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 문둥병은 제가 알기로는 인간이 병이 몹시 진행된 상황에서 고친 적이 없는 병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병의 진행 초기에서만 미국에서 아르마딜로라는 몸을 말아 방어하는 동물을 접촉하다 걸리고 고친 적이 있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이 진행된 문둥병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분만이 고칠 수 있는 병 입니다. 예수님의 이 치유 사역은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이신 것을 알리시는 기적입니다.
문둥병은 인간에게서 가장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가장 추하게 천천히 가장 끈질긴 마음의 아픔으로 주의 지인이 떠나가고 가장 외로움의 심적 고독 가운데 죽어 가는 병입니다. 이런 악질의 병을 고치시는 주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이미 아시고 그의 근처에 그를 고치시려 찾으시고 기다리시고 계신 사랑의 주님이 되십니다.
그 문둥병자는 자신의 육적 모습과 함께 자신의 심적 외로움에서도 벗어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가 있을 때 외로울 때 육적 상함이 있을 때 우리를 가장 위로하기에 합당한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 우리 주님 앞에 말씀안에 교회안에 그리스도인의 교제안에 더욱 거하셔서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고통을 세상에 빠져 세상의 욕심으로 위로 받으려 하면 문제에 문제를 더하는 불이 난 곳에 휘발유를 부은 겪이 됩니다. 외로울수록 더욱 주님께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20대 청년 시절 경상도가 고향이신 전도사님 내외 분으로 인해 청년들이 추도라는 매우 작은 섬에 청년회 모임을 2박 3일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처움으로 거기서 한센병자를 본거 같습니다. 길을 지나는데 얼굴을 수건으로 많이 덮어 가리고 있었고 몸이 느리고 너무 얼굴을 가리어서 좀 이상해 어쩌다 얼굴을 잠시 보았는데 매우 하얗고 조금 온전하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들추고 싶지 않아 아무한테도 확인을 하지 않은거 같은데 경미한 한센 환자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곳에서도 위로하러 그들을 찾으러 오셨을까요 배로 그 섬을 다가갈 때 가장 크게 보이는 건물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은 외롭고 서러운 자들을 향해 그 외지까지도 찾아 가신 것입니다. 또한 배를 태우고 우리를 도착하게 하신 배 운전사도 전도사님이시라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발걸음은 끝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민박했던 할머니는 불교신자 였는데 그분은 전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은 없어 보였습니다. 전도를 해도 부정적 이야기만 하셨습니다. 거기 담임하시는 목사님께도 모함하는 소문을 퍼트리는거 같았습니다. 저의 간증도 폄하하는 거짓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불교신자와 달리 주님을 간절한 기대와 소망으로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는 고쳐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부르짖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병걸린 낮은 처지를 알고 매우 겸손하게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극한 겸손을 볼 수 있으며 또 치유하시는 주님의 손을 확신하는 것을 봅니다.
과거 여행 했던 추도의 복음 현황은 사실은 모릅니다. 그들의 간절함이나 얼마나 전도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에 교회를 통해 다리를 놓은 것은 커다란 가능성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떤 집에 찾아가 전도지를 주며 복음을 전하려 해도 귀가 안들려서인지는 모르지만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박 할머니 외에는 우리를 아는 척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실 작은 섬에 사람도 없으니 복음을 전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추도 교회의 목사님과 배 운전사인 전도사님 외에는 그 섬의 복음화를 맡기고 올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추도의 불교신자 주인 할머니에게 헤어지는 날까지 복음을 전했고 그분이 저 바다 지평선에 해가 떠오르면 바라보는 산정상 쯤의 전망대에 약간 두툼한 전도지도 놓고 갔습니다. 전도지를 놓기 전 끝까지 부인을 하셨지만 15년 뒤인 오늘 그분이 어떻게 되셨는지는 모릅니다. 그 할머니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없으셨지만 마지막 배에서 50m 떨어질 때 잘 가라는 미소와 손짓에서 그 할머니의 가능성과 구원의 희망을 생각 합니다.
초기 선교사의 역사를 보면 한국민의 신앙의 간절함을 유도하는 것은 초기 선교사의 간절한 수고 이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간절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겸손한 모습 속에서 한민족은 그것을 배우고 하나님께 간절히 나아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추도까지 교회를 세우는 그 사역자들의 열정이 언젠가는 빛을 발 할 줄 믿고 기도합니다.
