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는게 너무 좋다. 중학교때 글 쓴거 애들한테 돌려서 재밌다고 더 써주라고 말 들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고 그냥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거 자체가 나한텐 너무 새롭고 좋은 소재가 되어서 시 쓰는 것도 좋았다. 부족한 솜씨랄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글이라도 내가 쓴 것들은 다 애정이 됐다. 일반 망상 같은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설정을 하고 말을 다듬고 조각하는 것처럼 그 과정 하나하나를 사랑했다.
근데 난 사실 중학교 때 공부를 아주 조금 잘했다. 중 3때 2학기에 막판 스퍼트 번지점프 뛰어서 전교 1등 한번 찍어봤다. 10등권에 머물던 모범생도 그냥 평범한 학생도 노는학생도 아닌 그냥 이도저도 아닌 애의 반란같은 거였다. 그 때 성적이 나온 이유는 딱 잘라 설명할 수 있다. 목표가 있었다는 거. 주제도 안되는 특목고 가는게 꿈이었다. 부모님이 가라고 하셨다. 아는 거 없으신 부모님은 그냥 성적만 잘 나오면 돼는 줄 알고 날 끊임없이 끓는 물에 넣어 아궁이를 부채질하시고 끓는 가마솥에 나오려 하면 채찍질해서 날 이끄셨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특목고를 가는게 목표가 아니었다. 특목고에 있는 '기숙사'에 가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가족이란 울타리밖에서 진짜 나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그게 성적과 대입에 관한 것으로만 들끓는 아이들의 날카로운 경쟁심이 모인 산구석에 쳐박힌 학교여도.
그리고 물론 특목고는 떨어졌다. 난 눈물 안나올줄 알았다. 근데 펑펑 울었다 쪽팔리게 애들앞에서도 울고 선생님 앞에서도 울고 집에와서도 울었다. 혼자 텅빈 방안에서 눈물 뚝뚝 흘리면서 그 이유를 생각했다. 난 그때 내 전부였던 목표를 잃어버린 좌절감에 울었던 거라고 매듭지었다. 나한텐 특목고는 이 작고 단촐하고 바깥세상을 볼 수 없었던 외딴 성 같은 집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 중도 아니고 중하에 머무르는 가족형편에 특목고를 생각하는 자체가 주제 넘는 꿈은 아니었나 생각했지만 나는 그래도 너무 슬펐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과 선생님을 실망시켜서 그에따라 비례하는 부담감을 느껴서인지, 진짜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떨어진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서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리고 난 옛날에 꽤 한창 잘나갔다는 일반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중에 산출해보니 난 전교 2등으로 들어갔었다. 장학금도 받았었다. 이런 새로운 시작이 어디있나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맞이한 신입생은 의욕이 넘첬지만, 넘치는 의욕만큼 몸이 따라와주진 않았다. 그리고 장학금 받아온 날 활짝 웃으시는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의 기대어린 표정을 보며, 이번엔 꼭 실망시키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우울증이 왔다.
누군가 날 죽이는 꿈이 계속됐다.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귓가에 누군가가 자꾸 수근수근대고 머리속에서 누군가가 시끄럽게 웃는거같았다. 이건 개인사정이라서 아무리 익명이라도 자세히 못 털어낼 것 같다. 그런나날은 시험 보는 날 까지 지속됐다.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번지점프처럼 수직낙하, 자유낙하 수준이었다. 처음 보는 점수였다. 선생님이 좀 엄한 분이셨는데 날 교무실로 불러내시곤 타박을 하셨다. 난 고개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이유는 몰랐다.
어떻게든 곤두박질 친 성적을 끌어올렸다. 아주 조금. 2학년 선배들이 하는 과학자율동아리에 낑겨들어가 무엇이든 배우려고 했다. 동아리는 과학동아리로 들었다. 식탁에서 수저질을 하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있었다. 요즘엔 이과가 대세지. 문과는 취업할 수도 없어. 요즘 정세처럼 쏠리는대로 아이들따라 이과를 지원했다. 과학이 사탐보단 성적이 잘나오긴 했다. 그저 산에서 흐르는 물들이 모여 강이 돼고 강에 모이는 물들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나는 그중 하나의 물줄기가 돼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바다로 흘러갔다.
