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성과 남성들을 외롭게 만들고 그로인해 더욱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기도 하는 것 같다.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위안부들을 전쟁터로 보내어 같이 생활하게 했던 사례들도 있었지만, 전쟁은 인간의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미국에서 처음 포르노 음란물들이 생겨나게 된 것도 전쟁에 의해서이다. 전쟁으로 아내와 애인에게서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병사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포르노 음란물을 필요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북전쟁이 장기화 되자, 링컨 대통령은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괴로워했고, 그러던 어느 날 1863년 백악관으로 편지 봉투 하나가 날아들었다. 편지 봉투 속에는 여성들의 누드 사진을 판매하는 광고지가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광고지는 우편을 통해 사진 한 장에 12센트, 10장에 1달러 20센트에 판매한다는 내용을 선전하고 있었다. 포르노의 종류도 인디언 처녀들에서 백마들의 축제, 러시아 소녀, 노예 소녀 등 무척이나 다양했다. 그럼 이 광고지를 대통령에게 보낸 사람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에게 포르노를 팔아보려는 심산이었을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북군의 장교 토슬리 대위는 병사들이 이런 사진을 보고 있다는 것과 장교들도 포르노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광고지를 백악관으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은 링컨대통령은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않았고, 사진을 유통시킨 사람들도 전혀 처벌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전쟁터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포르노를 보는 것을 대통령이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18세기 성애소설을 좋아하던 미국인들은 영국이나 유럽에서 수입된 책들을 읽었는데, 벤저민 프랭클린은 성애소설을 소장했던 최초의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성애소설들을 규제하고 단속하는 법안이 있었지만 거의 실행되지 않았으며 실행 불가능한 일이었다. 1846년 아일랜드 인이었던 윌리엄 헤인스는 미국인 작가들을 고용하여 음란 서적을 출판하지 시작했고 이렇게 하여 미국의 음란 산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는 연간 1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음란 서적이나 음란물들이 규제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앤소니 컴스톡의 등장으로 은밀한 뒷거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컴스톡은 음란물을 철저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원래 하찮은 가게의 점원 출신이었지만 뉴욕퇴폐추방협회 회장으로 선임되고 특별요원으로 임명된다. 그는 체신부 장관을 로비하여 모든 우편물을 통제했고, 음란물 선정기준과 범죄자 선정에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의 거침없고 독선적인 성격은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진열대 마네킹에게 옷을 입히는 점원까지 음란하다고 처벌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그가 체포한 음란물 범죄자들은 열차 60칸을 모두 채울 정도였고, 그 중에는 옷 가게의 점원처럼 억울하게 잡혀온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도가 너무 지나쳐 문학과 신문, 연극까지 통제하려고 했으며 많은 비평가들과 극작가들도 그를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미국인들은 컴스톡의 지나친 윤리관에 식상하게 되었지만,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그를 국제 정화 위원회의 미국 대표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곧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서점의 구석에 숨겨져 있었던 성애소설들이 진열대 선반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또한 1995년 의회가 인터넷에서 플레이보이와 같은 음란물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클린턴 대통령도 이를 승인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시 컴스톡의 세력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자유국가인 미국에서 포르노 음란물을 규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의 성적인 자극을 부추기는 포르노 음란물은 인간의 성욕이 존재하고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누드를 본 링컨대통령은 침묵
다.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위안부들을 전쟁터로 보내어 같이
생활하게 했던 사례들도 있었지만, 전쟁은 인간의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처음 포르노 음란물들이 생겨나게 된 것도 전쟁에 의해서이다. 전쟁으로 아내와 애
인에게서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병사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포르노 음란물을 필요로 하
게 되었던 것이다.
남북전쟁이 장기화 되자, 링컨 대통령은 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괴로워했고, 그러던 어느 날
1863년 백악관으로 편지 봉투 하나가 날아들었다. 편지 봉투 속에는 여성들의 누드 사진을 판
매하는 광고지가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광고지는 우편을 통해 사진 한 장에 12센트, 10장
에 1달러 20센트에 판매한다는 내용을 선전하고 있었다. 포르노의 종류도 인디언 처녀들에서
백마들의 축제, 러시아 소녀, 노예 소녀 등 무척이나 다양했다. 그럼 이 광고지를 대통령에게
보낸 사람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에게 포르노를 팔아보려는 심산이었을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북군의 장교 토슬리 대위는 병사들이 이런 사진을 보고 있다는 것과 장교
들도 포르노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광고지를 백악관으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 편
지를 받은 링컨대통령은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않았고, 사진을 유통시킨 사람들도 전혀 처벌
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전쟁터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포르노를 보는 것을
대통령이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18세기 성애소설을 좋아하던 미국인들은 영국이나 유럽에서 수입된 책들을 읽었는데, 벤저민
프랭클린은 성애소설을 소장했던 최초의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성애소설들을 규제하고 단속하는 법안이 있었지만 거의 실행되지 않았으며 실행 불가
능한 일이었다.
1846년 아일랜드 인이었던 윌리엄 헤인스는 미국인 작가들을 고용하여 음란 서적을 출판하지
시작했고 이렇게 하여 미국의 음란 산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는 연간 10만 부 이상의 판매
고를 올리며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음란 서적이나 음란물들이 규제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앤소니 컴스톡의 등장으로 은밀
한 뒷거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컴스톡은 음란물을 철저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원래 하찮은 가게의 점원 출신이었지
만 뉴욕퇴폐추방협회 회장으로 선임되고 특별요원으로 임명된다. 그는 체신부 장관을 로비하
여 모든 우편물을 통제했고, 음란물 선정기준과 범죄자 선정에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
나 그의 거침없고 독선적인 성격은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진열대 마네킹에게 옷을 입히
는 점원까지 음란하다고 처벌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그가 체포한 음란물 범죄자들은
열차 60칸을 모두 채울 정도였고, 그 중에는 옷 가게의 점원처럼 억울하게 잡혀온 사람들도 상
당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도가 너무 지나쳐 문학과 신문, 연극까지 통제하려고 했으며 많
은 비평가들과 극작가들도 그를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미국인들은 컴스톡의 지나친 윤
리관에 식상하게 되었지만,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그를 국제 정화 위원회의 미국 대표로 임명
하였다. 그러나 곧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서점의 구석에 숨겨져 있었던 성애소설들이 진열대 선
반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또한 1995년 의회가 인터넷에서 플레이보이와 같은 음란물을 규제하
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클린턴 대통령도 이를 승인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시 컴스톡의 세
력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자유국가인 미국에서 포르노 음란물을 규제하는 것은 거
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의 성적인 자극을 부추기는 포르노 음란물은 인간의 성욕이 존재
하고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