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미안한 구남친에게

eunha12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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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기억속에서 희미해진 내 전남자친구야 정말 오랜만이야
내가 여기다가 글을 쓰는 이유는 고려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을 읽는데 그 말투가 꼭 너와 비슷해서 너가 생각났고 브로콜리너마저의 유자차라는 노래가 언급돼서 그냥 나도 너에 대한 글을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어 저 글을 쓴 사람이 넌 아니지만 말야
나는 저 글을 올린 사람처럼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너처럼 결단력있고 단호한 말투도, 글에 애절하게 감정을 담아내지도 못해 그치만 너한테 정말 미안한 마음 하나는 정말 진실이라는걸 알아줬으면 해서, 그리고 솔직하게 이기적으로 말하면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이 글을 써보려해
우리 처음 만남은 되게 가벼웠어 수능이 끝나고 한달 후 쯤부터 연락을 처음 하게 됐지 처음엔 그냥 친구였어 나랑 잘 맞고 장난도 잘 치는 친구. 그리고 처음 한번 만났을 때 뭘 했는진 기억도 안나지만 좋았던거 같아
어떻게하다 너랑 사귀게 됐고 처음엔 정말 좋았어 너가 애교부리는것도 너랑 카톡하고 전화하는것도 다 설렜어 그치만 그것도 얼마 못 가더라 우린 장거리 연애였고 보는것도 힘들었어 한번 만나러 왔다갔다 할때 마다 난 그거에 부담이 됐었어 거기다가 너는 날 두고 곧 재수학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한달에 한번 휴가를 나올 때마다 볼 수 밖에 없었어
너는 나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 정말로 수능 끝날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냐고 계속 되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너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했어 너는 우리가 이런 시련을 견뎌내면서 사랑하면 진짜 사랑이라고 힘들수록 가치가 있는거라며 얘기했고 사람들은 군대도 기다리는데 재수 1년 못 기다리겠냐고 대답했지 넌 수능 끝나고 꽃 사들고 바로 나한테 달려가겠다고 기다려주면 정말 잘하겠다고 크리스마스 때 부모님 뵙자고 결혼 하자고 그런 얘기들도 많이 했지
전자기기 금지에 친구들과 떠들기도 금지, 밥먹을 때 단어장은 필수인 재수기숙학원에 들어간 너랑 연락하긴 정말 힘들었어 너가 들어간지 2주 후에 인강 쪽지로 겨우 연락이 됐고 하루에 몇번씩은 너가 언제 쪽지를 보낼지 몰라 그 페이지에 들어가 새로고침도 눌러봤어
그렇게 연락한지 한 달, 너는 이미 학원에 적응했고 나와 연락하기 위해서 휴가 때 핸드폰 공기계를 들고 들어갔어 나는 예비대학교 친구들과 만났고 나랑 연락 밖에 못하는 너는 내가 너가 아닌 다른 남자한테 눈돌릴까봐 엄청 불안해했어
너와 공기계로 연락하는 동안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어 처음 들어가니까 적응도 못하겠더라 모든게 낯선 환경부터 처음 보는 친구들, 처음 듣는 방식의 수업, 처음 보는 교수님에 기숙사까지 스트레스 받을게 이만저만이 아니였어 내가 원래 살 빠지는 체질이 아닌데 대학교 와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식욕도 없고 안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살 빠지더라 다른 사람은 부럽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 힘들었어 잘 때도 불안한 마음에 한시간 단위로 깼어 솔직히 지금까지 힘들었던 일 말하라고 그러면 고3 때 보단 대학교 초반을 꼽을 정도로 제일 정말 많이 힘들었어
누구한테 기댈 곳도 없이 누군가와 특별히 친하지도 않은 그런 환경에서 나는 너무 답답했어 자퇴 생각도 몇번 했어 너도 나보다 심했으면 심했겠지 덜 하진 않았을거 알아 그런 상황에서 너는 날 더 힘들게 만들었어 페메로 연락했는데 잠시라도 그 대화창에 안 들어와있으면 뭐하다 왔냐며 남자랑 연락했냐면서 내 숨통을 계속 쥐어오더라 너는 내가 기댈 수 있는 튼튼한 버팀목 같은 사람이길 바랬고, 나는 너의 기대에 정말 부흥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럴 수 없었어 점점 너의 집착은 날 지치게 했고 결국 나는 헤어지자고 했어 너는 그 날 아프다면서 방에 들어와 화장실에서 나한테 전화를 했어 울면서 헤어지지 말자고 나는 매정하게 너를 끊어냈고 너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난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기에 너에 대한 미련은 없었던거 같아