근데도 난 미련스럽게 글을 버리지 못했다. 애들은 날 문과에서 온 스파이라고 놀렸다. 그럴만했다. 내가 1학년 생기부를 채운 수상경력은 모두 문과계열이었다. 이과계열은 다 해봤는데 상을 하나도 타지 못했다. 대신 글쓰기나 영어부분에서 운이좋게도 족족 걸려들었다. 의구심이 섰다. 난 이과로 가야하나? 근데 한반에 정해진 인원수가 문과는 40명이고 이과는 30명 안팎이었다. 답답한 건 죽어도 싫은 성격이었다. 이과에 동그라미 쳐진 종이조각을 바꾸지 않고 제출했다. 그리고 눈이 왔다. 낑겨있던 자율동아리에서 선배들을 보내주고 나는 이제 낭랑 신발세라고 하는 2학년이 될 준비를 했다. 수능이 끝난 3학년 선배들이 신나게 책을 버리고 있었다. 표정은 웃고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학교가 눈덮힌 모습을 처음 보며 겨울방학때 나는 다짐했다. 2학년때 정말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다.
2학년이 됐다. 지금 내 학년이다.
얼떨결에 부장을 떠맡고 자율동아리도 부장이 됐다. 앞뒤 생각안하고 실험내용을 짜고 소재를 정했다. 새로 올라간 학급의 반장을 맡았다. 하루가 눈뜰 새 없이 바빴다. 반 애들은 나이 좀 찼다고 내 말을 더이상 귓등으로도 쳐듣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동아린 잘 모르겠다. 문제는 자율동아리다. 하려는 의욕도 의지도 목표도 없다. 불분명한 주제로 의미없는 대화를 계속하고 만남을 가졌다. 뒷자리를 정리할 때조차 무언가 텅 빈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학년이 된 학교생활은 더 뭐같았다.
사립이라 그런지 진짜 능력없는 인간이 간혹 있었다. 짜증이 났다. 수업태도는 개판이 됐다. 동아리며 조사며 뭐 할게 늘어나 야행성으로 습관이 곧 생활패턴이 됐다. 수업시간에 좀 많이 잤다. 애들은 잠 왜이렇게 많이 자냐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 정말 많이 욕했다. 내 처지도 모르면서 상대방 생각 하나도 없이 웃음거리로 던지는 말들을 다 조각내고 싶었다.
중간고사 개판치고 나서 일이다.
문제집 버리면서 어떤 노트를 발견했다.
중학교 때 글을 쓰던 노트였다.
대화하듯이 쓴 글이나 소재들과 문체들이, 너무나 생소했다. 눈을 뗄수가 없었다. 한동안 바빴다며 글을 쓰지 않았다. 가끔 생각만 했다. 그 생각마저 뇌과 관리하는 최하층의 저장기억소로 옮겨졌다. 나는 노트를 넘겼다. 글씨체가 다양한 글들이 배열이 엉망이 되어 나열되어져 있었다.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었다. 노트를 넘기면서 적힌 글들은 저마다 다양했지만 한가지 같은것이 느껴졌다. 꿈과 희망을 품고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있었다.
그러고 보면 난 글을 좋아하는 만큼, 책도 참 많이 좋아했다. 또래 친구들이 인상써가며 꾸역꾸역 글자를 들이밀어넣을때 난 똑같은 책을 두번 읽었다. 책을 읽으면, 작가의 가치관이 인식돼면서 작가가 그리는 세상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내 좁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도 보는 걸 좋아했다. 영화의 배우와 감독과 대화하는 기분으로 스크린을 봤다. 학교에서도 문학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새로운 문학을 배우는게 즐겁고 행복했다. 시인들이 쓴 시가 얼룩덜룩한 펜으로 가려지는 것 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다.
