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파(峨嵋派)는 무림세가로 위세를 날리던 노순(魯純)의 일곱 딸이 창시한 비구니의 무림본산이다. 노순은 강호의 대인물로서 그 명성을 날렸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이 없었다. 무림세가로서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하여 일곱 명의 딸에게 무공을 연마시켰다. 그러나 연약한 여자를 거친 강호에서 살아남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순은 고민했다. 기존의 무공을 전수한다 하여도 여자들로서는 무림세가를 지탱할 수 없음이 분명했다. 십여 년을 고민하던 끝에 노순은 무릎을 탁 쳤다. 약(弱)의 무공, 약함이 그저 약한 것만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로 무공의 핵심을 터득하는 순간이었다.
노순은 딸을 모두 불러 모아 환한 얼굴로 말했다.
“강호의 모든 무공을 뒤집어 놓으면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강맹함을 본질로 하는 무공의 뒷면은 연약함이 도사리고 있다. 산이 높은 것은 그만큼 땅이 낮다는 말이다. 바다가 깊은 것은 그만큼 땅이 높다는 뜻이다. 강할수록 약함은 더욱 깊어진다. 찌르면 물러선다. 물러서면 찌른다. 절대로 강함과 충돌하지도 않지만 피하지도 않는다.”
드디어 강함의 뒤에 도사린 약함을 파고드는 옥허쌍검(玉虛雙劍)이 출현하는 순간이었다. 장검 대신에 두자 길이의 단검을 양손에 쥐고 나비의 모양새로 펄럭이는 옥허쌍검은 여자들만을 위한 검법이었다. 옥허쌍검은 오뉴월의 서리처럼 날카롭다. 전체를 무너뜨리려는 남자의 무공을 상대하여 틈새만 노리는 검법이며, 그 예리함과 정확함은 흡사 뼈와 살의 중간을 가르는 백정의 칼질 같았다.
거대한 남자의 힘이 밀려오면 하얀빛을 발하는 쌍검은 연약한 모습으로 팔랑거린다. 위아래로 한들한들 움직이던 검이 별안간 상대의 몸을 한바퀴 돌아 나오며 선을 그으면, 거대한 멧돼지의 뼈와 살이 한꺼번에 나뉘어 지며 무너지듯 남자의 힘은 여자의 발아래 흩어진다. 노순은 옥허쌍검을 창안하고는 편히 눈감았다. 임종의 순간에 그는 말했다.
“강호에서 행세할 수 있는 여인의 무공이 비로소 그 길을 찾았다.”
노순이 죽은 후에 그의 딸들은 아미산의 복호사에 그의 영전을 모셨다. 그리고 모두 불가에 귀의하여 노순의 명복을 빌었다. 이것이 아미파가 강호에서 빛을 발하게 된 계기였다. 옥허쌍검을 모방한 검법이 강호의 여인들에 의하여 유행하게 되었다. 무림의 파벌을 넘어서 강호의 여인들이 옥허비급을 터득하려고 아미파에 들어오기도 했다.
구름에 가린 달이 그 환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세 명의 흑의인이 아미산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장검을 등에 맨 사람들은 바람처럼 날았다.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 복호사 대웅전이 보이는 나무그늘 아래에 몸을 숨겼다. 한참 주변을 살폈으나 개미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세 명의 그림자는 서로 눈짓을 하더니 쏜살같이 넓은 마당을 가로 질로 대웅전으로 돌진하였다.
세 명의 그림자가 마당 한가운데쯤 달리고 있을 때에 저쪽에 있던 보살전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얀 옷자락을 펄럭이는 사람은 몸을 날려 달리던 흑의인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맨 앞에 달리던 흑의인의 장검이 뽑혀 나오더니 백의인을 가슴을 향하여 날았다. 전광석화 같은 솜씨였다. 백의인이 피할 사이도 없이 장검은 가슴을 꿰뚫었다.
어흑,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세 명의 흑의인이 돌계단을 오르는 순간에 대웅전 문이 벌컥 열리며 세 명의 비구니들이 합장한 채로 내려섰다. 앗, 하며 흑의인은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어인 일로 심야에 칼부림을 하십니까?” 가운데 서 있는 비구니의 카랑한 목소리였다.
