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있는 친구 좋아해요. (스압)

익명2017.09.03
조회248

어디 말할 수가 없어서 앓고 앓다 결국에는 여기 올려버리고 마네요. 




저번학기 동아리에 신입으로 들어온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저는 그때당시 동아리 부회장이었구요. 저도 나름 고학번이라 학교에 남아있는 이성 친구는 거의 없는데(원래 없었지만) 그 친구가 저와 학번, 나이가 같은걸 확인하고는 더 반가웠어요. 오랜만에 새로 사귄 동갑 이성친구였고, 작고 귀여운 아이였기에 관심이 갔죠. 물론 막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말그대로 관심이 조금 가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강정정원까지 내가면서 겨우 듣게된 교양과목에 그 친구가 앉아있더라구요. 반가웠어요. 그래도 그때는 거의 처음 본 사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가볍게 인사만 하는 정도였어요. 같은 동아리고 둘 다 독강인지라 옆자리에 같이 앉는 정도였죠.
같이 듣게 된 교양과목은 이론 수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몸을 사용하는, 과목 이름에 "무술"이 들어가는 그런 수업이었어요. 비주류 수업이었고 배워갈 건 딱히 없을 것 같았지만, 학점은 잘 줄 것 같아서 신청한 수업이었죠. 아무튼 그런 수업이었던 덕에 그 친구와 어색한 것도 금방 없어지고 꽤 빨리 친해졌던 것 같아요. 서로 "우리 왜 이런 수업 듣고 있지? ㅋㅋㅋㅋ 아 쪽팔려ㅠㅠ" 하면서.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활동까지 2시간 좀 넘게 남더라구요. 5시에 끝나는 수업이었는데 수업이 끝나면 항상 같이 저녁을 먹고, 카페를 가든 동아리방을 가든 같이 있다가 동아리 활동을 하곤 했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중간고사 기간이 돌아왔어요.
도서관 2층, 다른 층 다른 자리에 비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제 아지트 같은 공간이 있었어요. 근데 또 신기하게 그 친구도 거길 알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험기간에도 같이 공부하고 밥먹고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사실 이때는 제가 좀 쫓아다닌 게 맞아요. 그 친구가 도서관 갈 때 같이 가고, 밥 먹을 때 같이 먹고, 쉴 때 같이 쉬고, 집 갈 때 같이 가고. 아마 시험기간이 행복했던 때는 그 때가 유일했을 것 같아요.
그 친구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요.
그때까지 겨우 수업만 같이 듣고 밥만 같이 먹고 한 건 아니었어요. 매일 새벽 2시, 3시가 넘어가도록 서로 카톡으로 한참 떠들다가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서 전화로 깨워주고 그랬으니까요. 밤에는 잘 자라고 너 먼저 자면 나도 자겠다고, 아침에는 룸메들 자고 있으니까 나가서 받겠다며 "잠깐만" 하고 아직 잠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랬으니까 저도 그렇게 그 친구가 좋아지게 된거죠.
근데 아무리 그렇게 좋아졌다 해도 시험기간이니까, 괜히 잘못 말했다가 서로 불편해지고 다른 생각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 중간고사만 끝나고 말하려고 했어요. 좋아하게 됐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서관에서 그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늦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언제 오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갑자기 알게 됐어요. 어제 남자친구랑 싸워서 우울하다고 했어요. 처음엔 무슨 장난인 줄 알았어요. 남자친구가 있는 줄 전혀 생각도 못 했었거든요. 근데 남자친구가 있었대요. 그땐 그 아이가 우울하고 그런 건 신경쓸 겨를이 없었어요. 내 한 몸 추스리기도 바빴거든요. 너무 비참하고 억울하고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 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수가 없었어요. 혼자서도 겨우 참고 있는데 그 아이와 마주치면 바로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도망치듯 도서관을 나왔어요.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그렇게 도망치듯 나오면서 아무렇지도 않은척 카톡을 보냈어요. 미안한데 비도 오고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해야할 것 같다고, 먼저 간다고.
근데 사실 그날 오후에 다시 돌아가서 평소를 연기했어요. 오히려 좀 더 들떠있던 것 같기도 해요. 일종의 반발감이었던 것 같네요. 다시 친구 역할로 돌아와서 옆에서 기다리기로 한건데,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더 좋아하는 티를 내면서 들러붙게 됐어요. 자기합리화까지다 끝내버렸으니 쉬울 줄 알았어요. 이미 좋아져버린 거 무를 수도 없고 그냥 계속 하자고, 어차피 계속 봐야할 사인데 평소처럼 그렇게 하자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그렇게 반년 정도를 더 지냈어요. 쉽긴 개뿔 더 더 힘들어지더라구요. 한 발 더 가고 싶고, 조금 더 보고 싶은데 길이 막혀있으니 더 가까이 가지도 못 하잖아요. 바라는 건 계속 많아지는데 내 위치를 지켜야 하니까 친구 이상으로 갈 수가 없으니까. 차라리 그냥 다 접고 진짜 친구 사이로 지내볼까 싶기도 했는데, 친구랍시고 옆에 있어도 볼 때마다 더 좋아지는건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근데 그렇게 지내다보니까 점점 분명해지는 거예요. 