기말마저 개판치고,
엄마는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엄마가 뭐라뭐라 말하는데 그 중 기억나는건 이거였다. 너 중학교때까지 잘해왔잖아, 지금까지 해온게 아깝지 않아? 난 궁금했다. 난 중학교때까지 성적을 잘 정리해온건지 아니면 내 인생을 잘 살아온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겨우 차곡차곡 쌓아온 꿈의 짓밟음이라던지 처음 목표를 잃은 느낌이었다든지 밖에 없었다.
나는 사실 공부하는 게 좋다.
더 배우는게 감사하다. 뭔가를 알 수 있다는게 행복하다. 하지만 난 자꾸 발걸음을 멈춘다. 학교는 나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더이상 채워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의례적인 순차라고 할지라도 나는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했고, 채워나가고 싶은게 많았다. 글을쓰는게 좋았고, 글과 문학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었다. 근데 이미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난 꽤나 긴 길을 흘려보낸 후였다. 나는 이미 이과고, 과학동아리 부장을 맡고있는데, 성적은 개판이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글도 쓰고 싶지만 요즘엔 이도저도 안돼는 순 엉망이지. 현재의 갈망을 채워주는 건 글밖에 없는데, 나는 그럴 요건과 여력조차 없다. 날 유일하게 세울 수 있는 희망이면서 이렇게 모순적일 수가 있나.
대학은 가야하나.
까지 생각했을 때 난 뭔가가 뒤틀려지고 부셔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글을 배우고 싶은데, 대학은 요즘 현실에서 일반고 나온 학생이 택할 가장 최선의 선택사항이고, 학벌이 갈수록 중요시 되고 있는 요즘에 여유란건 꿈같은 이야기였다. 가족과 친척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내가 정말 글을 배우고 싶어서 문과를 갔어도 이런 게 달라졌을까? 좁은 고등학생의 생각속에서 대학교와 그 후의 진로도 고민해보지 않을 것이 없지는 않은가. 하지만 그런 꿈을 쫒고 싶은 충동을 견디기엔 난 아직 어리고 참을성 없는 아이라고 끊임없이 세뇌하고 싶었다.
사실 이 글은 내가 자율동아리 주제 정하는 지금 홧김에 쓰는거다.
의미없는 타자를 치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한다.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걸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뭘까? 나는 앞으로 놓여져있는 선택의 기로중, 어떤 길을 선택해야될까?
성인의 발문을 앞에 둔 고등학생 2학년 학생의 생각은 끝없이 부풀어오른다. 더 부풀어 터져버릴지도, 아니면 탄성력이 없는 고무재질의 생각비닐 때문에 다시 쪼그라들지도 모르지만, 난 요즘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생각주머니 안에서 맴돌게 한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보는 또래나 어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어릴 때의 고민, 다 꿈같은 거지. 그때는 머리굴려 엄청 고민하겠지만 지나면 다 별거 아니야. 그리고 그건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이라면 겪는 일종의 성장통이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투정과 공부하기 싫어서 회피하는 일종이 픵계지.
내가 충고한다면 그 시간에 좀더 다른 일에 투자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모두 맞는 말이다.
나는 어쩌면 나 혼자 견뎌내야 할 성장통을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의지하고 싶어서, 나만 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만 같다고 생각해 끙끙대고, 찡찡대며 투정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이대로 어른이 된다면 정말 경험하게될 진짜 사회생활은 너무 무섭고 상상의 그 이상일까봐.
하지만 어쨋든 난 지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고등학생 2학년생일 뿐이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도, 예상할 수 없는 미래도 감당할 수 없다면 난 끊임없이 현실에 대해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고민쯤은 누군가에게,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 사는 불분명한 누군가가 언제든 열람할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도록,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호기심에 차있으면서.
모두 쓸모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시간낭비라도 비웃어도 좋고, 그렇게 말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작은 생각부터 점점 증폭되어져 넓어져가는 고민의 폭이, 그리고 그 것을 이루는 수많은 점으로 부터 비롯된 많은 시작들이, 나의 이 성장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댈곳이 필요한 나에게 일시적인 안정을 느끼게 해주는 약이 되어준다면. 그것을 소화해 나가는 과정조차 내 성장에 큰 도움이자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일반고 고등학생 푸념)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 대학갈려고 바둥거리는 자체가
나는 글쓰는게 너무 좋다. 중학교때 글 쓴거 애들한테 돌려서 재밌다고 더 써주라고 말 들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고 그냥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거 자체가 나한텐 너무 새롭고 좋은 소재가 되어서 시 쓰는 것도 좋았다. 부족한 솜씨랄 것도 없는 그냥 평범한 글이라도 내가 쓴 것들은 다 애정이 됐다. 일반 망상 같은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설정을 하고 말을 다듬고 조각하는 것처럼 그 과정 하나하나를 사랑했다.