별안간 휙 하는 휘파람소리가 나더니, 네 명의 비구니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일곱 명의 비구니, 그들은 아미파 최고의 고수인 칠선녀였다. 출가한 노순의 일곱 딸을 계승하여 아미파에는 일곱 명의 최고의 고수가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소승은 칠선녀 중의 한사람인 난정이라 하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일거에 사미승을 베어버린 처사가 심히 잔혹하니,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대웅전으로 들어서려던 세 명의 흑의인은 마당으로 내려섰다. 일전을 벌려야 할 상황을 직감하고 경계의 눈빛을 번뜩였다. 칠선녀도 같이 마당으로 내려서더니 흑의인을 삥 둘러쌓았다. 구름에 가렸던 달이 다시 환한 빛을 드러내었다.
“보아하니 남정네들인데, 이 곳은 남자들이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란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야심한 밤에 경내를 침입하여 살생을 하였으니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별안간 흑의인의 장검이 난정의 정수리를 향하여 날았다. 아무런 기색도 안 보이다가 날린 검은 냉혈적이었다. 난정의 무공이 그만큼 출중했을 것이다. 번쩍하는 빛이 보이는 순간에 살짝 몸을 틀며 칼날을 피했다. 흑의인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으흠, 대단한 신법이다. 나의 검을 피하다니,”
흑의인은 장검을 번뜩이며 다시 난정을 향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희끗희끗한 몸놀림으로 움직이던 난정의 손에 두 자루의 단검이 팔랑거리며 날기 시작했다. 뒤이어 삥 둘러서 있던 다른 비구니의 손에서도 쌍검이 흔들렸다. 옥허쌍검이 펼치는 옥허진(玉虛陣)이었다. 일곱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펼치며 흑의인을 둘러싸는 듯 했다.
흑의인은 오늘 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갈 것을 직감했다. 사방에 날리는 쌍검은 만만치 않은 기세였다. 커다란 체구의 흑의인이 이곳을 빠져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그 순간에 세 자루의 장검이 일제히 한 명의 비구니를 향하여 날았다. 둘러싼 진을 깨뜨리려는 시도였다. 세 자루의 장검이 날아오자 비구니는 뒤로 몸을 훌쩍 빼면서 물러섰다. 흑의인이 일제히 그 틈을 빠져서 달리려는 순간에 뒤에서 팔랑거리던 단검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실로 노순이 창안한 옥허진은 명성을 날리고도 남을 만 했다. 열네 자루의 단검이 날개를 팔랑거리듯 세 명의 흑의인을 둘러싸고 조여들었다. 획획 하며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들렸지 검이 부딪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만큼 정확하게 검을 피해서 움직인다는 결론이었다.
“관세음보살, 더 이상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승들은 부처님의 발아래에서 살생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일체의 말도 없이 무례함을 범하니 양보하기 힘들군요. 부디 소승들의 손이 맵다고 원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흡사 최후의 포고와 같은 난정의 카랑한 목소리였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명의 흑의인의 눈앞으로 나비가 날개를 펴며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나비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살기를 품은 쌍검이다. 그러나 움직임은 나비였다. 검을 들어 날아든 두개의 날카로움을 후려치는 순간에 뒤로 휙 돌아가는 단검이 흑의인의 목에 착 달라붙었다. 깊지는 않지만 숨통을 가르는 옥허쌍검의 살기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어억, 비명소리가 밤하늘에 울렸다.
한 명의 흑의인이 목을 움켜쥐고 땅에 쓰러지는 순간에 팔랑거리던 옥허쌍검이 일제히 그 옆의 흑의인에게 몰려들었다. 휘두르는 장검을 칭칭 감듯 열 네자루의 쌍검이 빛을 발하더니 비명소리가 또 들렸다. 가슴을 움켜쥔 흑의인이 앞으로 쿵하고 쓰러졌다. 단숨에 두 명의 흑의인이 숨을 거둔 것이었다. 기겁을 한 나머지 흑의인은 몸을 허공으로 힘껏 날리더니 칠장을 솟구쳐 오솔길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팔랑거리는 나비의 날갯짓, 그것은 분명히 진을 치고 감도는 옥허진이었다. 그 누구도 여기에 말려들면 절대로 빠져 나가지 못한다. 희뜩희뜩 몰려가는 열네 자루의 단검은 흑의인을 또 감싸 안았다. 어느 검이 공격할 것이며, 어느 검이 그냥 스치는가? 화려하게 팔랑거리는 단검의 싸늘함이 흑의인의 눈을 어지럽혔다.
