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주의) 이 글을 쓰기 전 저는 글 쓰는 제주가 없습니다.앞뒤가 안 맞기도 하고 흐름대로 써야 읽으실 때 머리로 대충 그림이 나오긴 하는데 앞에 말했다시피 저는 글쓰는 제주가 없고 그럴만한 정신이 안돼서 이해 좀 해주세요...제 감정을 하나하나 말하기엔 정말 너무 길어서 그나마 간추려서 썼습니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읽어줬으면 좋겠습니다.(이 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2017년 7월 9일 우리가 정식으로 연애하기 시작한 날짜다.나는 널 만나기 전부터 내 성격상 기념일 같은 걸 생각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너가 내게 화를 냈다. "우리가 사귄 날짜도 몰라?!" 나는 대답할 수 없었기에 너에게 혼났다. 서운해하는 너를 보며 나는 어떻게든 풀어주고 싶었고, 이런 일로 너를 조금이나마 서운해하지 않게, 나는 그날이후로 더 이상 우리의 기념일을 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너는 우리의 기념일인 7월 9일을 '친구'라고 쉽게 나를 이해시켰고, 나는 아직까지도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처음 우리가 눈이 맞았을 당시 너에겐 남자친구, 나에겐 여자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때 당시 여자친구에게 상처를 받아 이별을 준비한 상태였다.때마침 그때 네가 내 눈에 들어왔고. 너의 눈에도 내가 들어왔다. 서로 만나던 이성에 대한 마음이 많이 허물어져 나도 너도 다 헤어지고, 그때부터 너를 만나는 날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만나는 날이 점점 많아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마음이 더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번 만나다 끝에 정식으로 연애를 하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고 내 눈엔 너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를 만날 때 일을 그만둔지 3개월이 됐었다.노래 가삿말처럼 내 주머니엔 돈 대신 먼지만 가득해왔기에 우리가 연애하면서 한 달 동안은 네가 날 먹여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는 나에게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아 했고, 아까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기를 살려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때 당시 내가 돈 때문에 힘들어있을 때, 내 힘든 것들을 너가 함께 짊어지고 가주었고, 힘들면 기대도 된다는 말에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너에게 내 마음을 다 열기 시작했고, 너에게 반해버렸다. 너의 나이 또래에 비해 생각하는 거, 말하는 거, 행동하는 게 성숙해 보여 나도 모르게 너에게 의지가 됐다.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어서 네가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고, 비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너는 나에게 든든한나무 같은 존재였다. 그로 인해 나는 너에게 한 번더 반해버렸다.
이쁜 여자보다 귀여운 여자, 생각만이 아닌 행동하는 여자, 애교 많은 여자. 나의 이상형에 부족함 없는 너는 말 그대로 나에게 완벽한 여자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여자를 이제서야 만나서 정말 너무 행복했다. 이런 여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있어도 나는 너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있고 싶었다. 너는 나에게 로또 1등 용지 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고, 그렇기에 나는 어딜 가나 철벽남이라는 말을 처음 들을 정도로 다른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도 않았고, 너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컸기에 너가 커플 문신을 하자 했을 때 나는 1초의 망설임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처음엔 손가락에 조그맣게반지 모양으로 서로의 이름을 새기자 했던 너를, 내가 팔뚝에 서로 이름을 새기자며 졸랐다. 