근데 난 사실 중학교 때 공부를 아주 조금 잘했다. 중 3때 2학기에 막판 스퍼트 번지점프 뛰어서 전교 1등 한번 찍어봤다. 10등권에 머물던 모범생도 그냥 평범한 학생도 노는학생도 아닌 그냥 이도저도 아닌 애의 반란같은 거였다. 그 때 성적이 나온 이유는 딱 잘라 설명할 수 있다. 목표가 있었다는 거. 주제도 안되는 특목고 가는게 꿈이었다. 부모님이 가라고 하셨다. 아는 거 없으신 부모님은 그냥 성적만 잘 나오면 돼는 줄 알고 날 끊임없이 끓는 물에 넣어 아궁이를 부채질하시고 끓는 가마솥에 나오려 하면 채찍질해서 날 이끄셨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특목고를 가는게 목표가 아니었다. 특목고에 있는 '기숙사'에 가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가족이란 울타리밖에서 진짜 나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그게 성적과 대입에 관한 것으로만 들끓는 아이들의 날카로운 경쟁심이 모인 산구석에 쳐박힌 학교여도.
그리고 물론 특목고는 떨어졌다. 난 눈물 안나올줄 알았다. 근데 펑펑 울었다 쪽팔리게 애들앞에서도 울고 선생님 앞에서도 울고 집에와서도 울었다. 혼자 텅빈 방안에서 눈물 뚝뚝 흘리면서 그 이유를 생각했다. 난 그때 내 전부였던 목표를 잃어버린 좌절감에 울었던 거라고 매듭지었다. 나한텐 특목고는 이 작고 단촐하고 바깥세상을 볼 수 없었던 외딴 성 같은 집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 중도 아니고 중하에 머무르는 가족형편에 특목고를 생각하는 자체가 주제 넘는 꿈은 아니었나 생각했지만 나는 그래도 너무 슬펐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과 선생님을 실망시켜서 그에따라 비례하는 부담감을 느껴서인지, 진짜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떨어진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서인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리고 난 옛날에 꽤 한창 잘나갔다는 일반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중에 산출해보니 난 전교 2등으로 들어갔었다. 장학금도 받았었다. 이런 새로운 시작이 어디있나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맞이한 신입생은 의욕이 넘첬지만, 넘치는 의욕만큼 몸이 따라와주진 않았다. 그리고 장학금 받아온 날 활짝 웃으시는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의 기대어린 표정을 보며, 이번엔 꼭 실망시키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우울증이 왔다.
누군가 날 죽이는 꿈이 계속됐다.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귓가에 누군가가 자꾸 수근수근대고 머리속에서 누군가가 시끄럽게 웃는거같았다. 이건 개인사정이라서 아무리 익명이라도 자세히 못 털어낼 것 같다. 그런나날은 시험 보는 날 까지 지속됐다.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번지점프처럼 수직낙하, 자유낙하 수준이었다. 처음 보는 점수였다. 선생님이 좀 엄한 분이셨는데 날 교무실로 불러내시곤 타박을 하셨다. 난 고개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이유는 몰랐다.
어떻게든 곤두박질 친 성적을 끌어올렸다. 아주 조금. 2학년 선배들이 하는 과학자율동아리에 낑겨들어가 무엇이든 배우려고 했다. 동아리는 과학동아리로 들었다. 식탁에서 수저질을 하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있었다. 요즘엔 이과가 대세지. 문과는 취업할 수도 없어. 요즘 정세처럼 쏠리는대로 아이들따라 이과를 지원했다. 과학이 사탐보단 성적이 잘나오긴 했다. 그저 산에서 흐르는 물들이 모여 강이 돼고 강에 모이는 물들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나는 그중 하나의 물줄기가 돼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바다로 흘러갔다.
