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엔 그렇게 시간이 안가고 어른이 되고 싶더니
어느새 27살 이란게 믿기지도 않아
남들과 다르게 5년정도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에도
그렇고 여전히 나이값 못해서 답답한 마음 여기서
풀어 놓으려해 아마 이이야기를 보신분 들 중에
아는 분도 있을꺼라 생각해 아마 끝을 알게되면
충격이 겠지만
먼저 나는 6살된 딸이 있어
현재 2년 정도 못봤구나 원래
인성이 쓰레기고 감정이 말라 있는 인간 이지만
그래도 어린이날 이나 딸생일 이나 무슨 날 마다
가슴이 미어 지는건 어쩔수 없는거 같애
나 21살 여자애 19살에 우리
딸이 생겼어
둘다 진짜 멋도 모르고
더군다나 난 사고도 많이 치고
들락날락 거리는 ...
걔도 아빠만 있고 나도 아빠만 있고
반쪽 가정 에서 자라서 그런지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더라 그래서
일부러 애를 생기게 노력? 했었지
막상 근데 현실에 마주치니깐
내가 살아온거 현재 내모습 을 생각하니
조금 고민되더라 그게 지는 서운했는지
울먹 거리고 아무튼 다음 날 산부인과 를 같지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 하면서
애기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데
와 얼마나 마음이 벅차고 눈물이 나던지
낳자고 했어 두손발 멀쩡하고
뭔들 못할까 싶어서
그렇게 마음 다잡고
말이 조직 생활이지ㅋㅋ
양아치 비슷하게 하던것도
다때려 치우고 산근처에 월세집 얻고
그렇게 신혼생활 시작 했어
저녁이면 말야 같이 손잡고
시장가서 장보고 집에서 밥해먹고
그런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너무 꿈만 같은거야
그런데 그것도 오래 못갔어
형들이 나 잡으러 왔고 난 놀래서
물론 여기서 나 욕할 사람 많을꺼야
그런데 한 6~8명 이 흉기들고 쫓아오는데
맨정신이 안들더라
아무튼 놀래서 차타고 추격전 벌이다가
사람을 치었어
피해자 분은
돌아가셨고....
난 그 일로
교도소에 들어갔지...
애엄마가 나이도 어렸고
뱃속에 애도 있는데 혼자
어떻게 지낼지 내가 어떻게 될지
정말 절망 이라는 말이 실감 되더라
한번은 애엄마가 거의
만삭 다되어 갈때 면회를 두번
연달아서 오더라...
그래서 내가 어떻게 무슨돈 으로
이렇게 자주 오냐니깐
보고 싶어서 돼지 저금통 깨서
동전들고 왔대.. 택시타고 버스타고 또 내려서 택시타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한참 울었어
그땐 진짜 둘이 눈만 마주쳐도 서로 서로
걱정에 엉엉 울고...
면회 담당 하는 교도관은 그게또
안쓰러운지 몰래 면회시간 몇분씩 더주시고..
할수 있는게 없고 희망 이라고도 없었는데
그때 내가 뭐든 해서라도 하루 라도
빨리 돌아갈께!!! 했어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진짜 하루에 1번씩 반성문
적어서 법원에 내고 검사님께
편지 계속 쓰고...
검사님이 정말 좋으신분 이였어
나 계속 부르셔서 어떻게 살건지 진로도
잡아주시고 편지도 나한테 써주시고
애엄마한테 애기옷 책 선물도 많이 해주시고..
한번은 갑자기 검사실에서 부르더라고
뜬금 없이... 무슨일 일까 싶어서
긴장 하면서 검사님을 뵈었는데
옆방에 가보라는 거야...
애기엄마 와있더라
둘이 잠시 볼수 있게 도움 주신거지..
배에 귀도 대보고 손도 잡아보고...
뒤쫓아오던 형들도
다 구속 시키고...
내가 일부로 사고 낸게
아니란걸 증명 할수 있게 해주셨어
재판 선고 4일 전에
기다리던 딸도 태어났고
교도소에 조르고 쫄라서 전화도
하고... 근데 기쁨도 잠시
합의가 안됬어 ... 우리가
돈이 있을리는 없었고
방법이 없었지.. 그래서
1심 재판에서 7년 선고 받고..
피해자분 그렇게 해놓고
7년 솔찍히 죄값도 안되
나도 잘알아.. 평생 속죄 하면서
살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 간사한게
갓태어난 딸 가정 생각 하니깐
멀게만 느껴지더라고
7년뒤 돌아간다는게..
애엄마 재판 하는거 지켜보고
끝나고 바로 면회 왔더라
난또 울고 주저 앉으면 어떻하나...
늘 못지키는 말만 했는데
또 빨리 돌아간다는말 못지켰네..
하면서 걱정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무덤덤 하더라고..