바로 그 순간에 대웅전 지붕에서 이 광경을 싸늘한 눈초리로 내려다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는 대웅전으로 몸을 날려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옥허비급이 그려져 있는 비단을 둘둘 말아서 품에 넣고 나왔다. 달빛을 밟으며 나르는 그림자는 멀리서 나머지 흑의인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고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칠선녀는 죽은 흑의인의 얼굴을 확인하였지만 전혀 생소한 사람들이었다. 강호에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정체모를 고수들이었다. 비록 옥허진으로 목숨을 뺏었지만 그들이 구사하는 검법은 무척 빠르고 강했다. 옥허진이 아니었다면 칠선녀의 누구도 당하지 못할 무공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난정은 도둑맞은 옥허비급을 탄식하며 명부전에 들어섰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노순은 명부전에 그려진 만다라에 비급의 또 다른 무늬를 넣었던 것이었다.
“헤헤, 이런 일이 아미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대이노사는 넋이 나간 얼굴로 이야기를 듣는 고영과 자야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마쳤다. 고영은 신기한 강호의 이야기에 침을 꼴깍 삼켰다.
“호호, 할아버지는 이야기도 참 재미있게 하세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자야의 응석어린 말이 환하게 들렸다. 대이노사는 귀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자야를 보더니 헤헤 하며 웃었다. 매궁이 뜨겁게 달여진 차를 한잔씩 돌렸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대이노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고영을 흘낏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천봉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혜정선사와 묘연존자가 그토록 아끼던 천봉자는 모두가 인정하는 강호의 대인물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는 대이노사의 얼굴에 회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고영의 뇌리에 아버지의 얼굴이 스쳤다. 북두봉의 석실에서 신음으로 십오 년을 지낸 천봉자에 관한 기억, 그것은 고영의 가슴속에 비수로 박힌 설움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부는 대금소리가 처절한 핏빛이 되어 귓전을 맴돌았다.
강호에 부는 바람, 천무 / 天武 [7]
강호의 여걸들
7.
아미파(峨嵋派)는 무림세가로 위세를 날리던 노순(魯純)의 일곱 딸이 창시한 비구니의 무림본산이다. 노순은 강호의 대인물로서 그 명성을 날렸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이 없었다. 무림세가로서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하여 일곱 명의 딸에게 무공을 연마시켰다. 그러나 연약한 여자를 거친 강호에서 살아남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순은 고민했다. 기존의 무공을 전수한다 하여도 여자들로서는 무림세가를 지탱할 수 없음이 분명했다. 십여 년을 고민하던 끝에 노순은 무릎을 탁 쳤다. 약(弱)의 무공, 약함이 그저 약한 것만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로 무공의 핵심을 터득하는 순간이었다.
노순은 딸을 모두 불러 모아 환한 얼굴로 말했다.
“강호의 모든 무공을 뒤집어 놓으면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강맹함을 본질로 하는 무공의 뒷면은 연약함이 도사리고 있다. 산이 높은 것은 그만큼 땅이 낮다는 말이다. 바다가 깊은 것은 그만큼 땅이 높다는 뜻이다. 강할수록 약함은 더욱 깊어진다. 찌르면 물러선다. 물러서면 찌른다. 절대로 강함과 충돌하지도 않지만 피하지도 않는다.”
드디어 강함의 뒤에 도사린 약함을 파고드는 옥허쌍검(玉虛雙劍)이 출현하는 순간이었다. 장검 대신에 두자 길이의 단검을 양손에 쥐고 나비의 모양새로 펄럭이는 옥허쌍검은 여자들만을 위한 검법이었다. 옥허쌍검은 오뉴월의 서리처럼 날카롭다. 전체를 무너뜨리려는 남자의 무공을 상대하여 틈새만 노리는 검법이며, 그 예리함과 정확함은 흡사 뼈와 살의 중간을 가르는 백정의 칼질 같았다.
