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세상 바람처럼

블레이드러너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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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증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죽음 앞에서 존재와 삶의 허무를 느끼고 구도의 길에 들어서서 결국 불교에 귀의

, 출가한 후 한국 불교계와 티베트 불교계를 거치며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 인생과 진리와 수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써 냈습니다.

때로는 배꼽 빠지게 웃기고, 때로는 눈물 나게 슬프며,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깊은 감동을 주는 여러 재미난 이야기들.

 

 

아래는 책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델리에서 다람살라 가는 길은 버스로 12~14시간 정도 걸린다. 저녁때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데, 중간 중간 한 번씩 차를 세워 식사나 대소변을 해결한다.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푹 잠들면 그저 최고다. 하지만 버스가 워낙 후져서 앉아 있기도 불편한 자리에 걸리면 잠이 깊게 들 수가 없다. 재수 없으면 뒤틀린 자리에 안전하게 붙어 있느라 계속 온 몸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할 때도 있고, 앞좌석에 앉은 사람이 의자를 완전히 뒤로 젖혀서 옴짝달싹 못하고 내내 고문을 당해야 할 때도 있다. 버스 안에서 나는 냄새, 사람들 몸에서 나는 냄새, 달려드는 모기떼 정도는 기본 서비스다. ‘볼보’라는 비싼 고급 버스가 있긴 한데 한 번 타 보았다가 오히려 더 고생을 했다. 에어컨을 틀고 창은 열 수 없게 되어 있는데 멀미가 나서 죽을 뻔했다. 밤에는 추워 죽겠는데 에어컨은 왜 그렇게 세게 틀어놓던지 원....... 사람들이 추워서 얼어 죽든 말든 상관없다. 그저 최고급 버스니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줘야 한다. 그런 게 바로 인도인들 특유의 무딘 센스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염려하는 건 바로 대변 문제다. 한 번 화장실 갈 때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말썽을 겪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날도 나는 버스에 타기 전에 장을 비운다고 화장실을 미리 한두 번 들락거렸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휴게소에 들르길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필 잠이 들었다가 휴게소를 지나서야 잠이 깼다. 그러나 그다지 심하진 않아서 참을 만 했다. 다음번에 설 때 해결하면 될 듯 했다. 그러다 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또 휴게실을 지나친 모양이었다. 이제 정말 참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좀 있으면 또 서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버텼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고통에 몸부림치며 버스가 서기를 기다려도 버스는 도무지 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 시간이 지나 새벽 네 시쯤 되었을 때 어느 마을에서 드디어 버스가 섰다. 나는 총알같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큰일을 보는 인도인들에게는 모든 곳이 자연 화장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급해도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큰일을 볼 수는 없었다. 해결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골목길로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한참 걸어 들어가 꺾어지는 곳을 발견해 꺾어 들어갔다. 그 곳에서 그냥 일을 봤으면 될 텐데, 누가 소변보러 거기까지 올까봐 조금 더 들어가서 한 번 더 길을 꺾었다. ‘이제 누가 볼 일은 없겠지.’ 하는 생각에 안심하고 궁둥이를 까고 앉았다. 회심의 일타를 날리기 위해 힘을 주는 순간 ‘빠바바바바바박!!!’ 하고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랐다. 내 대변 역사상 최고의 소리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변은 나오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시 내공을 모았다가 다시 힘을 주었다. ‘빠바바바바바박!!!!’ 이번엔 더 큰 소리가 났다. 또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 미친놈의 대변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뭐야, 장난해? 빨랑 안 나와?’ 하고 힘을 막 쓰고 있는데 몇 미터 뒤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헉!’ 깜짝 놀라고 있는 나에게 더 큰 시련이 닥쳐왔다. 손전등 불빛이 하나 날아와 내 궁둥이를 비쳤던 것이다. ‘어헉!!!’ 그제야 주변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였다. 내가 궁둥이를 까고 앉아 있는 곳은 남의 집 마당 한가운데였다. 더구나 궁둥이는 현관문을 정확히 향하고 있었다. 집주인 할아버지께서는 한참 단잠을 주무시다가 폭죽 터지는 소리에 놀라 뛰쳐나오신 모양이었다. 난 난감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궁둥이에 손전등 불빛이 비추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밑을 닦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일을 볼 수도 없고, 이 난감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몰라서 식은땀만 죽죽 흘리고 있는데 이해심도 참 깊으시지, 영감님은 잠시 지켜보다 그냥 들어가셨다. ‘휴우~’ 나는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빨리 끝내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힘을 주었다. 그런데 서두른 것이 실수였다. 힘을 주자 ‘빠락팍팍빠다다닥!!!!’ 하고 전보다 더 요란한 폭죽소리가 터졌다. ‘허걱!!!’ 역대 최강. 하룻밤 사이에 세 번 연속 신기록 경신.......이든, 뭣이든 영감님은 단단히 화가 나셨다. 문을 박차고 나와 또 다시 내 궁둥이에 손전등을 비추며 이번엔 “쉿! 쉿!” 하고 개 쫓는 소리까지 내신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정리를 하고 도망쳐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가 떠나기 전에 다행히 다른 곳에서 일은 해결하였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생각해보니까 왜 그렇게 웃기던지,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서 계속 낄낄거리고 있었다.

