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쩌면좋을까요

어렵다2017.07.04
조회169
저는 결혼한지 2년차되는 새내기주부입니다
식올리고 두달만에 와준 예쁜 2살 아들이 있어요

저는 사정상 부모님이 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셨어요, 대신 조부모님이 상견례며, 결혼식에 함께 해주셨고 우여곡절 끝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게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이듭니다.
그 이후, 2년이란 시간동안 혼란스럽고
힘든 시간을 겪어낼거라고 왜 생각을 못했을까요.


#경제적 무책임#
남편은 저와 결혼하기 전, 사업을 하나 시작했습니다.
사업초창기에 들어갈 자본이 많다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지만, 시작부터 8천가까이
빚이 생기려니 조금은 흠칫했던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뭐라도해서 먹여살려보겠다는 모습이 듬직하기도했고, 무엇이든 신랑에게 도움이 되리라 다짐도할만큼 저는 신랑편이였습니다.

신랑은 사업을 시작한지 6달정도 되면서부터
시댁에서 돈을 1,2천씩 더 빌리기 시작했고,
주변에 친구들에게 백,이백씩 더 빌려나갔습니다.
그러다 안되니 자신의 보험까지 깨가면서
푼돈까지 끌어다쓰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줘야하기 때문이라는겁니다.
사업이 아무리 힘든일이라지만, 신랑은 제게
한달에 20만원도 주지 못했습니다.
어쩌다가 같이 장을 보며 계산해주고
아기 기저귀떨어졌다하면 한박스 사줄정도.
현금을 만져보질 못하고 2년가까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빚은 1억2천만원으로 늘었구요.

보다못해 저는 아기가6개월이 되던 무렵부터
아르바이트를 다녔습니다.
계속해서 관리비가 밀려, 60만원이 넘기가 일수였고, 카드독촉전화는 매일받고, 전화도 끊기기 일보직전이였지만, 제일 걱정이였던것은 아기 보험료와 병원비를 행여나 못물까하는 일이였습니다.

신랑이 사업에 실패하는 것은
신랑탓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타이밍도 운도 따라줘야하는게 사업이니까.
제가 제일로 속상했던것은
아침에 잘것다자고 12시 넘어서 늦장출근하는 모습과 집에 돈이 없음에도 밤에 대리운전이라도 뛰려는 책임감 있는 모습이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3주정도 대리운전을 뛰었던 적이 있었고 그때 저에게 준돈은 총 3만원정도였습니다. 그 푼돈마저 아쉬운게 우리집사정이였습니다. 그 이후 몸이 힘들다며 대리운전을 내려둔 신랑. . .
내가 가장이라면 잠이올까?
미안하고 또 몸이 달아서 막노동판이라도 뛰어다니매 조금씩이라도 가져다주지 않았을까?
아기가 어리고, 저는 아기를 제손으로 잘보살피고자하는 욕심이 있는 엄마였기에 일을 나가기가 망설여지는 상황이였지만, 현실적으로 저의 경제활동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시댁과의갈등,남편의모습#
아기키우는거. . . 정말 쉽지않죠
낳을때부터 4키로가 넘었던 우량아.
친정없이 시댁식구들 속에서 출산하면서
참 서러운일 많았습니다.
재왕절개는 비싸니 무조건 자연분만시키라는 시어머니의 문자를 신랑 폰에서 우연히 보게되었을때가
출산 1주일 앞둔때였을겁니다.
4키로 넘는 애를 어떻게든 자연분만하겠다고 의사에게 우겼습니다. 오기였는지 슬픔이였는지. . .
결국 아기를 낳다가 회음부가 심하게 훼손되면서 항문까지 찢어지고, 과다출혈이 이어졌습니다.
급하게 철분제2통을 맞고 1시간동안 회음부며 항문을 꼬매는 작업이 이루어졌어요.
훼손이 심해서 질을통해 대변을 볼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혼자 꺽꺽 거리며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조부모님이 아신다해도, 경제적으로 도우실형편이 되지 않으시니 알릴수없었던 제 처지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져 더 서러웠던거같아요.
출산 이후에도, 신랑이 사업자금 필요하다하면 머뭇거리시면서도 대출 끌어다주시는 시어머니 보며, 시댁은 시댁인가보다 했습니다. 손주는 이뻐하시고 옷이며 장난감이며 열심히 대주시니 감사해야하는거겠죠.

출산직후, 어머니는 돈아끼라며 산후조리사를 자처하셨습니다. 무척 불편했지만, 신랑이 조리원은 보내줄수없다했기에 정부지원파견산후조리사를 신청해두었던 상태였는데, 시간이 맞지않아 일주일이 붕뜬 상태였습니다. 그 일주일동안 어머니는 아침일찍부터 오셔서 제가 씻고나올때까지 서서 기다리시고, 밥먹는걸 꼭 지켜보고 가시겠다며 식탁앞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어머님 뜻은 좋은것이였으나,
저는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여자로써 많이 훼손된 몸이 되었다는것에 충격이 심했고, 어머니의 문자가 너무생각나 원망도 있었던 상황이였기때문이였어요.
난 널 딸같이 여긴다
이 말씀을 수시로 이야기하셨는데
그때마다 울컥울컥 목이 매이더라구요.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아침에 눈뜨기 힘든데,
시어머니오셨다고 꾸역꾸역 일어나 식탁까지 기어가면서, 왜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 .
신랑에게 부담이된다고, 그냥 반찬만 놓고 가실수있게 해달라 부탁했지만, 그냥 너가 맘편히 가지면 될것을 어렵게 산다며 나무라듯 얘기했습니다. 다 우리엄마는 널 생각해서 그런거라고. .

그렇게 살다가
하루는 어머님이
너 맞고컸다그랬지. 너 고집부려서 맞은거 아니니?
지금 고집보니까 그렇다.
이 말씀에 눈앞이 새하애진적도 있어요.
학대받으며 자랐던 제 과거가 어머니께는
욕할 좋은 소재가 되었던가요. .
시어머니도 시아버님께 평생을 맞고 사셨으면서
같은 상처를 가진 이에게 어쩌면 이러실수있을까.

이 일로, 어머니 정말 너무하시다
울며불며 신랑에게 얘기했는데
나한테 이러지말고 당사자들끼리 얘기하라며
신랑은 새벽12시에 시어른들께 전화해서 집으로 오라고 소리지르데요.
결국 두분은 오셨구요. . . 항상 아들이 가는곳으로 쫓아서 이사를 오시던 시어른은 이렇게 부르면 재깍 오려고 그렇게 쫓아오신건가봐요.
새벽에 절 앉혀두시고는 너가 뭐가 그렇게 힘들고 나한테 쌓인게 있는지 얘기해보라며 계속 추긍하시는데, 잠도 못자고 애기보느라 초주검이 된 상태에서 고문받는 기분이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흥분한상태에서는 예의바르게 말씀드리지 못할것같으니, 내일 밝을때 다시 뵙고 말씀드리겠다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저는 빵터져서 울며불며 말씀을 드렸구요.
지금도 신랑은 제게 그때 너 정말 싸가지 없었다 이야기합니다.

전 어찌해야할까요


*** 뒤에 더 이야기가있는데, 이어서 얘기할수있게되면 더 이어서 할게요. . 여기라도 주절주절 얘기하면, 조언을 받을수있을것같아서 적어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