거대한 남자의 힘이 밀려오면 하얀빛을 발하는 쌍검은 연약한 모습으로 팔랑거린다. 위아래로 한들한들 움직이던 검이 별안간 상대의 몸을 한바퀴 돌아 나오며 선을 그으면, 거대한 멧돼지의 뼈와 살이 한꺼번에 나뉘어 지며 무너지듯 남자의 힘은 여자의 발아래 흩어진다. 노순은 옥허쌍검을 창안하고는 편히 눈감았다. 임종의 순간에 그는 말했다.
“강호에서 행세할 수 있는 여인의 무공이 비로소 그 길을 찾았다.”
노순이 죽은 후에 그의 딸들은 아미산의 복호사에 그의 영전을 모셨다. 그리고 모두 불가에 귀의하여 노순의 명복을 빌었다. 이것이 아미파가 강호에서 빛을 발하게 된 계기였다. 옥허쌍검을 모방한 검법이 강호의 여인들에 의하여 유행하게 되었다. 무림의 파벌을 넘어서 강호의 여인들이 옥허비급을 터득하려고 아미파에 들어오기도 했다.
구름에 가린 달이 그 환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세 명의 흑의인이 아미산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장검을 등에 맨 사람들은 바람처럼 날았다.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 복호사 대웅전이 보이는 나무그늘 아래에 몸을 숨겼다. 한참 주변을 살폈으나 개미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세 명의 그림자는 서로 눈짓을 하더니 쏜살같이 넓은 마당을 가로 질로 대웅전으로 돌진하였다.
세 명의 그림자가 마당 한가운데쯤 달리고 있을 때에 저쪽에 있던 보살전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얀 옷자락을 펄럭이는 사람은 몸을 날려 달리던 흑의인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맨 앞에 달리던 흑의인의 장검이 뽑혀 나오더니 백의인을 가슴을 향하여 날았다. 전광석화 같은 솜씨였다. 백의인이 피할 사이도 없이 장검은 가슴을 꿰뚫었다.
어흑,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세 명의 흑의인이 돌계단을 오르는 순간에 대웅전 문이 벌컥 열리며 세 명의 비구니들이 합장한 채로 내려섰다. 앗, 하며 흑의인은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어인 일로 심야에 칼부림을 하십니까?” 가운데 서 있는 비구니의 카랑한 목소리였다.
별안간 휙 하는 휘파람소리가 나더니, 네 명의 비구니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일곱 명의 비구니, 그들은 아미파 최고의 고수인 칠선녀였다. 출가한 노순의 일곱 딸을 계승하여 아미파에는 일곱 명의 최고의 고수가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소승은 칠선녀 중의 한사람인 난정이라 하옵니다. 말 한마디 없이 일거에 사미승을 베어버린 처사가 심히 잔혹하니,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대웅전으로 들어서려던 세 명의 흑의인은 마당으로 내려섰다. 일전을 벌려야 할 상황을 직감하고 경계의 눈빛을 번뜩였다. 칠선녀도 같이 마당으로 내려서더니 흑의인을 삥 둘러쌓았다. 구름에 가렸던 달이 다시 환한 빛을 드러내었다.
“보아하니 남정네들인데, 이 곳은 남자들이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란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야심한 밤에 경내를 침입하여 살생을 하였으니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별안간 흑의인의 장검이 난정의 정수리를 향하여 날았다. 아무런 기색도 안 보이다가 날린 검은 냉혈적이었다. 난정의 무공이 그만큼 출중했을 것이다. 번쩍하는 빛이 보이는 순간에 살짝 몸을 틀며 칼날을 피했다. 흑의인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으흠, 대단한 신법이다. 나의 검을 피하다니,”
흑의인은 장검을 번뜩이며 다시 난정을 향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희끗희끗한 몸놀림으로 움직이던 난정의 손에 두 자루의 단검이 팔랑거리며 날기 시작했다. 뒤이어 삥 둘러서 있던 다른 비구니의 손에서도 쌍검이 흔들렸다. 옥허쌍검이 펼치는 옥허진(玉虛陣)이었다. 일곱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펼치며 흑의인을 둘러싸는 듯 했다.