 

중략...

 

태백산 각화사

 

1999년 4월, 각화사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늦어 어두웠다. 맨 앞 건물의 한 방문을 두드리자 젊은 여자가 얼굴을 내민다. 출가하러 왔다고 하자 그 여자가 잠시 기다려보라며 누군가를 부르러 갔다. 잠시 후 한 노보살님이 나와서 나를 보더니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자고 나서 아침에 주지스님을 만나보라고 한다. 다음날 안내를 받아 주지스님 방에 찾아가 인사하고 출가하러 왔다고 하자 주지스님께서는 후원 일도 돕고 사원 청소도 좀 하면서 일단 며칠 있어보라고 하셨다.

후원에는 첫 날 본 노보살님 한 명, 50대 후반 쯤 돼 보이는 억센 공양주 보살 한 명,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처사 한 명, 첫 날 본 젊은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여섯 살짜리 딸이 있었다. 처사와 아이 엄마 모두 절에 온지 얼마 안 됐다고 하였고, 아이 엄마는 기도를 하러 와 있다고 하였다. 스님들은 주지스님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계셨고, 절 주위 동서남북으로 암자가 하나씩 딸려 있었다. 그 중의 북암에 계시던 스님은 성격이 활달하여 내게 이것, 저것 많이 가르쳐 주시며 친절히 대해주셨다. 하루는 그 스님이 멋진 걸 보여주겠다며 북암에 함께 가보자 한다. 얼마를 걸어 올라가 북암의 널찍한 앞마당에 도착하였다. 마당에는 벚꽃나무에서 떨어진 연분홍 꽃잎들로 어지럽게 수가 놓여 있다. 멋진 걸 보여주겠다던 게 바로 이것인 모양이었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나비 두 마리가 날아와 술래잡기 하듯 서로 쫓고 쫓기며 주위를 맴돈다. 나비들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아무 걱정 없이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구나. 이 아름다운 곳에 저 행복한 나비들. 내 삶은 이토록 추하고 불행하기만 한데.......’

갑자기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렸다.

“어이, 박행자! 사내대장부가 그렇게 감상이 많아서 쓰겠어?”

북암 스님이 놀리듯 소리친다.

“이리 와, 박행자. 들어가서 차나 한 잔 하자고.”

방에 들어가 스님이 끓여 주는 차를 마셨다. 끓인 물로 찻잔을 헹구고, 찻잎을 다기에 담아 끓는 물을 부어 우리고, 우린 물을 얼마 후 사발에 붓고, 사발의 차를 또 각자의 찻잔에 담아 마시는 그런 식의 전통차를 마셔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왠지 멋있어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멋있어 보인 건 차를 다 마시고 나서 정리할 때의 모습이었다. 다기에 끓는 물을 부어 찻잎을 사발에 다 쏟아내고, 마시던 찻잔을 찻잎찌꺼기와 뜨거운 물이 담긴 사발에 넣어 이리 저리 돌리며 씻은 다음 제자리에 두고, 물과 찻잎 찌꺼기는 또 퇴수그릇에 담고, 그런 모습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나중에 인도에서 우리 반의 캐나다 스님과 다른 한국 스님과 함께 셋이서 한국 전통식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때, 찻잔을 씻고 정리하는 그런 순간이 차를 마시는 과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캐나다 스님이 나중에 다른 한국 스님보고 그게 도대체 왜 아름답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더란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나도 그게 왜 아름다운지는 모르겠다. 뭐, 본래가 아름다움이란 건 각자의 감상에 따른 것일 테니까.

