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가족을 놓을 때가 된건가 봅니다.

ㅇㅇ2017.07.25
조회2,573
내후년이면 계란 한판 되는 여자입니다.
위로는 다섯살 차이나는 오빠가 있고, 연년생 언니가 있습니다.

저희가 어렸을때부터 엄마는 친조부모님 시집살이에 진력이 나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3층짜리 주택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저희 가족이 다같이 살았거든요. 할머니는 이틀에 한번꼴로 소리를 지르시며 뒤집어지시고, 폭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도 맘에 안드시는것이 있으면 밥상을 엎으시거나 청소해놓은걸 어지르시는 일이 많았고요.
쓰려면야 책한권으로도 모자랄 이야기지만 대충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빠는 할머니할아버지가 안 계실때 엄마를 달래주거나 치우는걸 돕긴 했지만, 엄마편을 들어주거나 반항하지는 않았어요.

저희 자매도 물론 오빠를 위해 항상 참고 양보하고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저와 언니의 다른점이 있다면, 언니는 잘하는것도 많고, 예쁜데다 성격이 불같아서 고분고분 따르는 일이 잘 없었어요. 내세울것도 있었구요.
저는 언니보다 소심하고 평범한 편이라, 또 갈등상황을 못견뎌하는 성향이 있어서 대체로 쥐죽은듯이 살았죠.
그럴땐 엄마아빠는 없는거나 다름없었구요.

그러던 언니가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면서부터 좀 이상해지더라구요. 저보다도 더 순하고 맹하게 행동했어요.
사실, 이렇게 쓰고보면 저도 참 못난년이지만 그땐 제가 차마 못 하는 반항을 대신 해주는 언니가 저의 희망이고 대리만족이었던것 같아요. 그게 사라지니 저도 덩달아 무기력해졌고, 모든걸 그냥 포기하고 살았죠.

그래도 저희 자매는 성적만은 좀 괜찮았어요. 할아버지께서 저희가 어디 나가 노는것이나, 친구 만나는것 자체를 너무 싫어하셔서 집에서 할 거라곤 공부밖에 없었거든요. 저희 언니는 정말 독하게 공부했어요. 엄마를 거의 협박하다시피 해서 학원을 등록했고, 설 추석 용돈을 모아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어요.

처음엔 온 집안이 평화로운듯한 착각이 들덥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입장에선 바락바락 대드는 성격 외에는 사실 언니는 흠 잡을 구석이 없거든요.
가끔 없는 꼬투리도 잡아내시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큰소리나는 횟수도 많이 줄었고 그래서인지 엄마아빠도 편안해 했어요.

그 평화는 언니가 대학을 감과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당연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언니를 대학에 보내주지 않으려 하셨고, 엄마아빠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시끄러운 일이 없었으면 하는 눈치였어요.
언니는 3일 밤낮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애원하고 무릎을 꿇고 울고 빌었습니다.
항상 강하고 똑똑하던 언니의 처음 보는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가족들 아무도 몰랐겠지만, 저는 어렴풋이 언니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짐작하고 있습니다.
언니가 혼자 난리치고 집안을 뒤집어 엎고 나간다면 그 화살은 모조리 저한테 돌아올 것이 뻔하잖아요.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학업을 아예 포기하기엔 아까운 성적이었거든요.
너도 어떻게든 대학까지 와라. 네 능력을 키워라.
그렇게 말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언니가 떠난 뒤의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당시의 언니는 자존심도 체면도 다 집어던지고 그렇게 했을거라 믿어요.
직접 말할수도 있었겠지만, 무르고 미련한 제 성격상 그렇게라도 제게 부담을 지우고 다그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거라는 노파심이 있었을겁니다.

제 예상은 그 다음해에 확신이 되었습니다.
첫 일년간은 사근사근하게 집에도 자주 내려오고 연락도 잘 하던 언니가, 2학년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연락을 뚝 끊어버렸거든요.
저는 원서를 넣자마자, 마치 야반도주를 하듯 꼭 필요한 짐만 챙겨서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실종신고가 되지 않도록 공부하러 서울로 간다는 내용의 편지를 열몇장을 써서 집 곳곳에 두었습니다.
혹시나 한장만 썼다간 홀랑 없애버리고 모른 척 신고당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네요.
어린 마음에 근처 경찰서에도 사정을 이야기하고 제발 찾지 말아달라 부탁도 했어요.

서울로 올라온 저는 언니와 둘이 빠듯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올라온 직후, 저는 신입생이고 언니는 성적이 좋아서 둘다 기숙사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저희는 그 1년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학비는 물론 대부분이 대출이었지요.

그렇게 일년을 살다가, 겨울방학에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데, 괜찮은 방이 저렴히 나와있는걸 보고 언니와 같이 방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거의 계약 직전까지 갔는데, 대뜸 언니가 안 하겠다고 그냥 가자더라고요.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오며 물어봤지만, 언니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모은돈은 좀 더 아끼고 지금은 고시원에서 살자고, 저 집은 안된다고만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집은 여러 사람한테 같은 집을 팔고 입주하기 전에 돈만 가지고 튀기 위한 사기를 치던 집이었어요.
도대체 언니는 무슨 수로 그걸 미리 알았는지, 아니면 단지 언니의 조심성과 우연의 일치인지 지금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고시원에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언니는 2년쯤 일을 하다가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나중에 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 집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에 도망치듯 떠난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직장을 잡았을때쯤, 언니와도 연락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고시원이며 반지하며 전전할수가 없어서 대학때 모은돈으로 작은 월세집을 하나 얻었습니다. 거기서 살면서는 그런대로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최근에 깔끔한 신축 오피스텔로 이사도 했고요.
그동안 남자친구도 만나보고, 차도 사 보고,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옷이며 화장품도 사 봤어요.
좋더라고요. 정말.

