장 많은 조문객이 찾았다는 군요, 수현 형제[바보 의사]가, 예수의 스티그마 곧 흔적을 남긴 것은 그의 별세이후에 나타납니다. 그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책을 출간했고. 흔적이란 이름으로 드라마도 만들었고 연극도 만들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그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했고 죽음이후에도 계속 남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 의하면 본전만 가지고는 못 가는 것이 천국입니다. 한 달란트이든 반 달란트이든 그 양의 많고 적음에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재능,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이익을 남기는 여부의 문제를 떠나 일하는 자체를 통하여 악한 종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충성할 때입니다. 시시하다고 생각되는 일이지만 충성해보세요. 그러면 큰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가능한 것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안하고,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무엇을 주시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일생 동안 "주세요" 만을 반복하다가 인생을 끝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혹시라도 땅에 묻힌 것이 없나를 살피며 이미 주신 은사를 더욱 개발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건강, 물질, 지식, 모든 은사를 가지고 충성하여 큰 것을 남겨 잘하였도다 착하고 층성된 종아 라는 칭찬을 듣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고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달란트비유 설교 올립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무지
마태복음 25장 14-30절
어느 빵 집에 한 청년이 매일 와서 식빵을 사 가지고 갔습니다. 그 청년은 건강이 안 좋은지 얼굴이 늘 창백했고 가난해서인지 항상 싼 식빵만 사 갔습니다. 그러던 중 빵가게 여주인은 매일 오는 그 청년을 기억하게 되었고 허약해 보이는 그 청년이 영양가 없는 싼 빵만 사 먹는 것이 측은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빵에 버터를 듬뿍 넣어서 그 청년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 청년은 빵가게에 와서 여주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다가 마침내는 좌절한 표정으로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도시 설계 전에 응모하기 위한 설계도의 마무리 손질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계도의 지우개로 사용하기 위해 식빵을 사 갔는데, 이제 그 빵 때문에 설계도를 다 망쳤다는 것입니다. 여주인은 정말 순수한 사랑으로 그 청년을 도와주고 싶어서 자기 돈을 들여 버터를 넣어 주었지만 결국 그 청년에게 엄청난 손해만 끼치게 된 것입니다. 빵집 여주인은 청년이 무엇 때문에 빵을 사 가는지 재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기 생각만 가지고 사랑을 표현한 것이 결국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무지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무지하면 잘못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주인에 관해 무지한 나머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크게 낭패를 본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성경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는 오해하기 쉬운 몇 가지가 구절이 있어 잘못해석하고 엉뚱하게 설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구절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비유의 중심주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를 하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마태복음25장 1절에 기록된 대로 “천국은 마치” 라는 단어에 해답이 있습니다. 바로 천국 곧 하나님 나라가 중심주제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비유의 중심 주제를 충성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충성이라면 이 충성은 어느 대통령이나 회사상관에게 바치는 충성이 아니며 더더욱 남편에게 바치는 충성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오로지 천국을 위하여 바치는 충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제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됩니다. 특별히 이 달란트 비유에는 돈, 분배, 노력, 결과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여러 방면에서 쓰여 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의 내용이 회사원이나 종업원의 충성을 강요하여 사업 실적이나 효과를 올리고자하는 데 쓰여 질 성격의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천국이요, 그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오늘, 현재,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말씀은 주인이 그 종들에게 소유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에 보면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세 명의 종을 불러 자기의 소유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종들은 본래부터 자기소유가 없습니다. 주인이 맡김으로 이제는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사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맡은 바를 가지고 산다는 청지기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건강과 생명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은 주인이신 주님께서 잠간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서1장 21절에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 이다 하고” 욥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거두시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자녀, 나의 재산, 나의 재능, 나의 명예, 나의 지식, 나의 직장. 이 모두가 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생각해야 할 말씀은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입니다. 흔히들 T. V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을 가리켜 탤런트라고 부릅니다.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달란트는 탈란톤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뜻은 금과 은의 화폐 단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내적이나 외적 재능으로 그 뜻이 바뀌다보니 탤런트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달란트(talent)라는 말은 영어의 의미에서 보면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재주라는 의미인데, 특별한 재능이나 특별한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금, 은 화폐의 단위도 되고 때로는 중량의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에 나타난 달란트는 돈의 단위 중에서도 가장 높은 금화의 단위입니다. 우리가 달란트, 달란트, 하면서도 실제 그 가치가 얼마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에서 달란트 항목을 찾아보니 한 달란트는 34.272Kg입니다. 그리고 1Kg은 266.666돈입니다. 그러면 요즘 금 한 돈을 50,000원이라고 본다면 금 한 달란트의 가치는 요즈음 우리 돈으로 34.272 X 266.666 X 50,000원 = 456,958,857원입니다.