너는 한참 후에 동의를 했고 우리는 그렇게 팔뚝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며 타투이스트 분에게 우리 결혼할 때 꼭 청첩장 보내겠다고 확신 담긴 말을 하며 꼭 와달라고 얘기를 했다. 여러 개의 문신이 있던 너와 반면에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새긴 문신은 너의 이름이었다. "커플 문신은 절대 하면 안 돼! 진짜 나중에 정말 후회해"라는 말은 주위에서도 그렇고 흔히 볼 수 있는 sns에서도 많이 봐왔지만 그때만큼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믿고 싶지않았다. 나는 너만 믿었다. 아니 너만 믿고 싶었다.이렇게 서로의 몸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면 절대 헤어지지 않으리 나는 굳게 믿었다. 그렇기에 너에게 손가락이 아닌 팔뚝에 새기자 한 이유였다. 내 선택이 옳았던 것인가 우리가 처음으로 헤어질 일이 있었을 때 문신이라는 고리가 우리 사이를 단단하게 묶고 있었다.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는 너의 말에 나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한 행동이 잘 못 되지 않았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너는 셋째 이모부를 일주일에 많으면 두 번, 적으면 한 번은 꼭 만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나는 너를 보는 나는 질투가 났다. 왜 이렇게 많이 만나냐며 뭐라 하는 나에게, 너는 "나 원래 오빠 만나기 전 전 남자친구 만났을 때도 일주일에 많이 보면 2~3번씩도 보는데 오빠가 싫어하는 거 같아 보여서 나도 줄이고 있어~사랑해♡"라며 손가락 하트를 보내며 웃으면서 얘기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너에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난 그래도 질투가 났고 왠지 모르게 이때부터 너에게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네가 말한 대로라면 이모부 직업은 박사? 연구원? 둘 중 하나인 거로 기억하는데 이모부 사고 나셔서 차 없으니까 역으로 데리러 가야 한다고. 근데 그게 한두 번이면 의심을 안 하겠는데 만나러 갈 때마다 매번 역으로 데리러 가는 것도 뭔가 수상했다. 돈 많은 박사 혹은 연구원이 차가 없고 매번 만날 때마다 역으로 데리러 가야 된다고? 묻고 따지고 싶었지만 너는 내가 이모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진짜 정떨어진다는 말을 매번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의심이 가도 너가 내 옆에서 떠나게 될까 봐 아무 얘기도 못하고 잠자코 의심만 하게 됐다.나랑 놀고 있다가도 잠깐 이모부 만나러 갔다 오는날에는 나는 데이트하고 있던 주변 pc방에 가서 하지도 않는 게임을 하며 네가 올 때까지만 기다렸다. 이모부를 만나면서 간간이 연락하는 너의 카톡이나 전화는 나를 더욱더 애타게 만들었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너를 바로잡게 해주시려고 너의 이모부께서 너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시며 옆에선 내가 도와주겠다고 카페에 가서 너와 같이 영단어를 외웠다.이모부께선 너를 엄청 아껴하시는 거 같아 보였다. 너 또한 이모부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해맑게 웃고 오늘도 이모부랑 공부 잘 했다면서 나에게 보고 싶었다고 꽉 안기고 뽀뽀를 해줬다.이모부께선 내가 너랑 잘 어울린다고 매번 너에게 용돈을 주셨다. 우린 그 돈으로 밥을 먹고 데이트하는데 썼다.
너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너무 행복했다. 정말 나는 다 가진 기분이었고, 지나가는 고급 외제차마저 부럽지 않고 난 너 하나로 만족했다.그렇게 놀고 새벽이 되면 각자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게 너무 싫어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몇 분도 안된 채 나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또 물었다. 애교를 피우며 너를 유혹하는 말을 하고 삐진 척도 했었다. 우린 그렇게 3개월 동안 집에 간 날보다 너와 함께 있었던 날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붙어있는 날이 더 많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집 들어가는 것조차 싫어서 정말 같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 적으로 넉넉지 못하였기에 인터넷으로 밖에 구경해야만 했다.