우리 주위에 소외되고 단절된 이웃은 없습니까 그들에게 손 내미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봅니다. 우리의 손은 전지전능한 주님의 손이 아니라면 그들을 옳게 변화 시킬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보다 크십니다. 끊임없이 도우시는 손길을 우리를 통해 보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하는 미덕으로 하나님도 그 사랑의 미덕으로 우리를 더 대하시고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끊임없이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다음,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의 놀라운 기적 앞에 함구령을 내립니다. 예수님의 본 사역은 십자가입니다. 귀한 십자가 희생 보다 높아진 기적만을 위한 변질된 복음을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단이 목적을 앞서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일보다 더 높은 십자가의 일이 중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인기 속에 모든 권세 자들까지 심지어 로마인까지 예수님께 도취되면 십자가의 사역은 모두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기를 잠재우시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시고 우리가 이를 본 받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부활의 온전한 영광을 주님은 우리에게서 예정하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영광을 내게 돌리면 이 세상의 썩을 것이 되 버립니다. 잠시 받을 인기를 위해서 영원한 것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잠시 받는 영광만을 위함이 영원한 천국의 영화를 다 포기하고 마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처움의 세속적인 신앙에서 주님은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처움은 고기를 먹이고 병을 교쳐야만 믿는 신앙에서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 주님께서 사실 이곳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악을 대신 감당해 희생제물로 돌아가시기 위한 궁극적인 실체의 복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이후로는 내가 병을 못 고침 받아도 먹을 고기가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복음신앙을 원하십니다. 예수님 부활 승천 후 진실로 성숙한 신앙의 11사도들은 그렇게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전진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죽음을 절망인줄 알고 이제는 세상의 권세를 얻지 못함을 알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 희생 뒤에 천문학적인 인간이 계산할 수 없는 은혜가 뒤에 다가 온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지킨 뒤에 은혜가 가리운 얼굴을 벗고 다가오고 있었음을 직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광복의 기쁨 전 모든 것이 이젠 끝이라고 외치며 친일을 하던 자와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광복을 한 후 대우를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 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지혜와 지식으로 주님은 그들을 가려 내십니다. 하나님을 섬기었던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하나님의 이름을 존숭하였던 자와 멸시 하였던자 회개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확실히 구분하시어 상급의 성대한 잔치를 하시거나 다른 자에겐 진노의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는 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여 명성과 칭찬이 자자한 개인과 가정이 되도록 하여야 겠습니다.
나의 외로움을 돌아보기 보단 예수님과 같이 가장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며 그들의 외로움을 먼저 돌아보고 내 힘이 부족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나아가 힘을 얻고 다시 공급해 줄 수 있는 영적 파워가 필요합니다! 문둥병자까지 치유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영적 갈함을 아시고 주님께 나아가 간구할 때 힘을 주시고 우리가 같이 합심하여 평안함 가운데 동행하여 힘을 더 모으기를 원합니다. 아멘!
참된 지도자가 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갈길을 온전히 가기에는 참으로 무지한 우리입니다. 갈길을 밝히 보여주셔서 경건한 가운데 힘을 공급 받아 가정과 이웃과 나라를 돌아보는 좁은 길의 시온의 대로를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공동체와 모든 이로 더불어 우애하며 연합하여 아무 장애가 없는 평안의 대로를 주시옵소서 복음을 전할 때는 하나님의 빛이 있는 곳을 찾아 내가 그 빛을 누리기 보다는 어둡고 소외된 곳을 찾아가 그들의 빛이 내가 되어 주고 그들이 참 빛 안에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돕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수고를 통해 받은 것은 그들이 더 사람에게 영광 돌림이 아닌 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드리고 다가가 더욱 더 참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복음의 빛이 더욱 밝혀지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에서 소외된 일본과 북한과 중국에 복음과 사랑의 은혜의 빛을 더욱 알리고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들을 미워하였던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치 문둥병같이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죄악들을 깨닫지 못하는 심령 속에 깨달음을 주시고 개선하며 아시아의 4나라가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여 평화와 번영을 동시에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소외된 자를 찾으시는 주님
{마가복음 1 : 40 ~ 45}
[소외된 자를 찾으시는 예수님]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 문둥병은 제가 알기로는 인간이 병이 몹시 진행된 상황에서 고친 적이 없는 병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병의 진행 초기에서만 미국에서 아르마딜로라는 몸을 말아 방어하는 동물을 접촉하다 걸리고 고친 적이 있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이 진행된 문둥병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분만이 고칠 수 있는 병 입니다. 예수님의 이 치유 사역은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이신 것을 알리시는 기적입니다.