그렇다면 크게 말하여 그 큰 부자 주인은 각각의 종들에게 그 재능대로 25억, 10억, 5억의 돈을 맡겼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제 우리가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찾아 함께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우선 주인은 세 명의 종들을 불러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 그리고 마지막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해서 갑절로 소득을 얻어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 자본을 이용해서 사업하여 다시 두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아예 일하지 않고 그 한 달란트를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와서 보고 드립니다.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똑같이 두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음을 보고하자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똑 같이 성경에 보면 한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칭찬을 해 주십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달란트 받은 종 차례입니다.
그는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와서 보고를 하는데 한 달란트만 가지고 와서 자신이 본전만 가지고 올 수밖에 없는 견해를 늘어놓습니다. 24절을 보시면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 종은 먼저 주인에 대해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굳다"는 것으로 직역된 '스크레로스' 라는 헬라어는 여러 가지 뜻으로 번역될 수가 있습니다. 굳은 상태 외에 완악한, 혹독한, 엄한, 잔인한, 고집 센 등의 많은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종은 주인을 완악하고 고집이 센 잔인한 수전노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무지에서 오는 자기 생각입니다. 그래서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말합니다. 내가 알았다는 것은 자기 생각입니다. 한 마디로 내가 복음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 아닙니다. 수전노가 아니란 말입니다. 주인이 한일을 보십시오! 주인이 수전노였다면 한 달란트 받은 자의 것을 빼앗아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또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남긴 것을 모두 주인이 가져야 합니다만 그러지 않습니다. 남긴 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은 것을 보면 주인은 도리어 주고 베풀며 사는 훌륭한 분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수전노요 혹독하고 엄한 분으로 알고 있다는 것은 자기 생각 곧 내가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두려워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판단에서, 자기 마음대로 주인을 무서워했습니다. 주인을 폭군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깊은 뜻과 맡겨준 신뢰와 사랑에는 무감각한 채,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 곧 내가 생각하기에 하는 내가복음이 주인을 비정한 수전노와 폭군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이 종이 주인을 두려워 한 것은 자신이 장사라도 해서 일을 하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큰 벌이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적어도 주인이 굳은 사람이라 생각했으면 주인에게라도 미리 말씀드려 이 한 달란트를 가지고 혹시 제가 장사를 해서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요? 하고 묻던지 아니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를 여쭈어 보고 행동을 했더라면 좋을뻔하였습니다. 이 종은 자기 생각대로 주인은 굳은 사람이고 수전노고 내가 혹시라도 이 돈을 가지고 장사하다가 밑천을 다 날리는 날에는 나는 끝장이다. 그러니 이것을 땅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오면 원금을 가져다 드리면 되겠지 하는 자기 생각에 빠져서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건 네 생각이고! 입니다. 그것은 자기 생각이지 주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그건 네 생각이고라고 책망 받은 사람 한분을 사무엘상15장7-11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왕 사울이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되 완전히 몰살시키라고 그리고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다 없애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멜렉 왕 아각을 살려두고 아말렉 사람들의 가축 중에 기름진 양과 소 그리고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겨두고 가치 없고 쓸모없는 것들만 불사르고 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 삼으신 것을 한탄하십니다. 사무엘을 이것을 알고 밤새워 부르짖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 사무엘이 찾아오자 사울은 변명을 합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기름지고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두었다고 그때 사무엘이 이렇게 말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음을 왕은 모르십니까? 