너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면접을 보고 김칫국이라도 마시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부동산에 들어가, 꼭 우리가 바로 입주할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여기저기 방을 보러 다녔다.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좋았다. 너와 한 지붕 아래같이 살고, 같이 밥하며,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그림을 상상했다. 옆에 서있는 너의 얼굴엔 미소가 띠었고 너 또한 내가 느낀 느낌을 같이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보증금과 방세를 낼 돈이 없기에 차로 돌아와 그저 나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만 푹 쉬었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 대단한 거 같다. 우리는 없는 돈을 어떻게든 만들어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예상치 못하게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된 풀옵션이 아닌, 있을 것만 있는 그런 집이었다. 막상 자취방에 들어오니 무엇이 필요한지 두 머리를 맞대며 생각했다.역시 집에서 살림을 잘했던 너인지 나보다 캐치하는 것도 빨랐고 섬세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다 적은 너는, 새 제품이 아닌 마치 당연한 거처럼 네 x 버 중고나라, 번 x 장터에 들어가 하나하나 찾아보고 제일 싸고 좋아 보이는 걸 보고 있는 너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정말 너무 미안했다. 항상 좋은 것만 주고 싶고, 맛있는 것만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그렇게 집에 가구를 하나씩 들여놓고 나니 그때야 같이 사는 게 실감 났다.
너도 나도 자취방에 가까운 직장을 얻고 나는 너보다 5시간 더 일을 하는 상황이라 너의 퇴근시간에 맞춰 나의 저녁시간을 너에게 맞췄고네가 해주는 밥은 정말 너무나도 맛있었다.사실 찌개 할 때마다 조금 짰지만 하나도 안 짜다고,간 잘 됐다고, 정말 내 입맛에 맞다고, 너무 맛있다고, 우리 나중에 식당이나 하자고, 너의 요리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밥을 먹는 내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는 말을 몇 번을 했는지.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자기가 더 행복하다고 나보다 더 행복해했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네가 일하는 곳까지는 걸어서 단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네가 아프면 걱정돼서 편의점에 가 꿀물이라도 사다 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너가 퇴근하면 나의 얼굴을 보고 넌 자취집으로 향해 갔다. 행복했다. 이대로 라면 이 여자하고 정말 결혼할 수 있을 거라 혼자 김칫국을 마셨다.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너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도 커져서 나는 어느새부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많이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혹시라도 내 옆에서 떠나가면,그때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정말 두려웠다.
같이 살면 정말 좋을 줄 알았는데 우리한텐 그게 아니었다.우리의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됐다.자취방도 겨우 잡은 상황에 우리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일어났다.
네가 집을 나와 살게 되자 너희 집에서는 강아지 입양시키라고 하셨고, 자동차 명의이전, 보험 명의의 전, 각종 보험이 전 모든 걸 아무런 예고도 없이 너에게 통보를 하셨다. 입주한지 아직 한 달도 안된 상태에서 우리에겐 월급도 약 한 달 후에 나오고 월급이라고 해봤자 별로 안되는 돈으로는 우리가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돈 십만 원이 아니고 돈 백만 원대가 되니 옆에 있는 내가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그저 나는 내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강아지는 우리가 키우기로 했지만 돈 적으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보다 너가 훨씬 더 힘들었고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 나 또한 너무 힘들었다. 몇 주를 지내다가 우리는 여러 번 타투고 싸웠었다. 너가 제일 싫어하는 '의심'. 너가 그랬었지. 전 남자친구랑 만났을 때는 정말 프리하게 연애했다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지. 그 사람의 직업이 직업군인이었으니까.평일에는 어쩔 수 없이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주말에만 봐야 했어야 했으니까. 넌 전 남자친구랑 연애할 때 정말 친하다고 하는 남자인 친구들과도 한 명은 일주일에 3~4번 보고 다른 한 명은 일주일에 5번 본다고. 그러다가 나를 만나고 나서는 친구를 못 만나고 매일 일하고 집에만 박혀있는 게 싫다고 그랬지? 나는 너에게 친구 만나지 말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같이 살기 전이나 후나 나랑 같이 있어서 못 만나는 거 나도 아니까 내가 몇 번이나 친구 좀 만나라고 얘기했었다. 대신 남자 말고 여자랑 놀라고 얘기해도 너는 너가 안 만났었다. 남자친구 있는데 친구랑은 놀고 싶은데 여자가 아닌 남자랑 놀고 싶다는 말이 대체 어디서부터 생각을 해야 그런 말이 나올까? 자기 외에 남자랑 단둘이 만나서 커피 마시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너의 전 남자친구는 그걸 이해해준 것일까? 아니면 너가 평일에 어떻게 지내는지 눈으로 보지 못할뿐더러 너가 "나 뭐 하고 있어~"라고 연락을 남기면 굳이 굳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전 남자친구는 그것도 모르고 너는 그 사람을 속이고 계속 둘이 만났던 거야?라고 묻고 싶다. 이건 너에게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남자인 친구랑 단둘이 만나서 커피 마시고 노는 걸 내가 이해 못 하니까 힘들어하고, 돈 때문에 힘들어하던 너가 더 힘들어지고 어느새부턴가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너에 말투, 표정, 말하는 억양에 따라 내 기분이 좌우되고 너에 말 한마디에 내 머리와 몸이 반응했다. 너의 기분이 좋으면 나 또한 좋아졌고 너의 기분이 안좋으면 걱정부터 되었다.
