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니 음슴체로 쓰겟음 우리집은 내가 어렸을때 정말 뼈저리게 가난했음. 아빠가 계시던 회사가 가루로 되고 그 다음에 차근차근 망해서 지하방에서 무료급식 한끼 받은걸로 점심 저녁을 해결했던 시절도 있었음. 나 초등학교다닐때는 학교가기 전날 옷에 토했는데 집에 입을 옷이 없었어서(엄마가 일주일에 3번정도만 집에 왔었음. 나는 동생이랑만 지내고. 아빠는 돈버시느라 집에 못들어오셨고) 학교에 그냥 그대로 입고갔는데 반 애들이 그걸 보고 엄청 놀렸던 기억도 있음. 그때 담임선생님이 옷을 빨아주셨었는데 정말 아직도 감사함을 잊지 못하고있음. 물론 지금 우리집은 내가 내 짧은 23년 인생동안 가장 잘 살고있음. 아버지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작게 특허낸게 흥하고 그걸 자본으로 시작한 사업이 조카 흥해서 정말 남 부럽지 않게 살고있음. 돈자랑 하려고 쓴건 아니니 걱정 ㄴㄴ 나는 외할머니는 안계시고 친할머니는 계심. 외할머니는 엄마가 내 동생을 임신하시고 계셨을때 뇌졸증으로 돌아가셨음. 친가쪽 사람들은 엄마랑 정말 친하심.그 집안 가계도가 (할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심.) 친할머니 - 큰고모 둘째고모 셋째고모 아빠 작은고모 막내고모(작은고모와 막내고모는 쌍둥이라 원래 두분 다 작은고모라고 부르지만 일단 편의상 막내고모라고 씀) 이렇게 됨. 모두 1살텀 뭔가 가계도는 어와둥둥 내 아들 이럴것 같지만 당시 할아버지의 현대 사회적인 아들보다 딸이 좋다라는 생각으로 우리 아빠는 머슴같이 컸다고 함. 아빠는 딱히 불만 없어보임. 아빠가 어렸을때 가장 많이 했던 놀이는 엄마놀이.ㅋㅋㅋㅋㅋㅋㅋ 엄마가 아빠한테 막 시집왔을때(연애결혼. 연애 사실도 알리지 않고 일단 아빠가 엄마를 집에 초대했다고 함. 지금 생각하면 아빠도 왜 그랬는지 이해 안간다고 하니 디스 ㄴㄴ) 할머니랑 고모들이 엄마를 정말로 좋아하셨다고 함(큰고모 제외) 엄마랑 아빠랑 나이차이가 얼마 안나는데도 이 집 자식들은 1살차이라서 엄마랑 막내고모랑 막내고모가 위로 2살차이밖에 안남. 엄마는 시집와서 시누이들의 숫자를 보고 경악을 했으나 시누이분들은 막내동생이 새로 들어온 느낌으로 엄마랑 잘 지내고 잘 노셨는데(큰고모 제외) 큰고모는 시누이 노릇 하는걸 좋아하셨음. 할머니도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셨다고 함. 그냥 엄마랑 다들 쿵짝이 잘 맞음. 이유없이 부르고 시키고 명령하고 그런것들... 그걸 아는 작은고모들이, 특히 둘째고모가 엄마를 신혼때 많이 빼돌렸다고 함. 둘째고모 나이스 암튼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우리집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고모들한테 빚을 많이 졌었고 그러던 와중에 할머니한테 치매가 옴.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가 바쁜와중에도 할머니를 자주 뵈런 간 엄마가 가장 처음으로 발견했었음. 그때 막내고모가 할머니네서 얹혀살고있었는데(독립했다가 컴백함) 막내고모도 너무 초기라 몰랐다고 함. 그때가 내가 중학교 3학년때. 그당시 우리집 생활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면서 고모들한테 빚을 갚고 있던 시기인데 엄마가 할머니를 아침에 한번 오후에 한번 찾아가셨고 주말에는 걍 할머니 집에서 자고오시기도 함. 지금은 우리집 분위기가 할머니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지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면 엄마가 그때 외할머니의 느낌을 친할머니한테서 느끼셔서 더 자주 찾아갔다고 하심. 뭐 그런가보다. 그러다가 고 1때 할머니한테 췌장암이 생기셨다는걸 알게되었고. 할머니는 바로 입원하심. 그때부터 우리 엄마가 할머니 병원에서 생활하셨음. 엄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그런것들 다 공부하시면서 할머니를 돌봐드렸음. 고모들은 보호사 아주머니를 좀 붙이고 엄마한테 좀 쉬엄쉬엄하라고 설득했으나 엄마는 거절하고 걍 다 엄마가 할머니를 케어했음. 엄마는 엄마가 하고싶어서 하는거라고 나한테 정말 많이 이야기하셨었음. 할머니한테는 할머니 간이 안좋아서 입원해있는거라고 거짓말 했었고 할머니는 본인이 췌장암때문에 오신건줄 모르셨음. 맨날 자기는 괜찮으니 퇴원하시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셨었음.