언젠가 누가 ‘번뇌가 없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자체가 번뇌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번뇌가 없다면 아름다울 것도 추할 것도 없이 그저 모든 것이 밋밋해 보이겠지. 아니, 밋밋하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번뇌 있는 자만의 감상이겠구나.’

각화사에 온지 일주일쯤 지나 주지스님의 지시로 머리를 밀고 붉은 행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침마다 도감스님 방에서 초발심자경문도 배우기 시작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쓰기 위해 후원에서는 연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보살님, 공양주, 아이 엄마, 나, 이렇게 넷이서 하루 종일 연등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나는 연등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다. 본래부터 나는 단순작업을 좋아한다. 아마도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다른 걱정거리들도 그동안 접어둘 수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단순작업에 지루함 따위는 별로 느끼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렇게 예쁜 것을 만드는 일이라면.

연등을 만들면서 아이 엄마와 나는 급격히 친해졌다. 같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면서 아이 엄마는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마다 너무나도 재미있어 하는 것이었다. 아이 엄마가 워낙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어주니까 나는 신이 나서 꽤 많이 떠벌렸던 것 같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많이 늘어놓았는지 지금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는데, 워낙 내가 보통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할 희한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고, 또 한동안은 집에 폐인처럼 틀어박혀서 책을 그렇게 읽어 제꼈으니 할 이야기야 얼마든지 무궁무진했을 것이다.

처사는 공양주와 앙숙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공양주는 처사가 자기를 범하려고 한다면서 밤마다 후원 문을 앞뒤로 꼭꼭 닫아 놓았다. 어느 누가 자기처럼 험악하게 생긴 늙은 여자를 감히 범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자기 방문만 걸어 잠그면 되지, 왜 후원 문을 그렇게 닫아 놓는지 나는 불만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새벽 예불 전에 후원에서 물을 떠다 부처님께 청수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공양주가 깊이 잠이 들어서 한참을 불러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아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짜증이 난 나는 결국 그 문제를 가지고 공양주에게 따지고 들었다. 노보살님의 추측으로는 처사가 밤마다 후원에서 밤참을 해먹는 것이 아니꼬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하지만, 하여튼 공양주로부터 납득이 될 만한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고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자 나는 자리를 뜨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였다.

“내일도 문 잠겨 있으면 가만 안 있습니다.”

그러자 공양주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하이고, 참 내, 내가 그런다고 자기 말 들을 줄 아는 갑네.”

공양주는 귀가 많이 어두웠다. 반면에 본인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몹시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공양주가 귀가 먹어서 자기 목소리가 들리도록 말하다 보니 그렇게 크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 때문에 귀가 먹은 것인지, 장난스럽게 논쟁을 하기도 하였다. 공양주는 어떻게 보면 만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좀 코믹스러운 데가 있다. 야쿠르트를 마실 때는 반드시 다섯 개를 한 사발에 부어서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마치 ‘내가 가오가 있지, 어떻게 이런 쪼매난 걸 입에 대고 홀짝홀짝 마실 수가 있겠나.’ 하는 것 같다. 또 밥을 하고 나면 갓 뚜껑을 연 압력밥솥의 그 뜨거운 밥을 멀쩡한 주걱 옆에 놔두고서 꼭 맨손으로 만지곤 한다. 마치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보여주려는 듯이.

