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에 나오는 실제 지명은 사정상 밝힐 수 없습니다.) 쉴 곳을 잃은 자는 방황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살의를 품고........ 때늦은 겨울비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싸늘한 겨울 습기가 얼굴을 스치자, 재원이 와 함께 만났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재원이, 자식... 아직도 죽었다는 실감이 나 지 않는다. 그 여자를 만난 날도 이렇게 스산한 날씨였다. 재원이는 내키지 않았던 내게 귀찮을 정도 로 그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재원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병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던가, 이상한 환자가 들어오게 되 면, 나를 불렀다. 그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항상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날 도 역시 병원은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그 느낌은 더욱 으시시하게 느껴 졌다. 특히 철문으로 닫혀있는 정신병동에 들어갈 때는 일말의 공포까지 느껴졌다. 재원이가 정 신과 레지던트 선배에게 한참을 졸라 허락을 미리 받았다고 했지만, 워낙 패쇄적이고 엄 격한 곳이라 밤 늦은 시간에 남의 눈을 피해 찾아가야 했다. 재원이 말로는 자기와 친한 선배가 당직 일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 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우리가 찾아간 것이 알려진다면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될 정 도로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음산하고 캄캄한 정신병동 복도를 따라 한 참을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원 제일 구석에 있는 격리실이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선배 레지던트는 그 격리 실 문을 열기전에,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 로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조심해라! 무슨 일 있으면, 즉시 뛰어나와 서 날 부르고! 스테이션에 있을테니...” 그 말에, 생각없이 여기까지 따라온 나는 갑자기 으시시함이 느껴졌다. 격리실 안에 말 로만 듣던 미친 연쇄 살인마라도 있다는 듯한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철커덕” 격리실 문을 여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 졌다. 재원이가 격리실안의 불을 켜자, 서너평 남 짓한 하얀 병실에 침실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졌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정신병자 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압박복을 입고, 침대 에 묶여져 있는 것이었다. 꽤 발작이 심한 환 자처럼 보였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 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광기와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첫 눈에 봐도 그 여자가 험한 일을 당한 것 처럼 느껴졌다. 재원이가 구석에 있는 의자를 두 개 끌고와 그여자 머리맡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 기를 시작했다. “지연씨, 제가 지연씨 얘기 믿어줄 신문기 자를 데리고 왔으니 그 얘기 다 해주세요... 이 분은 정말 지연씨 얘기 다 들어줄 거예요...” 재원이의 거짓말 덕분에 갑자기 기자가 된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을 나를 바라보는 그 여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치곤 괴기 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앙칼지게 내 게 얘기했다. “기자 아저씨, 내 모든 얘기 다 해줄테니, 제발 날 여기서 끄내줘요! 여기 이렇게 있다간 그 사람이 나를 죽이러 온다니까!” 나는 머뭇거리며 최대한 도움이 되어 드리 겠다고 했지만, 정신병자를 속인다는 것이 마 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서 풍기는 괴 기함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슨 얘기 인지 꼭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재원이 나는 침대에 묶여있는 미친사람일지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그 얘기 를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보 였고, 얘기 중에도 계속 주위를 돌아보는 등 불안해 보였다.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들려준 얘기는, 그 여자가 왜 그 렇게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는지 설명 아닌 설명이었다. 어떤 것이 진실일 줄은 아직 모르지만... 아니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아마 제 얘기를 믿지 않을 거예요... 여기 의사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거예요. 꿈속에서 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언제가 나를 데리러 오겠죠. 지옥에서... 그러니 빨리 나를 여기서 내보내 줘요! 제 발!!! 제발... 흐흑......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고속도로 톨게이 트에서 통행료 받는 일을 했었어요. 아주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이었죠... 그 일을 5년동안이나 하고 있었죠. 아시다 시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에요. 다만, 매연을 들이마시며 하루 8시간씩 자 리에 앉아 돈을 받는 일이란 단조로움과의 싸 움이지요. 일이 단순할수록 스트레스도 많은 것 같았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담당하는 톨게이트는 충청북도 P시로 나가는 곳이었어요. 아주 작은 곳이었죠. 통행료 받는 곳이 왕복 6개 밖에 없고, 그 나마 평상시에는 3곳을 운영해요. 추석 등의 명절때를 제외하고는요... 추석때 말이 나와서 그렇지, 그때는 정말 난 리가 나요. 바로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면 큰 공원묘지 가 있었거든요. 추석때만 되면, 하루종일 한번도 쉬지 않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통행료를 받아야 해요. 이런 일을 하다보면 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요. 돈 없다고 배째라하는 식의 운전사들, 술취 한 채로 운전하고 오다가 톨게이트에 차를 박 는 사람들, 졸고 있다 통행료를 내고 있던 앞 차를 박아 싸우는 사람들, 통행증을 잊어버렸 다며 그냥 통과시켜 달라는 사람들, 납치범들, 범죄자들, 차 막혔다고 욕하고 가는 사람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되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말 없이 돈 만 내고 가죠. 어떤 날은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않하고 끝날 때도 있어요. 사람들과 차는 많이 지나가지만, 마치 무인 도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지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되면, 하루종일 문을 열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아요... 눈이나 비 올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비오는 밤마다 나타 났어요... 날씨가 스산해지고, 비가 내리는 밤이면 항 상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 사람인줄 알게 되었냐고요? 처음에는 그냥 우연인줄 알았죠... 하지만 세상에는 우연은 그리 많지 않은 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가을 어느 비오는 날이었어요. 작년에는 여름에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서 전국이 난리가 났었는데, 가을에도 역시 비가 많이 왔어요. 가을비 내리는 밤은 특히 톨게이트에서 일 하기에는 참 나뻐요. 낮에 비해 쌀쌀하고 손이 시려울 정도죠.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죠. 다만 밤에 혼자서, 간간히 지나가는 차의 통행료를 받는다는 것 이 무료할 따름이었죠. 같이 당직인 숙자언니는 피곤하다며, 내게 톨게이트를 맡기고 톨게이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자러 들어갔어요. 밤에는 돈받는 톨게이트는 하나만 열거든요. 그런데 그 날따라 비가 심하게 내려서인지, 정산소안의 전등이 나갔어요. 통행료 정산기 는 말짱한데 전등만 나간 거예요... 사실 그런 일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때 대 비해서 손전등과 촛불은 항상 준비되어 있죠. 돈은 줘야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불이 나간 날은 재수 없는 날이 지요.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곳에 혼자 앉아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니까요. 더구나 지방의 소규 모 톨게이트는 아시다시피 인적이 가장 뜸 한 외곽이 있잖아요. 비까지 내리는 음산하고 으시시해졌어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등을 들으면서 빨리 아 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죠... 밤 2시쯤 되었을까... 지나가는 차도 뜸해지고 저도 슬슬 졸려오 기 시작했어요. 비는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고, 잠깨라 고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DJ의 졸린 목소리 가 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잘 나오던 라디오가 지지직 거리더니 잡음만 들리는 것이었어요. 몇번 만 져봐도, 계속 잡음만 들렸어요. 비 때문인가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고속도 로쪽을 쳐다보니, 빗속을 뚫고 천천히 들어오 는 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하루에도 수백번이상 보는 헤트라이트 불빛 인데, 그때는 이상할 정도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유모를 무서움이 느껴진 것이죠. 어둠속에 혼자 있다는 것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진 것이죠... 그 불빛은 저의 두려움을 아는 것처럼 천천 히 다가왔어요. 나는 괜히 겁먹을 필요없다며, 손을 내밀어 표를 받을 준비를 했어요. 그 차는 비속에서 천천이 미끌어져와 정산소 옆에 섰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잘 안보이는 거예요. 원래 정산소에 앉 아있으면,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은 다 볼수 있 거든요. 정산소는 검문 목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얼굴은 이상 할 정도로 어둠에 쌓여 보이지 않았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표를 받으려 고 손을 내미는데. 갑자기 그 사람으로부터 뭐 가 썩는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확 나는 것이 었어요. 그러고는 어두운 차안에서 불쑥 손이 나와, 표와 함께 돈을 내밀었어요. 자기가 낼 금액을 이미 아는지, 돈을 같이 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괜히 머리 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돈과 표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표와 돈이 젖어있는 것이었어요. 빗물 때문에 젖었으려니 하고, 표에 묻은 물 기를 닦기 위해 책상위에 있는 휴지를 집어들 었어요. 젖은 채로 표를 정산기에 넣으면 고 장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그 차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 은 채 출발해 버렸어요,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당황한 저 는 멀어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쳐다보았지만, 번호판은 물론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 고, 저는 한숨을 내쉬며 그 차 운전사 가짜 돈 을 내고 도망가는 구나 생각했어요. 밤이 되 면 가끔 그런 식으로 아무런 종이나 내놓고 도 망가버리는 차들이 있거든요. 그 차도 그런 차인줄 알았아요. 혹시나 하고 젖어있는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비춰보았어요. 처음에는 색깔이 이상해 돈이 아닌 줄 알았 어요. 시커먼게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했 어요. 그때 번쩍하고 번개가 쳤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방은 환해졌죠. 그 순간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놀라 움직일 수 없었어요. 돈과 표에 묻은 것은 빗물이 아니라, 새빨간 핏물이였던 것이었어요. 몸서리를 치며, 그 피묻은 표와 돈을 치웠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 지직거리던 라디오가 제 대로 켜지고, 정산소안의 불도 들어왔어요. 이상하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표와 돈을 줏어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차에 탔던 사람이 단지 코피를 흘렸다거 나, 손을 베서 피가 묻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 어요. 피묻은 표와 돈을 집어들자, 왠일이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그래서 대충 핏물을 휴지로 닦아내고, 말리 기 위해 책상 구석에 치워놨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숙자 언니가 정산소 로 들어왔어요. 이제 자기가 교대해줄테니, 사무실에서 눈 좀 붙이라고 했어요. 그날 밤은 더 이상 정산소에 혼자 있기가 무 서워 그냥 사무실에 들어갔어요. 사무실 당직실에 누워, 그 피에 대해 이것저 것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기억나지 않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웅 성웅성하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 보니 어느 새 환한 아침이더군요.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쳐있고... 사무실에는 출근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요. 저는 퇴근 준비나 할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전화를 받고 있던 소장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었어요. 사무실안에 있던 우리들은 소장 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갑자기 조용해졌 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소장님은 자기에 집중하 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다보더니, 심각한 목소 리로 그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어요. ‘여러분, 이제부터 야간 근무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세요. 지금 들은 얘긴데, 어젯밤에 경상남도 L톨 게이트에서 야간 당직을 서던 직원이 살해당 했데요. 그것도 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군요. 뭐, 팔이 잘리고, 목이 난도질당한 채로 발 견되었데요...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통행료를 노린 강도일 것 같으니 각자 조심하도록 하세요... 휴... 세상이 너무 무서워지고 있어...’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이 뭔가 맞 은 듯한 충격으로 멍해졌어요. 전날 밤 받은 피묻은 그 표가 바로 L 톨게이 트로부터 온 것이었어요...” 그 여자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이런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을 때는 담배라 도 한 대 피면서 듣고 싶었다. 담배를 꺼내며 재원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고개를 가로젖는 모습에 다시 주머니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묶여진 채로 고개만 움직이며 얘기를 하고 있는 그 여자와, 의자에 앉아 이상한 얘기를 듣고 있는 우리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누워있는 그녀에게 물을 먹여주었 고, 그 여자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 지 숨돌 리기가 무섭게 얘기를 계속했다... “너무 놀란 저는 전날 밤 제가 경험했던 얘 기를 해 주었어요. 소장님은 좀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머 지 직원들은 반신반의했어요. 사실 다들 비슷 한 경험들을 해봤거든요. 받은 표와 돈에 피가 묻어있었던 적도 있고, 숙자 언니는 자기가 받 아든 표에 어떻게 된 일인지 냄새가 고약한 대 변이 묻어져 있는 적도 있었대요. 그러니 내가 봤던 그 사람이 살인범이라는 얘기는 잘 믿겨지지 않나 봤어요. 소장님이 경찰에 전화해 신고해서 제가 받 은 피묻은 표와 돈을 가져갔지만 피를 닦아내 고 밤새 말려졌기 때문에 희미한 핏자국만 남 아있는 상태였어요.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젊은 형사가 직접 그 표를 가지러 왔어요. 그 형사 말로는 그 피가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인지를 밝혀내 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인데, 이 정도 핏자국 으로는 밝혀내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 어요. 무슨 DNA 검사도 해야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형사가 살해당한 검표원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줬는데, 정말 끔찍했어요. 살해 당한 시체의 모양을 보면, 차를 몰고 톨게이트 로 들어온 살인범이 표를 받기 위해 손을 내민 피해자의 손을 잡아당긴 다음에 날카로운 칼 로 얼굴과 목을 난자했데요. 그리고 발버둥치 던 그 불쌍한 피해자의 팔을 잘라버렸데요. 범행 현장을 보면 피가 사방으로 튀어 정말 끔찍하다고 했어요. 피해자는 즉시 죽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어 갔데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받았던 그 표에 묻어있던 피가 그런 끔찍한 살인의 자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다리 힘이 쫙 풀렸어요. 그래도 곧 범인을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 치는 그 젊은 형사의 말에 나름대로 안심을 하 고 퇴근했어요. 집에 가서도 그 얼굴 없는 사람의 악몽에 시 달렸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이 며칠이 지나갔어요. 저도 처음에 느꼈던 공포심도 점차 사라지 고, 일상적인 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경찰은 아직 그 톨게이트 살인범의 단서조차 못 잡았다고 했어요. 제가 준 표에 묻은 피검 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요. 그래도 며칠 동안 무서워 야간 당직을 피했 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 당직을 계속 바 꿨던 거예요. 며칠은 그런 식으로 당직을 안 했지만, 결국 내 차례가 돌아왔어요. 야간 당직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어지고 해서 그냥 하기로 했어요. 저녁 먹고, 톨 게이트로 나서는데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비가 오니 괜 히 불길한 기분마저 들었어요. 번잡한 퇴근 시간이 지나자, 금새 톨 게이트 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가늘던 비는 더 굵어졌어요. 비가 오는 밤이 되니, 괜히 그날 밤이 생각 났어요. 어둠을 헤치고 나타나는 헤트라이트만 보면 가슴이 괜히 철렁해졌어요. 우습게 생각하시죠. 톨 게이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자동차 불 빛만 보면 무서워한다는게. 몇 번을 마음을 졸이면서 빨리 밤이 새기를 바랬어요. 시간은 참 느리게 갔어요. 밤 3시쯤 되서 같이 당직을 서게 된 경수엄 마와 교대를 했어요. 몇 시간만 버티면 차도 많아지고 날도 밝아 올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직 주위는 칠흙 같은 어둠에 둘러 쌓여있고,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는 거예요. 두려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켰 어요. 한 30동안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아요. 시간이 좀 지나자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아 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자기 정산소 전등이 지지직거리고 깜박거리기 시작했어요. 몇번을 지직거리다가 전등이 나갔어요. 