우리는 다른 연인과 달리 서로 전 이성친구에 대한 얘기를 서슴없이 많이 했다. 너의 전 남자친구는 너를 1년 동안 만나면서 다 이해해주고 싸운 적이 없고 정말 착하다는 말을 했을 때 "내가 더 잘해줘야지 그럼 그 사람 생각 안 나겠지"라고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랑 정반대였다. 나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활발하고 장난기 많고 특히 다혈질이 심하며 감정 기복이 정말 심했다.너는 나랑 다투거나 싸우거나 너의 기분이 토라지기만 하면 그럴 때마다 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난다는 말에 나는 화가 났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온 습관인데 나도 정말 힘들게 노력하고 있는데 단 한 번에 바꾸는 건 정말 나에겐 너무 힘들었다. 나는 너만 바라보고 있는데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이 달라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나는 내 마음을 주최할 수가 없어서 결국 너에게 내 감정을 들켜버리고 말았다.다혈질을 고치려고 약 먹지 않고 너 생각하면서 정말 많이 고쳤다. 아니 사실 고친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너가 나에게 스스로 깨닫게 해줬다.화가 치밀어 오를 땐 너가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나 나는 내 감정을 억제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은 언젠간 너가 내 옆에서 떨어져 나갈게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불과 며칠 전이다.네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때였다. 내가 무슨 일 있는 듯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너는 평소와 다르게 나를 걱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고 괴로워서 그런지 일하는 동안 창고에 가서 하염없이 울다 왔다. 그냥 눈물이 났고 너무 슬펐다.
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너는 나에게 남자인 친구를 만나도 되냐는 말에 내 가슴은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난 분명 남자랑 단둘이 만나는 거조차 싫다 했는데알면서도 나에게 물어본다는 건 "아 막장이구나"라고 생각했고 내가 여기서 또 한 번 뭐라 하면 네가 이상해진 걸 알았기에 나에게 부처 떠날까 봐 가지 말라고는 못해, 쿨한 척 "만나~"라고 하며 내 심장은 요동쳤고 내 신경세포는 온갖 너에게 집중되었다. 너의 말이 맞다. 나는 의심병이 있는 사람인 걸.연애 초반 때 서로 집에서 자는 날이면 네가 어디 나갈까 봐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통화를 했고. 혹시나 내가 잠들면 나갈까 봐 네가 잠이 들고나서 나는 자는 척을 했고 피곤해도 몇 시간 후에 잔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네가 갑자기 피곤하다면서 잔다 했을 때나는 뭔가 좋지 않았다.이 날 역시 영상통화를 하고 네가 잔 후에야 나는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시로 너의 핸드폰을 보며, 네가 싫다고 하는 날에는 네가 자리를 잠시 비울 때 나는 죄지은 거 마냥 몰래 봤어야 했다.누가 봐도 나는 의심병 환자로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너를 만나는 내내 자는 시간 빼고 항상 의심을 했었다.