힘내자고 2심 재판 다시 열심히
해보자고!
그래.. 이번엔 우리 딸까지
셋이니깐 더 힘내보자!!! 했지
2심 재판 때도 합의가 잘안됬어...
피해자 어머님 께서 재판때 마다
오셔서 나를 원망 많이 하셨고...
너무 죄송한데 이게 죄송하단
말로 사죄드리기엔 한없이
작은 말이잖아 ... 그때
검사님이 이야기 하셨나봐
일부러 사고 낸게 아니고
얘도 살려고 도망치다가 이렇게
된거라고..
피해자 가족분들은
못믿겠다고 그걸 증명 하라고 하셨고..
긴긴 재판 1년쯤 다되갈때
선고 딱 하루 전날
애엄마가 애기 업고 피해자 가족분들
집에 갔어...
피해자 어머님이 보시더니
저어린게 무슨 잘못 이냐며
멀리서 왔을텐데 밥먹으라며
차려주시고 합의서 써주셨대..
4시에 면회 끝나는데
4시 5분에 면회라고
부르길래 면회실 들어서니
애엄마 합의서 이마에 붙이고
들어서드라...
다음날 선고때
3년6월로 감형 됬고
이미 재판 한다고 1년 살았고
2년6개월 군대 갔다 생각하고
열심히 지내면서 좋은 아빠되서
나오라고 그러더라
형이 확정 되고
청송 교도소로 이송 갔어
교도소도 급수가 있거든??
점수 잘받아서 2급 1급 수가
되면 혜택이 많아 전화 가석방
가족만남의날 같은거
그래서 무조건 급수 빨리 달려고
바로 공장에 일하려고 신청 했지
열심히 일도 하고 검사님이
보내주신 책읽고 독후감 써서
소장 표창도 받고 모든 교육이란
교육 다 받아서 상장 한 9개? 청장상 까지
받고 .. 공장에서 1년 있고
청송에 직업훈련 교도소에
자격증 따러 신청했지
1년 과정 pc 자격증
한 5개월쯤??? 공부 하던중에
애기 엄마가 소장한테 편지를 썼어
애기 두돌을 앞두고 있는데
셋이서 하루만 같이 보낼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 이야기 기사난거
스크랩 해서..
바로 다음날 담당 계장 와서
부르더라 소장님 특별 지시로
가족만남 의집 해라고..
1박 2일 동안 교도소내에 있는
민박??? 같은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거 있거든..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들과
하루 보냈지.. 맨날
면회 짧은 시간에
아빠딸 아빠딸~ 하던 딸도
실큰 보고 안아보고..
고생하던 애엄마도 다독여 주고
셋이서 밥도 먹고.. 행복했지...
거기 까지 ...
나갈때 까지 한 8개월? 10개월?
남았나 ..
원래 하루도 빠짐 없이 우리
편지 주고 받고 매주 한번은
화상면회 오고 그랬는데
뜸해지는 거야 점점..
애기가 조금 크니깐 어린이집 보내고
직장 다녔거든 애엄마가
이상했지.. 안그러던 사람이
달라지고 화장도 진해지고
머리도 짧게 짜르고..
전화 하면 건성건성에..
아는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 그러고..
아빠한테 말해봤어..
세벽에 집에 가봐도 없대
그러다 헤어졌어 ...
알다시피 그안에서 할수 있는게
뭐가 있어 나가서 붙잡을 수가
있나 ...
전화로 편지로
여태 고생했는데 이제 진짜
얼마 안남았는데 조금만더
견뎌봐라 매달려도 보고..
짐작은 가는데 막상 알게되면
못살꺼 같아서
아무것도 안물어 봤어..
마지막엔 자기땜에 이런일 일어난것도
아닌데 왜 기다려야 되냐 하면서
편지 오길래 단념 했지.. 아니구나..
위에 말했던 사람 이랑 지금 말 하는사람
이랑 180도 달라졌지??
나도 얼마나 충격을 먹었던지...
감기. 이빨. 아프다고
몇달간 약 몰래 숨겨서
모았다가 죽을려고 몇번이나
먹기도 했고 막 그랬는데
아빠가 면회 올때마다
울며 불며 마음다잡으라고
말리더라고.. 그러다
차츰 차츰 마음 진정하고
아까웠어 처음 으로
이렇게 마음잡고 공부도 해봤고
선한 마음??? 가짐으로 살았는게
아깝다고 생각했어
힘들었지만 견뎌보자
나가고 난뒤에 어떻게 해보고
지금은 딸만 생각해 보자 마음먹고
1년과정 끝내고 자격증 따고
집근처 교도소로 자격증
신청 해서 왔어~ 거기서도
무사히 잘 끝마치고 얼마 안있다가
출소 했지...