동시에 라디오도 꺼졌어요. 갑자기 그날 밤 생각이 나서 겁이 덜컥 났어요. 죽음 같은 적막과 어둠이 정산소 주변을 덮 고 있었어요. 단지 빗소리만 들렸지만, 그 빗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차단하고 있어 더욱 무서워졌어요. 어디서 뭔가가 나타날지 몰랐어요. 손전등과 촛불을 켜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 려 제대로 켤 수 없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지 만 어둠 속으로 뛰어나가는 것도 무서웠어요. 그때였어요. 저 멀리 고속도로쪽에서 헤트라이트 불빛이 하나 다가오는 것이 보였어요.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붓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어요. 점점 다가오는 그 자동차 헤트라이트는 마 치 악마의 눈처럼 느껴졌어요. 왠지 모르게 사 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불빛 같았어요. 그 불빛을 보고 있으려니, 온 몸에 힘이 풀 리고 너무 무서워서 손하나 움직일 수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빗속을 뚫고 그 차는 미끄러져 왔어요. 이윽고 톨게이트로 진입했어요. 그리고는 내가 있던 정산소 앞에 차를 세웠 어요. 저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그 차쪽을 바라보 았어요. 직감적으로 그날 밤 그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두워서 차 색깔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검은 색이나 어두운 색같았어요. 차속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창문이 열리고, 표와 돈을 든 손이 나왔어요. 그날 났던 그 뭔가 썩는 듯한 기분나쁜 냄새 가 확 났어요. 저는 무서워서 손을 내밀어 그 표와 돈을 받 을 수 없었어요. 그냥 그 차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랬어요. 하지만 그 차는 시동을 건 채 그냥 서 있었어요. 손에 그 표와 돈을 든 채. 마치 저를 기다리는 죽음의 사신같았어요. 두려움으로 미칠 것 같았어요. 갑자기“빵”하고 그 차가 경적을 올렸어요. 빨리 표와 돈을 받아가라는 명령같았어요. 이상하게도 저는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 어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손을 뻗어 그 표와 돈을 받았어요. 저는 자동차 안 어둠 속에서 칼이 튀어나와 내 손을 자를 것 같아 숨마저 쉴 수 없었어요. 그 표와 돈을 받는 순간, 갑자기 그 차는 출 발해버렸어요. 그 차는 이번에도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사 라졌어요. 나는 그 차가 주고 간 표를 쥔 채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그 표와 돈을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켰어요. 확인하는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표와 돈에 시뻘건 피가 범벅이 되 어있던 거예요. 그 시뻘건 피에 충격을 받아 저는 의식을 잃 었어요...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의식을 차릴 수 있었어요. 간신히 눈을 떠보니, 같이 당직을 서던 경수 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 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경수 엄마가 새벽 4시반 쯤 당직을 교대해 주려고 정산소로 왔는데, 제 가 기절해 있었다는 거예요. 한손에는 손전등을 쥐고 있는 채로. 저는 놀라서 경수 엄마에게 그 표에 대해 물 어보았죠. 경수 엄마는 그런 피묻은 표는 보지 도 못했다고 했어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저는, 어안이벙벙한 채 나를 보고 있는 경수 엄마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산소 문을 열고 뛰어나가 비를 맞 으면서 미친 듯이 그 표를 찾아봤어요. 손전등을 가지고 찾다보니, 바로 정산소 앞 에 떨어진 표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 런데 빗물에 씻겼는지, 그 표에는 핏자국이 거 의 않보였어요. 이번에는 진입지가 경상북도 M 톨게이트로 되어있는 표였어요. 경수 엄마는 그 표를 가지고 멍하는 서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어요. 저는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경수엄마에게 설명했지만, 경수 엄마는 오히려 제 말을 믿지 않고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아요. 할 수 없이 저는 소장님이라도 빨리 출근하 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어요. 소장님이라 면 제 얘기를 믿어 줄 것 같았어요.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경수엄마는 저를 사 무실에서 쉬게 했어요. 아침이 되자 한 사람씩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전날밤 또 그 차가 피묻은 표를 주고 갔다고 말했지만, 다들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어요. 소장님이 출근하지 마자, 저는 또 그 차를 봤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소장님도 믿겨지지 않는다 는 듯이 저를 대했어요. 똑같은 일이 똑같은 사람에게만 계속 일어 난다는 것이 좀 이상했나봐요. 다들 제가 졸다 가 꿈꾼 것을 착각했거나, 그냥 지어낸 얘기로 생각했어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어주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어요. 소장님도 제가 피곤해 보인다고, 일찍 들어 가 쉬라고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퇴근 준비를 하는데 소장님에게 전화가 한통 왔어요.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받던 소장님의 표정 이 갑자기 변하더니,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뭐라고요? 경상북도 M 톨게이트라고요? 이번에도 똑같단 말이예요?’ M 톨게이트라는 말을 듣자 저는 불길한 예 감이 들면서, 무서워졌어요. 전화를 끊은 소장 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얘기했어요.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데요. 이번에는 경상북도 M 톨게이트에서 일어났 데요. 지난번과 똑같이 정산소에서 표 받던 직원 이 팔을 잘린 채로 처참하게 죽어있는 것이 발 견되었다네요. 어쩌면 지연씨가 본 그 차에 진짜 범인이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휴... 도대체 어떤 미*놈이야?’ 다들 그 얘기를 듣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 를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벽에 걸려있는 고속도로 지도를 보고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왠지 지도 에 자꾸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잘 알 수 없었어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멍할 정도의 전율 과 두려움으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 어요...처음에 살인사건이 난 경상남도 L톨 게이트 와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M 톨 게이트 사이에는 3개의 톨 게이트가 있었어요. 그런 데 두 번째 살인 장소인 M 톨 게이트로부터 4 번째에 위치한 톨 게이트는 바로 우리 톨 게이 트였어요. 지도에 따른 다면, 다음 살인은 바로 우리 톨 게이트에서 일어난다는 얘기였죠. 두 번째 사건이 있은 후, 모두들 공포에 떨 었어요... 특히 야간 당직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했 어요. 더구나 저는 다음 번에는 우리 톨게이트 에서 살인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더 욱 무서웠어요. 그래서 고속도로 관리공단 측 에서는 모든 톨게이트에 호신용 가스총을 비 치하고, 야간 당직은 당분간 남자 직원들만 세 우기로 했어요. 경찰의 추리에 의하면, 그 살 인범이 정신 이상자이거나, 톨게이트만 노리 는 살인 강도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살인범은 현장에서 살인만 했지 돈을 훔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단 지 한적한 톨게이트를 골라 표 받는 직원들을 잔인하게 죽여왔다는 얘기가 들려왔어요. 그러니 더욱 무서워졌죠. 차라리 강도면 그 래도 난데, 이건 살인을 일삼는 싸이코라니... 여하튼 제가 목격했던 그 차가 살인범이 타 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다시 그 젊은 형 사가 찾아왔어요. 그 형사는 제 얘기를 듣더니, 제가 봤다는 차와 안에 탄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아보 았어요. 그러나 저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어요, 사실 그 차와 운전사의 모습은 이상할 정도 로 보이지도 않았고, 특징적인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아요, 단지 어두운 색깔의 차와 기분 나쁜 냄새가 전부였어요. 처음에는 흥미를 가진 것으로 보였던 그 젊 은 형사도, 저의 모호한 증언에 좀 실망한 듯 보였어요. 나중에는 암만 제가 강하게 얘기해 도 건성으로 듣는 것 같았아요. 제가 거짓말이 라도 하는 것으로 보였나 봐요. 더구나 그 차 가 나타날 때 마다 꺼지는 전등과 라디오의 얘 기까지 해 주었더니 완전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더군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형식적으로 수사에 고맙다는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 형사에게 제가 처음에 받았던 그 피 묻은 표에 대해 물어봤어요. 형사는 피식 웃더 니 그 검사결과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그 표에서 나온 피는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 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더군요. 그러니 저 를 더욱 안 믿은 거였어요. 이번에 받은 표도 거의 그런 식으로 생각하 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살인이 발생한 톨 게이트 들을 보면 다음은 우리 톨 게이트 같다는 얘기 를 해주었어요. 형사는 그 얘기 역시 상상력 풍부한 저의 황당한 추리로 받아들이는 것으 로 보였어요. 수사에 참고하겠다는 의례적인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고... 형사는 시간낭비 했다는 듯이 돌아갔어요. 제 얘기를 안 믿는데 안타깝고 답답했어요.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제 얘기가 지어낸 황당한 얘기를 들릴 수 있을 것 같았아요. 형사 말대로 한 미친 놈이 돌아다니 면서 닥치는대로 살해한다는 것이 사실이고, 제가 본 것이 그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니 무섭 고 끔찍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차라리 제가 헛것을 본 거나, 평범한 사람인 데 겁에 질려 상상해낸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 마저 들었어요. 퇴근할 때마다, 야간 당직 때문에 출근하는 남자 직원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걱정되었 어요. 하지만 가스총 때문인지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살인마가 이제 살인은 멈추고 사라진 것 처럼 느껴졌어요. 강박관념처럼 저를 따라다니던 그 차에 대 한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점심시간에 잡담을 하다가 경수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께. 우리 바깥양반이 톨 게이트 지나자마자 있 는 공원묘지에서 관리인을 하고 있잖아. 며칠전 그이에게 톨 게이트 살인사건하고 지연이가 봤다던 그 시꺼먼 차에 대해서 얘기 해 주었더니, 자기가 농담조로 그 범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지난 여름에 비가 엄청많이 왔잖아. 그때 온 비로 남편이 근무하던 공원묘지도 난리가 났대. 너무 많이 온 비로 많은 묘지들이 유실되 고, 시신들이 물에 쓸려 내려갔다는 거야. 300 구가 넘는 시체가 훼손되었다는 거야. 불행중 다행인지 공원 묘지 근처에 강이 없 어, 시체들이 다른 곳처럼 강물에 떠내려가지 는 않았대. 그래도 자기 조상이나 가족의 시체가 없어 진 사람들은 난리가 났지. 빨리 시신을 찾아내라고 난리였대. 우리 남편도 몇주동안 그 없어진 시체를 찾 아 묘지 근처를 돌아다녔대. 대부분의 시체는 묘지 입구 어귀 밭에서 찾아냈대. 딴데보다는 쉬웠지만, 그래도 썩을대로 썩 고 물에 불은 시체들을 찾는 것 정말 싫은 일 이었대.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했는데, 시체 를 찾아주며 돈을 받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는 거야, 글쎄... 그 사람들은 시신을 못 찾아 안달이 난 가 족들에게 얼마씩 받고 시신을 찾아주는 일을 했다는 거야. 남편은 처음에 별일로 돈을 다 버는 놈들이 라고 생각했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기막힐 정도로 시신을 잘 찾아왔대. 그것도 가족이 원했던 그 시체라는 거야. 남편은 그 사람들이 너무 시체를 잘 찾아, 어디서 훔쳐오는 줄알았대. 그래서 찾는 것을 보러 직접 따라 갔대. 그 사람들은 남편처럼 무식하게 돌아 다니 는 식으로 시체를 찾는 것이 아니었대. 먼저 가족으로부터 찾으려는 시신이 살아 생전 쓰던 물건을 하나 받는데. 그것이 없으면 가족이 쓰 던 물건이던지 아니면 제일 좋아했던 물건과 같은 종류라도 달라고 했대. 그 사람들 중에 멀쩡한 젊은이가 그 물건을 가지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정신을 집중하는 것 같더니 눈을 번쩍 뜨고 외쳤다 는 거야. 서남쪽으로 330보! 이런 식으로... 그 말을 따라 그 곳에 가서 시체를 찾아보 면 정말 찾을 수 있었대. 남편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만, 믿을 수 없었대. 하지만 확실히 시체를 찾아내긴 찾아내더 래. 그 사람들이 온 후로, 사실 남편도 편해졌대. 시체들을 다 찾아주니 한 시름 덜었다는 거 야. 가족들도 공원 묘지 측에 맡기기보다는 몇 푼 더 주고 금방 찾아주는 그 사람들에게 찾아 달라고 했다는 거야. 일주일도 안되서 300구가 넘는 시체를 다 찾아냈데. 그런데... 딱 1구의 시체는 찾지 못했대. 딱 1구의 시체를... 남편 말로는 그 사람들도 그 시체를 찾아달 라는 부탁을 받아 찾으려고 했지만, 못 찾았다 는 거야. 무서운 얘기는 여기서 부터야. 부자로 보이는 노인이 와서 자기 아들의 시 체를 찾아달라며 거액을 내 놓더래. 그 사람들은 그 시체가 생전에 쓰거나 좋아 했던 물건을 하나 달라고 했는데, 그 노인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날카로운 사냥칼을 주더래. 아무 생각없이 그 칼을 받아든 그 사람들은 똑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칼을 쥐고 뭔가 를 찾는 듯 했대. 그런데 예전에는 5분도 안 돼서 찾던 사람 들이, 그 때는 1시간이 넘게 땀을 뻘뻘 흘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거야. 한참을 그런 식으로 집중하던 그 젊은 사람 이 갑자기 창백해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더니 한마디 내 뱉었대. ‘제기랄! 이렇게 되다니! *팔!!!’ 그 뒤 아무 말없이 그 노인에게 받았던 돈 을 돌려주고, 일행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더 래.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낀 남 편이 그들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어보았대. 처음에는 그냥 떠난다고 하다고 하다가, 자 꾸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으로 이상한 대답을 하고 사라졌대 ‘우리는 시체만 찾는단 말요! 돌아다니지 않 는...’남편은 그들의 이상한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데.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돌발 스런 그들의 행동에 그 노인 역시 멍한 채로 서 있더래. 남편은 그 노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냐고 물어봤데. 노인은 한 숨을 내쉬며 신 세 한탄조로 얘기하더래. ‘휴... 이게 다 내 업보지. 자식 하나 잘못 둬, 이런 일까지 당했지... 죽어서도 속 썩이다니... 그 놈이 살았을 때는 지 마누라와 딸을 죽 였던 잡놈이었소. 사형당한 시체를 수습해 여기다 묻었더니, 그 시체마저 없어져 속을 썩이고 있다우...’ 그랬다는 거야. 이 얘기를 해주면서 남편이 그랬어. 그 톨 게이트에서 살인하고 다니는 놈이 찾 지 못한 시체일지도 모른다고... 그럴 듯 하지? 자기 식구를 몰살시킨 살인자가 무덤에서 나와서 또 살인한다! 어때 좀 무섭지?’ 경수 엄마의 얘기에 같이 듣고 있던 직원들 은 막 웃으면서 재미있고 소름끼치는 얘기라 고들 했어요. 어떤 직원은 아예 모든 얘기가 경수엄마가 지어낸 것 아니냐고 놀려대기도 하고요. 경수 엄마는 자기 남편이 정말 겪었던 얘기라고 했고. 여하튼 분위기는 떠도는 으시 시한 얘기를 들은 것처럼 가벼운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그 얘기를 듣고 서로 농담하는 그 분 위기에서 저 혼자만은 이상할 정도의 두려움 과 불길함이 느꼈어요. 내가 본 그 차에 마치 그 사라진 살인범의 시체가 있었던 것 같은... 경수 엄마의 이야기가 제겐 그럴듯한 공포 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 얘기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저도 그 무시무시한 얘기를 잊 어버리려 했지만, 뇌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표 받을 때도 그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우 고 있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그 차가 지나갈 때 나던 기 분나쁜 냄새가 생각났어요. 생각해보니, 꼭 시 체 썩는 냄새 같았어요. 이런 생각까지 나니, 그 살인마는 정말 무덤 에서 나온 악령같이 느껴졌어요. 혼자만 고민 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제 생각을 동료들 에게 얘기했어요.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 가 재미없는 농담하는 걸로 생각했어요. 몇 번 을 얘기했지만, 점점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더 이상 얘기하지 못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한 동안 그 톨 게이트 살인 마가 잠잠 했어요. 분명히 제 생각에는 곧 우리 톨 게이트에 그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 저는 점점 마음이 놓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신경과민증상으로 생각했어요. 긴장이 느슨해진 것은 저 뿐만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남자직원들도 전부 야간 당직을 싫어했는데, 시간이 가고 아무 일도 않 생기니 까 모두들 야간 당직을 자기가 하려고들 하는 것이었어요. 그 동안 그 살인사건 때문에 야간 당직을 모두 회피하니까, 공단에서 야간 당직 수당을 좀 인상했거든요. 그러니 그 살인 사건 이 없어진 것 같으니 남자 직원들은 야간 당직 을 오히려 하고 싶어했던 거예요. 범인에 대한 단서도 잡지 못한 채,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지 어느덧 한 달이 좀 넘게 지났 어요. 그 사이에 톨 게이트 일 중에서 가장 힘 들다는 추석도 지났어요. 그런 평온한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여자 직원들은 모두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고, 야간 당직을 하기 위해 남자 직원 두 명이 출근하고 있었어요. 저는 혹시나 몰라 그 사람들에게 조심하라 고 했어요. 그들은 지급 받은 가스총을 카우보이처럼 흔들더니 여유 있는 웃음과 함께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그들의 태연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오늘 밤에 가 을 가뭄을 해소할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들었어요.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 예보를 들었어요. 밤에 잠을 이루려는데 자꾸 뭔지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어 잠을 잘 잘 수가 없었 어요. 잠이 덧든 상태에서 계속 기억도 나지 않는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았어요. 한참을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천둥소리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보니, 아직 밤이었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밤 3시 반이 좀 넘었어요.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한참은 더 잘 수 있 을 것 같아 다시 잠을 청했어요. 번쩍 하고 번 개가 치고, 좀 있다 하늘이 무너질 듯이 천둥 이 쳤어요. 그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바로 비 였어요. 두 번 다 그 살인마는 비올 때 나타나 살인 을 저질렀던 것이 떠올랐어요. 두 번째 살인 사건이후로 그때까지 비가 한 번도 안 내렸던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사 실을 깨닫게 되자, 소름이 쫙 끼치고 온 몸이 부르르 떨렸어요. 밖에는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퍼붓 고 있었어요. 잠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침대에서 일어나, 톨 게이트 사무실로 전화해봤어요.