한마디로 그건 네 생각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 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무지하여 주인의 뜻은 생각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참으로 하나님이 벌이나 내리시고 벼락이나 치시는 분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자기가 잘해서 살았다는 것이란 말입니까? 벌을 내리시고 벼락을 치신다면 벌써 치셨고, 이미 내 인생은 끝나고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은혜로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은혜로 살 것입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인은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사업하다가 완전히 실패하였다고 합시다. 그리고 주인 앞에 나가 이러 저러해서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하였다면 그 주인이 무엇이라고 하였겠습니까? 아마도 그 주인은 오, 그래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하였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겠느냐? 사업을 하다보면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는 법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거늘, 낙심 말고 다시 한 번 해보아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제 좁은 소견대로 주인을 평가하였다는 것 때문에 주인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이 종은 다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주면서 자신에게는 한 달란트밖에 안 주었다는 형평성에서부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공평성 곧 형평성, 평등하지 않음을 생각하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였습니다. 문제는"각각 그 재능대로"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어진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가 주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다른 종에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마지막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누구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누구에게는 두 달란트 더 나아가 누구에게는 한 달란트 밖에 안주냐? 하고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공평의 길인가 하는 것은 꼭 같이 나눈다는 의미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무조건 같아지기를 바라며 그래야 공평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것은 공산당 식 공평이지 참다운 공평은 아닙니다. 진정한 공평이란 그 능력에 따라, 재능이 많은 자에게는 더 주고 재능이 적은 자에게 적게 주는 것이 공평인 것입니다. 주인은 세 명의 종들에게 이미 주어진 경험들과 능력의 한계와 수준을 알고 그 재능대로 각각 다르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공평 안에 공평성입니다. 다 사도가 아니요, 다 목사도 아니며, 다 교사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두는 각각 하나같이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이며 특별히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시는 재능의 한계가 있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있는데 무조건 아무 것이나 주어진다고 능사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재능에 맞게 달란트를 주셨으니, 이 얼마나 중요하며 참으로 공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한국교회에는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영혼이 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송명희 시인은 1963년 서울에서 출생한 날부터 뇌성마비 장애를 가졌습니다. 11세에 독학으로 한글을 배우고 17세에 하나님을 만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약 4년간 하루 5시간씩 기도하며 성경 30여 번 통독으로 주님의 지도하심을 받아 시를 쓰게 되었고, 1985년 5월 시집 2권과 1권의 간증 수기를 출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권의 저서와 작사 찬양 100여곡을 발표하였고, 교회, 학교, 방송출연 등 1,500여회 집회 활동과 기독신문 칼럼을 11년간 연재 집필하였습니다.
다음의 글은 송명희 시인이 쓴 “나는 황제보다 하인이 부럽습니다” 라는 책에 있는 글입니다.
이십대가 될 무렵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되어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동갑내기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나는 늘 방안에서 기도생활만 하는 초라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내 자신을 한탄하며 절규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자유롭지 못한 몸,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난 정말 밥만 축내는 사람인가요? 땅만 버리는 무화가 나무처럼 무익한 종인가요?”
그런 나에게 주님은 기름을 부으시며 나를 쓰겠다고 하셨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었고 주님을 시를 불러주셨다. “말하는 대로 써라!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는 왼손에 토막 연필을 쥐고 엎드려져서 울면서 써 내려갔다.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폭발하는 울음을 발산하며 소리쳤다.
“아니요! 난 못 쓰겠어요! 하나도 공평해 보이지 않아요! 뭐가 공평해요?
내겐 아무것도 없잖아요!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아요!”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써라!”