그러다 작년에 언니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언니의 연락처는 여러번 바뀌었지만 제 연락처는 대학때와 똑같아서 아마 연락이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한국에 들어왔다고, 결혼도 했다고. 지금 어디 사냐고 물었는데 들은 주소가 그 예전과 비슷하니 아이고... 하며 웃더라고요.

3년 반만에 다시 만난 언니는 좋아 보였습니다.
한인 유학생이었던 형부를 만나 거기서 연애를 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혼인신고는 했는데 식이 미뤄져서 식은 겨울에 올릴 예정이라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꽤 규모가 있는 병원을 하고 계셔서, 아직 형부 사업이 안정되지 않았어도 크게 어려운 부분도 없답니다. 그냥 형부와 시어른들 모두 좋은 분들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언니 결혼식날에는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슬퍼서 운건 아니고, 그냥 이제 안심이 되고 이제 다 끝났다 싶은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들어서였어요.

그렇게 또 평범하게 지내던 어느 날, 언니가 엄마가 아파서 병원이라는데 같이 가볼거냐고 묻더라고요.
(언니가 결혼 사실을 엄마한테만 가르쳐줬었습니다. 절대 오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구요. 그 뒤로 계속 연락을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어릴땐 엄마도 미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 조금 씁쓸한 기분으로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언니와 제가 엄마를 만나러 갔던 여름휴가 첫날이,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병원 침대에는 엄마가 아닌, 할머니가 누워있었습니다.
저희 자매의 표정도 어떻게 수습할 시간도 없이 썩어들어갔고, 엄마는 연신 저희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담배곽만 만지작거리고, 할아버지와 오빠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일 가엾었던 사람이 엄마이니만큼, 배신감도 제일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전화를 하며 예예거리는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우리가 왔다고 알릴 생각이었나봅니다.
10년전에 그 소심했던 저는 어디로 갔는지. 제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의 힘으로 아빠의 휴대폰을 뺏어서 집어던지고, 저거 주우러 가는 순간, 손가락 하나라도 닿으면 지금 너네들 손가락 발가락 전부 생으로 분질러버릴거라고 이를 갈면서 얘기했네요.

할머니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년저년, 온갖 더러운 여자를 표현하는 말을 쏟아내시며 저희에게 삿대질을 하시더이다. 그 옆에서 엄마는 꺽꺽 울고있고.
예전에는 참 무서웠던 상황인데, 지금 다시 겪어보니 짜증만 있는대로 나더라고요. 우는소리가 원래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하고 듣기싫은건지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할머니의 패악과 엄마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니까 진짜 돌아버리겠더라구요. 짜증이 나고 소름끼쳐서.

그때 언니가 침대를 쾅 발로 차면서 할머니와 엄마를 한번 돌아보더니, ㅅ발 드러운 주둥아리들 안닥치냐고, 지금 열심히 참고있으니까 더 화나게 하지 말라고.
그제서야 아빠가 할머니와 엄마를 달랩니다. 저희한테도 마음은 알겠지만 진정좀 하라고 거듭 말하면서요.
그 말이 더 짜증나는건 왜일까요.
화가 나는게 아니라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벌레가 자꾸 왱알거릴때 쌍욕과 함께 훅 치밀어오르는 그런거.

언니는 아직 말이 통하지 않을 상태라고 판단했는지, 아빠가 저만 데리고 나가서 말을 꺼냅니다.
엄마가 아픈건 사실이고, 그런데 할머니도 지금 몸이 많이 안좋다고. 오빠가 결혼한다고 데려온 여자때문에 저렇게 되신거라고. 그 여자때문에 직장에서도 잘리고, 그 여자한테 위자료 주고 양육비도 계속 줘야하는데 당장 일하는 사람이 아빠 본인밖에 없어서 막막하답니다.

하도 기가차서 대답을 않으니, 변명 일색인 말만 늘어놓습니다. 내가 건너건너 알기로 너네 둘다 여유롭게 사는것 같더라, 저렇게 보여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희를 많이 사랑하신다, 너희 엄마가 참 불쌍한 사람이다...

저 소리를 듣고있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대로 다시 병실로 들어가니, 엄마는 언니 가디건 끝자락만 붙잡고 소리죽여 울고, 할머니는 시위라도 하는 양 언니로부터 등을 돌린 채로 누워있었습니다.
제가 엄마 손을 떼어내고 언니를 데려가려하니, 벌떡 고개를 들고 안된다고 안된다고 미친듯이 고개를 흔들어서 저도 같이 윽박지르고 손목을 쥐어뜯어서 겨우 손을 떼냈습니다. 여전히 분에 못 이겨하는 언니를 데리고 나와 병원 근처 카페에서 둘이서 말도없이 씩씩거리며 차가운 커피를 마셨습니다.
철이 일찍 든 언니는 유일하게 엄마만은 안타깝게, 나름대로 소중히 여겨왔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엄마까지 그럴수 있느냐며 중얼중얼 빨대를 씹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도 저대로 어제 하루종일 집에서 술을 마시고 이제 일어났는데, 속도 쓰리고 마음도 쓰리고 그냥 생각이라는걸 하기가 싫으네요.
내심 저도 엄마는 다를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리 생각하고 28년을 살아왔구요.

다 똑같네요.
이제 저나 언니나 마지막 남은 미련도 포기할 때가 된 듯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