그 아이가 그어 놓은 선이 조금씩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저한테는 그 아이가 당연히 최우선이었고 점점 더 중요해져갔는데 그 아이한테는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게, 최우선은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냥 평범한 친구가 되어가는 게 느껴졌어요.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이 나를 평범하게 대한다는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정 한 번 부릴 수 없다는 게 너무 비참하더라구요. 왜냐면 전 떳떳하지 못 한 자리에 서있으니까요. 투정부릴 자격이 없으니까요. 그냥 평범한 친구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그냥 연락도 하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말고 친구 그런것도 하지 말자고. 그렇게 점점 타인이 되어 지내다보면 좋아하는 마음도 사그라들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이건 제 의지가 너무 부족해서 안 되겠더라구요. 몇 번이나 혼자 떠나간답시고 연락도 안 하고 해봤는데 항상 실패였어요.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버려진 강아지마냥 다시 쫄래 쫄래 돌아가곤 했거든요. 그럼 또 그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줬구요.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았겠죠. 저한테는 세상 다 잃어버린 것같은 며칠이었지만 그 아이한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냥 평범한 날들이었을테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핑계를 대자면, 어차피 9월에 개강하고 나면 학교에서든 동아리에서든 마주칠 게 뻔한데, 그렇게 마주쳐서 마주보고 인사하고 하면 다시 또 생각하는 걸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결국엔 최악의 방법까지 생각해냈어요. 남자친구고 뭐고 신경 안 쓰고 그냥 말해버리기로. 가뜩이나 요새는 점점 저를 밀어내는 듯한 모습이라 말하고 까이기 딱 좋은 때인 것 같거든요. 차라리 그냥 다 말해버리고 어색한 사이가 돼서 억지로라도 멀어져 버리려구요. 그렇게 되면 제 의지가 어떻든 동아리가 어찌됐든 상관없이 멀어질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한참 멀어지다보면 감정도 점점 옅어지겠죠. 책임을 다 그 아이에게 넘겨버리는 쓰레기 같은 짓이긴 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에요. 아직까진 차마 그렇게 못 했지만 조만간 둘이 술이라도 한 번 마시는 날엔 다 말해버릴 것 같아요.
저도 좀 살려구요. 요새는 하루종일 이런 생각들만 하면서 살고 있었어요. 그렇게 혼자 청승맞게 질질 짜다가도 어느새 그 아이와 연락하면서 실실거리고 있고. 또다시 이런 밑바닥같은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샌가 미소짓고 있고. 무슨 조울증이라도 걸린 것 같더라니까요.심지어 최근들어서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만 하다보니 집착까지 생긴 것 같아요. 내가 뭐라고, 겨우 친구 나부랭이인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살짝 옆에 서서 보면 웃기기까지 해요. 아무튼 나도 좀 살고싶어요. 하루종일 그 사람 생각만 하고, 그 사람 연락만 기다리는 집착 쩌는 스토커 같은 삶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요.
오늘도 아마 주말이라고 남자친구 만나고 왔을 거예요. 일부러 상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그냥 그렇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요. 아무것도 못 하는게
차라리 그 다섯 달 전에,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모르고 고백해서 차였다면, "미안한데, 나 남자친구 있어"라고 그 한마디만 들었다면 지금 이렇게 힘들진 않았겠죠.



아무튼 전 어떡해야 할까요.
이런 거 혼자 결정 못 하는 것도 웃기지만, 어디 말 할 데도 없어서 여기에라도 하소연하고 갑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냥 남자친구 있는 여자한테 찝적대는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쓰다보니 길어져서 요약>
동아리에 신입으로 들어온 동갑인 아이가 좋아져서 고백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때, 시기부적절하게 그 아이를 통해 직접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남자친구가 있다는 건 알게 됐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버려서 접히지도 않고, 고백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어요.
1. 그냥 친구로 지내기엔 내가 너무 아프고 비참하고, 게다가 옆에 있으면 마음이 접힐 것 같지도 않고2. 친구인척도 안 하고 연락 끊고 살기엔 내 의지가 약해서 다시 돌아갈 게 뻔하고, 또 동아리가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3. 좋아한다고 말해버리고 억지로라도 멀어지기에는 그 친구를 너무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고, 내가 너무 쓰레기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3번같은 추한 짓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인데 누가 좀 막아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