이야기 보따리
있는 27살 이라고 소개 할께
어릴적엔 그렇게 시간이 안가고 어른이 되고 싶더니
어느새 27살 이란게 믿기지도 않아
남들과 다르게 5년정도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에도
그렇고 여전히 나이값 못해서 답답한 마음 여기서
풀어 놓으려해 아마 이이야기를 보신분 들 중에
아는 분도 있을꺼라 생각해 아마 끝을 알게되면
충격이 겠지만
먼저 나는 6살된 딸이 있어
현재 2년 정도 못봤구나 원래
인성이 쓰레기고 감정이 말라 있는 인간 이지만
그래도 어린이날 이나 딸생일 이나 무슨 날 마다
가슴이 미어 지는건 어쩔수 없는거 같애
나 21살 여자애 19살에 우리
딸이 생겼어
둘다 진짜 멋도 모르고
더군다나 난 사고도 많이 치고
들락날락 거리는 ...
걔도 아빠만 있고 나도 아빠만 있고
반쪽 가정 에서 자라서 그런지
가정을 빨리 꾸리고 싶더라 그래서
일부러 애를 생기게 노력? 했었지
막상 근데 현실에 마주치니깐
내가 살아온거 현재 내모습 을 생각하니
조금 고민되더라 그게 지는 서운했는지
울먹 거리고 아무튼 다음 날 산부인과 를 같지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 하면서
애기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데
와 얼마나 마음이 벅차고 눈물이 나던지
낳자고 했어 두손발 멀쩡하고
뭔들 못할까 싶어서
그렇게 마음 다잡고
말이 조직 생활이지ㅋㅋ
양아치 비슷하게 하던것도
다때려 치우고 산근처에 월세집 얻고
그렇게 신혼생활 시작 했어
저녁이면 말야 같이 손잡고
시장가서 장보고 집에서 밥해먹고
그런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런 소소한 행복들이 너무 꿈만 같은거야
그런데 그것도 오래 못갔어
형들이 나 잡으러 왔고 난 놀래서
물론 여기서 나 욕할 사람 많을꺼야
그런데 한 6~8명 이 흉기들고 쫓아오는데
맨정신이 안들더라
아무튼 놀래서 차타고 추격전 벌이다가
사람을 치었어
피해자 분은
돌아가셨고....
난 그 일로
교도소에 들어갔지...
애엄마가 나이도 어렸고
뱃속에 애도 있는데 혼자
어떻게 지낼지 내가 어떻게 될지
정말 절망 이라는 말이 실감 되더라
한번은 애엄마가 거의
만삭 다되어 갈때 면회를 두번
연달아서 오더라...
그래서 내가 어떻게 무슨돈 으로
이렇게 자주 오냐니깐
보고 싶어서 돼지 저금통 깨서
동전들고 왔대.. 택시타고 버스타고 또 내려서 택시타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한참 울었어
그땐 진짜 둘이 눈만 마주쳐도 서로 서로
걱정에 엉엉 울고...
면회 담당 하는 교도관은 그게또
안쓰러운지 몰래 면회시간 몇분씩 더주시고..
할수 있는게 없고 희망 이라고도 없었는데
그때 내가 뭐든 해서라도 하루 라도
빨리 돌아갈께!!! 했어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진짜 하루에 1번씩 반성문
적어서 법원에 내고 검사님께
편지 계속 쓰고...
검사님이 정말 좋으신분 이였어
나 계속 부르셔서 어떻게 살건지 진로도
잡아주시고 편지도 나한테 써주시고
애엄마한테 애기옷 책 선물도 많이 해주시고..
한번은 갑자기 검사실에서 부르더라고
뜬금 없이... 무슨일 일까 싶어서
긴장 하면서 검사님을 뵈었는데
옆방에 가보라는 거야...
애기엄마 와있더라
둘이 잠시 볼수 있게 도움 주신거지..
배에 귀도 대보고 손도 잡아보고...
뒤쫓아오던 형들도
다 구속 시키고...
내가 일부로 사고 낸게
아니란걸 증명 할수 있게 해주셨어
재판 선고 4일 전에
기다리던 딸도 태어났고
교도소에 조르고 쫄라서 전화도
하고... 근데 기쁨도 잠시
합의가 안됬어 ... 우리가
돈이 있을리는 없었고
방법이 없었지.. 그래서
1심 재판에서 7년 선고 받고..
피해자분 그렇게 해놓고
7년 솔찍히 죄값도 안되
나도 잘알아.. 평생 속죄 하면서
살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 간사한게
갓태어난 딸 가정 생각 하니깐
멀게만 느껴지더라고
7년뒤 돌아간다는게..
애엄마 재판 하는거 지켜보고
끝나고 바로 면회 왔더라
난또 울고 주저 앉으면 어떻하나...
늘 못지키는 말만 했는데
또 빨리 돌아간다는말 못지켰네..
하면서 걱정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무덤덤 하더라고..