--이 글을 쓴 이유가 이제부터 시작인데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썼네요. 이후 이야기가 있는데 쓰는데로 바로바로 업뎃하겠습니다.미리 말하지만 저는 미친놈입니다. 주위 사람들 10이면 10명이 다 미친놈이라고 사랑과 전쟁 프로그램에 제보하고 싶다는 같은 말만 하네요. 단,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만 잊지 말아 주세요--
이별 후 동거는 계속 됬다.(긴 글 주의).
2017년 7월 9일 우리가 정식으로 연애하기 시작한 날짜다.나는 널 만나기 전부터 내 성격상 기념일 같은 걸 생각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너가 내게 화를 냈다. "우리가 사귄 날짜도 몰라?!" 나는 대답할 수 없었기에 너에게 혼났다. 서운해하는 너를 보며 나는 어떻게든 풀어주고 싶었고, 이런 일로 너를 조금이나마 서운해하지 않게, 나는 그날이후로 더 이상 우리의 기념일을 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너는 우리의 기념일인 7월 9일을 '친구'라고 쉽게 나를 이해시켰고, 나는 아직까지도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처음 우리가 눈이 맞았을 당시 너에겐 남자친구, 나에겐 여자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때 당시 여자친구에게 상처를 받아 이별을 준비한 상태였다.때마침 그때 네가 내 눈에 들어왔고. 너의 눈에도 내가 들어왔다. 서로 만나던 이성에 대한 마음이 많이 허물어져 나도 너도 다 헤어지고, 그때부터 너를 만나는 날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만나는 날이 점점 많아질수록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마음이 더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번 만나다 끝에 정식으로 연애를 하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고 내 눈엔 너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를 만날 때 일을 그만둔지 3개월이 됐었다.노래 가삿말처럼 내 주머니엔 돈 대신 먼지만 가득해왔기에 우리가 연애하면서 한 달 동안은 네가 날 먹여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는 나에게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아 했고, 아까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기를 살려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때 당시 내가 돈 때문에 힘들어있을 때, 내 힘든 것들을 너가 함께 짊어지고 가주었고, 힘들면 기대도 된다는 말에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을 보고 너에게 내 마음을 다 열기 시작했고, 너에게 반해버렸다. 너의 나이 또래에 비해 생각하는 거, 말하는 거, 행동하는 게 성숙해 보여 나도 모르게 너에게 의지가 됐다.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어서 네가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고, 비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너는 나에게 든든한나무 같은 존재였다. 그로 인해 나는 너에게 한 번더 반해버렸다.
이쁜 여자보다 귀여운 여자, 생각만이 아닌 행동하는 여자, 애교 많은 여자. 나의 이상형에 부족함 없는 너는 말 그대로 나에게 완벽한 여자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여자를 이제서야 만나서 정말 너무 행복했다. 이런 여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있어도 나는 너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있고 싶었다. 너는 나에게 로또 1등 용지 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고, 그렇기에 나는 어딜 가나 철벽남이라는 말을 처음 들을 정도로 다른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도 않았고, 너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너무 컸기에 너가 커플 문신을 하자 했을 때 나는 1초의 망설임 없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처음엔 손가락에 조그맣게반지 모양으로 서로의 이름을 새기자 했던 너를, 내가 팔뚝에 서로 이름을 새기자며 졸랐다. 너는 한참 후에 동의를 했고 우리는 그렇게 팔뚝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며 타투이스트 분에게 우리 결혼할 때 꼭 청첩장 보내겠다고 확신 담긴 말을 하며 꼭 와달라고 얘기를 했다. 여러 개의 문신이 있던 너와 반면에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새긴 문신은 너의 이름이었다. "커플 문신은 절대 하면 안 돼! 진짜 나중에 정말 후회해"라는 말은 주위에서도 그렇고 흔히 볼 수 있는 sns에서도 많이 봐왔지만 그때만큼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믿고 싶지않았다. 나는 너만 믿었다. 아니 너만 믿고 싶었다.이렇게 서로의 몸에, 서로의 이름을 새기면 절대 헤어지지 않으리 나는 굳게 믿었다. 그렇기에 너에게 손가락이 아닌 팔뚝에 새기자 한 이유였다. 내 선택이 옳았던 것인가 우리가 처음으로 헤어질 일이 있었을 때 문신이라는 고리가 우리 사이를 단단하게 묶고 있었다.