흑의인은 오늘 일이 모두 실패로 돌아갈 것을 직감했다. 사방에 날리는 쌍검은 만만치 않은 기세였다. 커다란 체구의 흑의인이 이곳을 빠져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그 순간에 세 자루의 장검이 일제히 한 명의 비구니를 향하여 날았다. 둘러싼 진을 깨뜨리려는 시도였다. 세 자루의 장검이 날아오자 비구니는 뒤로 몸을 훌쩍 빼면서 물러섰다. 흑의인이 일제히 그 틈을 빠져서 달리려는 순간에 뒤에서 팔랑거리던 단검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실로 노순이 창안한 옥허진은 명성을 날리고도 남을 만 했다. 열네 자루의 단검이 날개를 팔랑거리듯 세 명의 흑의인을 둘러싸고 조여들었다. 획획 하며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들렸지 검이 부딪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만큼 정확하게 검을 피해서 움직인다는 결론이었다.
“관세음보살, 더 이상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승들은 부처님의 발아래에서 살생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일체의 말도 없이 무례함을 범하니 양보하기 힘들군요. 부디 소승들의 손이 맵다고 원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흡사 최후의 포고와 같은 난정의 카랑한 목소리였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명의 흑의인의 눈앞으로 나비가 날개를 펴며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나비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살기를 품은 쌍검이다. 그러나 움직임은 나비였다. 검을 들어 날아든 두개의 날카로움을 후려치는 순간에 뒤로 휙 돌아가는 단검이 흑의인의 목에 착 달라붙었다. 깊지는 않지만 숨통을 가르는 옥허쌍검의 살기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어억, 비명소리가 밤하늘에 울렸다.
한 명의 흑의인이 목을 움켜쥐고 땅에 쓰러지는 순간에 팔랑거리던 옥허쌍검이 일제히 그 옆의 흑의인에게 몰려들었다. 휘두르는 장검을 칭칭 감듯 열 네자루의 쌍검이 빛을 발하더니 비명소리가 또 들렸다. 가슴을 움켜쥔 흑의인이 앞으로 쿵하고 쓰러졌다. 단숨에 두 명의 흑의인이 숨을 거둔 것이었다. 기겁을 한 나머지 흑의인은 몸을 허공으로 힘껏 날리더니 칠장을 솟구쳐 오솔길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팔랑거리는 나비의 날갯짓, 그것은 분명히 진을 치고 감도는 옥허진이었다. 그 누구도 여기에 말려들면 절대로 빠져 나가지 못한다. 희뜩희뜩 몰려가는 열네 자루의 단검은 흑의인을 또 감싸 안았다. 어느 검이 공격할 것이며, 어느 검이 그냥 스치는가? 화려하게 팔랑거리는 단검의 싸늘함이 흑의인의 눈을 어지럽혔다.
바로 그 순간에 대웅전 지붕에서 이 광경을 싸늘한 눈초리로 내려다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는 대웅전으로 몸을 날려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옥허비급이 그려져 있는 비단을 둘둘 말아서 품에 넣고 나왔다. 달빛을 밟으며 나르는 그림자는 멀리서 나머지 흑의인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고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칠선녀는 죽은 흑의인의 얼굴을 확인하였지만 전혀 생소한 사람들이었다. 강호에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정체모를 고수들이었다. 비록 옥허진으로 목숨을 뺏었지만 그들이 구사하는 검법은 무척 빠르고 강했다. 옥허진이 아니었다면 칠선녀의 누구도 당하지 못할 무공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난정은 도둑맞은 옥허비급을 탄식하며 명부전에 들어섰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노순은 명부전에 그려진 만다라에 비급의 또 다른 무늬를 넣었던 것이었다.
“헤헤, 이런 일이 아미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대이노사는 넋이 나간 얼굴로 이야기를 듣는 고영과 자야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마쳤다. 고영은 신기한 강호의 이야기에 침을 꼴깍 삼켰다.
“호호, 할아버지는 이야기도 참 재미있게 하세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자야의 응석어린 말이 환하게 들렸다. 대이노사는 귀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자야를 보더니 헤헤 하며 웃었다. 매궁이 뜨겁게 달여진 차를 한잔씩 돌렸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대이노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고영을 흘낏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천봉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혜정선사와 묘연존자가 그토록 아끼던 천봉자는 모두가 인정하는 강호의 대인물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는 대이노사의 얼굴에 회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고영의 뇌리에 아버지의 얼굴이 스쳤다. 북두봉의 석실에서 신음으로 십오 년을 지낸 천봉자에 관한 기억, 그것은 고영의 가슴속에 비수로 박힌 설움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부는 대금소리가 처절한 핏빛이 되어 귓전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