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원어사전
신랑 bridegroom.
numfivo"(3566, 뉨피오스)
1. 일반 헬라어의 용법
뉨피오스는 뉨프헤(nuvmfh, 3565: 신부)에서 유래했으며, '신랑, 약혼자, 젊은 남편'을 의미한다.
청년은 열 다섯 살에, 처녀는 열 두 살에 결혼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도 배우자 선택에 부분적인 역할을 했겠지만 양가 가족 사이에 맺어진 협약이 절대 필요한 것이었다.
종말을 묘사하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들에서 우리는 교회-신부가 천국의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천국의 신랑은 하나님의 어린양(Lamb)이란 명칭으로 불리어진다(계 19:7계 19:9).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의 주로 맞이하기 위해 기뻐하며 스스로 단장한다(계 21:2 계 21:9 이하). 교회는 천국의 예루살렘, 즉 종말론적 교회로서 신부와 같은 기다림으로 그녀의 존재의 궁극적인 성취를 기대하며, "주 예수여 오시 옵소서"라고 외친다(계 22:17 계 22:20).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는 신부와 신랑의 비교가 신약성경에서는 교회와 예수님께 적용된다.
포도주 wine.
oi+no"(3631, 오이노스)
예언 속에서 심판은 포도 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악한 자는 어쩔 수 없이 잔을 다 마시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바로 설 수 없게 될 것이다(시 60[59]:3; 시 75[74]:8). 심판의 광경은 포도 수확(욜 3:13)과 포도 밟기(사 63:2-6)에 비유하여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포도주가 풍성한 것은 축복의 징표이다(창 27:28 욜 2:24 욜 3:18 암 9:13 슥 10:7).
(f) 수난 기사 중에서 막 15:23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몰약이 섞인 포도주를 받으셨다고 기록한다(마 27:34은 이것을 시68:22을 암시하여 "쓸개 탄"으로 기록함). 이것은 예수님을 마취시킬 수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그것을 거부하셨다.
Rab Chisda가 이르기를 "십자가에 못박히러 나가시기 전 그에게서 의식을 빼앗기 위해 포도주가 섞인 약간의 유향이 그에게 제공되었다." 예수께서 이 음료를 거부하심은 십자가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눅 10:34에서 포도주는 치료의 수단이다.
# 오늘은 신앙의 참된 열심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유대인의 금식 생활에 대해 주님은 언급하십니다. 금식은 일년에 한번 정도 절기에 행해지는 행사였으나 바리새인은 더 열심을 내어 일주에 두 번씩을 해 버립니다. 그러나 모든 신앙의 열심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말씀안에서의 금식은 참신앙이나 자기 열심은 왜곡된 종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뜻하고는 상관없는 조작된 열심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귀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차고 넘치도록 축복하신다 하였기에 정한 십일조는 자기 가정에 더욱 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도 그 이상의 십일조는 하지 말라 하십니다. 십일조도 자신의 쓸것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 정한 금액인데도 더 많이 헌금하여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은 오히려 악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의 십일조도 귀합니다. 하루 첫 시작을 예배와 말씀묵상으로 드리는거 그 날을 더 형통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기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를 벗어난 경우 무거운 짐이 되어 믿음을 꺼리게 하고 남에게 필요없는 짐을 지우는 자기열심이 되어 질 수 있습니다.
금식은 정욕을 억제하고 맘을 맑게하는 좋은 것입니다. 군대에서 모든 끼니 금식을 다 합하면 40일 정도는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군종전도사의 일을 감당하였는데 금식은 원만한 신앙생활에 참 도움이 된 기억이 납니다. 이런 기회에 더 겸손하고 죄를 회개하는 집중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열심은 하체의 영구마비 증상을 일으키거나 소화기관을 망가 트릴 수 있습니다. 또 신경이 예민하여 별일 아닌 일에 분노하여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늘 주님 안에 신령한 금식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겠습니다.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눈으로는 뵈옵지 못하여 떨어져 있기에 금식의 때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날을 고대하며 금식하고 절제하고 소망하는 것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보내신 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예수님의 약속처럼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셔 지켜보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고 부활하시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우울하고 슬퍼하고 있는 모습은 어쩌면 크리스찬의 모습과는 안 어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움 믿을 때는 금식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때 처움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엄청난 분열 현상을 느끼었습니다. 수련회에 청년회가 떠나는데 다른 청년들은 기뻐서 좋아하고 있는데 나는 금식한 후라 신경이 매우 예민하고 위도 안 좋아 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남이 하는 별일 아닌 일에 짜증내고 속이 안 좋다고 도망하다시피 그 출발하려는 모임을 떠나 버린 적이 있습니다. 내 맘도 안 좋고 청년회도 수련회 가서 얼굴이 경직되고 맘이 모두 상해 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처럼 헌부대와 새 포도주가 만나 찢어 버리는 경우와 같습니다. 나의 초상집 스타일과 청년회의 잔치집 스타일이 만나 사고를 친 경우입니다.