공양주는 모든 것을 언제나 자기 뜻대로만 하려 했고, 누가 뭔가를 자기 마음에 안 들게 하면 꼭 버럭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하루는 내가 지대방을 청소하고 있는 중에 공양주가 “행자니임!” 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뒤쪽 장독대에서 뭔가를 하다가 혼자서는 하기 힘들어 도와달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때 무슨 일로 공양주에게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불러도 무시하고 계속 청소만 하고 있었다. 공양주는 절이 다 떠나가도록 “행자니임! 행자니임!” 하고 계속 불러댔다. 나는 몇 번 부르다 대답이 없으면 그냥 포기할 줄 알았는데 맙소사, 스무 번이고 서른 번이고 끝도 없이 불러댄다. 그 무서운 집념. 정말 놀라 버렸다.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나로서는 삐져 있던 터에 도저히 도와주러 가기는 싫고, 그냥 있으면 온 절의 스님들이 다 귀가 따가울 것 같아 내가 일단 좀 도망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뒷산으로 올라갔다. 산을 올라가는 내 뒤통수로 “서로 고생하는 처지에 힘든 일 있으면 서로 좀 돕고 그래야지, 사람이” 어쩌고 하면서 불평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공양주가 겉으로는 사나워도 속으로는 악의가 별로 없는 사람인 것 같긴 했다. 이제 와서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막상 옆에 가까이서 같이 지내기는 절대로 힘든 사람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코미디’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언제나 참 기가 막힌 명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치르고 나자 절이 좀 한가해졌다. 아이 엄마와 나는 한가한 시간을 틈타 북암에도 같이 놀러 가고, 동암에도, 서암에도 같이 놀러가곤 했다. 남암에는 노스님이 사람들이 못 오게 길을 막아두고 용맹정진을 하고 계셔서 아무도 올라가지 못하고 나만 간혹 심부름을 하러 들르곤 하였다. 나를 보시면 남암의 노스님은 “조금만 고생하면 나중에 편안해진다.” 하시며,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고 견디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곤 하셨다. 각화사 주변 암자에 놀러 가면 암자 스님이 끓여주는 차를 마시며 문답이 이루어지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아이 엄마는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듣곤 하였다. 하루는 암자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아이 엄마가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대견해 한다.

“아까 행자님과 스님께서 문답하시는 내용이 전부 다 이해가 되는 거여요. 얼마나 신기하던지 참.......”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엄마의 남편이 절에 찾아왔다. 아이 엄마와 나의 방은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기 때문에 옆방에서 하는 소리가 전부 또렷이 들려왔다. 그 남자는 집에 돌아가자고 계속 조르고, 아이 엄마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가 화를 내며 아이 엄마를 벽에 쿵쿵 소리 나게 밀어 붙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응?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아?”

‘저 지랄을 하면서 무슨 사랑을 한다고.......’

남자가 폭력을 쓰기 시작하자 나는 걱정이 돼서 방을 나왔다. 그 쪽 방문을 노크도 없이 열어젖히고 남자에게 말했다.

“말로 하시지 왜 그래요? 그리고 지금 스님들 다 주무실 시간인데, 소리가 너무 커요.”

그는 짜증스런 얼굴로 알았으니 그만 가달라고 한다. 방으로 돌아오자 다시 옆방에서 승강이가 시작되었다. 또 다시 남자는 거칠어졌고, 그러다 아이 엄마가 이렇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거길 어떻게 가! 내 새끼 내가 죽인 곳엘 어떻게 가냐고!”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좀 충격을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부 싸움을 하다 남편이 밀어붙여서 뒤에 누워 있던 갓난아기가 그만 밟혀 죽었다는 사연이었다.

아이 엄마는 남편의 강요에 못 이겨 다음날 절을 떠났다. 내가 동암에 심부름을 갔다 내려오는데 각화사 앞마당에서 차가 한 대 막 떠나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차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멀리서 뚫어지게 바라봐도 차창 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을 알았을까, 뒤쪽 창이 스르륵 내리며 얼굴을 내민 건 바로 아이 엄마였다.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로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가슴에는 구멍이 하나 크게 뻥 뚫렸다. 그리고 그 구멍 사이로 찬바람이 휑휑 거리며 마구 지나다녔고, 나는 동상처럼 굳어져서 그저 떠나가는 차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힘든 시기에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 대한 집착이 생겼었던 모양이다. 상심이 제법 컸던 걸로 기억된다.