갑자기 다른이야기로 잠시 돌리겟음.내가 초등학교2학년때부터 중학교 3학년때까지 우리집이 참 힘들게 살았음. 고모들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모들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할머니도 많이 도와주셨음. 그런데도 항상 힘들었고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옴 근데 큰고모는 우리집을 동정하기도 했지만 뭔가 우리집이랑 자기네집이랑 비교하면서 자기가 더 우월하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걸 좋아하셨는데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명절때 엄마랑 아빠는 일하느라 할머니네집에 못가고 나랑 동생만 할머니네 집에 갔을때 온 가족이 모이면 큰고모가 은근히 나랑 동생을 이야기 도마에 올리셨음. 내용은 ~네는 정말 힘들겟다/ 00(본인)이는 이렇게나 어린데 엄마랑 같이 못있고~ 그래도 ㅁㅁ(그집 아들)은 엄마랑 아빠가 안가난하니까 다행이지? 그때 많이 어려서 그냥 창피하고 어딘가로 숨고싶기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상 엎고 큰고모 얼굴에 침 뱉을 수 있었을것같음. 물론 큰고모의 거침없는 언행은 다른 고모들을 불편하게 했고 은근히 큰고모를 빼고 집안행사가 열리면서 큰 고모의 거침없는 언행에 의한 타격은 줄어들음. 그리고 중학교 1학년때 큰고모 아들이 모두가 있는 앞에서 큰고모한테 "엄마는 그렇게 남들이랑 비교하면 좋아? 엄마 정말 천박해 보이는건 알아?" 라는 개념있는 한마디를 던지고나서 아예 가족행사에 참여하지 않으심. 지난주에 그 사촌오빠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을때(오빠 결혼식은 큰고모랑 마주칠것같아서 오빠도 연락만함) 그때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날 집에가면서 큰고모한테 뺨을 맞았다고 오빠가 말했음. 불쌍해라 엄청난 희생이었어ㅋㅋ 아무튼간에 내가 어렸을때는 큰고모가 우리집을 보면서 뭔가 대단한 느낌을 받으시는것 같았는데 내가 고1이 되면서 집이 어려운게 풀리고 좋은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했을때 큰 고모가 정말로 짜증나는 티를 팍팍 냈었음.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본인 고3때 할머니가 본인이 간이 안좋아서 온게 아니라 췌장암이라는걸 아시고 죽음을 준비하실때(어휘력이 딸리는지라 죽음보다 더 좋은 단어가 생각이 안나니 불편함을 느꼈음에 대해서는 ㅈㅅ) 할머니가 할머니의 재산을 어떻게 해야하는것인가에 대해서 말을 꺼내셨음. 할머니가 전에 계시던 집을 아빠가 원래 가격보다 2배인가 더 비싸게 할머니한테 사서 할머니한테 졌던 빚을 갚았고 할머니는 그 돈은 큰고모부 사업에 투자(라고 쓰지만 뜯김이라고 읽는다)하셨음. 물론 큰고모부는 그거 받고 사업을 후다다닥 접음. (먹튀라는거지) 결국 할머니 재산은 1억 조금 더 되는 돈이 남음.우리집은 아빠가 할머니께 죄송한일이 너무 많다며 드리면 드렸지 그 유산을 받고싶지 않다 자기보다는 다른 고모들한테 더 줘라 라는 멋있는 말을 할머니한테 조용히 말씀드렸음. 할머니도 그러등가 하시면서 정확히 아빠를 제외한 1/5를 했는데 큰고모가 여기서 불만을 갖으심. 본인이 엄마를(할머니를) 가장 많이 케어했으니(?)