근데도 난 미련스럽게 글을 버리지 못했다. 애들은 날 문과에서 온 스파이라고 놀렸다. 그럴만했다. 내가 1학년 생기부를 채운 수상경력은 모두 문과계열이었다. 이과계열은 다 해봤는데 상을 하나도 타지 못했다. 대신 글쓰기나 영어부분에서 운이좋게도 족족 걸려들었다. 의구심이 섰다. 난 이과로 가야하나? 근데 한반에 정해진 인원수가 문과는 40명이고 이과는 30명 안팎이었다. 답답한 건 죽어도 싫은 성격이었다. 이과에 동그라미 쳐진 종이조각을 바꾸지 않고 제출했다. 그리고 눈이 왔다. 낑겨있던 자율동아리에서 선배들을 보내주고 나는 이제 낭랑 신발세라고 하는 2학년이 될 준비를 했다. 수능이 끝난 3학년 선배들이 신나게 책을 버리고 있었다. 표정은 웃고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학교가 눈덮힌 모습을 처음 보며 겨울방학때 나는 다짐했다. 2학년때 정말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다.
2학년이 됐다. 지금 내 학년이다.
얼떨결에 부장을 떠맡고 자율동아리도 부장이 됐다. 앞뒤 생각안하고 실험내용을 짜고 소재를 정했다. 새로 올라간 학급의 반장을 맡았다. 하루가 눈뜰 새 없이 바빴다. 반 애들은 나이 좀 찼다고 내 말을 더이상 귓등으로도 쳐듣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동아린 잘 모르겠다. 문제는 자율동아리다. 하려는 의욕도 의지도 목표도 없다. 불분명한 주제로 의미없는 대화를 계속하고 만남을 가졌다. 뒷자리를 정리할 때조차 무언가 텅 빈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학년이 된 학교생활은 더 뭐같았다.
사립이라 그런지 진짜 능력없는 인간이 간혹 있었다. 짜증이 났다. 수업태도는 개판이 됐다. 동아리며 조사며 뭐 할게 늘어나 야행성으로 습관이 곧 생활패턴이 됐다. 수업시간에 좀 많이 잤다. 애들은 잠 왜이렇게 많이 자냐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 정말 많이 욕했다. 내 처지도 모르면서 상대방 생각 하나도 없이 웃음거리로 던지는 말들을 다 조각내고 싶었다.
중간고사 개판치고 나서 일이다.
문제집 버리면서 어떤 노트를 발견했다.
중학교 때 글을 쓰던 노트였다.
대화하듯이 쓴 글이나 소재들과 문체들이, 너무나 생소했다. 눈을 뗄수가 없었다. 한동안 바빴다며 글을 쓰지 않았다. 가끔 생각만 했다. 그 생각마저 뇌과 관리하는 최하층의 저장기억소로 옮겨졌다. 나는 노트를 넘겼다. 글씨체가 다양한 글들이 배열이 엉망이 되어 나열되어져 있었다.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었다. 노트를 넘기면서 적힌 글들은 저마다 다양했지만 한가지 같은것이 느껴졌다. 꿈과 희망을 품고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있었다.
그러고 보면 난 글을 좋아하는 만큼, 책도 참 많이 좋아했다. 또래 친구들이 인상써가며 꾸역꾸역 글자를 들이밀어넣을때 난 똑같은 책을 두번 읽었다. 책을 읽으면, 작가의 가치관이 인식돼면서 작가가 그리는 세상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내 좁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도 보는 걸 좋아했다. 영화의 배우와 감독과 대화하는 기분으로 스크린을 봤다. 학교에서도 문학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새로운 문학을 배우는게 즐겁고 행복했다. 시인들이 쓴 시가 얼룩덜룩한 펜으로 가려지는 것 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다.
