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오늘이 6일째네요

ㅇㅇ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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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오늘이 6일째네요 선배랑 연락이 끊긴지. 어제 날짜를 세 보다 생각보다는 시간이 좀 흘러서 놀랐어요. 일주일만 참으면 지금의 우울함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맞나봐요. 매일매일 조금씩 전 회복하고 있어요.

 

처음 선배를 본 건 강의실이었어요. 제가 잘 못하던 과목을 잘 하시던 선배는 제가 모르는 걸 가르쳐주셨죠. 그리고 제가 선배의 번호를 물었고, 그날부터 모르는 문제를 핑계로 매일 연락했죠.

 

선배는 영화를 보러가자 했어요 저한테. 사실 저는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해요. 영화관에 먼저와서 저는 선배를 기다렸죠. 많이 떨렸어요.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 사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니까. 무슨 말을 할까 어색하진 않을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선배가 제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이제 얘기하는거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온 선배를 보며 너무 좋았어요.

 

이 날 이후로 우리는 대여섯번 더 만났죠. 여기에 하나하나 다 쓰려니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안 쓰는거에요. 제 머리 속에는 그날의 하루가, 감정이, 행동이, 눈빛이 다 너무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왜 그렇게 다 기억에 남아있나 원망스러울 정도로요.

 

선배가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죠. 하지만 이 글을 읽는다면 제가 누군지 알겠죠.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묻고 싶은 게 있어서에요. 직접 묻기에는 제가 너무 구차하고 비참하며 앞으로도 계속 얼굴을 봐야 할텐데 그 자신이 없어서 못 묻는거에요. 선배는 대체 왜 연락을 그렇게도 가차없이 끊으신건가요? 제 무엇이 불만이고 문제였고 실망했길래 그렇게 냉정하게 뒤돌았나요. 시작도 못해 끝도 못 맺는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마음이 아팠는지 아시나요? 그러면서 만난 날은 왜 그렇게 이쁘다는 말을 해주며 먹고 싶다는 걸 다 사주며 귀걸이도 사주었나요.

 

보고싶어요 선배. 목소리도 듣고 싶구요. 우리가 함께 하자고 약속했던 것들도 다 같이 하고 싶어요. 공원도 가고 싶고 놀이동산도 가고 싶고 뮤지컬도 보고 싶고, 거대한 치즈스틱도 먹고싶고, 치킨도 먹고 싶어요. 제가 한번쯤은 선배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싶구요. 마지막 만났던 날, 서로를 보며 웃느라 공부 못했던 과목도 공부하고 싶어요. 제가 사주겠다고 한 음료수도 사주고 싶고 선배가 사주겠다 한 감자탕이랑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어요. 그리고 선배랑 약속한 건 아니지만 얼마전에 개봉한 영화도 보고 싶어요. 멜로영화를 좋아한다던 선배랑 스릴러, 애니메이션, 액션물만 봐서 참 아쉽거든요.

 

선배는 보면 볼수록 잘생겼어요. 영화를 볼 때 사실 전 선배를 보는 게 이백배는 더 좋았어요. 선배의 옆모습은 정말 잘생겼어요. 애교살도 예쁘고 속눈썹도 예쁘고 입도 귀여워요. 웃을 때도 참 잘생겼었죠.

선배는 선배만의 향이 있어요. 향수를 쓰나 묻고 싶었지만 못 물어봤네요. 그 향이 참 좋았어요. 잠잠하면서 덤덤한 느낌의 향이. 지금은 그 향을 제가 잊어버린 것 같아 너무 아쉽네요.

선배는 목소리도 참 좋았어요. 말이 많아서 탈이었던 제가 선배랑 말할 땐 선배 목소리가 듣고 싶어 가만히 있을 정도로요. 그냥 무작정 전화를 걸어 선배보고 말해달라 부탁할 정도로요. 저번에 길가다가 제가 누군가보고 목소리 허스키하다니까 선배가 자기 얘기인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잖아요. 근데 그거 알아요? 선배 목소리가 오조억배는 더 좋다는거.

 

처음 선배가 저를 멀리한다는 걸 알았을 땐 진짜 많이 우울하고 슬프고 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제 존재 자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기분. 항상 분위기를 띄우고 목소리 크고 말 많던 저는 어디 아프냐 힘내라 무슨 일 있냐라는 말을 최근에 매일 들었어요. 그냥 너무 우울해서 남들 기분까지 맞춰 줄 힘이 정말 없었거든요. 남들이랑 어울리며 말을 섞을 힘이 없었거든요. 남들이 생각하는 제 모습을 계속 보여줄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어요. 아직 사람들이랑 말 섞으며 예전의 저처럼 신나게 떠들지는 못해도 가장 친한 친구와는 대화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왜 힘든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저랑 선배뿐일거에요.) 저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요. 저를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그들이 저를 조금씩 도와주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저의 사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그냥 제가 평소같지 않아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힘내라 화이팅 등 위로의 말을 건네면 아무렇지 않다가도 눈물이 핑 도는건 어쩔 수 없나봐요. 선배 덕분에 제가 얼마나 약한 사람이었고,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가 참 미웠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무뎌져 별 생각이 안 드네요. 그냥 매일 아침 그리고 밤 그리고 식사 시간 때 살짝 서러운 거 빼고요. (매일 저의 아침과 밤을 함께해주고 밥은 먹었는지 뭐 먹었는지 물어보는 선배때문이에요.) 일주일에 두번씩은 꼭 보게 될텐데 그냥 편하게 생각할게요 앞으로는.

 

그리고 앞으로는 저를 가꿀겁니다. 혼자서 문화생활도 즐기고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하고 화장도 하고 머리스타일도 바꿀거에요. 선배가 그토록 원하시던 단발에 염색할 겁니다.(선배가 원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선배도 잘 지내요. 선배가 일방적으로 절 밀어낸 만큼.

 

다가오는 시험도 잘 준비해서 잘 치시구요, 몸관리도 잘 하시구요, 밥도 잘 먹어요. 선배는 이번에도 장학금 타시겠죠? 미리 축하해요. 오늘 결혼식 갈 때 정장 안 구겨지게 조심해서 기차 타고 형 결혼 잘 축하해줘요. 뷔페는 별로 안 좋아하는 선배지만, 그래도 많이 먹어요. 민속촌에서도 잘 놀고 조심히 내려와요.

 

마무리하고 싶은 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 되네요. 그냥 조금은 제 감정에 솔직해지자면 선배가 조금은 후회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전 선배가 절 먼저 밀어낸 만큼 선배가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그냥 밀려져있을게요.

 

겨울도 봄도 아닌 시기에 찾아 와 저를 행복하게 해주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챙겨주고 처음으로 별거 아닌 것도 챙김 받는 감정 느끼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참 짧았지만 제가 느낀 건 참 깊었습니다. 봄도 여름도 아닌 시기에 혼자 훌쩍 떠나간 선배. 잘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