각화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사건은 그 일이 있은 얼마쯤 후에 일어났다. 도감스님으로부터 초발심자경문을 강의 받던 도중 문답이 오갔는데, 그러다 그만 논쟁이 돼 버렸다. 도감스님은 몹시 화가 나셨고, 그 뒤로 강의도 중단되고 완전히 관계가 불편해졌다. 가뜩이나 공양주한테 신물이 나 있던 터에 도감스님과도 관계가 그렇게 되자 더 이상 지내기가 불편했다.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내려온 나는 전날 꾸려둔 가방을 짊어지고 아무도 모르게 산을 내려왔다. 짐이라고 해봤자 옷가지 몇 벌과 책 몇 권, 세면도구가 전부였다. 행자복은 행자실에 벗어 고이 접어 두고 처음 입고 왔던 일반 옷으로 갈아입었다. 깜깜한 새벽에 차도 안 다니고 인가도 없는 황량한 도로 한쪽 옆을 걷고 또 걸었다.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가진 것도, 돌아갈 곳도, 희망도, 아무 것도 없었다. 분명 두려움과 불안 속에 있었을 테지만, 언제나 친구처럼 곁을 지키는 죽음이 있어서 두렵지 않다고 혼자 생각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아무 때나 죽으면 그만이지, 뭐가 걱정이야. 세상에 안 죽는 놈 있나?’

내가 걷고 있던 그 길은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이었다.

 

중략...

 

욕망은 괴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한다. 욕망이 시키는 대로 하면 내가 행복을 얻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다. 왜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이 믿음이 과연 올바른지 한 번 살펴보자.

우리는 어떤 경험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면 그 경험을 또 다시 하고 싶어 한다. 행복을 좋아하고 계속 느끼고 싶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했을 때 행복했으니까 자꾸 또 그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욕망이 힘을 얻는다. 나의 욕망이 나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욕망을 따라서 또다시 그 경험을 하고 또다시 행복을 느낀다. 이렇게 또다시 욕망은 힘을 얻는다. ‘욕망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내가 행복해지더라.’ 하는 무의식적인 믿음이 생겨나게 되고, 이러한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그 믿음은 자꾸 더 강화되어 간다. 욕망에 대한 나의 지지도가 이러한 반복되는 경험들과 함께 갈수록 높아져 가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속임수가 있다. 사실 알고 보면 욕망이 성취되어서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던 어떤 욕망이 해소되어서 행복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행복이란 욕망의 성취가 아니라 욕망의 해소에서 왔을 뿐이다. 욕망은 불만족이고 불만족은 괴롭다. 그러므로 욕망도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그 괴로움이 해소될 때 해소되는 괴로움만큼 그것이 행복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욕망을 없애면 되는 것이지, 욕망의 그 대상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 자신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야, 난 이대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어. 저것을 반드시 가져야지만 난 행복할 거야.”라고 집착을 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망이 정말로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이해하여 그 이해를 반복적인 사유와 명상을 통해서 마음에 물들여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만약 욕망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이라면 우리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 줬다고 생각되는 그 욕망을 계속 따르기만 하면 우리는 계속 행복해야만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처음엔 좋아서 하던 것도 자꾸 반복하다 보면 나중엔 반드시 싫증이 나거나 오히려 괴로워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욕망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채려는 찰나 욕망은 우리를 또 한 번 속인다. 욕망의 대상을 바꾸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초코파이를 먹다가 질리면 이제 단팥빵을 욕망한다. 그러면 또 한동안 우리는 단팥빵을 즐길 수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내가 속았다면 초코파이에게 속은 것이지, 욕망은 나를 속이지 않았다고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또 ‘단팥빵에 대한 욕망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행복하더라.’라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욕망은 그 대상을 바꿔가면서 무한히 우리를 속인다.