힘내자고 2심 재판 다시 열심히
해보자고!
그래.. 이번엔 우리 딸까지
셋이니깐 더 힘내보자!!! 했지
2심 재판 때도 합의가 잘안됬어...
피해자 어머님 께서 재판때 마다
오셔서 나를 원망 많이 하셨고...
너무 죄송한데 이게 죄송하단
말로 사죄드리기엔 한없이
작은 말이잖아 ... 그때
검사님이 이야기 하셨나봐
일부러 사고 낸게 아니고
얘도 살려고 도망치다가 이렇게
된거라고..
피해자 가족분들은
못믿겠다고 그걸 증명 하라고 하셨고..
긴긴 재판 1년쯤 다되갈때
선고 딱 하루 전날
애엄마가 애기 업고 피해자 가족분들
집에 갔어...
피해자 어머님이 보시더니
저어린게 무슨 잘못 이냐며
멀리서 왔을텐데 밥먹으라며
차려주시고 합의서 써주셨대..
4시에 면회 끝나는데
4시 5분에 면회라고
부르길래 면회실 들어서니
애엄마 합의서 이마에 붙이고
들어서드라...
다음날 선고때
3년6월로 감형 됬고
이미 재판 한다고 1년 살았고
2년6개월 군대 갔다 생각하고
열심히 지내면서 좋은 아빠되서
나오라고 그러더라
형이 확정 되고
청송 교도소로 이송 갔어
교도소도 급수가 있거든??
점수 잘받아서 2급 1급 수가
되면 혜택이 많아 전화 가석방
가족만남의날 같은거
그래서 무조건 급수 빨리 달려고
바로 공장에 일하려고 신청 했지
열심히 일도 하고 검사님이
보내주신 책읽고 독후감 써서
소장 표창도 받고 모든 교육이란
교육 다 받아서 상장 한 9개? 청장상 까지
받고 .. 공장에서 1년 있고
청송에 직업훈련 교도소에
자격증 따러 신청했지
1년 과정 pc 자격증
한 5개월쯤??? 공부 하던중에
애기 엄마가 소장한테 편지를 썼어
애기 두돌을 앞두고 있는데
셋이서 하루만 같이 보낼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 이야기 기사난거
스크랩 해서..
바로 다음날 담당 계장 와서
부르더라 소장님 특별 지시로
가족만남 의집 해라고..
1박 2일 동안 교도소내에 있는
민박??? 같은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거 있거든..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들과
하루 보냈지.. 맨날
면회 짧은 시간에
아빠딸 아빠딸~ 하던 딸도
실큰 보고 안아보고..
고생하던 애엄마도 다독여 주고
셋이서 밥도 먹고.. 행복했지...
거기 까지 ...
나갈때 까지 한 8개월? 10개월?
남았나 ..
원래 하루도 빠짐 없이 우리
편지 주고 받고 매주 한번은
화상면회 오고 그랬는데
뜸해지는 거야 점점..
애기가 조금 크니깐 어린이집 보내고
직장 다녔거든 애엄마가
이상했지.. 안그러던 사람이
달라지고 화장도 진해지고
머리도 짧게 짜르고..
전화 하면 건성건성에..
아는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 그러고..
아빠한테 말해봤어..
세벽에 집에 가봐도 없대
그러다 헤어졌어 ...
알다시피 그안에서 할수 있는게
뭐가 있어 나가서 붙잡을 수가
있나 ...
전화로 편지로
여태 고생했는데 이제 진짜
얼마 안남았는데 조금만더
견뎌봐라 매달려도 보고..
짐작은 가는데 막상 알게되면
못살꺼 같아서
아무것도 안물어 봤어..
마지막엔 자기땜에 이런일 일어난것도
아닌데 왜 기다려야 되냐 하면서
편지 오길래 단념 했지.. 아니구나..
위에 말했던 사람 이랑 지금 말 하는사람
이랑 180도 달라졌지??
나도 얼마나 충격을 먹었던지...
감기. 이빨. 아프다고
몇달간 약 몰래 숨겨서
모았다가 죽을려고 몇번이나
먹기도 했고 막 그랬는데
아빠가 면회 올때마다
울며 불며 마음다잡으라고
말리더라고.. 그러다
차츰 차츰 마음 진정하고
아까웠어 처음 으로
이렇게 마음잡고 공부도 해봤고
선한 마음??? 가짐으로 살았는게
아깝다고 생각했어
힘들었지만 견뎌보자
나가고 난뒤에 어떻게 해보고
지금은 딸만 생각해 보자 마음먹고
1년과정 끝내고 자격증 따고
집근처 교도소로 자격증
신청 해서 왔어~ 거기서도
무사히 잘 끝마치고 얼마 안있다가
출소 했지...
남은 이야기는 내일. 할게!!!
너무 길어서 다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