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안 받는거예요. 그러니까 더 불안했어요. 내가 틀렸겠지 하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잘 수가 없었어요. 대충 옷을 챙겨입고, 차를 몰고 억수같이 쏟 아지는 빗속을 뚫고 톨 게이트로 향했어요. 가는 동안 별 생각이 떠올랐어요. 불빛 한점없는 비오는 밤길을 달리다 보니, 무서워졌어요. 저 어둠 속에서 그 살인마라도 나타날 것 같 았아요. 뭔가가 뒤에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저 길가 암흑속에서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도 같았어요. 비는 오고 어두워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 는데, 자꾸 뒤가 신경쓰이는 것이었어요. 운전 하면서 뒤가 불안해 힐끗힐끗 뒤를 봤어요. 어둠 속에서 뭔가 불길한 기운마저 느껴지 기까지 했어요. 뭔가에 쫓기듯 빗속을 뚫고 톨 게이트를 향 했어요.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톨 게이트 쪽에서 이쪽을 향하는 자동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톨 게이트를 지나오는 것 같은 자동차 불빛 을 보자 좀 마음이 놓였어요. 자동차가 지나다 닌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얘기잖아요. 괜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며 차의 속 도를 좀 늦쳤어요. 그런데 그 차의 불빛이 갑자기 가까워지는 것이었어요. 그 차의 불빛을 보고 있던 저는 두려움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어요. 그 차의 불빛은 보통 헤트라이트 불빛이 아 니었어요. 마치 지옥에서 나온 악마의 붉은 눈빛처럼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차가 다가오자, 무서워 미칠 것 같았어요. 내 정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일초라도 빨리 그 차에서 벚어나기 위 해 속력을 높였어요. 그 차는 시시각각으로 기분나쁜 헤트라이트 불빛을 발하며 덮치듯이 나를 향해 다가왔어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죠. 순간 그 차는 내 옆을 지나갔어요. 눈을 감았지만, 확실히 느낀 것은 그 차에 타고 있던 그 무언가가 나를 보고 웃었다는 거 예요.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전 느꼈어요. 그 차는 이제까지 내게 피묻은 표를 주던 그 차였고, 그 차를 운전하던 그 무엇은 나를 보 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순식간에 그 차는 제 옆을 지나갔어요. 혹시나 하고 백밀러를 보았는데, 아니나 다 를까 방금 전에 분명히 내 옆을 지나갔던 그 차가 안보이는 것이었어요. 백 라이트라도 보여야 정상인데, 아무런 흔 적 없이 암흑만이 보이는 것이었어요. 불안해하는 도중에 톨 게이트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정산소의 불빛이 다 꺼져 있던 거예요. 비가 와서 톨 게이트 안에 누가 있는지 잘 안 보였어요. 저는 차를 톨 게이트 앞에 세우고 손전등과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어요. 불길한 얘감을 억누르며 천천히 정산소로 향했어요.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비 소리 때문인지 아 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를 비춰보았지만,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었어요. 정산소 문앞에 서자 피비린내 같은 것이 났 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 안을 비춰보았어요. 그 순간 저는 놀라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어요. 불과 몇 시간전만 해도 가스총을 들고 여유 있어 하던 남자 직원이 팔이 잘려 나간 채 피투 성이가 되어 난도질 당한 채 죽어있는 것이예요.시체의 쾡한 눈은 흉칙함을 더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 정신없이 거기에서 뛰어 나왔어요. 시체가 벌떡 일어나 제 뒷덜미를 채갈까봐 비 맞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달렸어요. 나도 모르게 사무실 쪽으로 달려갔어요. 헉헉대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어요. 사무실 역시 불이 나가서 깜깜했어요. 누구 없냐고 소리쳤지만, 들리는 것은 비소 리 뿐이었어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어요. 짧은 순간이나마 사방이 환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너무 끔찍한 것을 봤어요. 제 바로 눈앞에 고깃덩이처럼 너덜너덜해진 시체가 하나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시체의 멍 한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사방이 사람들로 북 적되었을 때였어요. 경찰, 직원, 응급차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 려와 있었어요. 내가 깨어나자, 경찰들이 몰려와 사정없이 질문을 해대는 거예요. 저는 간신히 전날 밤 본 것에 대해서 얘기했죠. 하지만, 경찰들은 제 말보다는 왜 제가 한 밤중에 여기에 왔냐고 캐 묻는 것이었어요. 마치 용의자 심문하듯이 나를 심문하는 것 이었어요. 저는 밤에 본 그 기분 나쁜 차와 살인마가 비올 때 마다 찾아온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역 시 아무도 안믿고, 오히려 저를 의심하는 것 같더군요. 무섭기도 답답하기도 해 미칠 것 같았어요. 경찰 말로는 피해자들이 사냥칼로 수십 번 난도질당한 채로 죽어있다는 것이었어요. 경찰의 심문이 끝나자 저는 톨 게이트 근무 를 해야 했어요. 사람은 죽었지만, 고속도로를 패쇄할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오히려 직원이 둘이나 죽었기 때문에, 일손 이 딸리는 형편이 었으니까요. 경찰도 벌써 3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니 가 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각 톨 게이트마다 밤 에 두 명의 경찰을 배치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무서워질 대로 무서워진 직원들은 야간 당직은 피하려고 했어요. 사실 톨 게이트 에서만 살인을 저지르는 그 놈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제 생각에는 다음 비오는 날 분명히 또 나타 날 것 같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여하튼 그래서 경찰 두 명이 지켜줄 때까지 우리 톨 게이트 야간 당직은 1명으로 하기로 했어요. 죽기보다 하기 싫은 야간당직이었지만, 직 장을 그만 둘 형편도 못 되고 해서 어쩔 수 없 이 저도 하게 되었어요. 우리 톨게이트에서 살인이 일어난 지 일주 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 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경찰 역시 매일 밤 톨 게이트 당직을 서야 하는 것에 피곤함도 느끼는 것 같았고요. 그러다 결국 그 날이 온 것이지요. 야간 당직 하게 되는 날이면 항상 일기 예보 를 확인했거든요. 혹시 밤에 비라도 오는지. 그런데 그 날은 비 올 확률은 10%미만이라 도 예보에서 나왔어요. 그걸 믿고 야간 당직을 서게 되었죠. 그 실수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예요. 저와 같이 야간 당직을 하게 된 경찰은 공교 롭게도 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였어요. 왜 이 쪽 담당도 아닌 그 사람이 저와 당직을 같이 하게 되었는지 좀 이상했지만 별로 신경 안 썼 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어요. 여하튼 아무 것도 모르던 저는 단지 아무 일 도 없길 바라기만 하면서 정산소에 앉아 있었 어요. 그 형사는 저와 같이 정산소에 앉아 있었고, 그와 같이 온 동료 경찰은 톨 게이트 근처에 세워놓은 차에 앉아있었어요. 두 명의 경찰은 서로 교대하며 정산소와 차를 왔다갔다 했어요. 저는 낮에 푹 자서 별로 피곤하지 않았어요. 매일 혼자만 앉아 있는 정산소에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려니 좀 이상했어요. 그것도 경찰과. 밤이 깊어지자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어지 고 무료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형사와 형식적인 대화만 나누다 가, 슬슬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요. 특히 젊은 담당 형사와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사람은 젊은 사람답지 않게 침착한 것 같았어요. 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무서움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경찰이 지켜주고 있는데 괜찮겠지라 는 생각도 들고요... 이것 저것 얘기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밤 2 시가 지나고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한 마디 도 않했던 그 형사가 점점 사건에 대해 이것 저것 질문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제가 보고 생각했던 모 든 것을 얘기했어요. 그 무덤과 못 찾은 시체 얘기까지 다 해 주 었어요. 그 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제 얘기를 다 들 었어요. 제 얘기가 끝나자 형사가 살인사건에 대해 몇가지 의혹을 얘기해 주었어요. ‘음... 그랬어요... 하긴 이번 사건,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저도 많지는 않지만, 살인 현장은 꽤 봐왔 거든요. 그런데 이번 살인 현장에서 받은 인상은 좀 이상해요. 살인범이 살인을 할 때 아무런 감정없이 사 람을 죽인 것 같아요. 원래 살인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사람 의 감정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범죄인데, 이 번 살인은 하나의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요. 무슨 껍데기만 있는 놈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상한 점은 더 있어요. 이 톨 게이트에서 발생한 살인만 해도 그래요. 두 명의 피해자가 똑같이 그렇게 심하게 난 도질을 당했는데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 다는 거예요. 마치 무슨 최면에 걸려있었던 것 처럼, 또는 자다가 당한 사람들처럼 전혀 반항 의 흔적이 없었어요. 자다가 습격을 당해도 그 정도의 난도질을 당하면 바둥거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당 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살인범이 면식범일 가능성도 있어요. 혹시 모르죠. 지연씨 말한대로 무덤에서 나온 악령이 그 범인일지도...’ 형사의 말을 잘 들어보니 제 얘기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내리는 것이었어요. 비가 오기 시작하자, 저는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오늘도 분명히 그 살인마가 나타날 것 같았 어요. 그 형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안절부절 못 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려 애썼어요. 하지만 두 려움이 미칠 지경인 저는 빨리 여기서 도망가 자고 소리쳤어요. 형사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걱정말라고 하며 저를 정산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지지직 거리더니 정산소 불빛이 꺼 졌어요. 그 살인마가 나타날 때랑 똑 같았아요. 비가 내리고, 정산소 불이 나가고. 저는 무서움으로 실신할 지경으로 소리쳤어요. ‘이제 그 놈이 나타난다고요! 그 놈이! 우리를 죽이러!!!’ 불이 나가도 침착해하던 그 형사는 저를 진 정시키다가,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었어요. 제 어깨 너머로 뭔가를 본 것 같았어요. 형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어요.‘저게 지연씨가 말하던 그 놈이 온 것같네요’ 그 말에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악’하는 비 명 소리를 질렀어요. 거기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그 어두운 색 차 가 톨 게이트 앞에서 악마의 눈 같은 헤트라이 트를 밝힌 채로 서 있는 거예요. 우리를 노려보며... 형사는 그 자동차 불빛을 노려보며, 다급히 무전기를 들고 차에 있을 동료를 나지막한 목 소리로 불러댔어요. ‘이봐 최 형사, 그만 자고 일어나!’ 최형사라는 사람은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뭐야 무슨 일이야?’ ‘기다리던 손님이 오신 것 같아. 톨게이트 앞쪽을 봐.’ 잠시 있다 긴장된 최형사의 목소리가 들렸 어요. ‘잠깐... 어! 짙은 색 자동차가 한 대 보여. 저 차 왜 서 있지?’ ‘그 놈일지도 몰라’ 무전기 너머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러더 니 최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시봉! 하필 비올 때 지뢀하는거야! 차안에 우산도 없는데...내가 나가보지.’ 그 말과 함께 무전기 너머로 자동차 문소리 와 함께 빗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저 와 같이 있던 형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기 에 대고 외쳤어요. ‘최 형사! 조심해! 혼자 설쳐대지 말고!’ 그런데 비 때문인지 무전기에서는 최 형사 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어요. 하이빔을 켰는지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자동 차 불빛 때문에 최형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 아요. 최형사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무전기에서 들 렸지만, 뭐라고 말하는 지 잘 알아들을 수 없 고 지직거리며 목소리의 일부만 들려왔어요. ‘......지금......앞이야....... .................................... 차.......안.......아무도... 안........ .................... 문......앞........ 경찰......... .................... 잠시.........차......내려..........’ 나와 형사는 뭔가에 홀린 듯 그 얘기를 들으 면서 차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그 상태에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 어요. 지금 생각해도 왜 저와 형사가 그 순간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는지 의문이예요... 그때였어요.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최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뭐야!..... ......아악!!’ 무전기에서의 비명과 함께 창 밖에서 누구 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와 동시에 총구에서 번쩍이는 듯한 불빛과 함께‘타앙!’하는 총소리가 여러번 들 렸어요. 총소리는 빗속에서 메아리쳤어요. 그리곤 죽음 같은 적막이 갑자기 흘렀어요. 총소리를 듣자마자, 저와 같이 있던 형사는 ‘제기랄!’하며, 제가 말릴 새도 없이 권총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어요. 빗 속을 헤치고, 형사는 그 자동차로 달려갔어요. ‘경찰이다! 꼼짝 말고 차에서 내려! 최 형사! 최 형사!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있어?’ 불빛 때문에 형사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다급한 외침만 들려왔어요. ‘아니! 최 형사!! 시밤! 어떤 *끼야!! 숨어있지 말고 빨리 나와!! 이 살인마 개*끼!!’ 갑자기 분노한 형사의 목소리를 들으니, 최 형사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을 발견한 것 같았어요. 저는 무서웠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해 미* 것 같았어요. 차의 불빛만 보이고, 형사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 었어요. 형사가 제게 뭐라고 외쳤어요. ‘지연씨, 밖으로 나오지 말고 꼼짝 말고 있 어요!!’ 그리고는 형사의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빨리 문열고 나와!! 손들고! 나와!! 이 개*끼야!!’ 형사가 차안에 탄 누군가를 발견하고 외치 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저는 차에 타있던 그 사람이 살인마가 아닐지도 몰랐지만, 형사가 그냥 그 사람을 총 으로 쏴버렸으면 했어요. 하지만 형사는 그러 지 않았아요.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문열고 나와!! 빨리! 이 새*야!!’ 그 다음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게 는 정말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나도 모르 게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어요. ‘철컥’하고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요. 문소리와 함께 목이 쉰 것 같은 형사의 목 소리가 들렸어요. ‘천천히... 천천히 나와...’ 정말 숨막힐 것 같았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요. 그때였어요.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 겁에 질릴대로 질린듯한 형사의 처절한 외침과 비명이 들려 왔어요. ‘뭐야...넌...설마...아악!!!’ 형사의 절규하는 비명이 들리며,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총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총소리가 멈췄어요. 형사의 정신나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제발...더 이상 다가오지마!! 제발! 아악!!!!!!’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처절한 비 명이었어요. 그리고는 갑작스런 적막이었어요...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아요. 그 차의 불빛은 살기를 띤 것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춰대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저 불빛 너머로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두 형사는 정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 았어요. 머리 속은 여기서 빨리 도망가야 한다 는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몸이 도저히 움직여 지질 않았아요. 그때였어요. 죽음 같은 적막을 깨고, 자동차 불빛너머로 뭔가가 휙 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어요. 움직 이는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 차릴 수 있었어요. 그 움직이는 무엇이 이번에 는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 각이 들었어요. 정산소 문을 열려고 하는데, 왠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어요. 마치 밖에서 잠근 것 처럼 꼼작을 않는 거예요. 미친 듯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릴 생각을 않는 거예요. 문밖에서는 뭔가가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 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놓고 창밖을 내다 봤 어요. 여전히 눈 부신 자동차 헤트라이트 불빛밖 에 보이지 않았아요. 다시 문을 열어볼 생각을 하고,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어요. 그런데 꼼짝도 않던 문고리가 저절로 천천 히 돌아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것을 본 순간 저는 무서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누군가 밖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것같았아요. 생각할 새도 없이 돌아가는 손잡이를 잡았 어요. 하지만, 문을 열려는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 로 강해서, 필사적으로 두손으로 잡았지만, 계 속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무서워서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았어요. 이 문이 열리면 나도 칼로 난도질 당해 죽을 것 같았어요. 문밖에 무엇이 문을 열려고 하는지 볼 수 없 었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잡은 채 주위를 둘러 보았어요. 머리속은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어요. 두손으로 잡고 있었지만, 어느 새 문 손잡이 는 거의 다 돌아갔아요. 곧 문이 열릴 것 같았어요. 저는 온 몸으로 느끼는 공포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어요. 문이 열리는 순간, 아무 생각이 안들었어요. 단지 이 무서움에서 빠져 나가야 겠다는 생각 에 몸을 전면 유리창으로 날렸어요.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큰 충격을 느끼며 창밖으로 나동그라졌어요. 떨어질 때 충격으로 잠시동안 몸을 가눌 수 없었어요. 유리의 파편 때문인지, 얼굴에 끈적끈적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어요. 억수같이 내리 는 비와 섞인 피는 입속으로 흘러들어와 찝찌 름한 맛이 느껴쪘어요. 