기말마저 개판치고,
엄마는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엄마가 뭐라뭐라 말하는데 그 중 기억나는건 이거였다. 너 중학교때까지 잘해왔잖아, 지금까지 해온게 아깝지 않아? 난 궁금했다. 난 중학교때까지 성적을 잘 정리해온건지 아니면 내 인생을 잘 살아온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겨우 차곡차곡 쌓아온 꿈의 짓밟음이라던지 처음 목표를 잃은 느낌이었다든지 밖에 없었다.
나는 사실 공부하는 게 좋다.
더 배우는게 감사하다. 뭔가를 알 수 있다는게 행복하다. 하지만 난 자꾸 발걸음을 멈춘다. 학교는 나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더이상 채워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의례적인 순차라고 할지라도 나는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했고, 채워나가고 싶은게 많았다. 글을쓰는게 좋았고, 글과 문학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었다. 근데 이미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난 꽤나 긴 길을 흘려보낸 후였다. 나는 이미 이과고, 과학동아리 부장을 맡고있는데, 성적은 개판이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글도 쓰고 싶지만 요즘엔 이도저도 안돼는 순 엉망이지. 현재의 갈망을 채워주는 건 글밖에 없는데, 나는 그럴 요건과 여력조차 없다. 날 유일하게 세울 수 있는 희망이면서 이렇게 모순적일 수가 있나.
대학은 가야하나.
까지 생각했을 때 난 뭔가가 뒤틀려지고 부셔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글을 배우고 싶은데, 대학은 요즘 현실에서 일반고 나온 학생이 택할 가장 최선의 선택사항이고, 학벌이 갈수록 중요시 되고 있는 요즘에 여유란건 꿈같은 이야기였다. 가족과 친척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내가 정말 글을 배우고 싶어서 문과를 갔어도 이런 게 달라졌을까? 좁은 고등학생의 생각속에서 대학교와 그 후의 진로도 고민해보지 않을 것이 없지는 않은가. 하지만 그런 꿈을 쫒고 싶은 충동을 견디기엔 난 아직 어리고 참을성 없는 아이라고 끊임없이 세뇌하고 싶었다.
사실 이 글은 내가 자율동아리 주제 정하는 지금 홧김에 쓰는거다.
의미없는 타자를 치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한다.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걸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뭘까? 나는 앞으로 놓여져있는 선택의 기로중, 어떤 길을 선택해야될까?
성인의 발문을 앞에 둔 고등학생 2학년 학생의 생각은 끝없이 부풀어오른다. 더 부풀어 터져버릴지도, 아니면 탄성력이 없는 고무재질의 생각비닐 때문에 다시 쪼그라들지도 모르지만, 난 요즘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생각주머니 안에서 맴돌게 한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보는 또래나 어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어릴 때의 고민, 다 꿈같은 거지. 그때는 머리굴려 엄청 고민하겠지만 지나면 다 별거 아니야. 그리고 그건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이라면 겪는 일종의 성장통이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투정과 공부하기 싫어서 회피하는 일종이 픵계지.
내가 충고한다면 그 시간에 좀더 다른 일에 투자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모두 맞는 말이다.
나는 어쩌면 나 혼자 견뎌내야 할 성장통을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의지하고 싶어서, 나만 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만 같다고 생각해 끙끙대고, 찡찡대며 투정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이대로 어른이 된다면 정말 경험하게될 진짜 사회생활은 너무 무섭고 상상의 그 이상일까봐.
하지만 어쨋든 난 지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고등학생 2학년생일 뿐이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도, 예상할 수 없는 미래도 감당할 수 없다면 난 끊임없이 현실에 대해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고민쯤은 누군가에게,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 사는 불분명한 누군가가 언제든 열람할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도록,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호기심에 차있으면서.
모두 쓸모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시간낭비라도 비웃어도 좋고, 그렇게 말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작은 생각부터 점점 증폭되어져 넓어져가는 고민의 폭이, 그리고 그 것을 이루는 수많은 점으로 부터 비롯된 많은 시작들이, 나의 이 성장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댈곳이 필요한 나에게 일시적인 안정을 느끼게 해주는 약이 되어준다면. 그것을 소화해 나가는 과정조차 내 성장에 큰 도움이자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새벽에 쓰는 글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읽어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