나의 열심은 신앙적인지 알고 행했으나 결국 모든 이에게 덕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조작된 종교적인 자기 열심이었던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금식이 안 좋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자주해 지나치던 시절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금식의 기준을 어느 정도 해야 한다 정할 수는 없습니다. 금식의 유무와 횟수는 오직 하나님과 여러분 자신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은밀한 가운데 여러분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 좋으리라 봅니다.
오늘 본문에는 새 생베조각과 낡은 옷과 안 어울리고 새 포도주가 낡은 부대와 어울리지 못하여 찢어지거나 터진다고 합니다. 유연성이 좋은 낡은 생베조각이 낡은 유연성 좋은 옷과 잘 어울려 유지가 될 테이고 화학적 원리에 의해 새 포주는 팽창이 시작하기에 이미 팽창이 끝난 오래된 숙성된 포도주가 낡은 부대에 잘 어울려 터지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녀간의 결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와 안믿는 자는 어울리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작은 예로 십일조부터 견해가 달라 싸웁니다. 믿는 자는 내야 축복을 얻는 다 하고 안 믿는 자는 쓸데없다 합니다.
내가 잘해서 배우자를 변화 시키려는 것이 옳고 의로와 보여도 끝내 변화되지 않으면 같이 다툼의 인생이 되다 같이 망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열심, 그것이 의로와 보여도 같이 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상대를 변화 시키는 경우도 많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적인거 같으나 자기기만의 열심은 자신과 타인을 병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과 개인의 은밀한 응답 사이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개인에 따라 올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다 잊게 하시고 새 일을 행하시고 새 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좋은 길이 있고 가장 탁월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선택을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시온의 대로를 열어 평탄하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며 가장 옳은 길로 우리 함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모든 쓸 것을 채우시고 공급하시고 필히 시온의 대로로 여러분을 영생천국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나의 신앙과 하나님의 신앙 그 뜻을 온전히 맞추어 열심을 내어 나아가는 것이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뜻이 내안에 거하도록 말씀과 기도 속에 온전히 호홉할 수 있도록 믿으며 전진하는 또 귀한 한주와 매일이 되시도록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동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같이 이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 가요 예수님의 발 자취를 따라 한걸음 한걸음 우리가 실족하지 않고 걸어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평안과 형통의 길을 가게 하여 주옵소서 가장 주의 해야 할 것을 내 노력으로 모든 선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 모든 선이 하나님 안에서 이뤄지므로 그것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호홉을 맞추어 나아가므로 성령의 선한 열매만을 맺으며 나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내 노력으로 오히려 악에 미혹되고 빠지지 않케 도와 주시옵소서 천국을 향한 대로로 늘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열심
마가복음 2: 18 ~ 22
[하나님안에서의 참된 열심]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원어사전
신랑 bridegroom.
numfivo"(3566, 뉨피오스)
1. 일반 헬라어의 용법
뉨피오스는 뉨프헤(nuvmfh, 3565: 신부)에서 유래했으며, '신랑, 약혼자, 젊은 남편'을 의미한다.
청년은 열 다섯 살에, 처녀는 열 두 살에 결혼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도 배우자 선택에 부분적인 역할을 했겠지만 양가 가족 사이에 맺어진 협약이 절대 필요한 것이었다.
종말을 묘사하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들에서 우리는 교회-신부가 천국의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천국의 신랑은 하나님의 어린양(Lamb)이란 명칭으로 불리어진다(계 19:7계 19:9).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의 주로 맞이하기 위해 기뻐하며 스스로 단장한다(계 21:2 계 21:9 이하). 교회는 천국의 예루살렘, 즉 종말론적 교회로서 신부와 같은 기다림으로 그녀의 존재의 궁극적인 성취를 기대하며, "주 예수여 오시 옵소서"라고 외친다(계 22:17 계 22:20).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는 신부와 신랑의 비교가 신약성경에서는 교회와 예수님께 적용된다.
포도주 wine.
oi+no"(3631, 오이노스)
예언 속에서 심판은 포도 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악한 자는 어쩔 수 없이 잔을 다 마시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바로 설 수 없게 될 것이다(시 60[59]:3; 시 75[74]:8). 심판의 광경은 포도 수확(욜 3:13)과 포도 밟기(사 63:2-6)에 비유하여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포도주가 풍성한 것은 축복의 징표이다(창 27:28 욜 2:24 욜 3:18 암 9:13 슥 10:7).
(f) 수난 기사 중에서 막 15:23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몰약이 섞인 포도주를 받으셨다고 기록한다(마 27:34은 이것을 시68:22을 암시하여 "쓸개 탄"으로 기록함). 이것은 예수님을 마취시킬 수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그것을 거부하셨다.
Rab Chisda가 이르기를 "십자가에 못박히러 나가시기 전 그에게서 의식을 빼앗기 위해 포도주가 섞인 약간의 유향이 그에게 제공되었다." 예수께서 이 음료를 거부하심은 십자가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눅 10:34에서 포도주는 치료의 수단이다.