손이 유리 파편에 베어지는 것도 못 느끼면 서,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어요. 문을 열려고 하는 그 놈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밖으로 떨어질 때 충격으로 몸이 비틀거렸어요.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과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춰지는 헤트라 이트 때문에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 불빛 쪽을 향해 비틀거리 며 걸어갔어요. 뒤에서 그 무언가가 나를 쫓아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아요.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어요. 내가 그 때 할 수 있었던 전부는 단지 비틀 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것 뿐이었어요.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어 요. 빗소리인지 그것의 발소리인지 알 수는 없 었지만, 언제라도 제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 어요. 자동차 불빛을 지나는 순간, 저는 뭔가에 걸 려 호되게 넘어졌어요. 발버둥치며 일어나려는데, 발에 걸렸던 것 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자동차 불빛에 비춰 보이는 그것은 바로, 나와 같이 있던 형 사의 끔찍한 시체였어요. 가슴팍은 칼로 수십번 난도질당한 모습이어 서, 허연 뼈까지 보일 듯 했어요. 얼굴은 피투 성이가 되어있었고,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을 본 것처럼, 눈은 공포에 질린 채로 떠 있었어요.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불빛 너머로 그것이 다가오는 것이 언뜻 보였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놈이 한 손에 들고 있는 칼은 확실히 보였 어요. 칼 끝에는 빗물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 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요. 저는 앉은 채로 뒷걸음질 쳤어요. 그 놈은 점점 제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앞을 보며 필사적 으로 바둥거리며 뒤로 갔지만, 그 검은 그림자 는 점점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손에 뭔가가 건들어졌어요. 피묻은 권총이었어요. 그 형사가 놓친 것같았아요. 본능적으로 그 권총을 쥐어서 다가오는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권총이라 그런지,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요. 한 손으로는 들 수 없어서, 두 손으로 잡았어요. 내게 다가오는 그 놈은 권총을 못 봤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내게로 걸어왔어요. 눈을 감고 있는 힘껏 방아쇠를 당겼어요. 귀청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손 이 반동으로 위로 올라갔어요. 하마터면 권총 을 떨어뜨릴뻔 했어요. 눈을 떠보니, 그 놈은 총에 안 맞았는지 거 침없이 바로 제 앞으로 다가와있는 것이었어요. 겁이 난 저는 다시 한번 권총을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권총이 무거워서인지, 아니면 너무 겁이 나 서인지 총을 든 두 손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 로 흔들렸어요. 그 놈이 바로 제 앞에 서서 칼을 든 손을 치 켜들었어요. 나를 난도질하려는 것이었어요. 이번엔 눈을 똑바로 뜬 채로 그 놈의 안보이 는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어요. 예의 강한 충격과 함께 권총이 발사된 것을 느꼈어요. 그 놈의 머리가 터지면서 끈적거리는 피가 제 얼굴에 튀겼어요. 그 피는 마치 썩은 것처 럼 악취를 풍겼고 불쾌할 정도로 끈적거렸어요 이번엔 제대로 맞았는지, 그 놈의 고개가 뒤 로 재껴지면서 주춤거리며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그 놈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 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총을 정통으로 머리에 맞았는데도 쓰러지기는 커녕 주춤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서는 것이었어요. 그 놈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 놈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 이 생겼어요.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무서움 이 극도로 다달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하 더군요. 제가 그랬나 봐요. 생각할 새도 없이 그 놈의 머리통을 향해 다 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어요.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 놈의 머리가 다시 한번 뒤로 제껴지며 몸까지 뒤로 밀렸어요. 알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저는 그 놈의 향해 계속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 놈은 총에 맞을 때마다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쓰러지지 는 않았어요. 그 놈을 차 있는 데까지 몰아부치고, 방아쇠 를 당기는데 총소리 대신 철커덕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였어요. 몇번을 당겨봤지만, 철커덕 소리만 공허하 게 울렸어요. 차에 기대고 있던 그 놈은 천천히 고개를 들 고 몸을 일으켰어요. 얼굴은 총에 맞아서 인지,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어요. 얼 굴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거기서 풍겨 나오는 사악함은 그것을 보는 사람을 하여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정도였어요. 저는 그 놈을 향해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계 속해서 당겼지만,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찰카 닥 소리만 날 뿐 나가지 않았어요. 그 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칼을 든 손 을 다시 한번 높게 쳐들었어요. 이번에는 정말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포기한 채로 힘없이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 순간 총알이 발사되는 충격과 함께, 자동 차가 펑하고 폭발하고 그 폭발력에 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날랐다가 바닥에 사정없이 내 팽 겨쳐졌어요. 갑작스런 폭발에 영문도 알 수 없이 나가떨 어진 저는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을 잃기전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칼을 든 그 놈이 화염에 휩싸인 채로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 는 것이었어요. 의식을 잃으면서도,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가누고 그 놈에게서 도망치려고 했어요, 하지 만 몸이 제 뜻대로 움직여지질 않았어요. 그 놈이 내게 다가와 내 몸을 난도질 할 것 같았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만 날 뿐 사방이 뿌옇게 되 고 의식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사방은 밝아있고 경찰들 과 사람들이 부산거리며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어요.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아요. 눈을 뜨자, 경찰들이 달려와 쉴 틈도 안주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영문도 모르 는 저는 어제 어떻게 된 것인가에 대해 물어봤 어요. 경찰 말로는 아침에 새까맣게 타버린 자동 차 한 대와 갈기갈기 찢겨나간 형사 두명의 시 체가 그 주변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형체도 알 수 없게 타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도 한 구 발견되었고, 좀 떨어진 곳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저를 발견했다는 거예요. 저는 경찰의 질문에 그날 밤 제가 봤던 일들 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거 기에 있었어요. 아무도 제 얘기를 믿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 타버린 시체의 신원을 밝혀보면 알 수 있 을 거라고 했지만, 심하게 타버린 데다가 총에 맞아 치아와 턱구조도 박살이 나서 알아볼 방 법이란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얘기해도 제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 도 없고, 결국에는 미친 여자로 취급해 나를 이 병원에다 가둔 거예요. 기자 아저씨, 제발 저를 맛간여자로 보지 말고, 믿어 주 세요. 직접 그 톨게이트 가서 조사해 보시면 제 말 이 맞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대로 여기 있다간, 언젠가 그 놈이 나타난 나를 죽일 거예요. 제발 부탁이예요... 제 말을 믿어주고,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나는 아무런 죄도 없고, 미치지도 않았어요. 부탁이예요... 제발!!!!” 그 여자의 믿을 수 없는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황당한 얘기를 믿어야 하는지... 더구나 처절하게 자기의 얘기를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여자가 미쳤다는 것 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재원이는 잠시 멍해있는 나를 보고 이제 나 가자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왔지만, 그 여자의 얘기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쉽게 일어날 수 없 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병실에 머무를 수 없 는지 재원이의 재촉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광기어린 눈빛 으로 그녀는 외쳤다. “저를 여기서 꺼내 주세요! 나를 놨두고 그냥 가지 마세요!! 무서워요!!! 제발!!!”문을 열고 나가는 재원이의 뒤를 따라가면 서, 나는 그 여자를 보고 동정심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너무 기대는 마시고... 얘기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병실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여자를 돌아보았다. 사지가 결박되어있는 채로 처절 하게 몸부림치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니 이상 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정신 병동 복도를 말 없이 걸어나오는데, 재원이가 말을 건넸다. “저 여자 말 어때? 진짠 거 같아?” “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래? 그런 내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줄게... 날 따라와. 저 여자를 담당하고 있는 선배 레지던트를 만나보자.” 재원이는 나를 데리고 정신과 레지던트 당 직실로 갔다. 거기에는 아까 재원이와 나를 병동으로 들어 가게 해 주었던 레지던트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아주면서, 그 여자 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일한씨라고 했죠? 어때요? 그 여자 얘기 들어보니깐...”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얘기는 그래도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상인 취 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잘 구분 못하겠어요. 그 여자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살 인을 하고 다니는 악령을 본 것인지...” 그 레지던트는 내 얘기를 듣더니, 빙그레 웃 으며 담담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 환자의 얘기만 듣고는 아무도 그 얘기의 진실성을 알 수가 없죠. 일한씨, 그런 얘기 들어봤어요? 진실의 양 면성이라는 것이요... 진실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래요. 그 환자의 얘기도 그렇게 생각하면 될거예요. 지금까지 제가 그 환자를 치료하고 검진해 본 결과, 그 여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진실만을 말하고 있죠...” 그 여자가 진실만을 얘기했다는 레지던트의 말은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사실을 말했다면... 그 여자가 본 것이 전부 사실이라는 거예요?” 당황한 나의 질문에 그 레지던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글쎄요... 그 환자가 진실을 얘기했지만, 사실을 얘기 하지 않았다고 해두는 것이 맞죠. 그 환자는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얘 기했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 고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그 환자가 이 병원에 이송되었을 때는 환자 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살인 용의자로 왔어요. 사람을 난도질해 죽인 범인으로 병원에 왔 어요...” 나는 처음에는 레지던트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친절한 설명은 나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다. “일한씨도 그 환자로부터, 무덤에서 나왔다 는 살인자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그 살인자의 악령이 톨게이트를 돌아다니며 살인했다는 얘 기였죠? 그 환자는 입원 첫날부터 그 얘기를 되풀이 했어요. 하지만 그 환자를 이송한 경찰의 보고서는 다른 진실을 보여 주었어요. 그 보고서에 따르면, 그 환자가 얘기한 모든 살인 사건은 바로 그 환자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것이였어요. 젊은 여자가 칼로 그 많은 사람을 난도질 해서 죽인 것이지요. 경찰은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정황증거로 그 환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집중 했다더군요. 그 환자가 받았다는 표에 묻었던 혈액은 다 름 아닌 그 환자의 피로 판명이 되었데요. 그 래서 그 날 그 지역 경찰이 아닌 담당 형사들 이 정산소에 온 것도 사실은 유력한 용의자였 던 그 환자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데요. 그러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사건 현장에 서 발견된 칼에서도 그 여자의 지문이 채취되 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 여자는 자기가 한 일을 전혀 기억못하고, 무덤에서 나온 살인자 가 모든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검진 결과 그 여자는 정신질환자로 밝혀졌어요.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진짜로 기억못하고, 전부 자기가 굳게 믿고 있는 그 악령이 살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고 있고... 아, 물론 약간에 의문은 있대요... 현장에서 태워진 채로 발견된 차는 도난차 량으로 발견되었대요. 그리고 타버린 시체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 했대요. 경찰은 그 시체가 차를 훔쳐달아나다 죽음 을 당한 차량 절도범으로 결론 짓고, 신원파악 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이고요... 또 짧은 밤 시간에 그 환자가 그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도 약간 신빙성 없고요. 하지만 경찰 주장에 의하면 시 속 160킬로 정도로 달리면 살인하고 돌아올 수 있다더군요. 아무리 차가 없는 시간이라도, 심야 빗속을 그런 속도로 달렸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요... 그래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여자였기 때문 에 살인범으로 체포했지만, 진술이 너무 황당 해서 정신감증을 의뢰했고... 결국은 정신질환자로 판명되어서 이 병원 에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 환자가 말한 진실의 다른 면 이지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혼란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여자가 사람을 몇 명이나 난도질해서 죽 인 살인자라니... 갑자기 의문이 머리에 스쳤다. “그 여자가 진짜 살인범이라면 살인의 동기 는요? 아니면,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미치게 된 원 인은 도대체 뭐지요?”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그런 의문을 갖게 되지요... 다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상식때문이예요... 모두들 정신병 하면, 뭔가 큰 충격이라던가 아니면 성장기에 겪은 비정상적인 일이 원인 이 되어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직 정신질환의 정확한 원인은 의 학계에서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개인 적 경험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빙 산의 일각이고요... 쉽게 말하면, 이유없이 미친다는 것도 성립 될 수 있는 거예요. 멀쩡하던 사람이 자다가 이유없이 급사하 듯이, 정상인이 어느날 갑자기 미쳐버릴 수 있 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미친 사람을 마귀 들렸 다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이 환자도 이유 없이 미쳐 버린 수많은 정 신질환자 중에 하나로 보는 것이 맞겠지요...” 나는 레지던트의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 도 할 수 없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 다.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말이 휠씬 합 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귀신의 존재가 모든 것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할말도 잊고, 찜찜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당직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그 침묵을 깨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아스라히 들렸다. 멀어서 그런 지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 비명소리를 들으니 이상할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그와 동시에 당 직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레지던트는 심 각한 표정으로 그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요? 또 시작했다고요? 지금 제가 가보죠.” 전화를 끊고 레지던트는 다급하게 일어서며 멍해있는 나와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그 여자 환자가 또 발작을 시작했다더군요. 매일 밤 심한 발작을 해요. 정말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지금 가 봐야하는데...”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도 없어 우리도 자리 에서 일어났다. 같이 당직실을 나서는데 레지 던트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했다. “사실 나도 그 환자의 얘기를 듣고 나름대 로 알아봤어요. 그 동네 보건의로 제 동기가 하나 가 있거 든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환자가 말한대로 그 동네 묘지에서 시체를 한 구 못 찾았대요. 그것도 그 환자 말대로 살인 전과자의... 그리고 좀 무서운 얘기가 하나 있어요. 국립과학 수사 연구원에 다니는 선배가 얘 기해 준건대요. 그 신원을 알 수 없다는 타버린 시체 있잖 아요? 그 시체가 부검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는 거예요. 부검하기 위해 시체를 옮겨 놓았는데, 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 다는 거예요. 살아서 걸어나간 것처럼요... 국과수에서는 난리가 났더래요. 중요 피해자의 시체가 사라졌으니... 결국 용역회사의 착오로 화장된 것 아닌가 추측하고 종결지었다고 하더군요... 참 이상하지요... 그 환자 말대로 정말 그 시체가 살인마의 귀신이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 얘기를 던지고 레지던트는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황급히 걸어갔다.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멍하니 선 채로 음산한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레지던트 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벨라의무서운이야기입니다:) 80
(이 이야기에 나오는 실제 지명은
사정상 밝힐 수 없습니다.)