그 후에 대학교 씨씨 한번, 그리고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 한번 이렇게 두번의 연애를 해왔어 가끔 너가 문득문득 생각나 숨김표시 해왔던 너의 프사, 상메를 몇 번 확인해보기도 했고, 페이스북 게시물 올라온거 있나 찾아보기도 했어 너는 나와 헤어진 이후에 아마 기숙학원을 나왔겠지 페이스북 친구도 끊겨있더라 그 땐 조금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던 중 여름방학 어느 날, 방 정리를 하고 있었어 너가 기숙학원에 들어가면서 줬던, 매일 쓰고 매번 휴가 때 나오면 만나서 교환하자던 그 일기를 발견했어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그 땐 어땠는지 궁금해서 읽어봤어
너가 들어간지 거의 두달 반 만에 헤어졌으니 한 번 밖에 못 바꿔봤지 그래서 너가 힘들었던 일기에 쓰여있는 한 달의 시간밖에 알지 못하지만 헤어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물론 넌 많이 힘들었을거야 어쩌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엄청 많이. 그 일기를 읽다가 보니 그 때의 우리 사랑은 많이 애절했구나 느낄 수 있었어 읽는데 바로 눈물이 나더라 나 없이 힘들었을 너한테 너무 미안했어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긴 삼수 확정이라고 그랬었는데 말이지... 내가 힘들다고 이기적이게 널 버리고 도망가서 정말 미안했어 재수한다는 눈치와 압박감, 거기다 이별의 아픔, 나에 대한 배신감. 나는 너에게 얼마나 아픈 상처를 줬을까 그로 인해 너는 더 강해지고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겠지만 정말 너무 많이 미안해 하루종일 너에 대한 생각에 복잡해져서 그 날은 머리가 지끈지끈거렸어 너한테 절대 미련 있는것도 아니였고 내가 원래 이런 성격도 아니야 지금까지 사귄 남자들 정말정말 가끔 생각나긴 해도 다 좋지 않은 감정이였는데 너한텐 너무 미안해서 계속 생각났어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너에게 연락해보기로 결정했어 어쩌자고 그런 결심을 했는지 잘은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에게 충고를 구하기 위해 물어봤는데 그 중에 너도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을수도 있다는 말에 더 용기를 얻었나봐 나는 너가 날 싫어할거라고 생각했거든 그게 당연한거였는데 말야 나는 믿고 싶은대로만 믿었고 행동하고싶은대로만 행동했어 끝까지 이기적이였던거 정말 미안해 물론 돌아오는건 너의 읽씹이였지만 후회하진 않아 아니 내가 잘못한건데 후회하고 말고가 어딨겠어
이런 일 이후에 내 친한 친구들한테 말했어 너무 답답해서 누구에게 말해도 풀리지가 않더라 너랑은 다 관계없는 사람이였으니까 브로콜리너마저라는 인디밴드, 너가 정말 좋아했는데 너때문에 알게 된 인디밴드인데 나도 이제 정말 좋아해! 그 인디노래 중에서 보편적인 노래라는 노래 있잖아 그게 지금 상황같아 우리 사랑얘기는 너무 평범해서 뻔하디 뻔하고 너가 이걸 본다해도 모른척 지나갈지도 몰라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들이 이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된거고. 그리고 더 끄적이자면 너와의 교환일기에 있던 노랜데 브콜너의 1/10이라는 노래 적혀있길래 다시 들어봤어 근데 정말 우리 상황과 겹쳐보였어 열에 하나만 기억하자는 그 가사는 너무 슬펐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밴드부 동아리에 같은과 어떤 오빠가있는데 말이야 너랑 정말 많이 닮았어 웃는 모습도 장난치는 모습도 형이라고 하면 믿을정도로! 그 오빠는 너처럼 웃을 때 예쁘진 않지만 자기주장 강하고 말 잘하고 눈웃음 치는거 그냥 여러가지로 닮아서 볼 때마다 생각나
사실 너가 어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까먹었었는데 설경미만잡이라고 말했던게 갑자기 생각나서 너가 나 때문이든 공부 때문이든 힘들었던 만큼 더 좋은 결과 나왔으면 좋겠어 아마 넌 이 글을 못 보겠지만 너가 꼭 그곳에 입학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잘지내 아니 너한테 미안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요즘 나한테 정말 과분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어떻게 사니? 정말 궁금하다 재수 준비는 잘 되가지? 너가 정말 좋은 사람이랑 연애했으면 좋겠어 물론 너가 좋은 사람이니까 말이야 나같은 사람 진심으로 사랑해줘서 너무 고마웠어 나 이거 하루 온종일 붙잡고 있었어 글솜씨 없는 탓에 쓰고 고치고 몇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해서 써본거야 정말 미안했어 잘지내
16년 10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