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평생 갈 줄 알았다

우울하다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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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서야 첫 연애를 했다. 여자에 관심도 없던 놈이 연애한다고 친구들이 놀라더라.
소개시켜준 친구도 진짜 잘 되서 그렇게 빠질 줄 몰랐다고 하고.
전 여친이랑 난 정말 풋풋하고 달달하게 사귀었다. 정말 뜨겁게 사랑했고 주변에선 곧 일주년인데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풋풋하냐고 부러워했다.
속궁합도 잘 맞았고 서로의 모든 걸 귀여워하고 사랑했다.
한 번도 연락 문제로 속 썩인 적도 없었고, 애정표현을 안 한 적도 없었다.
늘 사랑한다고 속삭였고 안아주었다. 전 여친도 그런 나에게 사랑한다고 하며 입을 맞추었고 아무 것도 안 해도 그저 둘이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아무리 진심이 담긴 선물을 해줘도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기념일마다 늘 손편지를 써주고 영상편지를 만들기도 했지만 부족했다.
자기 전마다 목소리를 듣고 잘자라며 긴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일어나면 보는 잘 잤어? 라는 말이 그처럼 행복할 수가 없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여친의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났다.
어느새 여친은 내 삶의 이유이자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있었다. 만약 내가 죽고 전 여친이 살 수 있다면 난 그럴 수 있었다. 나에게 사랑이 뭔지, 사랑받는 게 무슨 기분인지 알려준 사람이기에.
그래서 우린 평생 갈 줄 알았다.
그 어떤 역경이 와도 서로 이해하고 맞춰갈 줄 알았다. 이 여자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우리가 보낸 추억이 평생 가고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고 서운해도 나는 대화로 풀고 더 끈끈해질 줄 알았는데. 상대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늘 얼만큼 사랑하냐고 물어올 때. 내가 자주 하던 대답이 있다.
자기보다 내가 더 사랑할 걸?
여친은 그게 뭐냐고 웃었지만 진심이었다. 내가 더 사랑한다는 걸 느꼈으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나를 보는 눈에는 늘 사랑이 담겨있었고 늘 보고싶다고 칭얼대는 게 너무 좋았으니까.
내가 더 사랑할 뿐 여친이 날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날 떠났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유였다. 서로 쌓인 게 터졌고, 여친이 이별을 결심했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설령 헤어지저라도 만나서 얘기하며 헤어질 줄 알았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이자 매너이며 우리는 남들보다 아름답게 헤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카톡을 통한 이별통보.
생각할 시간을 갖고 일주일 후 만나서 얘기하기로 해놓고, 며칠 전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일방적인 통보다. 혼자 마음정리를 끝낸 후 차갑게 차냈다.
나는 어떻게든 기회를 달라고 붙잡았다.
자기라고 부르는 나에게 자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며 다른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평소 듣던 그 목소리와 말투가 아니었다. 그냥 남을 대하느니만 못한 태도.
이게 이제 우리의 사이인 거다.
받아들일 법도 하건만 구질구질하게 더 붙잡았다. 하다못해 만나서 얼굴보고 얘기하자고.
이렇게 카톡으로 끝내고싶진 않다고.
헤어지더라도 만나서 해어지고 싶었다.
이렇게 헤어지기엔 그간 느꼈던 내 감정과 사랑이 모욕당하는 것 같았고 너무 비참했다.
만나면 상처받을 거 같다는 여친의 말에 더 붙잡을 수가 없었다.
헤어지는 와중에도 여친 걱정을 하는 내가 싫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잠시 전화가능하냐고, 더 붙잡지 않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했다.
좋은 추억이었고 해준 게 많이 없어서 미안하다.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는 끝났다.
뭔가 커다란 게 나한테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았고 공허했다.
영혼 빠진 꼭두각시처럼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삶의 의욕이 나지 않았다.
힘들고 지치고 슬프고 그런 것보다는 그냥 공허했다.
너무 공허하고 허탈해서 그 상태로도 그냥 죽을 거 같았다.
돌아다니며 보이는 차를 보며 그냥 죽을까 생각했지만 애써 참았다.