쉴 곳을 잃은 자는 방황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살의를 품고........
때늦은 겨울비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싸늘한 겨울 습기가 얼굴을 스치자, 재원이
와 함께 만났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재원이, 자식... 아직도 죽었다는 실감이 나
지 않는다.
그 여자를 만난 날도 이렇게 스산한 날씨였다.
재원이는 내키지 않았던 내게 귀찮을 정도
로 그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재원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병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던가, 이상한 환자가 들어오게 되
면, 나를 불렀다.
그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항상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날
도 역시 병원은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그 느낌은 더욱 으시시하게 느껴
졌다.
특히 철문으로 닫혀있는 정신병동에 들어갈
때는 일말의 공포까지 느껴졌다. 재원이가 정
신과 레지던트 선배에게 한참을 졸라 허락을
미리 받았다고 했지만, 워낙 패쇄적이고 엄
격한 곳이라 밤 늦은 시간에 남의 눈을 피해
찾아가야 했다. 재원이 말로는 자기와 친한
선배가 당직 일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
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우리가 찾아간
것이 알려진다면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될 정
도로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음산하고 캄캄한 정신병동 복도를 따라 한
참을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원 제일 구석에 있는
격리실이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선배 레지던트는 그 격리
실 문을 열기전에,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
로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조심해라! 무슨 일 있으면, 즉시 뛰어나와
서 날 부르고!
스테이션에 있을테니...”
그 말에, 생각없이 여기까지 따라온 나는
갑자기 으시시함이 느껴졌다. 격리실 안에 말
로만 듣던 미친 연쇄 살인마라도 있다는 듯한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철커덕”
격리실 문을 여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
졌다.
재원이가 격리실안의 불을 켜자, 서너평 남
짓한 하얀 병실에 침실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졌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정신병자
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압박복을 입고, 침대
에 묶여져 있는 것이었다. 꽤 발작이 심한 환
자처럼 보였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
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광기와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첫 눈에 봐도 그 여자가 험한 일을 당한 것
처럼 느껴졌다.
재원이가 구석에 있는 의자를 두 개 끌고와
그여자 머리맡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
기를 시작했다.
“지연씨, 제가 지연씨 얘기 믿어줄 신문기
자를 데리고 왔으니 그 얘기 다 해주세요...
이 분은 정말 지연씨 얘기 다 들어줄 거예요...”
재원이의 거짓말 덕분에 갑자기 기자가 된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을
나를 바라보는 그 여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치곤 괴기
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앙칼지게 내
게 얘기했다.
“기자 아저씨, 내 모든 얘기 다 해줄테니,
제발 날 여기서 끄내줘요!
여기 이렇게 있다간 그 사람이 나를 죽이러
온다니까!”
나는 머뭇거리며 최대한 도움이 되어 드리
겠다고 했지만, 정신병자를 속인다는 것이 마
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서 풍기는 괴
기함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슨 얘기
인지 꼭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재원이 나는 침대에 묶여있는
미친사람일지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그 얘기
를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보
였고, 얘기 중에도 계속 주위를 돌아보는 등
불안해 보였다.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들려준 얘기는, 그 여자가 왜 그
렇게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는지 설명
아닌 설명이었다.
어떤 것이 진실일 줄은 아직 모르지만...
아니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아마 제 얘기를 믿지 않을 거예요...
여기 의사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거예요.
꿈속에서 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언제가 나를 데리러 오겠죠.
지옥에서...
그러니 빨리 나를 여기서 내보내 줘요! 제
발!!!
제발...
흐흑......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고속도로 톨게이
트에서 통행료 받는 일을 했었어요.
아주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이었죠...
그 일을 5년동안이나 하고 있었죠.
아시다 시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에요.
다만, 매연을 들이마시며 하루 8시간씩 자
리에 앉아 돈을 받는 일이란 단조로움과의 싸
움이지요.
일이 단순할수록 스트레스도 많은 것 같았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담당하는 톨게이트는 충청북도 P시로
나가는 곳이었어요.
아주 작은 곳이었죠.
통행료 받는 곳이 왕복 6개 밖에 없고, 그
나마 평상시에는 3곳을 운영해요. 추석 등의
명절때를 제외하고는요...
추석때 말이 나와서 그렇지, 그때는 정말 난
리가 나요.
바로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면 큰 공원묘지
가 있었거든요.
추석때만 되면, 하루종일 한번도 쉬지 않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통행료를 받아야 해요.
이런 일을 하다보면 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요.
돈 없다고 배째라하는 식의 운전사들, 술취
한 채로 운전하고 오다가 톨게이트에 차를 박
는 사람들, 졸고 있다 통행료를 내고 있던 앞
차를 박아 싸우는 사람들, 통행증을 잊어버렸
다며 그냥 통과시켜 달라는 사람들, 납치범들,
범죄자들, 차 막혔다고 욕하고 가는 사람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되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말 없이 돈
만 내고 가죠.
어떤 날은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않하고 끝날
때도 있어요.
사람들과 차는 많이 지나가지만, 마치 무인
도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지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되면, 하루종일
문을 열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아요...
눈이나 비 올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비오는 밤마다 나타
났어요...
날씨가 스산해지고, 비가 내리는 밤이면 항
상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 사람인줄 알게 되었냐고요?
처음에는 그냥 우연인줄 알았죠...
하지만 세상에는 우연은 그리 많지 않은 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가을 어느 비오는 날이었어요.
작년에는 여름에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서
전국이 난리가 났었는데, 가을에도 역시 비가
많이 왔어요.
가을비 내리는 밤은 특히 톨게이트에서 일
하기에는 참 나뻐요. 낮에 비해 쌀쌀하고 손이
시려울 정도죠.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죠. 다만 밤에 혼자서,
간간히 지나가는 차의 통행료를 받는다는 것
이 무료할 따름이었죠.
같이 당직인 숙자언니는 피곤하다며, 내게
톨게이트를 맡기고 톨게이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자러 들어갔어요.
밤에는 돈받는 톨게이트는 하나만 열거든요.
그런데 그 날따라 비가 심하게 내려서인지,
정산소안의 전등이 나갔어요. 통행료 정산기
는 말짱한데 전등만 나간 거예요...
사실 그런 일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때 대
비해서 손전등과 촛불은 항상 준비되어 있죠.
돈은 줘야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불이 나간 날은 재수 없는 날이
지요.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곳에 혼자 앉아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니까요. 더구나 지방의 소규
모 톨게이트는 아시다시피 인적이 가장 뜸
한 외곽이 있잖아요.
비까지 내리는 음산하고 으시시해졌어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등을 들으면서 빨리 아
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죠...
밤 2시쯤 되었을까...
지나가는 차도 뜸해지고 저도 슬슬 졸려오
기 시작했어요.
비는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고, 잠깨라
고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DJ의 졸린 목소리
가 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잘 나오던 라디오가 지지직
거리더니 잡음만 들리는 것이었어요. 몇번 만
져봐도, 계속 잡음만 들렸어요.
비 때문인가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고속도
로쪽을 쳐다보니, 빗속을 뚫고 천천히 들어오
는 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하루에도 수백번이상 보는 헤트라이트 불빛
인데, 그때는 이상할 정도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유모를
무서움이 느껴진 것이죠.
어둠속에 혼자 있다는 것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진 것이죠...
그 불빛은 저의 두려움을 아는 것처럼 천천
히 다가왔어요.
나는 괜히 겁먹을 필요없다며, 손을 내밀어
표를 받을 준비를 했어요. 그 차는 비속에서
천천이 미끌어져와 정산소 옆에 섰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잘 안보이는 거예요. 원래 정산소에 앉
아있으면,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은 다 볼수 있
거든요. 정산소는 검문 목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얼굴은 이상
할 정도로 어둠에 쌓여 보이지 않았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표를 받으려
고 손을 내미는데. 갑자기 그 사람으로부터 뭐
가 썩는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확 나는 것이
었어요.
그러고는 어두운 차안에서 불쑥 손이 나와,
표와 함께 돈을 내밀었어요. 자기가 낼 금액을
이미 아는지, 돈을 같이 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괜히 머리 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돈과 표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표와 돈이 젖어있는 것이었어요.
빗물 때문에 젖었으려니 하고, 표에 묻은 물
기를 닦기 위해 책상위에 있는 휴지를 집어들
었어요. 젖은 채로 표를 정산기에 넣으면 고
장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그 차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
은 채 출발해 버렸어요,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당황한 저
는 멀어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쳐다보았지만,
번호판은 물론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
고, 저는 한숨을 내쉬며 그 차 운전사 가짜 돈
을 내고 도망가는 구나 생각했어요. 밤이 되
면 가끔 그런 식으로 아무런 종이나 내놓고 도
망가버리는 차들이 있거든요.
그 차도 그런 차인줄 알았아요.
혹시나 하고 젖어있는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비춰보았어요.
처음에는 색깔이 이상해 돈이 아닌 줄 알았
어요.
시커먼게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했
어요.
그때 번쩍하고 번개가 쳤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방은 환해졌죠.
그 순간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놀라 움직일 수 없었어요.
돈과 표에 묻은 것은 빗물이 아니라,
새빨간 핏물이였던 것이었어요.
몸서리를 치며, 그 피묻은 표와 돈을 치웠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 지직거리던 라디오가 제
대로 켜지고, 정산소안의 불도 들어왔어요.
이상하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표와 돈을
줏어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차에 탔던 사람이 단지 코피를 흘렸다거
나, 손을 베서 피가 묻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
어요. 피묻은 표와 돈을 집어들자, 왠일이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그래서 대충 핏물을 휴지로 닦아내고, 말리
기 위해 책상 구석에 치워놨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숙자 언니가 정산소
로 들어왔어요.
이제 자기가 교대해줄테니, 사무실에서 눈
좀 붙이라고 했어요.
그날 밤은 더 이상 정산소에 혼자 있기가 무
서워 그냥 사무실에 들어갔어요.
사무실 당직실에 누워, 그 피에 대해 이것저
것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기억나지 않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웅
성웅성하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
보니 어느 새 환한 아침이더군요.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쳐있고...
사무실에는 출근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요. 저는 퇴근 준비나 할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전화를
받고 있던 소장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었어요. 사무실안에 있던 우리들은 소장
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갑자기 조용해졌
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소장님은 자기에 집중하
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다보더니, 심각한 목소
리로 그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어요.
‘여러분, 이제부터 야간 근무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세요.
지금 들은 얘긴데, 어젯밤에 경상남도 L톨
게이트에서 야간 당직을 서던 직원이 살해당
했데요.
그것도 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군요.
뭐, 팔이 잘리고, 목이 난도질당한 채로 발
견되었데요...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통행료를 노린
강도일 것 같으니 각자 조심하도록 하세요...
휴... 세상이 너무 무서워지고 있어...’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이 뭔가 맞
은 듯한 충격으로 멍해졌어요.
전날 밤 받은 피묻은 그 표가 바로 L 톨게이
트로부터 온 것이었어요...”
그 여자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이런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을 때는 담배라
도 한 대 피면서 듣고 싶었다. 담배를 꺼내며
재원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고개를 가로젖는
모습에 다시 주머니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묶여진 채로 고개만 움직이며 얘기를 하고
있는 그 여자와, 의자에 앉아 이상한 얘기를
듣고 있는 우리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누워있는 그녀에게 물을 먹여주었
고, 그 여자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 지 숨돌
리기가 무섭게 얘기를 계속했다...
“너무 놀란 저는 전날 밤 제가 경험했던 얘
기를 해 주었어요.
소장님은 좀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머
지 직원들은 반신반의했어요. 사실 다들 비슷
한 경험들을 해봤거든요. 받은 표와 돈에 피가
묻어있었던 적도 있고, 숙자 언니는 자기가 받
아든 표에 어떻게 된 일인지 냄새가 고약한 대
변이 묻어져 있는 적도 있었대요.
그러니 내가 봤던 그 사람이 살인범이라는
얘기는 잘 믿겨지지 않나 봤어요.
소장님이 경찰에 전화해 신고해서 제가 받
은 피묻은 표와 돈을 가져갔지만 피를 닦아내
고 밤새 말려졌기 때문에 희미한 핏자국만 남
아있는 상태였어요.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젊은 형사가
직접 그 표를 가지러 왔어요. 그 형사 말로는
그 피가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인지를 밝혀내
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인데, 이 정도 핏자국
으로는 밝혀내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
어요. 무슨 DNA 검사도 해야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형사가 살해당한 검표원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줬는데, 정말 끔찍했어요. 살해
당한 시체의 모양을 보면, 차를 몰고 톨게이트
로 들어온 살인범이 표를 받기 위해 손을 내민
피해자의 손을 잡아당긴 다음에 날카로운 칼
로 얼굴과 목을 난자했데요. 그리고 발버둥치
던 그 불쌍한 피해자의 팔을 잘라버렸데요.
범행 현장을 보면 피가 사방으로 튀어 정말
끔찍하다고 했어요. 피해자는 즉시 죽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어 갔데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받았던 그 표에
묻어있던 피가 그런 끔찍한 살인의 자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다리 힘이 쫙 풀렸어요.
그래도 곧 범인을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
치는 그 젊은 형사의 말에 나름대로 안심을 하
고 퇴근했어요.
집에 가서도 그 얼굴 없는 사람의 악몽에 시
달렸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이 며칠이 지나갔어요.
저도 처음에 느꼈던 공포심도 점차 사라지
고, 일상적인 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경찰은 아직 그 톨게이트 살인범의 단서조차
못 잡았다고 했어요. 제가 준 표에 묻은 피검
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요.
그래도 며칠 동안 무서워 야간 당직을 피했
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 당직을 계속 바
꿨던 거예요.
며칠은 그런 식으로 당직을 안 했지만, 결국
내 차례가 돌아왔어요.
야간 당직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어지고
해서 그냥 하기로 했어요.
저녁 먹고, 톨 게이트로 나서는데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비가 오니 괜
히 불길한 기분마저 들었어요.
번잡한 퇴근 시간이 지나자, 금새 톨 게이트
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가늘던 비는 더
굵어졌어요.
비가 오는 밤이 되니, 괜히 그날 밤이 생각
났어요.
어둠을 헤치고 나타나는 헤트라이트만 보면
가슴이 괜히 철렁해졌어요. 우습게 생각하시죠.
톨 게이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자동차 불
빛만 보면 무서워한다는게.
몇 번을 마음을 졸이면서 빨리 밤이 새기를
바랬어요.
시간은 참 느리게 갔어요.
밤 3시쯤 되서 같이 당직을 서게 된 경수엄
마와 교대를 했어요.
몇 시간만 버티면 차도 많아지고 날도 밝아
올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직 주위는 칠흙 같은 어둠에 둘러
쌓여있고,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는 거예요.
두려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켰
어요.
한 30동안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아요.
시간이 좀 지나자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아
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자기 정산소 전등이 지지직거리고
깜박거리기 시작했어요.
몇번을 지직거리다가 전등이 나갔어요.
동시에 라디오도 꺼졌어요.
갑자기 그날 밤 생각이 나서 겁이 덜컥 났어요.
죽음 같은 적막과 어둠이 정산소 주변을 덮
고 있었어요.
단지 빗소리만 들렸지만, 그 빗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차단하고 있어 더욱 무서워졌어요.
어디서 뭔가가 나타날지 몰랐어요.
손전등과 촛불을 켜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
려 제대로 켤 수 없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지
만 어둠 속으로 뛰어나가는 것도 무서웠어요.
그때였어요.
저 멀리 고속도로쪽에서 헤트라이트 불빛이
하나 다가오는 것이 보였어요.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붓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어요.
점점 다가오는 그 자동차 헤트라이트는 마
치 악마의 눈처럼 느껴졌어요. 왠지 모르게 사
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불빛 같았어요.