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 그 미친말을 들은 다른 고모들의 심정 : ?????? 일단 할머니 옆에 가장 오래있던 사람은 엄마임. 이건 큰고모를 제외한 다른 고모들이 ㅇㅈ하는 사실임. 큰고모는 할머니가 아프셨을때 병원에 2달에 한번 오셨던걸로 알고있음. 오셨을때도 한번정도 인사하고 사라지는 정도? 그런데 큰고모가 자기의 공(솔까 뭔말인지 모르겟다)이 가장 크다면서 자기한테 5천만원을 달라고 하심 나머지는 1/n 하고. 듣는 다른고모들은 _같은 소리 하지 말라며 싸우기 시작하심. 우리집은? 관전. 하지만 역시 친하고 정이 가는 사람들이 작은고모들이니 조금씩조금씩 작은고모들 편을 들었음. 여기서부터는 시간순서대로 쓰니 연결사나 그런게 없어도 당황하지 말고 읽어내려가시길. 그러던중 내가 21살이 됬을때 엄마한테 큰고모가 인성을 논하는 문자를 보내셨고 엄마는 깔끔하게 차단빵을 먹이셨고 큰고모는 당황하지 않고 나에게 우리엄마를 욕하는 문자를 보내셨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의 빠른 대처(차단빵)로 나는 읽어보지도 못하고 문자를 삭제당했음. 마지막으로 내 동생한테 고모가 나와 엄마의 인성을 논하는 문자를 보내셨음. 내 동생은 나랑 2살 차이나는 남동생인데 운동함. 이새끼가 공부를 좀 해서 중학교 2학년때 그냥 검정고시 패스하고 몇년 더 공부하다 나보다 1년 대학을 일찍감. 그 시간많으 놈이 문자받고 열받아서 큰고모 집에 가서 동생 그 미친놈이 난리를 치고 왔다고 함. 그냥 고모 집 앞에서 고모한테 다시는 이딴문자 보내지 말라는 내용으로 소리를 쳤다고 함. 그것에 분노한 큰고모부가 한잔 하시고 우리집에 오셔서 난리를 치심. 중요한건 우리집은 정원에 들어서기 전 골목 정원까지 집안 내부가 보이게 cctv가 있음. 나는 큰 고모부가 밀치셔서 팔과 다리에 멍이 크게 들었고 큰 고모부가 집안을 완전 난장판으로 만들고 가심. 지금 생각해보니 조카 무서웠음 아빠가 cctv랑 내 진료한 서류랑 집안에서 부서진것들 다 자료로 만들어서 경찰서 감. 큰 고모부가 던진것중에 우연히 아빠 차 사이드미러에 맞고 차 벽에 기스를 내며 떨어진 물건이 있음. 아빠가 그 차 독일로 수리보냄. + 아빠가 프랑스 장인한테 선물로 받은 번호판이 뽀갈났는데 그거 다시 받으려면 주문제작 해야된다는데 1년 조금 더 걸린다고 함. 그동아 수리보낸건 안받고 자동차 회사에서 해주는 렌트카로 다닌다고 함. 빨간줄은 그집 아들이(사촌오빠)가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해서 빨간줄은 합의했지만 우리집에 와서 피해준거는 다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음 차 - 2억 더 됨집 수리 - 1억 8천만원 - 대리석 벽을 깨버려서내 병원비 250만원(_되바라 하는 심정으로 병원투어함)기타등등 합치면 500 이렇게 청구됨. 지난주부터 우리집 앞에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데 인실조ㅈ. 자비란 없다.
The end.
+ 동생이 받은 큰고모의 진심어린 문자 ㅌㅇ아 너네 엄마가 연락을 안받아서 이렇게 연락한다. 네 엄마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너는 모르겟지만 뭐 그지같은 내 남동생을 부여잡고 남의 집 일에 끼어들어 민폐중이다. 니네엄마한테 그러다 내가 미쳐 도라버릴것 같으니 그만좀 하라고 좀 전해줄래? 며느리주제에 어디서 감히 집안일에 껴들고 지랄이야. 가난에 빠져 어려울때 도와준게 누군데 그 은혜 잊지 못하고 주님 앞에 창피한 일을 하고 다니냐. 주님은 모든걸 아실것이고 너네 엄마를 벌할것이야.