그런데 욕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지 않은 것을 경험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지금 이대로는 안 돼. 나는 지금 이 상태로는 만족스럽지 않아.”라는 것이다. “난 지금 이대로는 행복할 수 없어. 저것을 가져야지만 비로소 나는 행복할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욕망은 그 본질상 행복 파괴자다.

욕망이 크면 클수록 행복하기는 어렵다. 욕망이 아주 클 때는 그 자체로도 아주 괴롭다. 각자 자신의 경험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욕망이라는 놈은 말을 들어주면 들어줄수록 자꾸 더 커지기만 할 뿐 결코 줄어드는 법이 없다.

흔히 부자들이 욕심 부리는 것을 보면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저 정도 갖고 있으면 됐지, 뭐 하러 저렇게 욕심을 부리지? 나 같으면 저 사람 가진 십분의 일만 있어도 만족하겠다.”

또 이런 생각도 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예쁜 부인이 있는데 도대체 왜 바람을 피우지? 나한테 저런 부인이 있으면 매일같이 예뻐해 줄 텐데.”

과연 그럴까?

웬만큼 나이든 사람이라면 이런 말들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를 갖고 나면 두 개를 갖고 싶고, 두 개를 갖고 나면 이제 세 개를 갖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욕망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욕망이 시키는 대로 살면 만족할 날은 영원히 올 수가 없는 것이다.

욕망은 행복을 미래로, 미래로 계속 밀쳐놓기만 한다. 어떤 것을 갖게 될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행복을 자꾸 밀쳐놓는다. 그러나 그 미래의 행복이란 언제나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하더라도 욕망은 언제나 “아직 안 돼. 더 가져야 돼.”, “아직 멀었어. 저것도 가져야지.”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욕망은 우리들에게서 끊임없이 행복을 앗아간다.

또 욕망을 많이 성취하면 성취할수록 그 사람은 갈수록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 간다.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어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많이 이뤄질수록 기대치나 요구도 따라서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들과, 또 세상과 지속적으로 부대껴 댄다.

아무리 돈이 많고 으리으리한 건물을 몇 채 소유하고 비싼 차를 몰고 다니고 높은 지위에서 큰 소리 치고 떵떵거리며 살아도 그 사람 마음이 불행하다면 다 소용이 없는 거다. 돈 벌고 뭐 하고 한 게 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한 짓이지 불행해지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행복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돈을 원한 것도 행복해지고 싶어서였고, 지위를 원한 것도, 연애를 원한 것도, 그 무엇을 원한 것도 다 행복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지점에서 혼동을 한다.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자들을 한 번 보자. 술 마시면 자기가 불행해진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술을 선택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술이야, 행복이야?” 하고 물으면 “술도 원하고 행복도 원해.” 하고 대답할 것이다. “술을 선택하면 행복을 버려야 되고, 행복을 선택하면 술을 버려야 되잖아. 둘 중에 하나밖에 선택을 못한단 말이다. 그러니까 뭘 선택할래?” 하고 추궁하면 어떻게 할까? 그래도 여전히 술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비웃을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들 대부분이 마음속에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욕망들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분명히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그 욕망들을 포기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욕망은 이와 같이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착각하도록 만든다. 욕망을 위해서 오히려 행복을 희생하도록 만들고, 행복을 희생해가면서 부질없는 어떤 것을 계속 추구하게 만든다.

어떤 것을 계속 하면 처음엔 행복했다가도 나중엔 그것이 반복되면 이제 고통으로 돌아선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고서 우리는 계속 그 짓을 한다. 왜냐하면 중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독이 돼서 끊을 수가 없다. 괴로움이 너무 커져서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못하고 ‘이것이 나를 해치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 끊어야겠다.’ 하고 생각을 하더라도 이제는 끊기가 몹시 힘들다.

중독을 하나 끊으려면 보통 고생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의 삶이 그토록 괴로워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중독됐던 모든 것들로부터 헤어 나오는 길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참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독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아, 내가 이 길을 참으로 잘 선택했구나.’ 하는 걸 느낄 수가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독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 평안해질 것이 틀림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아직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빨리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궁극의 평안에 머무를 수 있기를 나는 기원한다.



출처: http://lhagpa.tistory.com/156 [흘락빠 라이브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