문둥병은 인간에게서 가장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가장 추하게 천천히 가장 끈질긴 마음의 아픔으로 주의 지인이 떠나가고 가장 외로움의 심적 고독 가운데 죽어 가는 병입니다. 이런 악질의 병을 고치시는 주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이미 아시고 그의 근처에 그를 고치시려 찾으시고 기다리시고 계신 사랑의 주님이 되십니다.
그 문둥병자는 자신의 육적 모습과 함께 자신의 심적 외로움에서도 벗어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문제가 있을 때 외로울 때 육적 상함이 있을 때 우리를 가장 위로하기에 합당한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 우리 주님 앞에 말씀안에 교회안에 그리스도인의 교제안에 더욱 거하셔서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고통을 세상에 빠져 세상의 욕심으로 위로 받으려 하면 문제에 문제를 더하는 불이 난 곳에 휘발유를 부은 겪이 됩니다. 외로울수록 더욱 주님께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20대 청년 시절 경상도가 고향이신 전도사님 내외 분으로 인해 청년들이 추도라는 매우 작은 섬에 청년회 모임을 2박 3일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저는 처움으로 거기서 한센병자를 본거 같습니다. 길을 지나는데 얼굴을 수건으로 많이 덮어 가리고 있었고 몸이 느리고 너무 얼굴을 가리어서 좀 이상해 어쩌다 얼굴을 잠시 보았는데 매우 하얗고 조금 온전하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들추고 싶지 않아 아무한테도 확인을 하지 않은거 같은데 경미한 한센 환자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곳에서도 위로하러 그들을 찾으러 오셨을까요 배로 그 섬을 다가갈 때 가장 크게 보이는 건물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은 외롭고 서러운 자들을 향해 그 외지까지도 찾아 가신 것입니다. 또한 배를 태우고 우리를 도착하게 하신 배 운전사도 전도사님이시라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발걸음은 끝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민박했던 할머니는 불교신자 였는데 그분은 전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은 없어 보였습니다. 전도를 해도 부정적 이야기만 하셨습니다. 거기 담임하시는 목사님께도 모함하는 소문을 퍼트리는거 같았습니다. 저의 간증도 폄하하는 거짓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불교신자와 달리 주님을 간절한 기대와 소망으로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는 고쳐주십시오라고 간절히 부르짖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병걸린 낮은 처지를 알고 매우 겸손하게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극한 겸손을 볼 수 있으며 또 치유하시는 주님의 손을 확신하는 것을 봅니다.
과거 여행 했던 추도의 복음 현황은 사실은 모릅니다. 그들의 간절함이나 얼마나 전도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에 교회를 통해 다리를 놓은 것은 커다란 가능성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떤 집에 찾아가 전도지를 주며 복음을 전하려 해도 귀가 안들려서인지는 모르지만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박 할머니 외에는 우리를 아는 척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실 작은 섬에 사람도 없으니 복음을 전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추도 교회의 목사님과 배 운전사인 전도사님 외에는 그 섬의 복음화를 맡기고 올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추도의 불교신자 주인 할머니에게 헤어지는 날까지 복음을 전했고 그분이 저 바다 지평선에 해가 떠오르면 바라보는 산정상 쯤의 전망대에 약간 두툼한 전도지도 놓고 갔습니다. 전도지를 놓기 전 끝까지 부인을 하셨지만 15년 뒤인 오늘 그분이 어떻게 되셨는지는 모릅니다. 그 할머니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없으셨지만 마지막 배에서 50m 떨어질 때 잘 가라는 미소와 손짓에서 그 할머니의 가능성과 구원의 희망을 생각 합니다.