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는 너의 말에 나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한 행동이 잘 못 되지 않았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너는 셋째 이모부를 일주일에 많으면 두 번, 적으면 한 번은 꼭 만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만나는 너를 보는 나는 질투가 났다. 왜 이렇게 많이 만나냐며 뭐라 하는 나에게, 너는 "나 원래 오빠 만나기 전 전 남자친구 만났을 때도 일주일에 많이 보면 2~3번씩도 보는데 오빠가 싫어하는 거 같아 보여서 나도 줄이고 있어~사랑해♡"라며 손가락 하트를 보내며 웃으면서 얘기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너에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난 그래도 질투가 났고 왠지 모르게 이때부터 너에게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네가 말한 대로라면 이모부 직업은 박사? 연구원? 둘 중 하나인 거로 기억하는데 이모부 사고 나셔서 차 없으니까 역으로 데리러 가야 한다고. 근데 그게 한두 번이면 의심을 안 하겠는데 만나러 갈 때마다 매번 역으로 데리러 가는 것도 뭔가 수상했다. 돈 많은 박사 혹은 연구원이 차가 없고 매번 만날 때마다 역으로 데리러 가야 된다고? 묻고 따지고 싶었지만 너는 내가 이모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진짜 정떨어진다는 말을 매번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의심이 가도 너가 내 옆에서 떠나게 될까 봐 아무 얘기도 못하고 잠자코 의심만 하게 됐다.나랑 놀고 있다가도 잠깐 이모부 만나러 갔다 오는날에는 나는 데이트하고 있던 주변 pc방에 가서 하지도 않는 게임을 하며 네가 올 때까지만 기다렸다. 이모부를 만나면서 간간이 연락하는 너의 카톡이나 전화는 나를 더욱더 애타게 만들었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너를 바로잡게 해주시려고 너의 이모부께서 너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시며 옆에선 내가 도와주겠다고 카페에 가서 너와 같이 영단어를 외웠다.이모부께선 너를 엄청 아껴하시는 거 같아 보였다. 너 또한 이모부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해맑게 웃고 오늘도 이모부랑 공부 잘 했다면서 나에게 보고 싶었다고 꽉 안기고 뽀뽀를 해줬다.이모부께선 내가 너랑 잘 어울린다고 매번 너에게 용돈을 주셨다. 우린 그 돈으로 밥을 먹고 데이트하는데 썼다.
너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너무 행복했다. 정말 나는 다 가진 기분이었고, 지나가는 고급 외제차마저 부럽지 않고 난 너 하나로 만족했다.그렇게 놀고 새벽이 되면 각자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게 너무 싫어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몇 분도 안된 채 나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또 물었다. 애교를 피우며 너를 유혹하는 말을 하고 삐진 척도 했었다. 우린 그렇게 3개월 동안 집에 간 날보다 너와 함께 있었던 날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붙어있는 날이 더 많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집 들어가는 것조차 싫어서 정말 같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 적으로 넉넉지 못하였기에 인터넷으로 밖에 구경해야만 했다.
너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면접을 보고 김칫국이라도 마시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부동산에 들어가, 꼭 우리가 바로 입주할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여기저기 방을 보러 다녔다.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 좋았다. 너와 한 지붕 아래같이 살고, 같이 밥하며,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그림을 상상했다. 옆에 서있는 너의 얼굴엔 미소가 띠었고 너 또한 내가 느낀 느낌을 같이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보증금과 방세를 낼 돈이 없기에 차로 돌아와 그저 나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만 푹 쉬었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 대단한 거 같다. 우리는 없는 돈을 어떻게든 만들어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예상치 못하게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된 풀옵션이 아닌, 있을 것만 있는 그런 집이었다. 막상 자취방에 들어오니 무엇이 필요한지 두 머리를 맞대며 생각했다.역시 집에서 살림을 잘했던 너인지 나보다 캐치하는 것도 빨랐고 섬세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다 적은 너는, 새 제품이 아닌 마치 당연한 거처럼 네 x 버 중고나라, 번 x 장터에 들어가 하나하나 찾아보고 제일 싸고 좋아 보이는 걸 보고 있는 너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정말 너무 미안했다. 항상 좋은 것만 주고 싶고, 맛있는 것만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그렇게 집에 가구를 하나씩 들여놓고 나니 그때야 같이 사는 게 실감 났다.