5천만원에 목숨거시던 큰 고모님께
우리집은 내가 어렸을때 정말 뼈저리게 가난했음. 아빠가 계시던 회사가 가루로 되고 그 다음에 차근차근 망해서 지하방에서 무료급식 한끼 받은걸로 점심 저녁을 해결했던 시절도 있었음.
나 초등학교다닐때는 학교가기 전날 옷에 토했는데 집에 입을 옷이 없었어서(엄마가 일주일에 3번정도만 집에 왔었음. 나는 동생이랑만 지내고. 아빠는 돈버시느라 집에 못들어오셨고) 학교에 그냥 그대로 입고갔는데 반 애들이 그걸 보고 엄청 놀렸던 기억도 있음. 그때 담임선생님이 옷을 빨아주셨었는데 정말 아직도 감사함을 잊지 못하고있음.
물론 지금 우리집은 내가 내 짧은 23년 인생동안 가장 잘 살고있음. 아버지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작게 특허낸게 흥하고 그걸 자본으로 시작한 사업이 조카 흥해서 정말 남 부럽지 않게 살고있음.
돈자랑 하려고 쓴건 아니니 걱정 ㄴㄴ
나는 외할머니는 안계시고 친할머니는 계심. 외할머니는 엄마가 내 동생을 임신하시고 계셨을때 뇌졸증으로 돌아가셨음.
친가쪽 사람들은 엄마랑 정말 친하심.그 집안 가계도가 (할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심.) 친할머니 - 큰고모 둘째고모 셋째고모 아빠 작은고모 막내고모(작은고모와 막내고모는 쌍둥이라 원래 두분 다 작은고모라고 부르지만 일단 편의상 막내고모라고 씀) 이렇게 됨. 모두 1살텀
뭔가 가계도는 어와둥둥 내 아들 이럴것 같지만 당시 할아버지의 현대 사회적인 아들보다 딸이 좋다라는 생각으로 우리 아빠는 머슴같이 컸다고 함. 아빠는 딱히 불만 없어보임. 아빠가 어렸을때 가장 많이 했던 놀이는 엄마놀이.ㅋㅋㅋㅋㅋㅋㅋ
엄마가 아빠한테 막 시집왔을때(연애결혼. 연애 사실도 알리지 않고 일단 아빠가 엄마를 집에 초대했다고 함. 지금 생각하면 아빠도 왜 그랬는지 이해 안간다고 하니 디스 ㄴㄴ) 할머니랑 고모들이 엄마를 정말로 좋아하셨다고 함(큰고모 제외) 엄마랑 아빠랑 나이차이가 얼마 안나는데도 이 집 자식들은 1살차이라서 엄마랑 막내고모랑 막내고모가 위로 2살차이밖에 안남.
엄마는 시집와서 시누이들의 숫자를 보고 경악을 했으나 시누이분들은 막내동생이 새로 들어온 느낌으로 엄마랑 잘 지내고 잘 노셨는데(큰고모 제외) 큰고모는 시누이 노릇 하는걸 좋아하셨음. 할머니도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셨다고 함. 그냥 엄마랑 다들 쿵짝이 잘 맞음.
이유없이 부르고 시키고 명령하고 그런것들... 그걸 아는 작은고모들이, 특히 둘째고모가 엄마를 신혼때 많이 빼돌렸다고 함. 둘째고모 나이스
암튼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우리집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고모들한테 빚을 많이 졌었고 그러던 와중에 할머니한테 치매가 옴.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가 바쁜와중에도 할머니를 자주 뵈런 간 엄마가 가장 처음으로 발견했었음. 그때 막내고모가 할머니네서 얹혀살고있었는데(독립했다가 컴백함) 막내고모도 너무 초기라 몰랐다고 함.
그때가 내가 중학교 3학년때.
그당시 우리집 생활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면서 고모들한테 빚을 갚고 있던 시기인데 엄마가 할머니를 아침에 한번 오후에 한번 찾아가셨고 주말에는 걍 할머니 집에서 자고오시기도 함.
지금은 우리집 분위기가 할머니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지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면 엄마가 그때 외할머니의 느낌을 친할머니한테서 느끼셔서 더 자주 찾아갔다고 하심. 뭐 그런가보다.
그러다가 고 1때 할머니한테 췌장암이 생기셨다는걸 알게되었고. 할머니는 바로 입원하심. 그때부터 우리 엄마가 할머니 병원에서 생활하셨음.