그 불빛을 보고 있으려니, 온 몸에 힘이 풀
리고 너무 무서워서 손하나 움직일 수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빗속을 뚫고 그 차는 미끄러져 왔어요.
이윽고 톨게이트로 진입했어요.
그리고는 내가 있던 정산소 앞에 차를 세웠
어요.
저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그 차쪽을 바라보
았어요.
직감적으로 그날 밤 그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두워서 차 색깔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검은 색이나 어두운 색같았어요. 차속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창문이 열리고, 표와 돈을 든 손이 나왔어요.
그날 났던 그 뭔가 썩는 듯한 기분나쁜 냄새
가 확 났어요.
저는 무서워서 손을 내밀어 그 표와 돈을 받
을 수 없었어요.
그냥 그 차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랬어요.
하지만 그 차는 시동을 건 채 그냥 서 있었어요.
손에 그 표와 돈을 든 채.
마치 저를 기다리는 죽음의 사신같았어요.
두려움으로 미칠 것 같았어요.
갑자기“빵”하고 그 차가 경적을 올렸어요.
빨리 표와 돈을 받아가라는 명령같았어요.
이상하게도 저는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
어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손을 뻗어 그 표와
돈을 받았어요.
저는 자동차 안 어둠 속에서 칼이 튀어나와
내 손을 자를 것 같아 숨마저 쉴 수 없었어요.
그 표와 돈을 받는 순간, 갑자기 그 차는 출
발해버렸어요.
그 차는 이번에도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사
라졌어요.
나는 그 차가 주고 간 표를 쥔 채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그 표와 돈을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켰어요.
확인하는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표와 돈에 시뻘건 피가 범벅이 되
어있던 거예요.
그 시뻘건 피에 충격을 받아 저는 의식을 잃
었어요...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의식을
차릴 수 있었어요.
간신히 눈을 떠보니, 같이 당직을 서던 경수
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
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경수 엄마가 새벽 4시반
쯤 당직을 교대해 주려고 정산소로 왔는데, 제
가 기절해 있었다는 거예요.
한손에는 손전등을 쥐고 있는 채로.
저는 놀라서 경수 엄마에게 그 표에 대해 물
어보았죠. 경수 엄마는 그런 피묻은 표는 보지
도 못했다고 했어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저는, 어안이벙벙한
채 나를 보고 있는 경수 엄마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산소 문을 열고 뛰어나가 비를 맞
으면서 미친 듯이 그 표를 찾아봤어요.
손전등을 가지고 찾다보니, 바로 정산소 앞
에 떨어진 표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
런데 빗물에 씻겼는지, 그 표에는 핏자국이 거
의 않보였어요.
이번에는 진입지가 경상북도 M 톨게이트로
되어있는 표였어요.
경수 엄마는 그 표를 가지고 멍하는 서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어요.
저는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경수엄마에게
설명했지만, 경수 엄마는 오히려 제 말을 믿지
않고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아요.
할 수 없이 저는 소장님이라도 빨리 출근하
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어요. 소장님이라
면 제 얘기를 믿어 줄 것 같았어요.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경수엄마는 저를 사
무실에서 쉬게 했어요.
아침이 되자 한 사람씩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전날밤 또 그 차가 피묻은
표를 주고 갔다고 말했지만, 다들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어요.
소장님이 출근하지 마자, 저는 또 그 차를
봤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소장님도 믿겨지지 않는다
는 듯이 저를 대했어요.
똑같은 일이 똑같은 사람에게만 계속 일어
난다는 것이 좀 이상했나봐요. 다들 제가 졸다
가 꿈꾼 것을 착각했거나, 그냥 지어낸 얘기로
생각했어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어주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어요.
소장님도 제가 피곤해 보인다고, 일찍 들어
가 쉬라고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퇴근 준비를 하는데 소장님에게
전화가 한통 왔어요.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받던 소장님의 표정
이 갑자기 변하더니,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뭐라고요? 경상북도 M 톨게이트라고요?
이번에도 똑같단 말이예요?’
M 톨게이트라는 말을 듣자 저는 불길한 예
감이 들면서, 무서워졌어요. 전화를 끊은 소장
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얘기했어요.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데요.
이번에는 경상북도 M 톨게이트에서 일어났
데요.
지난번과 똑같이 정산소에서 표 받던 직원
이 팔을 잘린 채로 처참하게 죽어있는 것이 발
견되었다네요.
어쩌면 지연씨가 본 그 차에 진짜 범인이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휴... 도대체 어떤 미*놈이야?’
다들 그 얘기를 듣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
를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벽에 걸려있는 고속도로
지도를 보고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왠지 지도
에 자꾸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잘 알 수
없었어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멍할 정도의 전율
과 두려움으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
어요...처음에 살인사건이 난 경상남도 L톨 게이트
와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M 톨 게이트
사이에는 3개의 톨 게이트가 있었어요. 그런
데 두 번째 살인 장소인 M 톨 게이트로부터 4
번째에 위치한 톨 게이트는 바로 우리 톨 게이
트였어요.
지도에 따른 다면, 다음 살인은 바로 우리
톨 게이트에서 일어난다는 얘기였죠.
두 번째 사건이 있은 후, 모두들 공포에 떨
었어요...
특히 야간 당직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했
어요. 더구나 저는 다음 번에는 우리 톨게이트
에서 살인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더
욱 무서웠어요. 그래서 고속도로 관리공단 측
에서는 모든 톨게이트에 호신용 가스총을 비
치하고, 야간 당직은 당분간 남자 직원들만 세
우기로 했어요. 경찰의 추리에 의하면, 그 살
인범이 정신 이상자이거나, 톨게이트만 노리
는 살인 강도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살인범은 현장에서 살인만 했지
돈을 훔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단
지 한적한 톨게이트를 골라 표 받는 직원들을
잔인하게 죽여왔다는 얘기가 들려왔어요.
그러니 더욱 무서워졌죠. 차라리 강도면 그
래도 난데, 이건 살인을 일삼는 싸이코라니...
여하튼 제가 목격했던 그 차가 살인범이 타
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다시 그 젊은 형
사가 찾아왔어요.
그 형사는 제 얘기를 듣더니, 제가 봤다는
차와 안에 탄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아보
았어요. 그러나 저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어요,
사실 그 차와 운전사의 모습은 이상할 정도
로 보이지도 않았고, 특징적인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아요, 단지 어두운 색깔의 차와 기분
나쁜 냄새가 전부였어요.
처음에는 흥미를 가진 것으로 보였던 그 젊
은 형사도, 저의 모호한 증언에 좀 실망한 듯
보였어요. 나중에는 암만 제가 강하게 얘기해
도 건성으로 듣는 것 같았아요. 제가 거짓말이
라도 하는 것으로 보였나 봐요. 더구나 그 차
가 나타날 때 마다 꺼지는 전등과 라디오의 얘
기까지 해 주었더니 완전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더군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형식적으로 수사에 고맙다는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 형사에게 제가 처음에 받았던 그 피
묻은 표에 대해 물어봤어요. 형사는 피식 웃더
니 그 검사결과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그 표에서 나온 피는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
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더군요. 그러니 저
를 더욱 안 믿은 거였어요.
이번에 받은 표도 거의 그런 식으로 생각하
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살인이 발생한 톨 게이트
들을 보면 다음은 우리 톨 게이트 같다는 얘기
를 해주었어요. 형사는 그 얘기 역시 상상력
풍부한 저의 황당한 추리로 받아들이는 것으
로 보였어요. 수사에 참고하겠다는 의례적인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고...
형사는 시간낭비 했다는 듯이 돌아갔어요.
제 얘기를 안 믿는데 안타깝고 답답했어요.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제
얘기가 지어낸 황당한 얘기를 들릴 수 있을 것
같았아요. 형사 말대로 한 미친 놈이 돌아다니
면서 닥치는대로 살해한다는 것이 사실이고,
제가 본 것이 그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니 무섭
고 끔찍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차라리 제가 헛것을 본 거나, 평범한 사람인
데 겁에 질려 상상해낸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
마저 들었어요.
퇴근할 때마다, 야간 당직 때문에 출근하는
남자 직원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걱정되었
어요. 하지만 가스총 때문인지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살인마가 이제 살인은 멈추고 사라진 것
처럼 느껴졌어요.
강박관념처럼 저를 따라다니던 그 차에 대
한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점심시간에 잡담을 하다가 경수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께.
우리 바깥양반이 톨 게이트 지나자마자 있
는 공원묘지에서 관리인을 하고 있잖아.
며칠전 그이에게 톨 게이트 살인사건하고
지연이가 봤다던 그 시꺼먼 차에 대해서 얘기
해 주었더니, 자기가 농담조로 그 범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지난 여름에 비가 엄청많이 왔잖아.
그때 온 비로 남편이 근무하던 공원묘지도
난리가 났대.
너무 많이 온 비로 많은 묘지들이 유실되
고, 시신들이 물에 쓸려 내려갔다는 거야. 300
구가 넘는 시체가 훼손되었다는 거야.
불행중 다행인지 공원 묘지 근처에 강이 없
어, 시체들이 다른 곳처럼 강물에 떠내려가지
는 않았대.
그래도 자기 조상이나 가족의 시체가 없어
진 사람들은 난리가 났지.
빨리 시신을 찾아내라고 난리였대.
우리 남편도 몇주동안 그 없어진 시체를 찾
아 묘지 근처를 돌아다녔대. 대부분의 시체는
묘지 입구 어귀 밭에서 찾아냈대.
딴데보다는 쉬웠지만, 그래도 썩을대로 썩
고 물에 불은 시체들을 찾는 것 정말 싫은 일
이었대.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했는데, 시체
를 찾아주며 돈을 받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는 거야, 글쎄...
그 사람들은 시신을 못 찾아 안달이 난 가
족들에게 얼마씩 받고 시신을 찾아주는 일을
했다는 거야.
남편은 처음에 별일로 돈을 다 버는 놈들이
라고 생각했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기막힐 정도로 시신을
잘 찾아왔대.
그것도 가족이 원했던 그 시체라는 거야.
남편은 그 사람들이 너무 시체를 잘 찾아,
어디서 훔쳐오는 줄알았대. 그래서 찾는 것을
보러 직접 따라 갔대.
그 사람들은 남편처럼 무식하게 돌아 다니
는 식으로 시체를 찾는 것이 아니었대. 먼저
가족으로부터 찾으려는 시신이 살아 생전 쓰던
물건을 하나 받는데. 그것이 없으면 가족이 쓰
던 물건이던지 아니면 제일 좋아했던 물건과
같은 종류라도 달라고 했대.
그 사람들 중에 멀쩡한 젊은이가 그 물건을
가지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정신을
집중하는 것 같더니 눈을 번쩍 뜨고 외쳤다
는 거야. 서남쪽으로 330보! 이런 식으로...
그 말을 따라 그 곳에 가서 시체를 찾아보
면 정말 찾을 수 있었대.
남편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만, 믿을 수
없었대.
하지만 확실히 시체를 찾아내긴 찾아내더
래.
그 사람들이 온 후로, 사실 남편도 편해졌대.
시체들을 다 찾아주니 한 시름 덜었다는 거
야. 가족들도 공원 묘지 측에 맡기기보다는 몇
푼 더 주고 금방 찾아주는 그 사람들에게 찾아
달라고 했다는 거야.
일주일도 안되서 300구가 넘는 시체를 다
찾아냈데.
그런데... 딱 1구의 시체는 찾지 못했대.
딱 1구의 시체를...
남편 말로는 그 사람들도 그 시체를 찾아달
라는 부탁을 받아 찾으려고 했지만, 못 찾았다
는 거야.
무서운 얘기는 여기서 부터야.
부자로 보이는 노인이 와서 자기 아들의 시
체를 찾아달라며 거액을 내 놓더래.
그 사람들은 그 시체가 생전에 쓰거나 좋아
했던 물건을 하나 달라고 했는데, 그 노인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날카로운 사냥칼을 주더래.
아무 생각없이 그 칼을 받아든 그 사람들은
똑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칼을 쥐고 뭔가
를 찾는 듯 했대.
그런데 예전에는 5분도 안 돼서 찾던 사람
들이, 그 때는 1시간이 넘게 땀을 뻘뻘 흘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거야.
한참을 그런 식으로 집중하던 그 젊은 사람
이 갑자기 창백해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더니
한마디 내 뱉었대.
‘제기랄! 이렇게 되다니! *팔!!!’
그 뒤 아무 말없이 그 노인에게 받았던 돈
을 돌려주고, 일행들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더
래.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낀 남
편이 그들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어보았대.
처음에는 그냥 떠난다고 하다고 하다가, 자
꾸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으로 이상한 대답을
하고 사라졌대
‘우리는 시체만 찾는단 말요! 돌아다니지 않
는...’남편은 그들의 이상한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데.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돌발
스런 그들의 행동에 그 노인 역시 멍한 채로
서 있더래. 남편은 그 노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냐고 물어봤데. 노인은 한 숨을 내쉬며 신
세 한탄조로 얘기하더래.
‘휴... 이게 다 내 업보지.
자식 하나 잘못 둬, 이런 일까지 당했지...
죽어서도 속 썩이다니...
그 놈이 살았을 때는 지 마누라와 딸을 죽
였던 잡놈이었소.
사형당한 시체를 수습해 여기다 묻었더니,
그 시체마저 없어져 속을 썩이고 있다우...’
그랬다는 거야.
이 얘기를 해주면서 남편이 그랬어.
그 톨 게이트에서 살인하고 다니는 놈이 찾
지 못한 시체일지도 모른다고...
그럴 듯 하지?
자기 식구를 몰살시킨 살인자가 무덤에서
나와서 또 살인한다!
어때 좀 무섭지?’
경수 엄마의 얘기에 같이 듣고 있던 직원들
은 막 웃으면서 재미있고 소름끼치는 얘기라
고들 했어요. 어떤 직원은 아예 모든 얘기가
경수엄마가 지어낸 것 아니냐고 놀려대기도
하고요. 경수 엄마는 자기 남편이 정말 겪었던
얘기라고 했고. 여하튼 분위기는 떠도는 으시
시한 얘기를 들은 것처럼 가벼운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그 얘기를 듣고 서로 농담하는 그 분
위기에서 저 혼자만은 이상할 정도의 두려움
과 불길함이 느꼈어요.
내가 본 그 차에 마치 그 사라진 살인범의
시체가 있었던 것 같은...
경수 엄마의 이야기가 제겐 그럴듯한 공포
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 얘기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저도 그 무시무시한 얘기를 잊
어버리려 했지만, 뇌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표 받을 때도 그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우
고 있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그 차가 지나갈 때 나던 기
분나쁜 냄새가 생각났어요. 생각해보니, 꼭 시
체 썩는 냄새 같았어요.
이런 생각까지 나니, 그 살인마는 정말 무덤
에서 나온 악령같이 느껴졌어요. 혼자만 고민
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제 생각을 동료들
에게 얘기했어요.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
가 재미없는 농담하는 걸로 생각했어요. 몇 번
을 얘기했지만, 점점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더 이상 얘기하지 못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한 동안 그 톨 게이트 살인
마가 잠잠 했어요.
분명히 제 생각에는 곧 우리 톨 게이트에 그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 저는 점점 마음이 놓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신경과민증상으로 생각했어요.
긴장이 느슨해진 것은 저 뿐만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남자직원들도 전부 야간 당직을
싫어했는데, 시간이 가고 아무 일도 않 생기니
까 모두들 야간 당직을 자기가 하려고들 하는
것이었어요. 그 동안 그 살인사건 때문에 야간
당직을 모두 회피하니까, 공단에서 야간 당직
수당을 좀 인상했거든요. 그러니 그 살인 사건
이 없어진 것 같으니 남자 직원들은 야간 당직
을 오히려 하고 싶어했던 거예요.
