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싫다.

사춘기도 아닌데..2004.01.28
조회408

제목 그대로 사춘기도 아닌데. 낼 모레면 내 나이 30인데.. 엄마가 싫다.

이 나이에 엄마가 싫다고 글을 쓰는 나 과연 뭘까??

한심함 그 자체겠지... 엄마가 싫다.

엄마가 싫다. 우리 엄마 계모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밖에 모른다거나 그런 엄마 아니다.엄마가 싫다.

그렇다고 추녀도 아니고 한때는 뛰어난 미모를 소유했었다. 그렇다고 푹 퍼진 아줌마처럼

뚱뚱한 아줌마도 아니다.엄마가 싫다.

50대 중반에서 말년나이에 47KG 유지하는거 쉬운일 아니다.엄마가 싫다.

난 왜 엄마가 싫을까??

엄마를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미워서 그런데

여전히 시간이 흘러도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내 스스로가 미울수록 엄마에 대한 원망은 더 커진다.

우리엄마. 결혼전. 잘 나가던 집 자식이었다.

몇년전. 정확이 언젠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되었다는걸로만 기억한다.

정치쪽에 관련한 분의 와이프 되시는 분들이 옷로비 사건으로 줄줄이 매스컴을 탔던적이 있다.

그 뉴스를 같이 보던중.. 울 엄마 왈, 느이 할아버지가 바람만 안 피우셨어도 그랬어도 어쩌면

엄마도 그 부류에 끼었을지도 모르겠다 한다.

.....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안다.

초등학교 약간 고학년 시절. 나름대로의 가치판단이 형성될 무렵 운전이 직업이었던 우리 아빠가

소위 속된말로 챙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적이 있었다.

강남 붐이 일려고 하던 그 시절. 강동구라는 경기도와 가장 근접한 동네. 그리고 좁디 좁은 저층

아파트 그리고 아빠의 직업.

난 우리집이 참으로 가난하구나 생각했다. 게다가 두분다 대학 나오시지 않았고.

중.고등학생 시절 어느 과목인지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빈곤의 대물림"이란 표현이 있었다.

난 우리 부모님이 빈곤의 대물림의 대표적인 케이스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 가끔씩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나오기 시작했던 엄마의 넋두리..

엄마네는 굉장한 부자였다고 한다. 육사출신의 외할아버지, 집안 대대로 부자였던 외할머니.

엄마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까지 ,60년대 중반 경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때.

우리 엄마네 보모에, 가정부에,기사에.. 

하지만 울 외할아버지의 끊임없는 바람 그로 인한 불미스런 일들.. 잇따른 사업실패.

결국 울엄마네 남매들이 정작 공부해야할 그 무렵.. 정말 집도 없었단다. 고등학교 졸업한것만해도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수업료 못내 불려나가기 수십,수백번. 준비물 상상도 못해봤고.

점심시간에 물로 배채우기 부지기수..

여섯식구 밤되면 잘 곳도 없었단다. 엄마는 20대 초반 나이에 행상까지 해봤단다.

모여대 약학과의 합격 통지서까지 받아놓고도 못가는 그 심정. 아마 나도 내 나이 또래의 그 누구도

이해할수 없을꺼다.

그런 엄마 한때 잘살았던 기억보단 사춘기 시절 무렵의 가난이 미치도록 괴롭고 힘들었기 때문에

결혼하면 내 자식들한테는 절대로 그런 경험을 물려주지 않을꺼라 다짐했단다.

엄마 나이 27살. 완전한 시골 두메산골의 어떤 남자를 만나. 그 사람의 마음 한가지만 보고

결혼했단다.

하지만 결혼할 당시 노총각이라는 사실만 걸릴뿐 별 문제가 없을거라 믿었던게 바보였던가보다.

온통 다 거짓말이었단다. 한번의 결혼경력도 있었고. 요즘 말하는 동거 비슷한 거라더라. 법적으로는

깨끗했지만.. 시골에 논밭 있다고 했지만 그것도 다 아니었단다.

모조리 다 거짓말이었단다.

단칸방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쌀이 없어 밥 한공기 남편인 우리 아빠 주고. 엄마는 또 다시 학창시절에

했던것처럼 물배 채우고..

굶주려서 기절하기도 수십번..악착같이 버텼다고 한다.

그리고 거의 상상을 초월한 만큼의 기지를 발휘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단다.

그런 엄마의 악착같음으로 절대로 내 자식들에겐 공부하고 싶을때 공부 못하게 되고 등록금 없어서

교탁앞으로 교무실로 불려나가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전까지도 우리집은 단칸방 셋집이었다.

부모님, 나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워서 잤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우리집에서 조금 떨어진 집 단독주택을 샀다고 한다.

마당도 있고 방도 네개인 그 집..

신기했다. 우리집이라는거. 내방이 있다는거.

하지만 그 집은 우리 돈 만으로 산 집은 아니었다. 결국 빚을 감당키 힘들어 그 집을 팔고 지금의 강동구

로 이사왔다. 그래두 아주 조그만해두 셋집은 아니었고 내방도 있었다.

엄마. 결혼해서 30년된 지금까지 한번도 자기를 위해서 종이쪼가리 하나 산적이 없다.

그런 엄마에 비한 나는. 못해본거 없다. 하고 싶은거 다 해봤다.

중고등학생때 공부가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단지 주변 친구들이 과외한다는말에 자존심상해서

나도 시켜달라고 하고. 참으로 생각이 없을뿐만아니라 아주 나쁜뇬이었다.

또한 옷 욕심이 많아서 보이는 족족 옷이란 옷은 다 샀다. 일명 시장표도 아니다. 꼭 매장에만 파는

그런 옷들만 샀다.

이런 나의 습관은 지금까지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사고 싶은게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결국

돈 없으면 카드 긁어서라도 사는. 그래서 3년전 그리고 작년엔 카드빚도 졌었다.

그런 나를 고슴도치도 지자식이 이쁘다는 말처럼 우리 엄마는 나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

두살 아래 남동생이 나보다 공부 좀 더 잘했다. 재수시켜달라고 그렇게 애원할때 안된다고

한 우리 엄마가 나 대학입학때는 그다지 공부 잘했던 나도 아닌데 아깝다고 1년을 재수타령,결국

안되서 1년은 편입을 재촉했던 그런 엄마. 하지만 난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걸 이미 깨닫고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이제 엄마의 숨겨놓은 비자금도 아빠도 환갑이 아주 훨씬 지난터라 더 이상은 돈을 벌수가 없다.

동생이 작년초에 결혼을 했다. 생활비를 동생내외가 주고 있다. 근데. 난 뭔가?

용돈 제대로 드려본적두 없는거 같다. 카드빚져서 오히려 엄마의 남아있던 비자금까지 탕진하게

만든 나쁜년이기만 하다.

그런 나쁜년이면 조용히 정말 쥐죽은듯이 가만있어야하는데..

미안한 마음, 죄송스런 마음, 내 스스로 원망스런마음 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그럼 마음으로

엄마를 보기 시러하고 있다.

얼마전엔 그런 생각도 해봤다. 내 앞으로 들어져있는 몇가지 보험. 내가 죽으면 꽤 많은돈이

나올수 있으니까. 상속자들을 부모님으로 해서 남은 인생 그 돈으로 편히 살라고 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다. 내 능력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이젠 나이도 많고 소질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는 나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