초기 선교사의 역사를 보면 한국민의 신앙의 간절함을 유도하는 것은 초기 선교사의 간절한 수고 이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간절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겸손한 모습 속에서 한민족은 그것을 배우고 하나님께 간절히 나아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추도까지 교회를 세우는 그 사역자들의 열정이 언젠가는 빛을 발 할 줄 믿고 기도합니다.
우리 주위에 소외되고 단절된 이웃은 없습니까 그들에게 손 내미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봅니다. 우리의 손은 전지전능한 주님의 손이 아니라면 그들을 옳게 변화 시킬 능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보다 크십니다. 끊임없이 도우시는 손길을 우리를 통해 보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하는 미덕으로 하나님도 그 사랑의 미덕으로 우리를 더 대하시고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끊임없이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다음, 44절을 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의 놀라운 기적 앞에 함구령을 내립니다. 예수님의 본 사역은 십자가입니다. 귀한 십자가 희생 보다 높아진 기적만을 위한 변질된 복음을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단이 목적을 앞서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일보다 더 높은 십자가의 일이 중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인기 속에 모든 권세 자들까지 심지어 로마인까지 예수님께 도취되면 십자가의 사역은 모두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기를 잠재우시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시고 우리가 이를 본 받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부활의 온전한 영광을 주님은 우리에게서 예정하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영광을 내게 돌리면 이 세상의 썩을 것이 되 버립니다. 잠시 받을 인기를 위해서 영원한 것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잠시 받는 영광만을 위함이 영원한 천국의 영화를 다 포기하고 마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처움의 세속적인 신앙에서 주님은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처움은 고기를 먹이고 병을 교쳐야만 믿는 신앙에서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 주님께서 사실 이곳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악을 대신 감당해 희생제물로 돌아가시기 위한 궁극적인 실체의 복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이후로는 내가 병을 못 고침 받아도 먹을 고기가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복음신앙을 원하십니다. 예수님 부활 승천 후 진실로 성숙한 신앙의 11사도들은 그렇게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전진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죽음을 절망인줄 알고 이제는 세상의 권세를 얻지 못함을 알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 희생 뒤에 천문학적인 인간이 계산할 수 없는 은혜가 뒤에 다가 온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믿음을 지킨 뒤에 은혜가 가리운 얼굴을 벗고 다가오고 있었음을 직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광복의 기쁨 전 모든 것이 이젠 끝이라고 외치며 친일을 하던 자와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광복을 한 후 대우를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 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지혜와 지식으로 주님은 그들을 가려 내십니다. 하나님을 섬기었던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하나님의 이름을 존숭하였던 자와 멸시 하였던자 회개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확실히 구분하시어 상급의 성대한 잔치를 하시거나 다른 자에겐 진노의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는 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여 명성과 칭찬이 자자한 개인과 가정이 되도록 하여야 겠습니다.
나의 외로움을 돌아보기 보단 예수님과 같이 가장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며 그들의 외로움을 먼저 돌아보고 내 힘이 부족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나아가 힘을 얻고 다시 공급해 줄 수 있는 영적 파워가 필요합니다! 문둥병자까지 치유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영적 갈함을 아시고 주님께 나아가 간구할 때 힘을 주시고 우리가 같이 합심하여 평안함 가운데 동행하여 힘을 더 모으기를 원합니다. 아멘!
참된 지도자가 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갈길을 온전히 가기에는 참으로 무지한 우리입니다. 갈길을 밝히 보여주셔서 경건한 가운데 힘을 공급 받아 가정과 이웃과 나라를 돌아보는 좁은 길의 시온의 대로를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공동체와 모든 이로 더불어 우애하며 연합하여 아무 장애가 없는 평안의 대로를 주시옵소서 복음을 전할 때는 하나님의 빛이 있는 곳을 찾아 내가 그 빛을 누리기 보다는 어둡고 소외된 곳을 찾아가 그들의 빛이 내가 되어 주고 그들이 참 빛 안에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돕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수고를 통해 받은 것은 그들이 더 사람에게 영광 돌림이 아닌 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드리고 다가가 더욱 더 참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복음의 빛이 더욱 밝혀지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에서 소외된 일본과 북한과 중국에 복음과 사랑의 은혜의 빛을 더욱 알리고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들을 미워하였던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치 문둥병같이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죄악들을 깨닫지 못하는 심령 속에 깨달음을 주시고 개선하며 아시아의 4나라가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여 평화와 번영을 동시에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