범인에 대한 단서도 잡지 못한 채,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지 어느덧 한 달이 좀 넘게 지났
어요. 그 사이에 톨 게이트 일 중에서 가장 힘
들다는 추석도 지났어요.
그런 평온한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여자 직원들은 모두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고, 야간 당직을 하기 위해 남자 직원
두 명이 출근하고 있었어요.
저는 혹시나 몰라 그 사람들에게 조심하라
고 했어요.
그들은 지급 받은 가스총을 카우보이처럼
흔들더니 여유 있는 웃음과 함께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그들의 태연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오늘 밤에 가
을 가뭄을 해소할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들었어요.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 예보를
들었어요.
밤에 잠을 이루려는데 자꾸 뭔지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어 잠을 잘 잘 수가 없었
어요. 잠이 덧든 상태에서 계속 기억도 나지
않는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았어요.
한참을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천둥소리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보니, 아직 밤이었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밤 3시 반이 좀 넘었어요.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한참은 더 잘 수 있
을 것 같아 다시 잠을 청했어요. 번쩍 하고 번
개가 치고, 좀 있다 하늘이 무너질 듯이 천둥
이 쳤어요.
그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바로 비 였어요.
두 번 다 그 살인마는 비올 때 나타나 살인
을 저질렀던 것이 떠올랐어요.
두 번째 살인 사건이후로 그때까지 비가 한
번도 안 내렸던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사
실을 깨닫게 되자, 소름이 쫙 끼치고 온 몸이
부르르 떨렸어요.
밖에는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퍼붓
고 있었어요.
잠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침대에서
일어나, 톨 게이트 사무실로 전화해봤어요.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안 받는거예요.
그러니까 더 불안했어요.
내가 틀렸겠지 하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잘 수가 없었어요.
대충 옷을 챙겨입고, 차를 몰고 억수같이 쏟
아지는 빗속을 뚫고 톨 게이트로 향했어요.
가는 동안 별 생각이 떠올랐어요.
불빛 한점없는 비오는 밤길을 달리다 보니,
무서워졌어요.
저 어둠 속에서 그 살인마라도 나타날 것 같
았아요.
뭔가가 뒤에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저 길가 암흑속에서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도 같았어요.
비는 오고 어두워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
는데, 자꾸 뒤가 신경쓰이는 것이었어요. 운전
하면서 뒤가 불안해 힐끗힐끗 뒤를 봤어요.
어둠 속에서 뭔가 불길한 기운마저 느껴지
기까지 했어요.
뭔가에 쫓기듯 빗속을 뚫고 톨 게이트를 향
했어요.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톨 게이트 쪽에서
이쪽을 향하는 자동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톨 게이트를 지나오는 것 같은 자동차 불빛
을 보자 좀 마음이 놓였어요. 자동차가 지나다
닌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얘기잖아요.
괜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며 차의 속
도를 좀 늦쳤어요.
그런데 그 차의 불빛이 갑자기 가까워지는
것이었어요.
그 차의 불빛을 보고 있던 저는 두려움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어요.
그 차의 불빛은 보통 헤트라이트 불빛이 아
니었어요.
마치 지옥에서 나온 악마의 붉은 눈빛처럼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차가 다가오자, 무서워 미칠 것 같았어요.
내 정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일초라도 빨리 그 차에서 벚어나기 위
해 속력을 높였어요.
그 차는 시시각각으로 기분나쁜 헤트라이트
불빛을 발하며 덮치듯이 나를 향해 다가왔어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죠.
순간 그 차는 내 옆을 지나갔어요.
눈을 감았지만, 확실히 느낀 것은 그 차에
타고 있던 그 무언가가 나를 보고 웃었다는 거
예요.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전 느꼈어요.
그 차는 이제까지 내게 피묻은 표를 주던 그
차였고, 그 차를 운전하던 그 무엇은 나를 보
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순식간에 그 차는 제 옆을 지나갔어요.
혹시나 하고 백밀러를 보았는데, 아니나 다
를까 방금 전에 분명히 내 옆을 지나갔던 그
차가 안보이는 것이었어요.
백 라이트라도 보여야 정상인데, 아무런 흔
적 없이 암흑만이 보이는 것이었어요.
불안해하는 도중에 톨 게이트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정산소의 불빛이 다
꺼져 있던 거예요.
비가 와서 톨 게이트 안에 누가 있는지 잘
안 보였어요.
저는 차를 톨 게이트 앞에 세우고 손전등과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어요.
불길한 얘감을 억누르며 천천히 정산소로
향했어요.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비 소리 때문인지 아
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를 비춰보았지만,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었어요.
정산소 문앞에 서자 피비린내 같은 것이 났
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 안을 비춰보았어요.
그 순간 저는 놀라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어요.
불과 몇 시간전만 해도 가스총을 들고 여유
있어 하던 남자 직원이 팔이 잘려 나간 채 피투
성이가 되어 난도질 당한 채 죽어있는 것이예요.시체의 쾡한 눈은 흉칙함을 더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 정신없이 거기에서 뛰어
나왔어요.
시체가 벌떡 일어나 제 뒷덜미를 채갈까봐
비 맞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달렸어요.
나도 모르게 사무실 쪽으로 달려갔어요.
헉헉대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어요.
사무실 역시 불이 나가서 깜깜했어요.
누구 없냐고 소리쳤지만, 들리는 것은 비소
리 뿐이었어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어요.
짧은 순간이나마 사방이 환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너무 끔찍한 것을 봤어요.
제 바로 눈앞에 고깃덩이처럼 너덜너덜해진
시체가 하나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시체의 멍
한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사방이 사람들로 북
적되었을 때였어요.
경찰, 직원, 응급차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
려와 있었어요.
내가 깨어나자, 경찰들이 몰려와 사정없이
질문을 해대는 거예요.
저는 간신히 전날 밤 본 것에 대해서 얘기했죠.
하지만, 경찰들은 제 말보다는 왜 제가 한
밤중에 여기에 왔냐고 캐 묻는 것이었어요.
마치 용의자 심문하듯이 나를 심문하는 것
이었어요.
저는 밤에 본 그 기분 나쁜 차와 살인마가
비올 때 마다 찾아온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역
시 아무도 안믿고, 오히려 저를 의심하는 것
같더군요.
무섭기도 답답하기도 해 미칠 것 같았어요.
경찰 말로는 피해자들이 사냥칼로 수십 번
난도질당한 채로 죽어있다는 것이었어요.
경찰의 심문이 끝나자 저는 톨 게이트 근무
를 해야 했어요.
사람은 죽었지만, 고속도로를 패쇄할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오히려 직원이 둘이나 죽었기 때문에, 일손
이 딸리는 형편이 었으니까요.
경찰도 벌써 3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니 가
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각 톨 게이트마다 밤
에 두 명의 경찰을 배치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무서워질 대로 무서워진 직원들은
야간 당직은 피하려고 했어요. 사실 톨 게이트
에서만 살인을 저지르는 그 놈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제 생각에는 다음 비오는 날 분명히 또 나타
날 것 같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여하튼 그래서 경찰 두 명이 지켜줄 때까지
우리 톨 게이트 야간 당직은 1명으로 하기로
했어요.
죽기보다 하기 싫은 야간당직이었지만, 직
장을 그만 둘 형편도 못 되고 해서 어쩔 수 없
이 저도 하게 되었어요.
우리 톨게이트에서 살인이 일어난 지 일주
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
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경찰 역시 매일 밤 톨 게이트 당직을 서야
하는 것에 피곤함도 느끼는 것 같았고요.
그러다 결국 그 날이 온 것이지요.
야간 당직 하게 되는 날이면 항상 일기 예보
를 확인했거든요.
혹시 밤에 비라도 오는지.
그런데 그 날은 비 올 확률은 10%미만이라
도 예보에서 나왔어요.
그걸 믿고 야간 당직을 서게 되었죠.
그 실수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예요.
저와 같이 야간 당직을 하게 된 경찰은 공교
롭게도 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였어요. 왜 이
쪽 담당도 아닌 그 사람이 저와 당직을 같이
하게 되었는지 좀 이상했지만 별로 신경 안 썼
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어요.
여하튼 아무 것도 모르던 저는 단지 아무 일
도 없길 바라기만 하면서 정산소에 앉아 있었
어요.
그 형사는 저와 같이 정산소에 앉아 있었고,
그와 같이 온 동료 경찰은 톨 게이트 근처에
세워놓은 차에 앉아있었어요. 두 명의 경찰은
서로 교대하며 정산소와 차를 왔다갔다 했어요.
저는 낮에 푹 자서 별로 피곤하지 않았어요.
매일 혼자만 앉아 있는 정산소에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려니 좀 이상했어요. 그것도 경찰과.
밤이 깊어지자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어지
고 무료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형사와 형식적인 대화만 나누다
가, 슬슬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요. 특히 젊은
담당 형사와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사람은
젊은 사람답지 않게 침착한 것 같았어요.
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무서움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경찰이 지켜주고 있는데 괜찮겠지라
는 생각도 들고요...
이것 저것 얘기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밤 2
시가 지나고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한 마디
도 않했던 그 형사가 점점 사건에 대해 이것
저것 질문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제가 보고 생각했던 모
든 것을 얘기했어요.
그 무덤과 못 찾은 시체 얘기까지 다 해 주
었어요.
그 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제 얘기를 다 들
었어요.
제 얘기가 끝나자 형사가 살인사건에 대해
몇가지 의혹을 얘기해 주었어요.
‘음... 그랬어요...
하긴 이번 사건,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저도 많지는 않지만, 살인 현장은 꽤 봐왔
거든요.
그런데 이번 살인 현장에서 받은 인상은 좀
이상해요.
살인범이 살인을 할 때 아무런 감정없이 사
람을 죽인 것 같아요.
원래 살인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사람
의 감정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범죄인데, 이
번 살인은 하나의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요.
무슨 껍데기만 있는 놈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상한 점은 더 있어요.
이 톨 게이트에서 발생한 살인만 해도 그래요.
두 명의 피해자가 똑같이 그렇게 심하게 난
도질을 당했는데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
다는 거예요. 마치 무슨 최면에 걸려있었던 것
처럼, 또는 자다가 당한 사람들처럼 전혀 반항
의 흔적이 없었어요.
자다가 습격을 당해도 그 정도의 난도질을
당하면 바둥거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당
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살인범이 면식범일 가능성도
있어요.
혹시 모르죠.
지연씨 말한대로 무덤에서 나온 악령이 그
범인일지도...’
형사의 말을 잘 들어보니 제 얘기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내리는
것이었어요.
비가 오기 시작하자, 저는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오늘도 분명히 그 살인마가 나타날 것 같았
어요.
그 형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안절부절 못
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려 애썼어요. 하지만 두
려움이 미칠 지경인 저는 빨리 여기서 도망가
자고 소리쳤어요.
형사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걱정말라고
하며 저를 정산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지지직 거리더니 정산소 불빛이 꺼
졌어요.
그 살인마가 나타날 때랑 똑 같았아요.
비가 내리고, 정산소 불이 나가고.
저는 무서움으로 실신할 지경으로 소리쳤어요.
‘이제 그 놈이 나타난다고요! 그 놈이!
우리를 죽이러!!!’
불이 나가도 침착해하던 그 형사는 저를 진
정시키다가,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었어요.
제 어깨 너머로 뭔가를 본 것 같았어요.
형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어요.‘저게 지연씨가 말하던 그 놈이 온 것같네요’
그 말에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악’하는 비
명 소리를 질렀어요.
거기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그 어두운 색 차
가 톨 게이트 앞에서 악마의 눈 같은 헤트라이
트를 밝힌 채로 서 있는 거예요.
우리를 노려보며...
형사는 그 자동차 불빛을 노려보며, 다급히
무전기를 들고 차에 있을 동료를 나지막한 목
소리로 불러댔어요.
‘이봐 최 형사, 그만 자고 일어나!’
최형사라는 사람은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뭐야 무슨 일이야?’
‘기다리던 손님이 오신 것 같아.
톨게이트 앞쪽을 봐.’
잠시 있다 긴장된 최형사의 목소리가 들렸
어요.
‘잠깐... 어! 짙은 색 자동차가 한 대 보여.
저 차 왜 서 있지?’
‘그 놈일지도 몰라’
무전기 너머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러더
니 최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시봉! 하필 비올 때 지뢀하는거야!
차안에 우산도 없는데...내가 나가보지.’
그 말과 함께 무전기 너머로 자동차 문소리
와 함께 빗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저
와 같이 있던 형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기
에 대고 외쳤어요.
‘최 형사! 조심해!
혼자 설쳐대지 말고!’
그런데 비 때문인지 무전기에서는 최 형사
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어요.
하이빔을 켰는지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자동
차 불빛 때문에 최형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
아요.
최형사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무전기에서 들
렸지만, 뭐라고 말하는 지 잘 알아들을 수 없
고 지직거리며 목소리의 일부만 들려왔어요.
‘......지금......앞이야.......
....................................
차.......안.......아무도... 안........
....................
문......앞........
경찰.........
....................
잠시.........차......내려..........’
나와 형사는 뭔가에 홀린 듯 그 얘기를 들으
면서 차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그
상태에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
어요. 지금 생각해도 왜 저와 형사가 그 순간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는지 의문이예요...
그때였어요.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최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뭐야!.....
......아악!!’
무전기에서의 비명과 함께 창 밖에서 누구
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와 동시에 총구에서 번쩍이는 듯한
불빛과 함께‘타앙!’하는 총소리가 여러번 들
렸어요.
총소리는 빗속에서 메아리쳤어요.
그리곤 죽음 같은 적막이 갑자기 흘렀어요.
총소리를 듣자마자, 저와 같이 있던 형사는
‘제기랄!’하며, 제가 말릴 새도 없이 권총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어요.
빗 속을 헤치고, 형사는 그 자동차로 달려갔어요.
‘경찰이다!
꼼짝 말고 차에서 내려!
최 형사! 최 형사!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있어?’
불빛 때문에 형사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다급한 외침만 들려왔어요.
‘아니! 최 형사!!
시밤! 어떤 *끼야!!
숨어있지 말고 빨리 나와!!
이 살인마 개*끼!!’
갑자기 분노한 형사의 목소리를 들으니, 최
형사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을 발견한 것 같았어요.
저는 무서웠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해 미* 것 같았어요. 차의
불빛만 보이고, 형사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
었어요. 형사가 제게 뭐라고 외쳤어요.
‘지연씨, 밖으로 나오지 말고 꼼짝 말고 있
어요!!’
그리고는 형사의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빨리 문열고 나와!!
손들고!
나와!! 이 개*끼야!!’
형사가 차안에 탄 누군가를 발견하고 외치
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저는 차에 타있던 그 사람이 살인마가
아닐지도 몰랐지만, 형사가 그냥 그 사람을 총
으로 쏴버렸으면 했어요. 하지만 형사는 그러
지 않았아요.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문열고 나와!!
빨리! 이 새*야!!’
그 다음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게
는 정말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나도 모르
게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어요.
‘철컥’하고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요. 문소리와 함께 목이 쉰 것 같은 형사의 목
소리가 들렸어요.
‘천천히... 천천히 나와...’
정말 숨막힐 것 같았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요.
그때였어요.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 겁에 질릴대로
질린듯한 형사의 처절한 외침과 비명이 들려
왔어요.
‘뭐야...넌...설마...아악!!!’
형사의 절규하는 비명이 들리며,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총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총소리가 멈췄어요.
형사의 정신나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제발...더 이상 다가오지마!!
제발! 아악!!!!!!’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처절한 비
명이었어요.
그리고는 갑작스런 적막이었어요...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아요.
그 차의 불빛은 살기를 띤 것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춰대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저 불빛 너머로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두 형사는 정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
았어요. 머리 속은 여기서 빨리 도망가야 한다
는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몸이 도저히 움직여
지질 않았아요.
그때였어요.