치열한 공방전이 반복되고 결국 하나님의 고집이 승리하셨다. 그런 형태로 시를 썼다. 단어 하나라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었고 내 마음대로 하더라도 다시 지우고 불러 주시는 대로 모은 것이 몇 권의 노트가 되어갔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송명희 시인은 1997년 말부터 무리한 활동으로 목 디스크를 얻어 전신 마비가 되었고 지금도 온 몸의 통증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여전히 ‘공평하신 하나님’ 입니다.
여러분도 송명희 시인처럼 ‘공평하신 하나님’ 이라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남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란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다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하나님의 공평을 시인하지 않고서는 충성하는 일의 시작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시인하는 겸손! 그것이 있고야 충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 종에게서 가장 큰 결함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필요 없는 것, 있으나마나한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좋은 재능과 지혜도 묻어두었습니다. 세월이 가고 나의 모습은 변하는데 그대로 묻어두었다가 어디에 쓰겠다는 말입니까?
서울대학을 나오고 동서고금의 모든 책들을 읽고 섭렵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의 아파트에는 책으로 가득 찰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그것도 모자라 도서관에 파 묻혀 살았습니다. 그는 입만 열면 어디에 무엇이 있고 역사적인 사건을 줄줄이 뀌기도 하며 성경을 비롯한 동서양의 모든 종교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5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관절염과 위장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다가 죽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는 세상 지식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높은 지식을 소유한 분이었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그가 소유한 지식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바른 길을 제시하거나, 한권의 책을 써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과 변화를 가져다주는 일 없이 그저 여러 책을 읽고 지식의 세계만 넓혔을 뿐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그가 받은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간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인 인생을 살다간 한 사람을 저는 그 청년 바보 의사」 라는 책에서 찾을수 있었습니다. 안 수현이란 크리스천 의사의 이야기를 기록한 잭인데 저는 읽는 내내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만 큼 감동스런 인생을 살다간 청년의사 이야기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과 전문의이자 크리스천인 故안수현씨는 삶의 1순위에 예배와 말씀 그리고 그것들의 실천을 두고, 2순위에 학업과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획득을 둔, 다수의 사람들과는 반대의 삶을 살아온 청년입니다. 말씀듣기와 성경읽기에 익숙하신 분들에게는 삶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책입니다. 故 안수현 의사는 의학도로서 가장 바쁘고 피곤하다던, 본과 3학년 시절에도, 역시.. 하나님이, 삶의 최우선이었습니다. 그의 주머니와 가방에는.. 수많은 신앙서적들과, 찬양 테이프가 들어 있었고, 그는 늘 병상의 환자를 만나거나.. 힘겨운 누군가를 만날 때면, 얼른 주머니에서 테이프와 책을 꺼내.. 복음과 함께 선물해 주곤 합니다. 소아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의 기댈 어깨가 되어 주며, 대화의 상대가 되곤 합니다. 돌아보는 환자가 아프다고 할 때.. 그저 약 한 알 오더 내려 주는 의사가 아니라,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 손이라도, 잡아 주며.. 어깨라도 다독이는 의사로, 하루가 분주한 분이었습니다. 병원의 궂은일 남이 꺼려하는 보직을 자원하며.. 소파에서 새우잠을 청하면서도, 환자들과 밤늦도록 기도하며.. 넋두리를 들어 주던, 바보 의사.. 언제나 양손에 먹을 것과 나눌 것을 들고, 짠~하고 나타나.. 사람들을 힘나게 했던, 베풂이 삶이던 바보 의사, 돌보던 환자가 임종하면.. 옷 갈아입고, 영안실 찾아가 함께 울어 주며, 장례식장에도 나타나..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었던 바보 의사..치료 받거나, 검사 받을 돈이 없다고.. 병원을 도망치듯 나서는, 극빈자들을 쫓아가 ..자신의 카드로, 검사 비 내주며.. 다정하고 친절하게, 치료를 해 주었던 바보 의사..퇴원한 환자의 생일날을 기억해 두었다가.. 케익 사들고 찾아가, 함께 기뻐하며 복음을 제시했던 바보의사, 여친이나 결혼보다는.. 환자에게 복음 전함이 우선이라며, 여친을 만들지 못한 채.. 외로운 양치기로 살았던 바보 의사, 환자의 아픔보다, 환자의 보호자와 가족들 간의 쓴 뿌리를 보듬으며, 가정의 회복과 하나 됨에.. 많은 시간과, 땀을 흘렸던 바보 의사..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으로 끌어안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도울 길을 찾아 다녔던 바보 의사..
