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직 6번의 기회가 남았고 그 중 세 번의 기회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3주의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
스무살이 되기 이전에 젓가락질을 고치겠다는 마음가짐 하나가 3주만에 19년을 함께한 나의 잘못된 젓가락질을 바꾸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쉴 새 없이 달려왔다. 학교가 끝나면 놀이터가 아닌 영어 학원에 갔고 수학학원에 갔고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컴퓨터 학원 등등 누구보다 빠듯한 삶을 살았다. 그 때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무언가를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동안 걸어오지 않았던 길을 걸었다. 펜을 내려놓고 매일 매일 노래방에 가고, 가방을 독서실에 던져두고 휴대폰을 꺼두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했고, 공부가 아니라 연기가 아니 연극이 너무 하고싶다며 반항 아닌 반항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학교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려 했고 공부를 어느정도 잘 하는 것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칭찬 받고 인정 받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학생 회장이 되었다. 모든 세상의 중심이 나인 것만 같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 학교 학생들 모두에게 인정 받는 완벽한 학생 회장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가장 값진 일 년 이었다. 후배들은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나를 우러러보는 말을 했고, 친구들은 나를 응원했다. 선생님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를 찾았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학교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나름 짱짱한 스펙을 가지고 특목고에 입학하였다.
특목고에 입학하고 첫 몇 개월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 만들어 놓은 실력과 아우라로 비슷한 존재감을 갖고 살아갔다. 그러나 점점 나는 그저 평범한 아이가 되었고 모든 것은 성적을 위주로 돌아갔다. 분명 모두가 인성적으로 영 아니라고 생각하는 애가 나를 성적으로 깔보기 시작했고, 남들에게 나를 누르며 자신을 드높였다. 나도 점점 변해갔다. 긍정적인 성격은 모두 잃고 부정적인 아이, 잘 웃지 않는 아이, 싸가지 없는 아이가 되었고 남들이 점점 나를 멀리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기에 너무 힘들었다. 그렇지만 되돌일 길은 없었다.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니.
고등학생에게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공부인데, 분명히 나도 아는데, 몸은 잘 따라주지 않았다. 다행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예전의 긍정적이고 해맑던 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찾았다. 그렇지만 솔직히 고등학교 삼 년 동안에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남들보다 빠듯하게 살지도, 열정적으로 살지도 못했다.
곧 있으면 모든게 끝이 난다. 내 12년의 노력이 단 하루로 귀결된다는게 허무하고도 불안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그래 나는 너희보다 고등학교 생활을 아니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알차다고 자부할 수 있는 휘양찬란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보냈고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슬퍼하며 인생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기도 했다.
그래도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이런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내 생기부만으로 나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자소서 속 내 말투에서 진심어린 문장에서 나를 알아봐주지 않을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되돌릴 수 없다.
3주만에 19년의 버릇을 고친 것처럼 앞으로 3주간 내 12년을 예쁘게 매듭지을 수 있겠지.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던 20살의 봄을 벚꽃과 함께 맞이할 수 있겠지.
고등학교 3학년 나에게
나에게는 아직 6번의 기회가 남았고 그 중 세 번의 기회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3주의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
스무살이 되기 이전에 젓가락질을 고치겠다는 마음가짐 하나가 3주만에 19년을 함께한 나의 잘못된 젓가락질을 바꾸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쉴 새 없이 달려왔다. 학교가 끝나면 놀이터가 아닌 영어 학원에 갔고 수학학원에 갔고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컴퓨터 학원 등등 누구보다 빠듯한 삶을 살았다. 그 때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무언가를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동안 걸어오지 않았던 길을 걸었다. 펜을 내려놓고 매일 매일 노래방에 가고, 가방을 독서실에 던져두고 휴대폰을 꺼두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했고, 공부가 아니라 연기가 아니 연극이 너무 하고싶다며 반항 아닌 반항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학교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려 했고 공부를 어느정도 잘 하는 것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칭찬 받고 인정 받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학생 회장이 되었다. 모든 세상의 중심이 나인 것만 같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 학교 학생들 모두에게 인정 받는 완벽한 학생 회장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가장 값진 일 년 이었다. 후배들은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나를 우러러보는 말을 했고, 친구들은 나를 응원했다. 선생님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를 찾았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학교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나름 짱짱한 스펙을 가지고 특목고에 입학하였다.
특목고에 입학하고 첫 몇 개월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 만들어 놓은 실력과 아우라로 비슷한 존재감을 갖고 살아갔다. 그러나 점점 나는 그저 평범한 아이가 되었고 모든 것은 성적을 위주로 돌아갔다. 분명 모두가 인성적으로 영 아니라고 생각하는 애가 나를 성적으로 깔보기 시작했고, 남들에게 나를 누르며 자신을 드높였다. 나도 점점 변해갔다. 긍정적인 성격은 모두 잃고 부정적인 아이, 잘 웃지 않는 아이, 싸가지 없는 아이가 되었고 남들이 점점 나를 멀리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기에 너무 힘들었다. 그렇지만 되돌일 길은 없었다.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니.
고등학생에게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공부인데, 분명히 나도 아는데, 몸은 잘 따라주지 않았다. 다행히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예전의 긍정적이고 해맑던 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찾았다. 그렇지만 솔직히 고등학교 삼 년 동안에는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남들보다 빠듯하게 살지도, 열정적으로 살지도 못했다.
곧 있으면 모든게 끝이 난다. 내 12년의 노력이 단 하루로 귀결된다는게 허무하고도 불안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 그래 나는 너희보다 고등학교 생활을 아니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알차다고 자부할 수 있는 휘양찬란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보냈고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슬퍼하며 인생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기도 했다.
그래도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이런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내 생기부만으로 나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자소서 속 내 말투에서 진심어린 문장에서 나를 알아봐주지 않을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되돌릴 수 없다.
3주만에 19년의 버릇을 고친 것처럼 앞으로 3주간 내 12년을 예쁘게 매듭지을 수 있겠지.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던 20살의 봄을 벚꽃과 함께 맞이할 수 있겠지.
힘내자.
나는 나를 응원하니까.
나만은 나를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