너도 나도 자취방에 가까운 직장을 얻고 나는 너보다 5시간 더 일을 하는 상황이라 너의 퇴근시간에 맞춰 나의 저녁시간을 너에게 맞췄고네가 해주는 밥은 정말 너무나도 맛있었다.사실 찌개 할 때마다 조금 짰지만 하나도 안 짜다고,간 잘 됐다고, 정말 내 입맛에 맞다고, 너무 맛있다고, 우리 나중에 식당이나 하자고, 너의 요리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밥을 먹는 내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는 말을 몇 번을 했는지.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자기가 더 행복하다고 나보다 더 행복해했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네가 일하는 곳까지는 걸어서 단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네가 아프면 걱정돼서 편의점에 가 꿀물이라도 사다 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너가 퇴근하면 나의 얼굴을 보고 넌 자취집으로 향해 갔다. 행복했다. 이대로 라면 이 여자하고 정말 결혼할 수 있을 거라 혼자 김칫국을 마셨다.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너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도 커져서 나는 어느새부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많이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혹시라도 내 옆에서 떠나가면,그때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정말 두려웠다.
같이 살면 정말 좋을 줄 알았는데 우리한텐 그게 아니었다.우리의 불행은 이제부터 시작됐다.자취방도 겨우 잡은 상황에 우리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일어났다.
네가 집을 나와 살게 되자 너희 집에서는 강아지 입양시키라고 하셨고, 자동차 명의이전, 보험 명의의 전, 각종 보험이 전 모든 걸 아무런 예고도 없이 너에게 통보를 하셨다. 입주한지 아직 한 달도 안된 상태에서 우리에겐 월급도 약 한 달 후에 나오고 월급이라고 해봤자 별로 안되는 돈으로는 우리가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돈 십만 원이 아니고 돈 백만 원대가 되니 옆에 있는 내가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그저 나는 내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강아지는 우리가 키우기로 했지만 돈 적으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보다 너가 훨씬 더 힘들었고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 나 또한 너무 힘들었다. 몇 주를 지내다가 우리는 여러 번 타투고 싸웠었다. 너가 제일 싫어하는 '의심'. 너가 그랬었지. 전 남자친구랑 만났을 때는 정말 프리하게 연애했다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지. 그 사람의 직업이 직업군인이었으니까.평일에는 어쩔 수 없이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주말에만 봐야 했어야 했으니까. 넌 전 남자친구랑 연애할 때 정말 친하다고 하는 남자인 친구들과도 한 명은 일주일에 3~4번 보고 다른 한 명은 일주일에 5번 본다고. 그러다가 나를 만나고 나서는 친구를 못 만나고 매일 일하고 집에만 박혀있는 게 싫다고 그랬지? 나는 너에게 친구 만나지 말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같이 살기 전이나 후나 나랑 같이 있어서 못 만나는 거 나도 아니까 내가 몇 번이나 친구 좀 만나라고 얘기했었다. 대신 남자 말고 여자랑 놀라고 얘기해도 너는 너가 안 만났었다. 남자친구 있는데 친구랑은 놀고 싶은데 여자가 아닌 남자랑 놀고 싶다는 말이 대체 어디서부터 생각을 해야 그런 말이 나올까? 자기 외에 남자랑 단둘이 만나서 커피 마시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너의 전 남자친구는 그걸 이해해준 것일까? 아니면 너가 평일에 어떻게 지내는지 눈으로 보지 못할뿐더러 너가 "나 뭐 하고 있어~"라고 연락을 남기면 굳이 굳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전 남자친구는 그것도 모르고 너는 그 사람을 속이고 계속 둘이 만났던 거야?라고 묻고 싶다. 이건 너에게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남자인 친구랑 단둘이 만나서 커피 마시고 노는 걸 내가 이해 못 하니까 힘들어하고, 돈 때문에 힘들어하던 너가 더 힘들어지고 어느새부턴가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너에 말투, 표정, 말하는 억양에 따라 내 기분이 좌우되고 너에 말 한마디에 내 머리와 몸이 반응했다. 너의 기분이 좋으면 나 또한 좋아졌고 너의 기분이 안좋으면 걱정부터 되었다.