살아생전에.. 남모르게, 헌혈을 300회나 할 정도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았던 바보 의사..청소 하시는 아주머니, 구두 닦는 아저씨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던 바보 의사, 죽을 래야 죽을 시간도 없던, 본과 시절에도 짬짬이 시간 만들어.. 찬양을 듣고, 주님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던 바보 의사. 어떤 불이익과, 손해가 있더라도 타협치 않으며.. 사람의[상사, 교수님, 선배] 평판보다, 하나님의 평가에 더 신경을 쓰던 바보 의사, 자기 몸, 돌볼 시간까지 쪼개어.. 한명의 환자라도 더 고치고, 살리고, 영혼 구원하려, 동분서주하던 바보 의사..자신의 불편과 불이익을.. 주를 위해 껴안으며, 힘들고 아픈 자들을 찾아 다녔던 바보 의사..응급실, 술주정뱅이 환자가, 하루 종일 굶었다는 소식에.. 컵라면 사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던 바보 의사..주치의 보다, 교수님 보다, 환자들은.. 이 바보 의사를 더 그리워했고 찾았단다.
결국.. 이렇게 살던 어느 날, 군의관으로 있으면서 병사들이 훈련할 때.. 군의관이라는 특혜로, 앰뷸런스에 있어도, 되지만..병사들과 함께, 삶을 나누어야.. 복음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병사들과 어울리며.. 풀밭에서 훈련 받던 중에, 유행성출혈열이라는 병을 얻어.. [긴급으로] 앰블러스에 수현 형제를 태워, 안암 고대 병원으로 후송하게 됩니다.
"빈 베드 하나, 부탁 한다"는 후배 의사의 부탁에, 고대 병원 응급실 수간호사[바보 의사에게 전도 받은]는.. "환자가 누구냐" 물었고, 후배 의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현 선배"라고 말할 때, 병원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그날 이후, 수현 형제[환자]에게 수혈 할, 혈소판을 구한다는 광고가 나가자.. 병원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수혈자들이 자원하여 몰려왔을 정도였다. 그 후.. 병세가 잠깐 호전되었으나, 그 이듬해 1월, 만 33세의 일기로.. 수현 형제에게.. 나눔과 사랑의 빚을 잔뜩 진, 후배 의사들에 의해..심폐소생술을 거쳐.. 사망 선고를 받고, 결혼식 같은 장례식을 통해.. 국립 현충원에 묻힘과 동시에, 하늘나라로 영광스럽게 입성하게 됩니다. 그의 장례식은 영락교회에서 한 경직목사님 이후 가장 많은 조문객이 찾았다는 군요, 수현 형제[바보 의사]가, 예수의 스티그마 곧 흔적을 남긴 것은 그의 별세이후에 나타납니다. 그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책을 출간했고. 흔적이란 이름으로 드라마도 만들었고 연극도 만들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그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했고 죽음이후에도 계속 남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 의하면 본전만 가지고는 못 가는 것이 천국입니다. 한 달란트이든 반 달란트이든 그 양의 많고 적음에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재능,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이익을 남기는 여부의 문제를 떠나 일하는 자체를 통하여 악한 종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충성할 때입니다. 시시하다고 생각되는 일이지만 충성해보세요. 그러면 큰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가능한 것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안하고, 하나님께서 또 다른 무엇을 주시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일생 동안 "주세요" 만을 반복하다가 인생을 끝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혹시라도 땅에 묻힌 것이 없나를 살피며 이미 주신 은사를 더욱 개발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건강, 물질, 지식, 모든 은사를 가지고 충성하여 큰 것을 남겨 잘하였도다 착하고 층성된 종아 라는 칭찬을 듣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고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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