엄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그런것들 다 공부하시면서 할머니를 돌봐드렸음. 고모들은 보호사 아주머니를 좀 붙이고 엄마한테 좀 쉬엄쉬엄하라고 설득했으나 엄마는 거절하고 걍 다 엄마가 할머니를 케어했음. 엄마는 엄마가 하고싶어서 하는거라고 나한테 정말 많이 이야기하셨었음.
할머니한테는 할머니 간이 안좋아서 입원해있는거라고 거짓말 했었고 할머니는 본인이 췌장암때문에 오신건줄 모르셨음. 맨날 자기는 괜찮으니 퇴원하시고 싶으시다고 말씀하셨었음.
갑자기 다른이야기로 잠시 돌리겟음.내가 초등학교2학년때부터 중학교 3학년때까지 우리집이 참 힘들게 살았음. 고모들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이모들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할머니도 많이 도와주셨음. 그런데도 항상 힘들었고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옴
근데 큰고모는 우리집을 동정하기도 했지만 뭔가 우리집이랑 자기네집이랑 비교하면서 자기가 더 우월하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걸 좋아하셨는데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명절때 엄마랑 아빠는 일하느라 할머니네집에 못가고 나랑 동생만 할머니네 집에 갔을때 온 가족이 모이면 큰고모가 은근히 나랑 동생을 이야기 도마에 올리셨음. 내용은 ~네는 정말 힘들겟다/ 00(본인)이는 이렇게나 어린데 엄마랑 같이 못있고~ 그래도 ㅁㅁ(그집 아들)은 엄마랑 아빠가 안가난하니까 다행이지?
그때 많이 어려서 그냥 창피하고 어딘가로 숨고싶기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상 엎고 큰고모 얼굴에 침 뱉을 수 있었을것같음. 물론 큰고모의 거침없는 언행은 다른 고모들을 불편하게 했고 은근히 큰고모를 빼고 집안행사가 열리면서 큰 고모의 거침없는 언행에 의한 타격은 줄어들음. 그리고 중학교 1학년때 큰고모 아들이 모두가 있는 앞에서 큰고모한테 "엄마는 그렇게 남들이랑 비교하면 좋아? 엄마 정말 천박해 보이는건 알아?" 라는 개념있는 한마디를 던지고나서 아예 가족행사에 참여하지 않으심. 지난주에 그 사촌오빠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을때(오빠 결혼식은 큰고모랑 마주칠것같아서 오빠도 연락만함) 그때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날 집에가면서 큰고모한테 뺨을 맞았다고 오빠가 말했음. 불쌍해라 엄청난 희생이었어ㅋㅋ
아무튼간에 내가 어렸을때는 큰고모가 우리집을 보면서 뭔가 대단한 느낌을 받으시는것 같았는데 내가 고1이 되면서 집이 어려운게 풀리고 좋은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했을때 큰 고모가 정말로 짜증나는 티를 팍팍 냈었음.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본인 고3때 할머니가 본인이 간이 안좋아서 온게 아니라 췌장암이라는걸 아시고 죽음을 준비하실때(어휘력이 딸리는지라 죽음보다 더 좋은 단어가 생각이 안나니 불편함을 느꼈음에 대해서는 ㅈㅅ) 할머니가 할머니의 재산을 어떻게 해야하는것인가에 대해서 말을 꺼내셨음.
할머니가 전에 계시던 집을 아빠가 원래 가격보다 2배인가 더 비싸게 할머니한테 사서 할머니한테 졌던 빚을 갚았고 할머니는 그 돈은 큰고모부 사업에 투자(라고 쓰지만 뜯김이라고 읽는다)하셨음.
물론 큰고모부는 그거 받고 사업을 후다다닥 접음. (먹튀라는거지)
결국 할머니 재산은 1억 조금 더 되는 돈이 남음.우리집은 아빠가 할머니께 죄송한일이 너무 많다며 드리면 드렸지 그 유산을 받고싶지 않다 자기보다는 다른 고모들한테 더 줘라 라는 멋있는 말을 할머니한테 조용히 말씀드렸음.
할머니도 그러등가 하시면서 정확히 아빠를 제외한 1/5를 했는데 큰고모가 여기서 불만을 갖으심. 본인이 엄마를(할머니를) 가장 많이 케어했으니(?)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
그 미친말을 들은 다른 고모들의 심정 : ??????