조금씩 정신을 차렸을 땐 세 시간이 지나있었다.
갑자기 친구들이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연락할 때 나오는 내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내가 말하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평온한 목소리였다.
그때 직감했다.
괜찮아진 게 아니라 그냥 아직 머리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아마 내일 아침부터 후폭풍이 몰려오겠지.
그럴 미래를 아니까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새우며 밥도 잘 챙겨먹지 못했다.
수저를 뜨면 생각을 가지기 전 마지막 식사에서 다음 주에 볼 때 살 빠져있으면 화낼 거라는, 여친의 귀여운 협박이 떠올랐다.
뭐 먹는지 사진을 보내고 맛있게 먹으라고 하던 대화도 떠올랐다.
한동안 입맛이 없어 몇 숟갈을 채 먹지 못했다.
잠을 자면 꿈에서 여친이 나왔다. 꿈에서의 우린 잘 풀렸고 다시 사랑을 속삭였다.
깨어나면 그게 꿈이라는 걸 깨달으며 끝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한동안 그걸 반복했다. 매일매일 꿈을 꾸었고 일어나면 우울해졌다.
그렇게 보름이 흐른 지금.
이젠 꿈을 꾸지 않는다. 밥도 챙겨먹을 수 있게되었다.
목표와 꿈도 생겼다.
평생을 괴로워할 줄 알았는데 이젠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아직도 여친이 떠오를 땐 먹먹한 감정을 느낀다.
친구들이 사귀면서 짜증나는 거 없었냐 물을 때 난 없다고 했다.
함께하는 모든 게 행복하고 좋았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알 거 같다.
몇 가지 원망이 든다.
사귀면서 있던 일들이나 난 되고 넌 안 된다는 마인드. 이런 것들은 날 힘들게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낸 화에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도, 여친은 잘 안 풀면서 나는 금방 풀릴 거라 여기는 것도.
이것에 비하면 원망이라는 측에도 못 낀다.
헤어질 때의 행동. 그게 나에게 너무 큰 상처였다.
그렇게 해어질 거면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할 때 그렇게 잘해주지 말지. 걱정하지 말고 밤에 전화해서 보고싶다고 하지도 말지.
난 그것도 모르고 잘 풀릴거라고 생각하고 오래 걸리는 일주년 이벤트를 마저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루하루 마음 졸이면서도 잘 풀리고 이벤트를 받았을 때, 영상과 커플링을 끼워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얼마나 기뻐할지 기대하면서. 병신같이.
이번 연애를 하며 내가 얼마나 서투르고 말실수를 자주 하는지 뭐가 부족한지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너무 조절이 없었다. 잘해줄 수 있는 금전적 조건도 부족했고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았다.
다음에는 정말 잘해주고 싶다.
사랑하는만큼 잘해주지 못해 속상해하고 싶지도, 내 맘과 다른 말실수로 우울해하고 싶지도 않다.
돈이 없어 사주고 싶은 걸 못 사주고 가고 싶은 델 못 가는 것도 싫다.
더 매너있고 성숙해져서 정말 잘해주고 싶다.
사랑을 받는 것도 그렇지만 사랑해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알아버렸다.
전 여친의 생각이 들 때마다 그리 생각하며 애써 위안삼는다. 다음엔 정말 더 잘해주고 더 현명한 연애를 하자고.
전 여친만큼 날 사랑해주고 챙겨줄 여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다면 그땐 놓치고 싶지 않다.
마음을 너무 열면 그만큼 상처도 크다.
난 조절을 못했고 너무 많이 열어 상처도 그만큼 컸다.
그래도 정말 내 사람이다 생각이 들었을 때, 헤어지는 게 무서워서 못해주고 싶진 않다.
다만 그런 사람을 만나고 판단하고 잘 이어나가는 과정이 조금 오래 걸릴 거 같다.

이별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진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상대가 개쓰레기라서 헤어지자하면 때릴 거 같거나 만날 수 없는 곳에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이별은 만나서 얼굴보고 했으면 한다.
잠수보다야 낫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최악의 이별인 거 같다.
그리고 헤어질 거면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마라. 희망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미치게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