우리는 다른 연인과 달리 서로 전 이성친구에 대한 얘기를 서슴없이 많이 했다. 너의 전 남자친구는 너를 1년 동안 만나면서 다 이해해주고 싸운 적이 없고 정말 착하다는 말을 했을 때 "내가 더 잘해줘야지 그럼 그 사람 생각 안 나겠지"라고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랑 정반대였다. 나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활발하고 장난기 많고 특히 다혈질이 심하며 감정 기복이 정말 심했다.너는 나랑 다투거나 싸우거나 너의 기분이 토라지기만 하면 그럴 때마다 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난다는 말에 나는 화가 났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온 습관인데 나도 정말 힘들게 노력하고 있는데 단 한 번에 바꾸는 건 정말 나에겐 너무 힘들었다. 나는 너만 바라보고 있는데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이 달라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나는 내 마음을 주최할 수가 없어서 결국 너에게 내 감정을 들켜버리고 말았다.다혈질을 고치려고 약 먹지 않고 너 생각하면서 정말 많이 고쳤다. 아니 사실 고친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너가 나에게 스스로 깨닫게 해줬다.화가 치밀어 오를 땐 너가 했던 말이 계속 생각나 나는 내 감정을 억제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은 언젠간 너가 내 옆에서 떨어져 나갈게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불과 며칠 전이다.네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때였다. 내가 무슨 일 있는 듯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너는 평소와 다르게 나를 걱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고 괴로워서 그런지 일하는 동안 창고에 가서 하염없이 울다 왔다. 그냥 눈물이 났고 너무 슬펐다.
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너는 나에게 남자인 친구를 만나도 되냐는 말에 내 가슴은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난 분명 남자랑 단둘이 만나는 거조차 싫다 했는데알면서도 나에게 물어본다는 건 "아 막장이구나"라고 생각했고 내가 여기서 또 한 번 뭐라 하면 네가 이상해진 걸 알았기에 나에게 부처 떠날까 봐 가지 말라고는 못해, 쿨한 척 "만나~"라고 하며 내 심장은 요동쳤고 내 신경세포는 온갖 너에게 집중되었다. 너의 말이 맞다. 나는 의심병이 있는 사람인 걸.연애 초반 때 서로 집에서 자는 날이면 네가 어디 나갈까 봐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통화를 했고. 혹시나 내가 잠들면 나갈까 봐 네가 잠이 들고나서 나는 자는 척을 했고 피곤해도 몇 시간 후에 잔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네가 갑자기 피곤하다면서 잔다 했을 때나는 뭔가 좋지 않았다.이 날 역시 영상통화를 하고 네가 잔 후에야 나는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시로 너의 핸드폰을 보며, 네가 싫다고 하는 날에는 네가 자리를 잠시 비울 때 나는 죄지은 거 마냥 몰래 봤어야 했다.누가 봐도 나는 의심병 환자로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너를 만나는 내내 자는 시간 빼고 항상 의심을 했었다.
--이 글을 쓴 이유가 이제부터 시작인데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썼네요. 이후 이야기가 있는데 쓰는데로 바로바로 업뎃하겠습니다.미리 말하지만 저는 미친놈입니다. 주위 사람들 10이면 10명이 다 미친놈이라고 사랑과 전쟁 프로그램에 제보하고 싶다는 같은 말만 하네요. 단,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만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