일단 할머니 옆에 가장 오래있던 사람은 엄마임. 이건 큰고모를 제외한 다른 고모들이 ㅇㅈ하는 사실임.
큰고모는 할머니가 아프셨을때 병원에 2달에 한번 오셨던걸로 알고있음. 오셨을때도 한번정도 인사하고 사라지는 정도?
그런데 큰고모가 자기의 공(솔까 뭔말인지 모르겟다)이 가장 크다면서 자기한테 5천만원을 달라고 하심 나머지는 1/n 하고. 듣는 다른고모들은 _같은 소리 하지 말라며 싸우기 시작하심.
우리집은? 관전. 하지만 역시 친하고 정이 가는 사람들이 작은고모들이니 조금씩조금씩 작은고모들 편을 들었음.
여기서부터는 시간순서대로 쓰니 연결사나 그런게 없어도 당황하지 말고 읽어내려가시길.
그러던중 내가 21살이 됬을때 엄마한테 큰고모가 인성을 논하는 문자를 보내셨고 엄마는 깔끔하게 차단빵을 먹이셨고 큰고모는 당황하지 않고 나에게 우리엄마를 욕하는 문자를 보내셨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의 빠른 대처(차단빵)로 나는 읽어보지도 못하고 문자를 삭제당했음.
마지막으로 내 동생한테 고모가 나와 엄마의 인성을 논하는 문자를 보내셨음. 내 동생은 나랑 2살 차이나는 남동생인데 운동함. 이새끼가 공부를 좀 해서 중학교 2학년때 그냥 검정고시 패스하고 몇년 더 공부하다 나보다 1년 대학을 일찍감. 그 시간많으 놈이 문자받고 열받아서 큰고모 집에 가서 동생 그 미친놈이 난리를 치고 왔다고 함. 그냥 고모 집 앞에서 고모한테 다시는 이딴문자 보내지 말라는 내용으로 소리를 쳤다고 함.
그것에 분노한 큰고모부가 한잔 하시고 우리집에 오셔서 난리를 치심. 중요한건 우리집은 정원에 들어서기 전 골목 정원까지 집안 내부가 보이게 cctv가 있음.
나는 큰 고모부가 밀치셔서 팔과 다리에 멍이 크게 들었고 큰 고모부가 집안을 완전 난장판으로 만들고 가심. 지금 생각해보니 조카 무서웠음
아빠가 cctv랑 내 진료한 서류랑 집안에서 부서진것들 다 자료로 만들어서 경찰서 감.
큰 고모부가 던진것중에 우연히 아빠 차 사이드미러에 맞고 차 벽에 기스를 내며 떨어진 물건이 있음.
아빠가 그 차 독일로 수리보냄. + 아빠가 프랑스 장인한테 선물로 받은 번호판이 뽀갈났는데 그거 다시 받으려면 주문제작 해야된다는데 1년 조금 더 걸린다고 함. 그동아 수리보낸건 안받고 자동차 회사에서 해주는 렌트카로 다닌다고 함.
빨간줄은 그집 아들이(사촌오빠)가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해서 빨간줄은 합의했지만 우리집에 와서 피해준거는 다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음
차 - 2억 더 됨집 수리 - 1억 8천만원 - 대리석 벽을 깨버려서내 병원비 250만원(_되바라 하는 심정으로 병원투어함)기타등등 합치면 500
이렇게 청구됨.
지난주부터 우리집 앞에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데
인실조ㅈ. 자비란 없다.
The end.
+ 동생이 받은 큰고모의 진심어린 문자 ㅌㅇ아 너네 엄마가 연락을 안받아서 이렇게 연락한다. 네 엄마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너는 모르겟지만 뭐 그지같은 내 남동생을 부여잡고 남의 집 일에 끼어들어 민폐중이다. 니네엄마한테 그러다 내가 미쳐 도라버릴것 같으니 그만좀 하라고 좀 전해줄래? 며느리주제에 어디서 감히 집안일에 껴들고 지랄이야. 가난에 빠져 어려울때 도와준게 누군데 그 은혜 잊지 못하고 주님 앞에 창피한 일을 하고 다니냐. 주님은 모든걸 아실것이고 너네 엄마를 벌할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