죽음 같은 적막을 깨고, 자동차 불빛너머로
뭔가가 휙 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어요. 움직
이는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
차릴 수 있었어요. 그 움직이는 무엇이 이번에
는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
각이 들었어요.
정산소 문을 열려고 하는데, 왠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어요. 마치 밖에서 잠근 것
처럼 꼼작을 않는 거예요.
미친 듯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릴 생각을
않는 거예요.
문밖에서는 뭔가가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
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놓고 창밖을 내다 봤
어요.
여전히 눈 부신 자동차 헤트라이트 불빛밖
에 보이지 않았아요.
다시 문을 열어볼 생각을 하고,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어요.
그런데 꼼짝도 않던 문고리가 저절로 천천
히 돌아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것을 본 순간 저는 무서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누군가 밖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것같았아요.
생각할 새도 없이 돌아가는 손잡이를 잡았
어요.
하지만, 문을 열려는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
로 강해서, 필사적으로 두손으로 잡았지만, 계
속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무서워서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았어요. 이
문이 열리면 나도 칼로 난도질 당해 죽을 것
같았어요.
문밖에 무엇이 문을 열려고 하는지 볼 수 없
었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잡은 채 주위를 둘러
보았어요. 머리속은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어요.
두손으로 잡고 있었지만, 어느 새 문 손잡이
는 거의 다 돌아갔아요.
곧 문이 열릴 것 같았어요.
저는 온 몸으로 느끼는 공포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어요.
문이 열리는 순간, 아무 생각이 안들었어요.
단지 이 무서움에서 빠져 나가야 겠다는 생각
에 몸을 전면 유리창으로 날렸어요.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큰 충격을
느끼며 창밖으로 나동그라졌어요.
떨어질 때 충격으로 잠시동안 몸을 가눌 수
없었어요.
유리의 파편 때문인지, 얼굴에 끈적끈적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어요. 억수같이 내리
는 비와 섞인 피는 입속으로 흘러들어와 찝찌
름한 맛이 느껴쪘어요.
손이 유리 파편에 베어지는 것도 못 느끼면
서,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어요.
문을 열려고 하는 그 놈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밖으로 떨어질 때
충격으로 몸이 비틀거렸어요.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과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춰지는 헤트라
이트 때문에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 불빛 쪽을 향해 비틀거리
며 걸어갔어요.
뒤에서 그 무언가가 나를 쫓아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아요.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어요.
내가 그 때 할 수 있었던 전부는 단지 비틀
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것 뿐이었어요.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어
요. 빗소리인지 그것의 발소리인지 알 수는 없
었지만, 언제라도 제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
어요.
자동차 불빛을 지나는 순간, 저는 뭔가에 걸
려 호되게 넘어졌어요.
발버둥치며 일어나려는데, 발에 걸렸던 것
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자동차 불빛에
비춰 보이는 그것은 바로, 나와 같이 있던 형
사의 끔찍한 시체였어요.
가슴팍은 칼로 수십번 난도질당한 모습이어
서, 허연 뼈까지 보일 듯 했어요. 얼굴은 피투
성이가 되어있었고,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을
본 것처럼, 눈은 공포에 질린 채로 떠 있었어요.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불빛
너머로 그것이 다가오는 것이 언뜻 보였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놈이 한 손에 들고 있는 칼은 확실히 보였
어요. 칼 끝에는 빗물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
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요.
저는 앉은 채로 뒷걸음질 쳤어요.
그 놈은 점점 제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앞을 보며 필사적
으로 바둥거리며 뒤로 갔지만, 그 검은 그림자
는 점점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손에 뭔가가 건들어졌어요.
피묻은 권총이었어요.
그 형사가 놓친 것같았아요.
본능적으로 그 권총을 쥐어서 다가오는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권총이라 그런지,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요.
한 손으로는 들 수 없어서, 두 손으로 잡았어요.
내게 다가오는 그 놈은 권총을 못 봤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내게로 걸어왔어요.
눈을 감고 있는 힘껏 방아쇠를 당겼어요.
귀청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손
이 반동으로 위로 올라갔어요. 하마터면 권총
을 떨어뜨릴뻔 했어요.
눈을 떠보니, 그 놈은 총에 안 맞았는지 거
침없이 바로 제 앞으로 다가와있는 것이었어요.
겁이 난 저는 다시 한번 권총을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권총이 무거워서인지, 아니면 너무 겁이 나
서인지 총을 든 두 손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
로 흔들렸어요.
그 놈이 바로 제 앞에 서서 칼을 든 손을 치
켜들었어요.
나를 난도질하려는 것이었어요.
이번엔 눈을 똑바로 뜬 채로 그 놈의 안보이
는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어요. 예의 강한
충격과 함께 권총이 발사된 것을 느꼈어요.
그 놈의 머리가 터지면서 끈적거리는 피가
제 얼굴에 튀겼어요. 그 피는 마치 썩은 것처
럼 악취를 풍겼고 불쾌할 정도로 끈적거렸어요
이번엔 제대로 맞았는지, 그 놈의 고개가 뒤
로 재껴지면서 주춤거리며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그 놈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
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총을
정통으로 머리에 맞았는데도 쓰러지기는 커녕
주춤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서는 것이었어요.
그 놈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 놈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
이 생겼어요.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무서움
이 극도로 다달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하
더군요.
제가 그랬나 봐요.
생각할 새도 없이 그 놈의 머리통을 향해 다
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어요.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 놈의 머리가 다시 한번 뒤로 제껴지며
몸까지 뒤로 밀렸어요.
알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저는 그 놈의
향해 계속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 놈은 총에
맞을 때마다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쓰러지지
는 않았어요.
그 놈을 차 있는 데까지 몰아부치고, 방아쇠
를 당기는데 총소리 대신 철커덕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였어요.
몇번을 당겨봤지만, 철커덕 소리만 공허하
게 울렸어요.
차에 기대고 있던 그 놈은 천천히 고개를 들
고 몸을 일으켰어요.
얼굴은 총에 맞아서 인지,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어요. 얼
굴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거기서 풍겨
나오는 사악함은 그것을 보는 사람을 하여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정도였어요.
저는 그 놈을 향해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계
속해서 당겼지만,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찰카
닥 소리만 날 뿐 나가지 않았어요.
그 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칼을 든 손
을 다시 한번 높게 쳐들었어요. 이번에는 정말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포기한 채로 힘없이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 순간 총알이 발사되는 충격과 함께, 자동
차가 펑하고 폭발하고 그 폭발력에 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날랐다가 바닥에 사정없이 내 팽
겨쳐졌어요.
갑작스런 폭발에 영문도 알 수 없이 나가떨
어진 저는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을
잃기전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칼을 든 그 놈이
화염에 휩싸인 채로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
는 것이었어요.
의식을 잃으면서도,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가누고 그 놈에게서 도망치려고 했어요, 하지
만 몸이 제 뜻대로 움직여지질 않았어요.
그 놈이 내게 다가와 내 몸을 난도질 할 것
같았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만 날 뿐 사방이 뿌옇게 되
고 의식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사방은 밝아있고 경찰들
과 사람들이 부산거리며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어요.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아요.
눈을 뜨자, 경찰들이 달려와 쉴 틈도 안주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영문도 모르
는 저는 어제 어떻게 된 것인가에 대해 물어봤
어요.
경찰 말로는 아침에 새까맣게 타버린 자동
차 한 대와 갈기갈기 찢겨나간 형사 두명의 시
체가 그 주변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형체도 알 수 없게 타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도 한 구 발견되었고, 좀 떨어진
곳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저를 발견했다는 거예요.
저는 경찰의 질문에 그날 밤 제가 봤던 일들
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거
기에 있었어요.
아무도 제 얘기를 믿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 타버린 시체의 신원을 밝혀보면 알 수 있
을 거라고 했지만, 심하게 타버린 데다가 총에
맞아 치아와 턱구조도 박살이 나서 알아볼 방
법이란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얘기해도 제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
도 없고, 결국에는 미친 여자로 취급해 나를
이 병원에다 가둔 거예요.
기자 아저씨,
제발 저를 맛간여자로 보지 말고, 믿어 주
세요.
직접 그 톨게이트 가서 조사해 보시면 제 말
이 맞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대로 여기 있다간, 언젠가 그 놈이 나타난
나를 죽일 거예요.
제발 부탁이예요...
제 말을 믿어주고,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나는 아무런 죄도 없고, 미치지도 않았어요.
부탁이예요...
제발!!!!”
그 여자의 믿을 수 없는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황당한 얘기를 믿어야 하는지...
더구나 처절하게 자기의 얘기를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여자가 미쳤다는 것
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재원이는 잠시 멍해있는 나를 보고 이제 나
가자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왔지만, 그 여자의
얘기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쉽게 일어날 수 없
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병실에 머무를 수 없
는지 재원이의 재촉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광기어린 눈빛
으로 그녀는 외쳤다.
“저를 여기서 꺼내 주세요!
나를 놨두고 그냥 가지 마세요!!
무서워요!!!
제발!!!”문을 열고 나가는 재원이의 뒤를 따라가면
서, 나는 그 여자를 보고 동정심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너무 기대는 마시고...
얘기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병실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여자를
돌아보았다. 사지가 결박되어있는 채로 처절
하게 몸부림치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니 이상
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정신 병동 복도를 말
없이 걸어나오는데, 재원이가 말을 건넸다.
“저 여자 말 어때? 진짠 거 같아?”
“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래?
그런 내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줄게...
날 따라와.
저 여자를 담당하고 있는 선배 레지던트를
만나보자.”
재원이는 나를 데리고 정신과 레지던트 당
직실로 갔다.
거기에는 아까 재원이와 나를 병동으로 들어
가게 해 주었던 레지던트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아주면서, 그 여자
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일한씨라고 했죠?
어때요? 그 여자 얘기 들어보니깐...”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얘기는 그래도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상인 취
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잘 구분 못하겠어요.
그 여자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살
인을 하고 다니는 악령을 본 것인지...”
그 레지던트는 내 얘기를 듣더니, 빙그레 웃
으며 담담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 환자의 얘기만 듣고는 아무도 그
얘기의 진실성을 알 수가 없죠.
일한씨, 그런 얘기 들어봤어요? 진실의 양
면성이라는 것이요...
진실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래요.
그 환자의 얘기도 그렇게 생각하면 될거예요.
지금까지 제가 그 환자를 치료하고 검진해
본 결과, 그 여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진실만을 말하고 있죠...”
그 여자가 진실만을 얘기했다는 레지던트의
말은 나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사실을 말했다면...
그 여자가 본 것이 전부 사실이라는 거예요?”
당황한 나의 질문에 그 레지던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글쎄요...
그 환자가 진실을 얘기했지만, 사실을 얘기
하지 않았다고 해두는 것이 맞죠.
그 환자는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얘
기했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
고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그 환자가 이 병원에 이송되었을 때는 환자
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살인 용의자로 왔어요.
사람을 난도질해 죽인 범인으로 병원에 왔
어요...”
나는 처음에는 레지던트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친절한 설명은 나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다.
“일한씨도 그 환자로부터, 무덤에서 나왔다
는 살인자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그 살인자의
악령이 톨게이트를 돌아다니며 살인했다는 얘
기였죠?
그 환자는 입원 첫날부터 그 얘기를 되풀이
했어요.
하지만 그 환자를 이송한 경찰의 보고서는
다른 진실을 보여 주었어요.
그 보고서에 따르면, 그 환자가 얘기한 모든
살인 사건은 바로 그 환자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것이였어요.
젊은 여자가 칼로 그 많은 사람을 난도질
해서 죽인 것이지요.
경찰은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정황증거로
그 환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집중
했다더군요.
그 환자가 받았다는 표에 묻었던 혈액은 다
름 아닌 그 환자의 피로 판명이 되었데요. 그
래서 그 날 그 지역 경찰이 아닌 담당 형사들
이 정산소에 온 것도 사실은 유력한 용의자였
던 그 환자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데요. 그러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사건 현장에
서 발견된 칼에서도 그 여자의 지문이 채취되
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 여자는 자기가 한
일을 전혀 기억못하고, 무덤에서 나온 살인자
가 모든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검진 결과 그 여자는 정신질환자로 밝혀졌어요.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진짜로 기억못하고,
전부 자기가 굳게 믿고 있는 그 악령이 살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고 있고...
아, 물론 약간에 의문은 있대요...
현장에서 태워진 채로 발견된 차는 도난차
량으로 발견되었대요.
그리고 타버린 시체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
했대요.
경찰은 그 시체가 차를 훔쳐달아나다 죽음
을 당한 차량 절도범으로 결론 짓고, 신원파악
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이고요...
또 짧은 밤 시간에 그 환자가 그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도 약간
신빙성 없고요. 하지만 경찰 주장에 의하면 시
속 160킬로 정도로 달리면 살인하고 돌아올
수 있다더군요.
아무리 차가 없는 시간이라도, 심야 빗속을
그런 속도로 달렸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요...
그래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여자였기 때문
에 살인범으로 체포했지만, 진술이 너무 황당
해서 정신감증을 의뢰했고...
결국은 정신질환자로 판명되어서 이 병원
에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 환자가 말한 진실의 다른 면
이지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혼란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여자가 사람을 몇 명이나 난도질해서 죽
인 살인자라니...
갑자기 의문이 머리에 스쳤다.
“그 여자가 진짜 살인범이라면 살인의 동기
는요?
아니면,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미치게 된 원
인은 도대체 뭐지요?”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그런 의문을 갖게
되지요...
다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상식때문이예요...
모두들 정신병 하면, 뭔가 큰 충격이라던가
아니면 성장기에 겪은 비정상적인 일이 원인
이 되어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직 정신질환의 정확한 원인은 의
학계에서도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개인
적 경험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빙
산의 일각이고요...
쉽게 말하면, 이유없이 미친다는 것도 성립
될 수 있는 거예요.
멀쩡하던 사람이 자다가 이유없이 급사하
듯이, 정상인이 어느날 갑자기 미쳐버릴 수 있
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미친 사람을 마귀 들렸
다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이 환자도 이유 없이 미쳐 버린 수많은 정
신질환자 중에 하나로 보는 것이 맞겠지요...”
나는 레지던트의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
도 할 수 없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
다.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말이 휠씬 합
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귀신의 존재가 모든 것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할말도 잊고, 찜찜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당직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그 침묵을 깨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아스라히 들렸다. 멀어서 그런
지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 비명소리를 들으니
이상할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그와 동시에 당
직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레지던트는 심
각한 표정으로 그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요? 또 시작했다고요?
지금 제가 가보죠.”
전화를 끊고 레지던트는 다급하게 일어서며
멍해있는 나와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그 여자 환자가 또 발작을 시작했다더군요.
매일 밤 심한 발작을 해요.
정말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지금 가 봐야하는데...”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도 없어 우리도 자리
에서 일어났다. 같이 당직실을 나서는데 레지
던트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했다.
“사실 나도 그 환자의 얘기를 듣고 나름대
로 알아봤어요.
그 동네 보건의로 제 동기가 하나 가 있거
든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환자가 말한대로 그
동네 묘지에서 시체를 한 구 못 찾았대요.
그것도 그 환자 말대로 살인 전과자의...
그리고 좀 무서운 얘기가 하나 있어요.
국립과학 수사 연구원에 다니는 선배가 얘
기해 준건대요.
그 신원을 알 수 없다는 타버린 시체 있잖
아요?
그 시체가 부검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는 거예요.
부검하기 위해 시체를 옮겨 놓았는데, 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
다는 거예요. 살아서 걸어나간 것처럼요...
국과수에서는 난리가 났더래요.
중요 피해자의 시체가 사라졌으니...
결국 용역회사의 착오로 화장된 것 아닌가
추측하고 종결지었다고 하더군요...
참 이상하지요...
그 환자 말대로 정말 그 시체가 살인마의
귀신이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 얘기를 던지고 레지던트는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황급히 걸어갔다.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멍하니 선 채로 음산한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레지던트
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