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성추행한 당신에게

그냥그냥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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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절이 있었다면 13살을 기점으로 약 3년간의 시간이었다. 흔히 그것을 ‘사춘기’라 부르지만 한마디로 정의된 그 단어는 좀 섭섭하다. 적어도 나의 그 암울기는 누구나 때가 되면 겪는 순서라기보다 어떤 충격에서였다. 그 때까지도 난 꽤 자존감이 높은 편이었는데 2차 성징이 시작된 어느 날 그 자존감은 완전히 무너졌다. 사건은 너무 간단했다.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간 슈퍼에서 한 아저씨가 내 가슴을 두드렸다. 말 그대로 두드렸다. 다른 말로 하면 성추행을 당했다. 어린 난 그게 굉장히 수치스러우면서도 뭐가 잘못 된지 제대로 설명할 줄 몰랐다. 그냥 그 순간을 빠져나가면서 결심한게 있다면 ‘다신 여기 안와야지’ 뿐이었다.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면서 그렇게 나는 울지도 못하고 쪼그라 들었다. 아저씨가 내게 무심코 던진 ‘넌 초등학생인데 가슴은 꼭 중학생 같구나.’란 말이 나 자신을 저주하게 만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땐 뭐가 잘못된지 몰랐다. 그냥 내가 싫었을 뿐이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싫은 이 기억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더 명확히 말하자며 잊고 산줄 알았다. 정확히 10년 후인 23살에 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했다. 말해놓고 보니 아무렇지 않게 말해야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던 것 같다. 왜 그때 얘기를 하지 않았냐고 엄만 내 생각보다 많이 화를 냈다. 그 때, 이 이야기를 가장 말하기 어려운 존재에게 이야기 해야만 내가 치유 받을 수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성희롱을 심하게 당했다. 이제 이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대처할 줄 알았던 난 그 순간에 세상에 둘도 없는 병신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어떤 충격을 줄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그 사람은 내게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나도 따라 웃었다. 그 사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난 울었다. 근데 그 사람이 들을까봐 소리죽여 울었다. 10년이나 지났는데 난 여전히 13살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집에 가서는 엄마가 들을까봐 소리죽여 울었다.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내 말에 사장님은 날 아기라고 불렀다. 사회생활을 아직 많이 해보지 않아 충격이 심한 것뿐이라고 그랬다. 사장님도 내 탓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일도 엄마한테 말하기까지 10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이 글을 왜 쓰는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누군가에게 한탄하고 싶었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말이 너무 쉽지 않은가. 난 그들이 내가 받은 상처를, 내 기분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가 받은 상처를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이 상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도 간절히 알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난 울었다. 그 기억 때문에 난 13살에 멈춰버렸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 같은 사람들을 더 배려해주고 공감해주길 바란다. 그냥 간절히 그랬으면 한다.