# 오늘은 신앙의 참된 열심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유대인의 금식 생활에 대해 주님은 언급하십니다. 금식은 일년에 한번 정도 절기에 행해지는 행사였으나 바리새인은 더 열심을 내어 일주에 두 번씩을 해 버립니다. 그러나 모든 신앙의 열심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말씀안에서의 금식은 참신앙이나 자기 열심은 왜곡된 종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뜻하고는 상관없는 조작된 열심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귀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차고 넘치도록 축복하신다 하였기에 정한 십일조는 자기 가정에 더욱 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도 그 이상의 십일조는 하지 말라 하십니다. 십일조도 자신의 쓸것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 정한 금액인데도 더 많이 헌금하여 자신과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은 오히려 악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의 십일조도 귀합니다. 하루 첫 시작을 예배와 말씀묵상으로 드리는거 그 날을 더 형통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기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를 벗어난 경우 무거운 짐이 되어 믿음을 꺼리게 하고 남에게 필요없는 짐을 지우는 자기열심이 되어 질 수 있습니다.
금식은 정욕을 억제하고 맘을 맑게하는 좋은 것입니다. 군대에서 모든 끼니 금식을 다 합하면 40일 정도는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군종전도사의 일을 감당하였는데 금식은 원만한 신앙생활에 참 도움이 된 기억이 납니다. 이런 기회에 더 겸손하고 죄를 회개하는 집중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열심은 하체의 영구마비 증상을 일으키거나 소화기관을 망가 트릴 수 있습니다. 또 신경이 예민하여 별일 아닌 일에 분노하여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늘 주님 안에 신령한 금식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겠습니다.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눈으로는 뵈옵지 못하여 떨어져 있기에 금식의 때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날을 고대하며 금식하고 절제하고 소망하는 것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보내신 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예수님의 약속처럼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셔 지켜보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고 부활하시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우울하고 슬퍼하고 있는 모습은 어쩌면 크리스찬의 모습과는 안 어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움 믿을 때는 금식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때 처움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엄청난 분열 현상을 느끼었습니다. 수련회에 청년회가 떠나는데 다른 청년들은 기뻐서 좋아하고 있는데 나는 금식한 후라 신경이 매우 예민하고 위도 안 좋아 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남이 하는 별일 아닌 일에 짜증내고 속이 안 좋다고 도망하다시피 그 출발하려는 모임을 떠나 버린 적이 있습니다. 내 맘도 안 좋고 청년회도 수련회 가서 얼굴이 경직되고 맘이 모두 상해 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처럼 헌부대와 새 포도주가 만나 찢어 버리는 경우와 같습니다. 나의 초상집 스타일과 청년회의 잔치집 스타일이 만나 사고를 친 경우입니다.
나의 열심은 신앙적인지 알고 행했으나 결국 모든 이에게 덕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조작된 종교적인 자기 열심이었던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금식이 안 좋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자주해 지나치던 시절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금식의 기준을 어느 정도 해야 한다 정할 수는 없습니다. 금식의 유무와 횟수는 오직 하나님과 여러분 자신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은밀한 가운데 여러분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 좋으리라 봅니다.
오늘 본문에는 새 생베조각과 낡은 옷과 안 어울리고 새 포도주가 낡은 부대와 어울리지 못하여 찢어지거나 터진다고 합니다. 유연성이 좋은 낡은 생베조각이 낡은 유연성 좋은 옷과 잘 어울려 유지가 될 테이고 화학적 원리에 의해 새 포주는 팽창이 시작하기에 이미 팽창이 끝난 오래된 숙성된 포도주가 낡은 부대에 잘 어울려 터지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녀간의 결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와 안믿는 자는 어울리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작은 예로 십일조부터 견해가 달라 싸웁니다. 믿는 자는 내야 축복을 얻는 다 하고 안 믿는 자는 쓸데없다 합니다.
내가 잘해서 배우자를 변화 시키려는 것이 옳고 의로와 보여도 끝내 변화되지 않으면 같이 다툼의 인생이 되다 같이 망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열심, 그것이 의로와 보여도 같이 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상대를 변화 시키는 경우도 많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적인거 같으나 자기기만의 열심은 자신과 타인을 병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과 개인의 은밀한 응답 사이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개인에 따라 올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다 잊게 하시고 새 일을 행하시고 새 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좋은 길이 있고 가장 탁월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선택을 저주하지 않으십니다. 시온의 대로를 열어 평탄하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며 가장 옳은 길로 우리 함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모든 쓸 것을 채우시고 공급하시고 필히 시온의 대로로 여러분을 영생천국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나의 신앙과 하나님의 신앙 그 뜻을 온전히 맞추어 열심을 내어 나아가는 것이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뜻이 내안에 거하도록 말씀과 기도 속에 온전히 호홉할 수 있도록 믿으며 전진하는 또 귀한 한주와 매일이 되시도록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동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같이 이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 가요 예수님의 발 자취를 따라 한걸음 한걸음 우리가 실족하지 않고 걸어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평안과 형통의 길을 가게 하여 주옵소서 가장 주의 해야 할 것을 내 노력으로 모든 선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 모든 선이 하나님 안에서 이뤄지므로 그것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호홉을 맞추어 나아가므로 성령의 선한 열매만을 맺으며 나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내 노력으로 오히려 악에 미혹되고 빠지지 않케 도와 주시옵소서 천국을 향한 대로로 늘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